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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고른 빈티지는 어떤 고난을 겪었을까?

당신이 고른 빈티지는 어떤 고난을 겪었을까?

노지우 2021년 5월 6일

빈티지, 와인을 만드는 데 쓰인 포도를 수확한 해를 일컫는 말이지요. 물론 서로 다른 해에 수확된 포도를 섞어 만드는 논-빈티지(non-vintage) 와인도 분명 있지만, 오늘은 한 해의 포도 농사를 고스란히 담아내는 빈티지에 관해서 이야기할까 합니다.

모든 농작물이 그렇듯 포도 역시도 그해 작황에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에, 해당 지역의 보편적인 기후와 다르게 유난히 비가 많이 왔거나, 더웠던 해의 포도는 그만큼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서 ‘기대치’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그러한 빈티지의 포도라고 하여 무조건 맛없는 결과물을 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본래 그 지역에서 나던 와인 특유의 색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할 뿐, 생산자의 능력과 포도의 특징에 따라서 결과물은 천차만별로 달라지기도 하죠.

이러한 빈티지별 특성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정리해둔 ‘빈티지 차트’라는 것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Wine Spectator와 Robert Parker, Wine Enthusiast에서 내는 와인 빈티지 차트를 보신 분들도 꽤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1. Wine Enthusi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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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obert Par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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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차트들은 만드는 업체별로 와인에 대한 평가의 차이가 존재합니다. 또한, 차트 점수가 높은 지역의 빈티지가 나의 입맛에는 맞지 않을 수도 있고, 점수가 낮은 빈티지가 내게는 맛있을 수 있기에 언제까지나 차트는 참고용일 뿐입니다. 그러나 인류의 힘으로 막거나 복구하기 어려운 자연재해가 발생했던 해라면, 당시의 기후 상황을 고려하여 와인을 고를 때 고려할 수 있겠죠. 그래서 오늘은 와인 시장에서 다소 이슈가 되었던,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빈티지들을 준비했습니다.

2020년 화염이 집어삼킨 나파 밸리
2020년 9월, 미국 나파밸리는 산불로 큰 진통을 겪었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 시작된 산불이 양조장이 모여있는 나파밸리로 옮겨붙어 서울 면적의 26배에 달하는 1만6천km²를 파괴한 것입니다. 캘리포니아 와인 협회에 따르면 20개 미만의 와이너리가 심각한 피해를 보았다고 하지만, 실제로 이 커다란 자연재해의 영향을 받은 양조장은 비단 20개에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산불이 발생한 시기가 하필이면 포도의 베레종을 마치고 수확되기 직전 즈음, 포도의 향이 결정되는 마지막 순간이었기 때문이죠. 이때 연기에 노출되게 되면 포도는 ‘스모크 테인트(smoke taint)’, 즉 연기 오염으로 불쾌한 향을 담은 와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물론 이 또한 생산자의 생산 방식에 따라 적당히 오염된 냄새를 걸러내어 무조건 최악의 와인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나파밸리에서 생산된 2020년 빈티지 와인들의 수량이 평년보다 적을 것이라는 겁니다. 4-5년 후 해당 빈티지의 와인들이 시장에서 어떻게 거래되고 있을지는 독자 여러분들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보르도의 악몽 2013년, 그리고 2017년
보르도는 프랑스에서도 비가 잦아 습하고 온화한 해양성 기후가 특징입니다. 다만 매년 그 기후의 패턴 변화가 꽤 큰 편이라서, 단 한 시즌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는 점이 단점이겠지요. 그에 대한 가장 큰 반증은 바로 2017년 봄의 서리입니다.

2017년 4월 말 보르도의 아침은 -4도를 기록하며 아직 어린 포도를 꽁꽁 얼렸습니다. 미처 열매의 형태를 갖추기도 전인 작은 포도알들이 얼어 죽어 나갔고, 이는 보르도의 양조장 중 70%가량이 ‘심각한 피해를 보았다’고 할 정도로 큰 파장을 만들었습니다. 실제로 수확량은 2016년 대비 절반가량인 46%나 감소했다고 하니 그 피해를 가늠하실 수 있을 겁니다. 덕분에 아직도 2017년의 보르도 빈티지는 환영받지 못하는 와인이 되어 버렸죠.

이 못지않게 환영받지 못하는 보르도의 또 다른 빈티지는 2013년입니다. 2017년은 서리라는 강력한 방해꾼이 있었던 해라면, 2013년은 1년이 총체적 난국인 해에 가까웠죠. 봄에 유독 비가 많이 왔던 덕분에 봉우리가 늦게 맺혔고, 덕분에 알도 작고 성장할 수 있는 기간이 짧았던 포도알은 7월이 되어 또 복병을 만났습니다. 1999년 이후 최악이었다고 전해지는 폭풍이 들이닥쳤죠. 그리고 얼마 후에는 우박까지 쏟아졌습니다. 수확하는 시기에는 다행히 따뜻한 날씨가 계속되었지만, 험한 봄 여름 가을을 지낸 포도가 회복되기에는 역부족이었을 겁니다. 그렇기에 2013년 보르도 와인은 많은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크게 환영받지 못하는 빈티지로 불립니다.

[2017 칠레의 불꽃]

칠레 와인 산업에 2017년은 유독 힘든 해였습니다. 유달리 높았던 기후 때문에 포도의 양이 많지 않았을뿐더러, 평소보다 한 달여를 일찍 시작한 수확 기간에 맞물려 산불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때의 와인도 서울의 약 10배가량의 땅을 태울 정도로 큰 산불이었고, 이는 당시 칠레의 바첼렛 대통령이 ‘칠레 역사상 최악의 산불’이라고 언급할 정도로 안타까운 사건이었죠. 물론 2017 빈티지 중에서는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혹은 대중들에게 꽤 좋은 평을 받는 와인들이 있습니다. 따라서 빈티지를 맹신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고른 와인에 대해서 조금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알고 계시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빈티지가 와인의 모든 것을 결정짓는 요소는 분명 아닙니다. 생산자의 양조 방식에 따라서 얼마든지 단점을 극복해 낼 수도 있고, 또 해당 지역의 특색과는 좀 다를지라도 매력적인 와인이 결과물로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소개한 2000년대의 대형 재해들은 와인 산업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는 커다란 사건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와인을 사랑하시는 모든 독자 여러분들이 와인을 고르실 때 이 빈티지들이 유용하게 쓰이길 바라며, Sant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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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지우

“사고(buy) 사는(live) 것을 사랑하는 소비인간. 와인 소비의 즐거움에 빠져 버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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