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을 찾은 여행자들이 단 5분을 투자해서 얻을 수 있는 가장 값진 일은 무엇일까. 필자는 망설이지 않고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 ‘징샨공원(景山公园, Jingshan Park)’에 오르는 것이라고 답하고 싶다. 여행지에서의 추억으로 긴 세월을 가슴 속에 간직할 수 있게 될 그 ‘무엇’이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 중화사상(中華思想), 화이사상(華夷思想) 등 그 명칭에서 알 수 있듯, 때때로 중국은 스스로를 칭해 ‘세상의 중심’이 되길 주저하지 않았다.
실제로 정치, 경제, 문화 등 다방면에서 세상의 중심에 자신들을 두고, 중심에서 벗어난 동서남북 각 지역을 칭해 이적(夷狄) 혹은 오랑캐로 분류했다. 한민족을 가르켜 동쪽의 오랑캐를 의미하는 ‘동이족(東夷族)’이라 칭했던 것 역시 여기서 유래됐다.
청나라 말기, 서양 사신들이 개방을 요구하며 황제를 알현하고자 했을 때에도 이들의 뿌리깊은 중화사상은 그대로 노출된다.
당시 황제 알현을 위해서는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땅에 조아리는 ‘삼궤구고두례 (三跪九叩頭禮)’를 행해야 했는데, 영국왕 조지 3세의 친서를 가지고 온 사신단은 이를 끝까지 거부했다. 당시 청나라 건륭제는 ‘서양에서 온 오랑캐가 무식하다’며 이들 사절단의 요구를 수용치 않고 그대로 쫓아보낸다. 서양 사신들에게는 비단 중국 문호 개방만이 문제가 아니라, 황제 알현부터가 이들에게 고단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껏 ‘중국(中國)’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며, 세상의 중심이기를 원하는 중국과 수도 베이징의 ‘진짜’ 중심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징샨 공원에 있다.
번쩍이는 황금빛에 아련하게 새겨진 ‘The Central Point of Beijing City(北京城中心点)’, 바로 이곳이 이들이 칭하는 세상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자금성 북문(北門)을 뒤로하고 마주하게 되는 징샨 공원은 13세기 중엽 원나라 시기까지는 황궁의 일부로 속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1420년 명나라 영락제(永乐) 18년, 지금의 자금성을 증축하며 남은 토양들을 그대로 쌓아올려 약 45m의 인공 토산을 만들어 내며 지금의 징샨 공원 형태로 완성됐다.
당시에는 ‘만쉐이샨(万岁山)’으로 불렸으며, 이후 청나라 시대 순치(顺治)황제가 즉위한 이후 지금의 징샨 공원으로 명칭을 변경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지금껏 베이징런(北京人)들 중 상당수는 메이샨(煤山), 쪈샨(镇山), 만쉐이샨(万岁山) 등 다양한 명칭으로 이곳을 부르며 자주 찾는 것을 큰 영광으로 여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금이야 원하는 이들 누구에게나 입장을 허용하는 만인을 위한 공원이지만, 한때는 황제들만 들어올 수 있는 비밀의 공원 역할을 하던 곳이었기 때문인데, 실제로 명나라 16대이자 마지막 황제 숭정제(崇祯帝)가 농민군 출신 이자성(李自成)의 난에 패하고 가까스로 자금성을 탈출한 뒤 이 곳 한 켠에 죽어있던 고목 나무에 목을 매었다는 흉흉한 소문을 가진 곳이다. 당시 목을 매야 했던 숭정제의 나이는 33세에 불과했다고 전해진다. 흉흉한 전설을 품은 징샨공원은 그만큼이나 오랜 기간을 중국 역사와 동거동락했다.
더욱이 지금이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솓은 마천루들이 베이징 시내 곳곳을 빼곡이 채우고 있지만, 청나라 시기까지 징샨 공원의 가장 높은 지점은 베이징 성내에서 가장 높은 조망권을 가진 곳이었다.
5곳의 봉우리를 가진 징샨공원에는 징샨5정(景山五亭)이라 불리는 주상정(周赏亭), 관묘정(观妙亭), 만춘정(万春亭), 집방정(辑芳亭), 부람정(富揽亭) 등이 있어, 각 봉우리마다 조망할 수 있는 지역이 분할돼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높은 조망권을 가진 만춘정 정면으로 하늘 아래 광활하게 펼쳐진 자금성이 한 눈에 들어온다.
만원경을 한 손에 든 여행객들은 주저하지 않고, 만춘정 정면으로 내려보이는 자금성을 조망하기 위해 명당을 사수를 불사한다. 심지어 이른 새벽부터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전문 사진 촬영 기사들은 아침, 점심, 그리고 해가 지는 일몰 시간에 맞춰 명장면을 건져내기 위해 혈안이 된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빛의 양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시내를 사진에 담아내기 위해서 이 정도의 희생은 조금도 아깝지 않은 눈치들이다.
이렇듯, 베이징의 중심이자, 한 때는 세상의 중심이라 칭했던 황제의 쓸쓸한 최후가 전설로 남았있는 징샨공원을 오르는 것은 어쩌면 이 세상에서 5분을 투자해 이룰 수 있는 가장 값진 경험이 아닐까.
에디터
임지연 (중국거주 작가)
작성일자
2016.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