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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imes I had – 내가 겪은 탈린의 시간들

The times I had – 내가 겪은 탈린의 시간들

신동호 2017년 1월 17일

내가 숙소를 고르는 기준 중의 하나가 시끄럽지 않은 곳이다. 여행 비용을 줄이려고 주로 호스텔을 이용하는데, ‘내성적인’ 호스텔을 선호한다. 유럽을 여행하는 친구들은 Outgoing 한 성격들이 많아서 새로운 사람과의 인연을 중시하고, 그 인연과의 짧은 추억도 만들길 원한다. 물론 조용히 만나서 인사하고 대화하는 것으로 그 인연의 틀을 조성하는 청년들도 있지만, 늦은 밤 숙소 1층 정도에 있는 바 Bar에서 만나, 술 한잔 걸치며 가속도 붙는 친분을 쌓으려는 백패커들이 더 많다. 물론 그 문화를 좋아하지만, 여행 중 대부분의 저녁 시간을 여행 계획을 짜는 데 소비하는 나로서는 흥이 나는 공간이 부담스럽다. 하지만 때론 질펀하게 마시면서 즐기고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 고른 숙소가 ‘탈린 백 패커스 호스텔 Tallinn Backpackers다. Olevimagi Street를 따라서 중심부로 가다가 여러 길로 나뉘는 모퉁이에 숙소가 있다. 빨간 문을 찾으면 된다.

탈린 백패커스 호스텔 Tallinn Backpackers의 빨간 대문

탈린 백패커스 호스텔 Tallinn Backpackers의 빨간 대문

리셉션에서 체크인하고, 공지사항을 들은 후 에피타이저 급의 숙소 둘러보기가 시작되었다. 숙소로 올라가는 계단의 외벽은 동굴의 아우라를 지녔고, 각 방에는 고유의 방 이름이 붙어 있었다. 짐을 내려놓고 1층 로비로 내려왔다. 낮에는 조용히 각자 자기 할 일들을 하는데, 밤에는 오방색을 띤 불빛이 투숙객들을 모이게 한다. 이곳을 찾았던 사람들이 올려놓은 블로그에서 이미 예습을 하고 온 터라 낮인데도 밤이 상상이 된다. 아니나 다를까 이곳에서 2박을 했는데, 밤마다 룸메이트가 방에 있는 날 끌고 내렸다. 첫날은 피곤해서 반 강제적으로 내려왔다면, 둘째 날은 자발적 동의를 나 자신에게 얻은 후 일찍부터 자리 잡고 즐겼다. 가만히 술잔만 들고 있어도 동양인이 나밖에 없어서 그런지 소극적이라도 관심을 보인다. 결국, 핀란드 청년들과 마신 보드카로 인해 내 마지막 하루는 기억의 맺음 없이 끝나고 말았다. 사실 내 여행기에서 숙박 시설에 관한 이야기는 많지 않다. 슬로베니아 류블랴나의 감옥 호스텔과 같이 호스텔 자체가 유명하지 않은 이상. 각종 에피소드도 여행 중에 부화하는 게 대부분이라서 숙소의 이야기는 무미건조하다. 아무튼, 탈린에서는 내 여행에서 드문 호스텔 파티를 즐겼기 때문에 그 여운도 길다. 첫날 밤, 반강제적으로 참여한 파티, 아직 몸이 덜 풀린 것 같아 혼잡한 호스텔에서 나왔다. 확 트인 어딘가에 날 내몰았다.

[사진 002] 1층 로비 한 벽면을 차지하는 파티 사진들.

[사진 002] 1층 로비 한 벽면을 차지하는 파티 사진들.

구시청사와 시청광장 Raekoja plats. 구시청사는 북유럽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고딕 양식의 건물이다. 광장 한가운데 높은 첨탑이 있는 건물이 보이는데, 이것이 구시청사다. 여름철이면 일반에게 공개가 된다고 한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지만, 저 시청사 건물 첨탑 꼭대기에 유명한 일화가 담긴 풍향계가 있다. 토마스 할아버지 Old Thomas.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로 알려진 토마스는 원래 천한 신분으로 살아가다가 탈린 시를 지키는 파수병이 되었다. 할아버지는 시 전반을 지키면서, 광장에 모인 아이들에게 사탕을 주는 친절함을 선사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에도 그 여운을 상징적으로 이어가고자 시청에서 가장 높은 첨탑에 토마스 할아버지 형상을 한 풍향계를 설치하였다. 탈린 시민들은 아직도 그가 이렇게 하늘에서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구시청사를 중심으로 광장에는 노천카페와 식당들이 즐비하다. 여름철에는 중세 시대에 걸맞은 장이 열린다고 한다. 비 오는 밤에 보니, 반사되는 바닥의 돌이 더 아름다워 보인다. 에스토니아 전통 복장을 입고 나온 식당 직원들의 호객 행위도 맞닥뜨릴 수 있는데, 생각보다 질기지는 않으니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사진 003] 구시청사의 모습

