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a de Luna 769.6km~Hiker Town 832.9km~Tehachapi 911.6km
5/2-수. 34일째
PCT를 시작하기 전부터 ‘내가 이 곳에 갈 수 있을까.’ 싶었던 까사 데 루나에서의 하룻밤을 지내고 아침 식사를 한 뒤 짐을 챙겼다. 남아있을 하이커들과 인사를 나누고 기념 촬영을 한 뒤, 차를 타려는데 같이 걸었던 하이커 한 명이 다가와 나의 개인 SNS를 묻고는 나를 끌어안는다. 섹션 하이커인 그는 이곳에서 집으로 돌아간단다. 그 사이 정이 들었는지 헤어져야 한다는 말에 괜시리 마음이 허전하다. 서로 건강하라는 인사를 남기고 나는 트레일로 돌아왔다. 헤어지고 만나는 게 트레일 위의 일상이라지만 이별은 늘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다른 이들보다 내게 더 이 트레일 위의 모든 것이 특별한지도 모르겠다. 다시는 이곳에 올 수 없을 테니까. 다시는 이들을 만나지 못할 테니까.
생각에 빠져 걷고 있는데 함께 걷는 하이커인 세시 케이가 뒤에서 다가오며 가방 무게가 얼마나 나가느냐고 묻는다. 사실 언제부터인지 가방 무게를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메고 걸을 수 있으면 그냥 그대로 짊어지고 트레일로 들어섰는데 ‘하이커 헤븐’에 가방 무게를 재는 저울이 있었는가 보다. 자신은 40LB(파운드=18kg), 캐논은 50LB(22.7kg)란다. 캐논은 망원 렌즈까지 가지고 다니니 무게가 많이 나갈 거라 예상했지만 내 가방의 무게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늘 무게를 줄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는데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뺄 만큼 뺀 것 같은데도 여전히 무거운 배낭을 어찌 해결해야 할까 늘 고민이다.
하루종일 안개 속을 걸으니 아침인지 오후인지 모르겠다. 시간 개념 없이 배낭 무게에 대한 고민에 빠져 걷고 있는데 거대한 나무가 쓰러져 있다. 이제 저 나무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구나 싶은 마음에 시간의 단절이란 참 무서운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800km 지점을 지났다. 마일(Miles)을 사용하는 미국의 트레일인지라 누구도 표시 해 두지 않았지만 400km를 넘었을 적의 그 기쁜 마음을 되새기고자 잠시 걸음을 멈추고 길옆의 도토리로 길 위에 800km의 숫자를 만들어 사진을 남겼다. 누군가 km를 사용하는 나라에서 온 하이커라면 그에게도 기념이 되겠지.
5/3-목. 35일째
오늘은 ‘하이커 타운’이라는 곳을 거쳐 간다. 거리상 그곳에서 하루 캠핑을 할 예정이다. 밤새 안개가 사라지지 않아 텐트의 레인 플라이(겉에 씌우는 덮개)가 축축하다. 햇빛이 나지 않으니 말릴 수 없어 그대로 가방에 쑤셔 넣고는 다른 이들보다 일찍 캠핑장을 나섰다. 헌데 생각지도 않게 출발 30분도 안 되어 트레일 매직을 만났다. SUV가 한 대 서있고, 트렁크에 작은 아이스박스와 간단한 스낵들을 가지고 있었다. 차량이 많을 곳이 아닌지라 물으니 친구들이 그곳에서 하이킹을 갔단다. 자기네는 바래다주러 온 김에 먹고 마실 것들을 좀 챙겨왔다며 물과 쿠키, 소다 등을 권한다. 물은 어제 저녁 많이 챙겼기에 소다 한 캔을 마시며 잡담을 나누다 다른 하이커가 다가와 그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감사 인사를 건넨 뒤 트레일로 들어섰다.
