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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 그리스 와인의 매력에 빠질 준비가 되었나요?

서부 그리스 와인의 매력에 빠질 준비가 되었나요?

고혜림 2022년 7월 15일

여행지도 아닌데 평일 오전부터 와인이라니. 아침부터 설레는 마음을 부여잡고 JW 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로 향했다. 꽉 막힌 도로를 마주하고도 짜증 한 번 내지 않는 모습에서 와인을 향한 나의 열정을 가늠할 수 있었다. 마스터 클래스가 열릴 볼룸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서부 그리스 와인의 세계로 안내해 줄 콘스탄티노스 라자라키스(Konstantinos Lazarakis) MW를 찬찬히 살폈다. 그의 강인한 듯하면서도 유쾌한 미소 띤 표정에서 오늘 테이스팅이 흥미로울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지난 14일, 서부 그리스 와인 테이스팅 이벤트가 열렸다.]

그리스 와인은 한국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도 사정이 다르지 않을 거 같은데, 그리스가 생산하는 와인의 10%만을 수출하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와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전통적인 강호인 프랑스나 미국 외의 색다른 국가에 대한 관심도 늘었다. 라자라키스 MW의 말처럼 미친 듯이 가격이 치솟는 프랑스나 미국, 독일 와인이 아닌 가격 대비 품질이 좋은 그리스 와인은 경쟁력이 있다. 그리스 와인은 구대륙 와인답게 수천 년의 포도 재배 및 양조 노하우, 개성 있는 떼루아, 다양한 포도 품종 그리고 현대적인 양조 기술과 국제 품종과의 블렌딩 등으로 국제무대에서도 점차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리스는 한국과 유사한 점이 있는데,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북쪽만 육지로 이어진다는 거다. 그리고 산과 해안가가 많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그러니 그리스의 빈야드는 산과 바다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매우 가까운 곳에 위치한 포도 재배 지역이라도 지형 조건이 달라지기에 생산되는 와인은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다.

[업계 관계자가 참석한 마스터 클래스]

4,000년 이상의 역사를 간직한 그리스. 그중 서부 그리스 내 아하이아(Achaia)와 일리아(Ilia) 지역을 중심으로 마스터 클래스가 진행되었고, 포도 품종에 대한 간략한 설명 이후 테이스팅이 이어졌다. 아하이아는 험준한 산이 많은 반면 일리아는 산은 상대적으로 적지만 바다에 근접하고 있으며 이를 관개시설로 활용하기도 한다. 해당 지역을 좀 더 세분화하여 PDO와 PGI 지역으로 분류하면, 엄격한 규정을 내세우는 PDO 지역과 좀 더 유연한 규정으로 인해 여러 가지 포도 품종으로 실험적 와인을 생산할 수 있는 PGI 지역으로 나뉜다. 아하이아에서는 PDO와 PGI 와인을 모두 생산하지만, 일리아에서는 현재 PGI 와인만 생산한다.

그리스 와인과 좀 더 친해지면 자연스레 외워질 테지만, 지역과 포도 품종 이름은 생소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와인을 마시면서 들으면 이게 또 외워진다. 와인을 진짜 이해하고 싶다면 책이나 관련 자료에 담긴 기술적 내용을 달달 외우기보다는(물론 이 역시 필요하다!) 제대로 마셔보는 경험이 필수다. 와인 12종을 시음하며 시음 노트에 맛, 향과 특이점 등을 적어 두었다. 더운 날씨 탓인지 레드보다는 화이트가 인상적으로 다가왔는데, 그중 아하이아 지역의 PDO 파트라(Patra)의 드라이 화이트 와인과 일리아 지역의 PDO 마브로다프네 오브 파트라(Mavrodaphni of Patra)의 주정 강화 스위트 레드 와인이 기억에 남는다.

먼저, 화이트 와인은 고지대 싱글 빈야드에서 수확한 로디티스(Roditis) 품종으로만 양조했다. 아하이아 지역에서는 와인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품종으로, 로디티스는 한 가지 품종으로 보기보다는 전체 품종의 집합체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로디티스는 여러 다른 갈래로 나뉘기에 다양한 와인 양조가 가능하다. 고도에 따라 동일한 품종의 와인이라도 아로마가 확연히 달라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저지대 로디티스 와인에서 잘 익은 과실향이 잘 느껴진다면, 고지대 로디티스 와인은 시트러스 계열 아로마가 두드러졌다.

스위트 와인은 저평가되는 면이 있기도 한데, 품질 좋은 녀석들을 마셔본다면 그동안 스위트 와인을 외면했던 자신이 원망스러울 거다. 마브로다프네(Mavrodaphni)는 검은 월계수 잎이 느껴지는 레드 품종으로, 달콤한 와인은 PDO 마브로다프네 오브 파트라(Mavrodaphni of Patra)로 지정되나 드라이한 버전은 PGI 레이블만이 가능하다. 포트 와인과 같은 주정 강화 와인으로, 프랑스 오크통에서 오래 숙성하여 알코올 도수가 15%인데도 높다고 느껴지지 않는 게 매력적이었다.

