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레스토랑 1위로 꼽히는 오스테리아 프란체스카나(Osteria Francescana)의 마씨모 보투라(Massimo Bottura) 셰프의 시작으로 이탈리아 요리의 목소리는 커지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요리를 인류의 무형 유산으로 가져오기 위해 수행된 공동 작업에 참여하는 결과를 얻어냈다. 이탈리아 요리는 지속 가능성과 생물 문화적 다양성 사이에 존재하고 있어 이탈리아 정부의 문화부와 농업부, 산림부의 노력으로 유네스코 무형유산 후보가 공식화되었다.
지역마다 독특한 음식 문화와 역사를 가진 이탈리아 요리
SNS에서 뜨고 있는 거리의 상권을 살펴보면 빠지지 않고 존재하는 것이 이탈리아 식당일 것이다. 게다가 요즘은 본인들의 고집을 내세우는 세프들이 늘어나고 소규모지만 예약제로 운영하는 식당이 주를 이룬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탈리아 요리만큼 단순하고 재료에 충실한 맛이 없다. 어떤 기교나 꼬임이 없이 제철 재료, 그 지역에서 나는 특산물을 가지고 요리한다. 우리나라에 전해진 이탈리아 요리는 미국과 일본을 통해 들어왔기 때문에 그 정체성을 찾기에는 혼란스러운 점이 많다. 예를 들면 시저 샐러드, 크림 스파게티는 이탈리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메뉴이다. 이탈리아 전통 요리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20개 주가 각각 다른 전통 요리를 가지고 있는 이탈리아의 식단은 알고 보면 지역 식재료의 활용이 다양하고, 제철 재료의 사용에 기준을 둔 의외로 담백하고 자연스러운 맛을 가진 건강한 메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오랜 역사와 전통, 문화로 이탈리아 요리는 세계 처음으로 유네스코 무형유산 후보가 되었다.
Piemonte 피에몬테
피에몬테는 그 옛날 사보이 왕가의 흔적이 교만하게 남아있는 귀족스러운 음식으로 계절마다 특색 있는 재료와 세프들의 섬세한 손놀림으로 그 빛을 발한다. 피에몬테의 요리를 헤아리자면 끝이 없지만 송로버섯, 송아지 고기, 생면 파스타 타아린(Tajarin)은 빼놓을 수 없다. 10월 초면 세계의 미식가들이 홀린 듯이 발걸음을 하는 알바의 송로버섯 축제. 유제품과의 궁합이 최고인 송로버섯은 이곳의 계란을 넣은 생면 파스타에 얹어지면 미식가들이 절대 잊을 수 없는 맛과 향을 연출한다. 누군가는 타아린과 바롤로를 마시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했을 정도이니 그 맛은 상상에 맡긴다.
Lombardia 롬바르디아
롬바르디아의 주도는 밀라노이다. 트렌드를 선도하는 국제적인 도시이지만 요리는 촌스럽다. 피에몬테와 맞닿아 있는 발텔리나 산맥은 피에몬테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네비올로를 재배할 수 있게 만들어 주기는 했지만, 다른 농작물들은 살아가기 힘든 환경을 조성한다. 그 대신 목축업과 낙농업이 발달했다. 주요 요리는 사프란을 넣은 리소토인 리소토 알라 밀라네제(Rosotto alla Millanese)와 이 리소토 위에 송아지 정강이 요리인 오소부코를 함께 곁들이는 오소부코 알라 말라네제(Ossobuco alla Millanese)이다. 그리고 메밀을 재배하여 메밀가루와 감자, 치즈, 양배추를 넣어서 만든 피초케리 알라 발텔리나(Pizzocheri alla Valtellina)로 주로 가난한 농민들이 먹었던 요리이다.