몇일째 황무지와 숲을 번갈아 가며 지나고 있다. 숲에 들어서면 언덕인데도 오래된 나무들이 드문드문 서 있고 그 아래는 풀들이 자라고 사이사이로 하늘이 보이는가 하면 숲이 우거져서 습한 기운이 느껴지는 곳도 있다.
점심을 먹고 난 오후 내내 강하게 내리쬐는 태양을 피할 수도 없어 그대로 맞으며 힘겹게 걷고 있는데 멀리 작은 마을 같은 것이 보인다. 그런데 분명 눈앞에 마을이 보이는데도 그 앞에 있는 언덕 대여섯개를 돌고 돌아 넘어서 가다보니 지치고 힘이 들어 걸음을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는 일이 잦아졌다. 이토록 비효율적인 진행 방식이라니… 더운 날씨 탓인지 살짝 짜증도 난다. 아니, 넘어오더라도 직선거리에 있는 언덕을 스위치백으로 넘어오면 될 것을 그 옆으로 가서 다시 옆으로 돌아 아래로 내려가서 옆에 있는 다른 언덕으로 다시 올라가니 열심히 가다가 저 앞의 두 개 쯤 건너 언덕의 코너를 돌고 있는 다른 하이커의 뒷 모습을 보면 기운이 빠지고 허망해 진다. 멋진 길 인줄 알았는데 거리 채우기에 급급했던걸까 싶은 생각에 울컥 하기도 한다. 그렇게 짜증 잔뜩 내며 가다가 유난히 짙은 향내가 나서 돌아보니 불에 타 아래부분 가지들은 죽고 윗 가지에 맺힌 솔방울이 보이는 작은 나무가 서 있다. 이제껏 지나쳐온 그 어떤 나무보다 깊고 진한 향을 뿜어내고 있어서 짜증 가득했던 발걸음조차 멈추게 만들었다. 걸음도 마음의 짜증도 잊은 채 숨을 깊게 들이쉬어 그 짙은 향을 가슴 깊은 곳까지 채웠다.
그렇게 도착한 하이커 타운을 보자마자 웃음부터 터진다. 마치 영화 세트장처럼 작은 집 하나를 여러 개 세워두고 우체국, 호텔, 살롱등의 간판을 붙여두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가게가 없다! 먼저 도착한 하이커와 서로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다 들으니 이곳엔 가게가 없단다. 충격에 빠져 있다가 하우스가 말을 걸어오자 인사를 나눈 뒤, ‘맙소사, 가게가 없대, 난 지금 진짜 시원한 맥주가 필요한데.’ 했더니 날 끌고 가면서 자기가 나한테 줄 게 있단다. 와우~ 하이커들이 쉴 수 있는 공간처럼 마련된 창고 같은 곳에 냉장고가 있는데 거기서 맥주 한 캔을 꺼내어 내게 건넨다! 우와, 너 최고다! 엄지를 치켜 세워주며 땡큐를 연발하고는 진짜 꿀떡꿀떡 마셔 치웠다. 그리곤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멀리서 차 한 대가 다가온다. 몇 몇 하이커들이 차에서 내리는데 손에 맥주 12캔짜리 박스를 들고 있다. 어디서 구했는지 물으려 다가가는데 운전하신 분이 카페랑 스토어 가는 마지막 셔틀이라고 소리치면서 타라고 한다. 이곳에 가게가 없어 근처의 제너럴 스토어(지역마다 있는 작은 가게)와 카페를 겸한 곳의 사장님이 하이커들이 많이 오는 시즌이 되면 이렇게 차량으로 셔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던 것이다. 늦게 도착해 먹고 마실 거리가 아무것도 없던 하이커들과 차에 올라타 다 같이 스토어로 향한다. 필요한 것을 구입 하며 다음 셔틀이 떠나기를 기다리고 있자니 우리보다 늦게 도착한 하이커들이 ‘하이커 타운’에서 차를 빌려 이곳으로 왔다. 겨우 반나절 떨어져 있었을 뿐인데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는 그들은 가게 안으로, 우리는 다시 셔틀에 올라 ‘하이커 타운’으로 돌아왔다. 마지막 셔틀과 살몬 등이 빌린 차량마저 놓쳐 가게에 갈 수 없었던 비어허그와 지디에게 맥주 한 개씩 안겨줬더니 엄청 좋아하며 환하게 웃는다. ‘나도 몇 시간 전에 그랬단다.’ 속으로 생각하며 나도 맥주 한 캔을 따서 마시며 한숨을 돌린다. 새로운 하이커들이 몇몇 도착했지만 가게에 갈 수 없다는 사실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다. 다들 더운 날씨에 지쳐서 시원한 맥주와 샤워를 꿈꾸며 그 길을 걸었을 텐데 안타깝다.