[사진 003] 구시청사의 모습


탈린의 매력이라면, 크지도 않은 구시가지를 걷다가 멈추게 하는 데 있다. 작은 골목을 지나치면 또 다른 (크지도 않은) 세상을 볼 수 있다. 로마의 웅장함과는 대비되는 소박한 중세의 미가 살아 숨 쉬고 있다. 특히, 동양인들에게는 아직 미지의 나라인 만큼 나만의 아지트인 양 시가지를 돌아보는 재미가 생긴다. 탈린의 베스트 여행길이라 할 수 있는 곳은 바로 톰페아 언덕 Toompea이다. 구시가지 시청 근처를 돌아다니다가 이정표만 잘 따라가면, 톰페아 언덕으로 갈 수 있다. 난 몇 번이고 돌아다니다가, 한 관광객 무리가 모여 있길래 가 보니 톰페아 언덕 초입부였다. 톰페아 언덕을 올라가는 길은 한 군데가 아니다. 처음에 다다른 골목으로 들어가 보니, 고행길(계단)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언덕은 밤에 인기가 많다. 도시를 바라보는 야경이 백미라는 게 여행 책자 여기저기에 나와 있나 보다. 여행객이 그나마 많다는 것이지, 전체적인 여행 인구밀도는 낮은 편이다. 오히려 좁은 골목을 지날 때 한산한 기운이 엄습해 온다. 탈린은 치안이 안정된 곳이라 이내 안심하게 된다.

[사진 004] 톰페아 언덕에서 바라 본 야경

[사진 004] 톰페아 언덕에서 바라 본 야경

톰페아 언덕으로 올라가는 다른 길. 이곳은 가파른 계단이 아니라 완만한 경사가 있는 돌담길이라 천천히 올라가기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밤에는 하늘을 스크린 삼아 바라보며 오르면 웬만한 영화관 비교할 수 없다. 아치형 출입문이 있는 초입부에서 여행 가이드가 여행객들을 상대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지금 걷는 길이 서툴다면, 다른 여행객들의 루트를 살짝 엿보는 것도 여행의 한 지혜다.

[사진 005] 톰페아 고지대 벽면에 씌여진 글귀. The times we had(우리가 겪은 시간들)

[사진 005] 톰페아 고지대 벽면에 씌여진 글귀. The times we had(우리가 겪은 시간들)

톰페아 전망대 쪽으로 올라가게 되면, 돔 성당 Toomkirik이 나온다. 이 교회 이름에서 톰페아 언덕이 명명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미사를 드리지 않고, 중세시대 길드 상인들의 유물을 전시하는 곳으로 사용되고 있다. 에스토니아 시청사 광장에서 좀 더 위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Hell Hunt’라는 크래프트 비어 펍을 찾을 수 있다. 펍의 로고에 1993년도 설립연도가 적혀 있고 동시에 ’The First Estonian Pub’이 새겨져 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펍임에 틀림없다. 펍의 이름(지옥 사냥?)만 보면 뭔가 섬뜩한 기분까지 든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석조 인테리어와 곳곳에 배치된 소품들이 그 이름의 성격을 대변해준다. 특히, 천장 인테리어에 신경을 쓴 흔적이 보인다. 펍 주위를 둘러보면, 애주가가 여유롭게 즐길 수 있을 정도의 큰 실내 공간이 기본인 수도 탈린 올드타운의 스탠다드한 레스토랑이다. 이 펍의 대표적인 Draught Beer는 총 4가지(Cider까지 포함하면 5가지)다.

Hell Hunt Hele(Hele/Lager, 4.6%)
Hell Hunt Tume(Tume/Dark, 5.0%)
Hell Hunt Nisuõlu(Nisuõlu/Wheat beer, 4.6%)
Hell Hunt Ale(Ale, 5.2%)
Hell Hunt(siider/Cider, 4.7%).

