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아버지에게 배워야 한다.”
성인을 위한 인생 지침서 첫 페이지에 올라야 하는 명문입니다. 그러나 아버지와의 술자리에는 ‘How’ 만 있을 뿐 ‘What’ 과 ‘Why’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호기심의 갈증을 채우기 위해 책과 인터넷, 전문가의 강의를 통해서 맥주를 공부합니다. 그리하여 라거와 에일, 흑맥주의 차이점을 인지하고 본인의 취향에 맞는 맥주를 선택하여 즐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흐름은 조금씩 와인으로 넘어오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고기엔 레드 와인, 생선엔 화이트 와인”이라는 옛 프레임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고, 업계 종사자가 아니더라도 준 전문가에 비하는 지식을 갖추고 싶어 합니다. 그 시작점이 바로 와인 자격증 과정인 WSET와 CMS입니다.
CMS와 WSET는 각각 Court of Master Sommeliers와 Wine & Spirit Education Trust의 줄임말입니다. CMS는 1977년 영국에서 설립된 기관으로, 호텔과 레스토랑에서의 음식과 와인 매칭, 와인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서비스를 평가하는 시험을 주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WSET는 1969년에 설립된 와인 전문 교육기관으로, 와인과 증류주 시장에 대한 이해도, 포도밭 관리와 양조,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와인 자체에 관한 심층적 이해를 요구합니다. WSET 역시 영국 런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두 시험은 추구하는 목적이 엄연히 다릅니다. 따라서 본인이 추구하는 목적에 부합하는 시험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제부터 CMS와 WSET는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만약 필드에서 활약하는 소믈리에가 목표라면 CMS를 준비하는 것이 옳은 선택입니다. CMS는 와인, 와인과 음식의 페어링, 서비스에 강점이 있습니다. 반면 WSET는 서비스와 음식 페어링 부분이 빠지는 대신, 포도밭 관리와 와인 양조에서부터, 마케팅과 유통까지 전 세계 와인 산업 전반을 다루고 있습니다. 공부를 마친 후의 진로도 역시 다를 수밖에 없는데요, CMS 과정을 밟는 사람들은 대개 와인의 꽃이라 불리는 소믈리에의 길을 걷습니다. 시험 이름에서부터 마스터 소믈리에(Master Sommelier)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오는데, 양조자가 되려는 사람이 이 시험을 준비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반면 WSET 디플로마(Diploma) 과정은 진로에 있어서 선택의 폭이 넓습니다. 와이너리, 와인 수출입 회사, 잡지사, 와인샵, 와인 교육기관 등 와인 지식을 요구하는 모든 곳에서 경력을 쌓을 수 있습니다.
테이스팅에서도 접근 방식이 다른데, 우선 CMS와 WSET 모두 연역적 추리 과정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마지막 정답이 달라도 그 과정이 올바른 추리였다면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것이죠. 차이점은 품질 평가에 있습니다. WSET 디플로마 과정의 평가 방법은 품질을 나쁨(poor)-그런대로 괜찮음(acceptable)-좋음(good)-매우 좋음(very good)-뛰어남(outstanding)으로 나누는데 이 평가의 이유를 5가지 기준에 입각하여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합니다. 복합성, 균형, 표현력, 응축도, 후미가 이에 해당합니다. 예를 들어 품질을 매우 좋음(very good)이라고 판단했다면
“균형감이 좋고 포도 품종의 표현력이 우수하여 좋음(Good)보다 좋으나, 후미가 짧고 집중도가 떨어져 매우 뛰어남(outstanding)이 되지 못한다.”
이런 식으로 품질 평가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반면 CMS는 연역적 추리의 마지막 과정에서 품질 평가가 없는 대신 구세계와 신세계를 구분하고 기후, 품종, 지역, 그리고 빈티지를 맞춰야 합니다. 어느 방법이 좋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잰시스 로빈슨, 로버트 파커, 와인 스펙테이터와 같은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들과 와인 기관은 그들만의 기준을 정립하여 평가하고 와인에 점수를 매기는데, 디플로마 과정의 평가 방법을 습득한다면 상대적으로 그들의 점수 체계를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WSET와 CMS의 단계는 다음과 같이 구분됩니다.
WSET | CMS |
WSET Level 1 | Introductory |
WSET Level 2 | Certified Sommelier |
WSET Level 3 | Advanced Sommelier |
WSET Diploma | Master Sommelier(MS) |
일반인들이 와인을 즐기는 데에는 WSET level 1, 2와 CMS Introductory 정도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WSET Level 3와 CMS Certified Sommelier부터는 전문가들을 위한 과정이고, 특히 CMS Master Sommelier는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시험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WSET Diploma와 Advanced Sommelier를 동일 선상에 두고, MW(Master of Wine)와 MS를 와인 업계에서 이룰 수 있는 최상의 경지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WSET Diploma와 CMS Advanced Sommelier는 시험의 난이도 측면에서는 비슷하다고 할 수 있으나 응시 과목이 판이하게 다르므로 이 두 시험이 동급이라고 단순하게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CMS의 마지막 단계는 마스터 소믈리에입니다. 현재 마스터 소믈리에는 전 세계에 단 236명만이 존재하고 2016년에는 한국의 김경문 소믈리에를 포함하여 총 6명의 마스터 소믈리에가 탄생했습니다. WSET의 경우, 공식적인 WSET의 공식적인 마지막은 디플로마 레벨이지만, 실질적인 마지막 단계는 마스터 오브 와인(Master of Wine, 줄여서 MW)입니다. MW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칭호이자 교육기관의 이름이기도 하며 런던, 보르도, 시드니, 애들레이드, 홍콩, 샌프란시스코, 나파, 뉴욕 등지에서 공부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현재 전 세계 355명의 MW가 와인 업계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MW는 WSET 디플로마에 합격하고 최소 3년 이상의 와인 업계 경력과 함께 현존하는 MW의 추천장을 받아야만 도전할 수 있습니다. MS는 CMS Advanced Level과 와인 업계에 있으면 되는 것에 비해 MW는 상당히 까다로운 조건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 시험 모두 극악의 난이도와 합격률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아직 MW가 나오지 않았는데요, 한국인 MS가 탄생한 만큼, 한국인 MW가 탄생할 날도 머지 않았기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