맥주를 마시며 하이커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다 몇몇은 내일 오후에 출발할 계획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유를 물으니 이곳부터 다음 마을인 테하차피/모하비 까지는 더운 날씨에 그늘도 많지 않고, 물 공급지간 간격도 넓어 새벽 하이킹 혹은 나이트 하이킹으로 거리를 줄일 계획이란다. 하지만 나는 안전 문제로 나이트 하이킹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아침 일찍 출발하기로 했다. 대신 그늘이 보일 때마다 쉬면서 천천히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텐트를 치고, 저녁으로 라면을 먹었다.
5/4-금. 36일째
밤새 차 소리가 시끄러워 귀마개 하고 잠을 청했다. 하지만 깊고 편한 잠은 자기 힘들어 새벽에 일어나려는 계획이 틀어져버렸다. 부랴부랴 일어나 아침을 먹으며 걷는 동안 먹을 거리들도 챙긴다. 이젠 몸에 배어버린 듯 막힘 없이 텐트와 짐들을 정리하고 오후에 출발한다며 여유를 부리고 있는 하이커들에게 인사한 뒤 하이커 타운을 나섰다. 길은 도로를 따라 한참 이어지다 긴 수로를 만나는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져 길고 긴 파이프 송수관을 따라 사막으로 뻗어 나간다.
오늘은 날이 더워 그늘에서 자주 쉬고 양말을 벗어서 땀에 찬 발에 통풍도 시켜 주었다. 그러다 다시 걷는데 어떤 트럭이 갑자기 옆에 서더니 괜찮냐고, 어디 이상은 없느냐고 물어온다. 진짜 아무렇지 않아서 괜찮다고 했는데 그럼 물이라도 줄까?라고 묻는다. 그러면서 500ml물 한 병을 건네주기에 그렇지 않아도 ‘물을 조금 더 지고 왔어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더운 날씨에 평소보다 물을 많이 마셔 신경이 쓰이고 있던 터라 감사한 마음에 덥썩 받았다. 그리곤 이내 생각한다. ‘아… 물만 받았어야 했는데 병째 받아버렸다…’ 하지만 이미 트럭은 멀리 사라졌고, 나는 짐이 하나 더 늘어버렸다. 아직도 울트라 라이트 트루 하이커가 되려면 멀고 먼 어설픈 하이커인 자신을 나무라며 다음 물 포인트인 풍력발전소 중간 지점까지 뙤약볕 아래를 터벅터벅 걸어간다.
바람도 불지 않아 뜨겁기 그지없는 길을 걷다 물 포인트에 도착해 배낭을 내려놓고 물을 뜨러 가는데, 지나가는 다리 아래 모여있던 하이커들이 소리쳐 나를 부른다. 돌아보니 지난 밤 먼저 떠났던 상당수의 하이커들이 다리 아래 그늘에 모여 쉬거나 무엇을 먹고 있다. 이런 사막에서 물과 그늘이 있는 곳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 없지. 나 역시 물을 받아 다리 위에 놓아둔 배낭을 다시 메고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약하긴 하지만 바람도 살살 불고 있어 간식을 먹고 휴식을 취하기 그만인 장소였다. 어제 저녁에 하이커 타운을 나선 몇몇의 하이커들은 이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해 아직도 이곳에서 밤새 잠 잔 그대로 머물러 있을 정도였다.
