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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선악과를 끓여 만드는 술, 칼바도스(Calvados)

붉은 선악과를 끓여 만드는 술, 칼바도스(Calvados)

노지우 2021년 9월 14일

오늘 이야기할 술의 모체인 이 과일은 인류 역사의 많은 장면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는 금단의 열매였고, 가장 아름다운 여신을 위해 바쳐졌으나 트로이 전쟁의 씨앗이 된 불씨였으며, 만류 인력의 법칙을 깨닫게 해준 그 과일, 바로 사과입니다.

사과로 만든 술이라 하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술은 시드르가 있죠. 사과로 만든 발효주인데요, 와인과 비슷한 원리로 사과를 즙을 내어 발효시키는 방법으로 만들어지는 이 술은 나라마다 다양한 기준을 갖고 만들어집니다. 프랑스에서는 시드르(Cidre), 영국에서는 사이더(Cider), 스페인에서는 시드라(Cidra), 독일에서는 아펠바인(Apfelwein) 등의 이름으로 불리죠. 다만 나라별로 사과즙을 몇 % 이상을 넣어야만 그 이름을 붙일 수 있는지 등의 세부 기준이 다르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오늘은 이런 발효의 단계보다 한 단계 더 들어가 증류로 넘어가 볼까 합니다. 오늘의 주인공, 사과로 만든 증류주, 사과 브랜디 ‘칼바도스(Calvados)’입니다.

칼바도스는 프랑스에서도 노르망디 지역에서만 나는 사이더를 증류시킨 술을 말합니다. 과일 발효주를 증류시킨 술이니 이것도 브랜디인 셈이죠. 특별한 점이라면 1942년부터 원산지 통제 보호(AOC) 제도를 통해 보호받고 있으며, 덕분에 꼬냑이나 샴페인과 마찬가지로 프랑스의 노르망디 지역에서 나는 증류된 시드르가 아닌 경우 칼바도스라고 불리지 못한다는 것이죠.

칼바도스의 역사
이 칼바도스의 시작이 언제 즈음일까 되짚어 올라가다 보면, 무려 1500년대에 다다르게 됩니다. 깨끗한 물조차 귀하던 시절,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과일을 압착해서 얻어낸 주스는 ‘위생적’이라고 여겨지는 액체였다고 합니다. 이것을 한 번 발효시키면 시드르가 되었고, 증류를 시키면 생명의 물이라는 뜻의 eau de vie를 붙여 eau de vie de cidre가 되었죠. 이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1553년 Gilles de Gouberville이라는 한 신사의 회고록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최초 기록 훨씬 이전부터 노르망디 지역에서는 유사한 방식으로 사과 증류주를 만들어 왔으리라 여겨지고 있죠.

그러나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프랑스는 와인의 나라입니다. 포도로 만든 술을 얼마나 중요시했냐면, 루이 14세가 통치했던 18세기에는 꼬냑(포도로 만든 브랜디)의 활성화를 위해 노르망디 사람들이 칼바도스를 노르망디 밖으로 수출하는 것을 금지하기도 했을 정도였습니다. 포도가 아닌 다른 술이 입지를 다지기 퍽 힘든 환경에서 칼바도스의 위상이 올라간 것은 공교롭게도 필록세라가 창궐했던 1860년대였죠. 줄어드는 와인 생산량 사이에서 이 사과 증류주는 그렇게 저변을 넓혀가며 결국 원산지 보호라는 지위를 얻어냈습니다.

이러한 고난을 겪고 완성된 칼바도스는 증류 후 오크통에서의 2년 이상의 숙성과정을 필수로 거쳐야만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숙성 기간에 따라 명칭도 조금씩 달라집니다. 최소 2년여의 숙성을 거쳤을 경우에는 ‘VS’ 혹은 ‘3 Star’, ‘Fine’ 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3년 숙성에는 ‘Vieux’ 혹은 ‘Réserve’, 4년 이상의 숙성에는 ‘VO’, ‘Vieille réserve’ 또는 ’VSOP’ 라는 이름이 붙죠. 6년 숙성 이상의 칼바도스가 되면 ‘Hors d’âge’, ‘XO’, ‘Très Vieille Réserve’, ‘Très vieux’, ‘Extra’, ’Napoléon’이라는 다양한 명칭을 붙일 수가 있습니다. 전통적인 분류법과 혼합되어 숙성 연차 별로 일컫는 방법이 정말 다양한데, 3년 숙성 칼바도스를 Fine + Réserve를 붙여 Fine réserve라고 부르는 등의 경우도 종종 발견할 수 있답니다.

칼바도스 3대 메이커 : 뷰넬(Busnes)
뷰넬은 노르망디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시드르 메이커 중 하나입니다. 그들의 첫 칼바도스 생산이 1820년도부터였다고 하니 무려 2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셈이지요. 4대에 걸쳐 칼바도스를 만들어온 뷰넬은 1900년대에 크게 번성하던 중, 2차 세계대전의 피해로 잠시 주춤하는 듯하였으나 다시금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메이커입니다.

[(좌) Boulard 증류소]

이 뷰넬은 불라(Boulard)와 C.D.R(칼바도스 협동조합)과 더불어 칼바도스 주요 메이커 3대장으로 불립니다. 그중에서 불라는 1825년부터 칼바도스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원산지 보호법을 도입하기 위해 많은 캠페인에 앞장섰던 메이커로 알려져 있습니다.

[(좌) Le millésimés / (우) La pomme prisonnière]

크리스찬 드루앵(Christian Drouin)
앞서 소개한 뷰넬과 불사의 역사가 200년에 걸친 데에 반해, 크리스찬 드루앵은 1960년부터 칼바도스를 만들기 시작한 비교적 신생 메이커입니다. 그러나 그 생산량이 매우 크기 때문에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그리고 흥미로운 칼바도스를 만들어내는 매력적인 메이커죠. 한국에는 2019년도부터 수입되기 시작했으니, 지난 2년간 접해본 분들도 꽤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중에서도 크리스찬 드루앵의 시그니처로 꼽히는 칼바도스는 사진의 오른쪽에서 보실 수 있는 La pomme prisonnière(라 뽐므 프리소니에르)입니다. 포로가 된 사과라는 이름에 걸맞게 유리병 안에 칼바도스에 조용히 잠겨 있는 사과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를 만들기 위해 매년 봄 자그맣게 움튼 사과나무 가지에 유리병을 끼워 넣고, 4~5개월에 걸쳐 사과가 다 익으면 그것을 거둬 칼바도스를 부어 병입한다고 합니다. 벌써 30여 년간 이러한 방식으로 프리소니에르를 만들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평균적으로 생산량의 40% 정도만 판매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사과나무 가지에 병을 매달고 있는 모습]

물론 이들 외에도 최고의 칼바도스에 이름을 올리는 여러 메이커가 있습니다. 1860년대부터의 역사를 자랑하는 CALVADOS ROGER GROULT, 1923년부터 시작한 Lecompte, 1919년에 설립된 LE PÈRE JULES 등등. 이 외에도 꽤 많은 칼바도스 메이커들이 있지만, 아무래도 한국으로 수입되는 양이 많지 않다 보니 국내에서는 생소한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붉은 사과가 짙은 호박색으로 변모하여 만들어내는 즐거움을 소수만 알고 있기는 너무 아깝습니다. 이번 기사를 읽는 마시자 매거진 독자 여러분들도, 칼바도스를 우연히 마주쳤다면 주저 말고 시도해보길 간절히 추천드리며, Sant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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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지우

“사고(buy) 사는(live) 것을 사랑하는 소비인간. 와인 소비의 즐거움에 빠져 버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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