이 밖에도 뮈스카(Muscat) 품종으로 만들어진 PDO 뮈스카 오브 파트라(Muscat of Patra)에서는 청포도 웰치스의 고급 버전이 연상되었는데, 병 숙성을 3년 진행하고 출시되어 복합미가 느껴지는 와인이었다. 평균 해발고도가 높은 아하이아의 애기알리아(Aigialia)는 영웅적 포도 재배가 이루어지는 곳이라 했다. 고도가 높은 만큼 포도를 재배하는 과정에서 부상이 잦을 수밖에 없는데, 그럼에도 포도를 재배하는 이들을 영웅이라 부른다고 한다.

[콘스탄티노스 라자라키스(Konstantinos Lazarakis) MW]

2시간이 조금 넘는 마스터 클래스를 마치고 라자라키스 MW와 인터뷰할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되었다. 배려심 넘치는 라자라키스 씨와의 인터뷰 내용을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정리했다.

1. 그리스 와인의 최신 트렌드는 무엇인가요?

그리스 와인은 이제 그리스 내부에서만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해외로 진출하고 있으며 유럽 전역을 비롯해 호주, 미국 등에도 많이 수출하고 있어요. 접근성이 좋은 저렴한 와인보다는 고품질 와인에 초점을 두고 있으며, 알코올 도수가 낮으면서도 잘 익은 과실에서 나오는 풍미와 복합미, 밸런스를 두루 갖춘 와인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또한, 그리스 와인 생산자들은 유기농법에 대한 이해도가 높기에,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가격 대비 고품질 와인이 탄생하고 있죠.

2. 아시아 국가 중에서 그리스 와인 수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곳은 어디인가요?

일본과 싱가포르가 대표적인 아시아 수출국입니다. 하지만 한국도 수입량이 늘어나고 있죠. 다양한 와인에 대한 수요를 확인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그리스 와인을 더 많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3. 한국에서는 이처럼 뜨거운 여름이면 한약재를 넣은 치킨 수프(삼계탕)을 먹습니다. 이와 잘 어울리는 그리스 와인을 추천해주세요.

(웃음) 로디티스 품종 와인이 좋겠어요. 아로마틱하면서도 산뜻한 산도가 느끼함을 씻어주고. 무엇보다도 맛도 좋고요. 진득하고 눅진한 삼계탕이라면 산도가 중요해요. 산도가 입안을 개운하게 해 주고 요리를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죠.

4. 서부 그리스의 와인 지역이 그리스의 다른 지역과 차별화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서부 그리스는 산악지대와 해안가 지역이 발달한 곳으로 개별적 떼루아와 특수성을 들 수 있습니다. 20분 거리에 있는 비교적 가까운 지역이라도 완전히 다른 와인을 생산할 수 있죠. 게다가 그리스는 빈야드 규모가 크지 않기에, 소규모 생산이 가능하고 세분된 지역마다 그 특성이 다릅니다. 신기하죠. 넓은 스펙트럼의 다양한 와인 생산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와인 메이커의 장인 정신과 양조/재배에 관한 철학을 빼놓을 수 없어요.

인터뷰를 끝내고 테이스팅 이벤트 룸으로 이동했다. 89종의 서부 그리스 와인을 시음하며 생산자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특별한 기회였다. 머나먼 아시아 국가까지 자신들의 와인을 선보이기 위해 날아온 생산자들은 사람들의 질문 하나하나에 친절히 답변해주었다. 그들의 열정 덕분이었을까,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품종과 와인 스타일이 행사장을 나올 때쯤에는 어느덧 아주 친숙하게 느껴졌다.

서부 그리스 와인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높일 수 있었던 마스터 클래스와 입과 코를 즐겁게 해 주고 인상적인 그리스 와인을 맛볼 수 있었던 시음 행사, 모두 흥미롭고 유익했지만 무엇보다도 라자라키스 MW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만의 와인 철학이 엿볼 수 있어 좋았다. 내추럴 와인을 좋아하면서도 싫어한다는 그는 품질이 좋지 않은 와인을 ‘원래 내추럴 와인은 이래.’라고 포장하는 것을 경계한다고 했다. 그리고 일부 알코올 도수에 민감할 수 있지만, 높은 알코올 도수라도 얼마든지 풍미와 밸런스가 좋은 와인을 양조할 수 있음을 자신했으며, 토착 품종이라는 건 한 지역에 100년 이상 존재해왔다면 다른 나라에서 파생된 품종이라 할지라도 해당 지역의 토착 품종이라고 볼 수 있다는 점 등을 강조한 그의 말에 크게 공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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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혜림

와인 덕질 중인 본캐 번역가 / hk@winevisio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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