헌데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고, 두시간을 다리 아래에서 내리 쉬어 버렸다. 잠깐인줄 알았는데 갈 길이 먼 느림보가 이런 게으름을 피우다니. 다섯시 넘어도 변하지 않는 태양의 열기 탓에 또 시간을 잊고 있던 게다. 서둘러 출발했다. 예정했던 캠프 사이트 두 곳 중 가까운 곳에 도착하자 해가 지기 시작하기에 오늘의 하이킹을 멈추고 텐트를 쳤다. 걸은 거리는 36.7km. 평지가 많아 속도가 나니 자주 쉬었음에도 걸은 거리가 꽤 길었다. 만약 다리 아래에서 길게 쉬지 않았더라면 처음으로 40km이상 걸은 날이 될 뻔했다. 하지만 날이 이미 어둑해지니 오늘은 텐트 안에 들어가 하루를 마무리한다. 날은 여전히 더워 텐트 문을 반쯤 열어 놓고 잘 준비를 하니, 나이트 하이킹을 하는 다른 하이커들이 지나가며 인사를 한다. 다들 내일 만나~ 나 역시 인사를 하자 건너편에 텐트를 쳤던 홍콩 부부가 나더러 이곳에 사는지 묻는다. 친구들이 많아 이곳에 사는 것처럼 생각되었단다.
5/5-토. 37일째
무서운 사막 기후다. 해가 서서히 밝아오고 있는 시각임에도 벌써 날은 더워지고 있다. 아침을 먹고 정리 후 어제 봐 두었던 두 번째 캠프 사이트에 도착해 물을 채웠다. 어제밤 나이트 하이킹을 하던 하이커들은 물을 지고 하이킹하는 것이 싫어 어두운 시간이라도 이렇게 물이 있는 곳에 텐트를 치기 위해 움직였던 것이다. 나는 그것보다는 안전을 위해 그전에 멈춘 것이고. 다들 그렇게 각자의 계획에 맞게 걷고 있고 누구도 다른 이의 계획에 대해 왈가왈부 하지 않는다. 해서 우리에겐Hike Your Own Hike라는 말이 있다. 내게는 다른 이들에게 휩쓸려 오버 페이스를 하게 될 때마다 떠오르는 말로, 그들을 따라가느라 지쳐 다리에 무리가 오기 전에 하이킹을 멈추고 텐트를 칠 수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해 주는 말이다.
오늘도 길은 여전히 그늘 한 점 없는 언덕을 돌고 돌아 나아간다. 심지어 바로 앞 언덕을 올라가기 위해 지금 언덕길을 내려가고 있다. 멀리 앞쪽 언덕을 힘겹게 올라가는 다른 하이커가 보인다. 다들 오르기 전부터 힘이 빠지는지 깊은 숨을 내어 쉬며 어이없다는 반응들을 보인다. 나 역시 다르지 않아 벌써부터 기운이 없다.헌데 이게 웬일~ 어째 오늘은 토요일이기도 한데다가 마을도 가까워서 트레일 매직이 있을 것 같더라니! 힘겹게 마주한 언덕을 올라 조금 더 걸어가자 길옆에 트레일 매직이 펼쳐져 있다. 의자와 물, 간단한 스낵과 과일이 잘 꾸며진 장소에 놓여있다. 다들 언제 왔는지 그늘 없는 의자에 앉아서 망중한이다. 나도 그중 한 의자에 앉아 물과 사과 한 개를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웠다.