[사진 006] 헬 헌트 펍의 대표적인 드래프트 맥주

[사진 006] 헬 헌트 펍의 대표적인 드래프트 맥주

맥주를 마시다 보면, 내가 도시의 술집이 아닌 산 중의 산장으로 환승된 기분이 든다. 낮에는 레스토랑 분위기가 연출되고, 초저녁에는 조용히 맥주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며, 밤이 되면 이곳은 공연장이 바뀐다. 펍의 문 밖에는 펍에서 주최하는 공연 이외에 다양한 외부 행사 포스터가 붙어있다. 맥주를 마셔보자. 내가 처음 선택한 맥주는 ‘Hell Hunt Tume’. Tume이란 에스토니아어로 ‘어두운’이란 뜻으로, 다크비어를 뜻한다. 스타우트 맥주와는 다르게 밀도 감이 적으며, 탄산도 높다. 따라놓은 거품은 짧은 시간에 사라지며, 과일 향이 나서 에일의 느낌도 난다.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운 맥주였다. 다음에 마셨던 맥주는 또 다른 에스토니아 탭 비어인 ‘München Vaskne’이다. 이 맥주는 6.7%의 Amber Ale이며, 베리 향, 바닐라 향, 캐러멜 향이 어우러져서 달콤하다. 하지만 호불호가 갈릴 만한 게, 마냥 강한 스위트한 향이 아니며, 결이 조금 다른 향이 섞이다 보니 이를 극복해야만 내 것이 된다. malts, grass, mildly caramell, bitterness and mildly butter. 개인적으로 난 적응하려고 애썼던 기억이 난다. 맛도 캐러멜과 라즈베리 풍미를 느낄 수 있으며, 앰버 에일인 만큼 맥주는 붉은색을 띠고 있으며, 거품 유지력도 높지 않다.

[사진 007] 산장의 느낌이 나는 헬 헌트 펍의 로고

[사진 007] 산장의 느낌이 나는 헬 헌트 펍의 로고

탈린 올드타운에 오기 전에 누구나 알고 왔을 만한 레스토랑. 바로 ‘올데 한자(Olde Hansa)’. 올드타운 저지대 한가운데 위치한 터라, 위치를 모르고 와도 한눈에 알 수 있다. 중세 분위기의 인테리어와 그 당시의 음식을 판매하는 레스토랑이다. 내부 인테리어 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복장이나 음악까지 중세시대로 연출되어 있다. 뭐 어디를 가나 그러하듯, 여행객들에게 가장 유명한 집은 일단 가격에서 경쟁력이 떨어지고(비싸다는 말), 맛도 가격 대비 그리 좋은 평을 얻지 못할 것이다. 명동 와서 칼국수를 먹고 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탈린에 오면 꼭 먹고 가야 직성이 풀리는 분들에게는 추천할 만한 곳이다. 거리 곳곳에서 전통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흑설탕으로 코팅한 아몬드나 호두에 시나몬 가루를 뿌려 즉석에서 볶아 팔고 있다. 올데 한자 레스토랑 앞에도 길거리 부스를 만들고 관광객들에게 아몬드 시식을 권하고 있다.

여행 중에 약국의 위치를 아는 건 필수다. 여행 중, 비상 약품을 소지하는 게 원칙이지만, 불시에 아프거나 상해를 당하면 얼른 약국을 찾아가야 한다. 희한한 건, 탈린에는 관광지 중에 약국이 포함되어 있다. 특별한 약국이 존재한다. 유럽에서 현존하는 약국 중 가장 오래된 약국이기도 하다. ‘라에아프텍 Raeapteek’. 1422년에 생긴 약국으로 약 600년 동안 10대째 영업을 하는 약국이다. 탈린의 역사가 800년이니 이와 비등한 역사적 가치가 있는 곳이다. 이 약국이 주목받는 건, 일반 조제약뿐만 아니라 마치 마법에나 나올 법한 약도 판매한다. 말린 두꺼비, 고슴도치, 개똥 등 이런 약재들이 상품 목록에 존재한다. 에스토니아에서 만난 한의원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는 약은 ‘이별을 치유하는 약’이다. 흥미로운 약인 만큼, 기념품으로 많이 사 간다고 한다. 인간의 모진 상술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사진 010] 라에아프텍. 마법사가 조제한 약을 판매하는 곳이다.

[사진 010] 라에아프텍. 마법사가 조제한 약을 판매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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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호

발로 기억하는 보헤미안, 혀로 즐기는 마포술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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