트레일 매직에서 에너지를 채우고 다시 열심히 걸어 첫 번째 도로를 만났다. 원래라면 이곳에는 통행량이 많지 않아 다음 도로까지 8km정도를 더 가야 하는데 오늘은 주말인 까닭인지 사람들이 있다. 그 중 누군가 먼저 다가오더니 타운에 갈 거면 태워다 주겠다고 한다. 이게 웬 떡이냐 싶어 얼른 예스를 외치고는 따라가니 함께 하이킹을 하는 선샤인이 먼저 차에 타고 있다. 심지어 마을에서 멀리 있는 우체국에서 내가 우편물을 픽업할 때까지 기다려 주기까지 한 트레일 앤젤의 친절함에 감탄할 틈도 없이 테하차피 마을의 ‘하이커 헤븐’같은 곳에 우리를 내려주어 끼니까지 해결하였다. 물론 적은 금액이지만 도네이션도 잊지 않는다.
먼저 도착한 하이커들은 그 곳에 모인 트레일 앤젤의 집에 숙소를 마련했고, 나는 자리가 없어 마을 캠핑장에 가려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SNS의 마을 트레일 엔젤 홈피에 메시지를 남겨 두었다. 한 트레일 앤젤이 내 포스팅을 봤다면서 아직도 찾는 중이면 자기 집에 가도 된단다. 다른 하이커들과 함께 차를 타고 이미 하이커들 사이에서 꽤나 유명한 그녀의 집에 짐을 풀었다. 먼저 떠났던 일행 중 몇몇도 그곳에 묵고 있어 다시 만남을 반갑게 인사하고 각자 할 일-샤워, 세탁, 식사, 맥주 등-을 한다.
5/6-일. 38일째
오늘은 제로 데이(하이킹을 하지 않는 날)다. 타운의 숙소 혹은 앤젤의 집에서 하루 머물며 쉬고, 필요한 음식을 사고 체력을 보충하는 날이지만 특이하게도 이 마을에 들어올 수 있는 도로가 두 곳이라 어제 걷지 못한 첫 번째 도로와 두 번째 도로 사이의 길을 오늘 가볍게 걷고 내일 트레일로 복귀하기로 했다. 그 의견에 동의하는 하이커들끼리 모여 차를 타고 이동하기 위해 아침부터 분주하다. 몇몇 하이커는 그 거리가 얼마 되지 않으니 건너뛰고 내일 우리와 같은 트레일 헤드로 복귀하겠다며 다시 침대로 들어갔다. 물과 간단한 생동식만 챙긴 가벼운 배낭을 메니 날아갈 것만 같다. 심지어 나보다 빨랐던 하이커가 배낭이 가벼운 상태가 되니 나보다 느리게 걷는다. 결국 배낭의 무게와 하이킹 속도 등은 각자 감당할 수 있는 무게인지 아닌지의 문제인걸까? 다시 깊은 생각에 빠지는 하루였다.
빠르게 하이킹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짐을 내려놓은 뒤 식사와 식량 구입을 위해 다시 숙소를 나왔다. 마트에 들어가니 어찌나 많은 와인들이 나를 유혹하던지.하지만 이미 숙소에는 많은 맥주가 있었기에 마음을 접고 하이킹에 필요한 식량만 구입해서 마트를 나왔다. 쇼핑 중 한국말이 들려 인사를 한 가족의 남편분께서 계산하려고 기다리는 내게 다가와 숙소를 정하지 않았으면 자신의 집에 가서 샤워, 세탁도 하고 한동안 못 먹었을 것 같은 김치도 좀 챙겨주신단다. ‘김치’라는 말에 마음이 ‘혹’했으나 이미 짐을 다른 이들과 함께 앤젤의 집에 풀었기에 양쪽 모두에게 폐를 끼치는 것 같아 마음만 감사히 받겠다고 인사를 드렸다. 한국인이 없을 것 같은 작은 사막의 마을에서 한국말이 들려 인사를 드렸던 것뿐인데, 그 따뜻한 마음에 먹지 않은 김치보다 더 그리웠던 한국인의 정이 마음에 꽉 들어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