Liguria 리구리아
리구리아의 주도는 제노바이다. 바다와 인접한 이곳은 온난한 기후로 해산물 이외에도 농작물의 재배가 활발하다. 특히 올리바 타지아스카(Oliva Taggiasca)는 리구리아의 품질이 가장 좋다. 올리브는 지역마다 종류가 달라 오일로 만들어졌을 때 맛과 향이 다채롭다. 리구리아의 올리브 오일은 섬세하고 순수한 맛이 일품이다. 이곳의 바질리코(Basilico)에 잣, 마늘,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 그리고 올리브 오일을 넣고 갈아서 만든 페스토 알라 제노베제(Pesto alla Genovese)는 리구리아를 대표하는 요리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Emilia Romagna 에밀리아 로마냐
에밀리아 로마냐는 볼로네제 소스(미트소스) 하나로 이탈리아 파스타를 세계에 알리는 공을 세웠다. 볼로냐가 주도인 이곳은 볼로네제 소스 이외에도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Parmigiano Reggiano) 치즈, 이탈리아의 생햄인 프로슈토 디 파르마(Proscuitto di Parma), 익혀서 숙성하는 프로슈토 코토(Proscuitto Cotto), 피스타치오와 지방을 넣어 만든 모르타델라(Mortadella), 각종 생면 파스타가 유명하다. 특히 좋은 풀을 먹고 자란 암소에서 얻는 우유로 만드는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는 활용도가 가장 높은 치즈로 사랑받는다. 이곳에서 치즈를 만들고 남은 유청(Whey)은 바로 돼지의 먹이로 이어진다. 단백질이 20%나 들어있는 유청을 먹고 자란 돼지들은 다른 지역보다 영양이 풍부한 슈퍼 돼지로 길러져 바로 프로슈토 디 파르마 이탈리아 생햄을 만들 수 있다.
Lazio 라치오
로마 공화정과 로마 제국의 중심지였던 라치오는 시내부터 외곽으로 곳곳에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는 유물들이 천지지만 이곳을 대표하는 음식과 와인은 비교적 소박한 편이다.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레스토랑의 메뉴로 자리 잡은 카르보나라는 로마가 그 중심지이다. 레시피는 일본과 미국을 거치면서 생크림, 우유의 포지션이 커져 느끼하고 무겁게 변했지만, 출발은 석탄을 만드는 광부들의 검소한 메뉴였다. 올리브 오일조차 구하기 힘들었던 이들은 돼지 볼살(관찰레 Gunciale)로 만든 살루미를 팬에 익히고 로마에서 기른 양으로 만든 페코리노(Pecorino) 치즈와 계란 노른자로 소스를 만들어 여기에 스파게티 면을 버무리고 검은 후추를 뿌려 스파게티 알라 카르보나라(Spaghetti alla Carbonara)를 만들어 먹었다.
Toscana 토스카나
와인이 너무 유명해져서 음식은 곁다리로도 떠오르지 않는 곳이 토스카나다. 사실 와인만큼 내세울 만한 요리도 별로 없다. 토스카나는 소가죽이 유명한 만큼 가죽을 남기고 죽은 소고기 요리가 내세울 만하다. 비스테카 피오렌티나(Bistecca Fiorentia)가 그것인데 모양을 보면 티본스테이크와 같은 부위다. 두툼하게 자른 티본 부위를 화덕이나 숯불에 직접 굽는다. 기름이 떨어져 단단할 법도 한데 소금 후추, 올리브 오일로만 간을 한 고기를 먹으면 입에서 녹는다. 계절 야채를 구워서 곁들이면 저절로 와인이 생각난다.
Campaina 캄파니아
캄파니아는 나폴리 피자가 태어난 곳이다. 이탈리아에서 제일 맛있는 토마토(산 마르자노)가 나고 그리고 유일하게 물소 젖으로 만든 모차렐라가 생산된다. 나폴리 피자에 산 마르자노 토마토와 버팔로 모차렐라를 올려 만든 피자 마르게리타(Pizza Margherita)는 맛도 맛이지만 그 옛날 여왕에게 바쳐졌던 화려한 이력도 한몫해 이탈리아의 어느 요리보다 유명세를 타고 있다. 세계 곳곳의 피제리아(Pizzeria:피자를 파는 식당)에 피자 마르게리타가 없는 곳은 없을 테니 말이다.
Puglia 풀리아
이탈리아 지도의 장화 굽에 해당하는 풀리아는 바다와 산이 적절히 분배되어 있어 와인과 음식이 골고루 발달했다. 그 중 올리브 오일은 남쪽을 대표하고 있다. 귀 모양의 생면 파스타인 오레키에테(Orecchiette)는 이곳에서 재배되는 치마 디 라파(Cima di Rapa: 무청과 비슷함)를 삶아서 소스로 만든 오레키에테 알레 치마 디 라파로 완성된다. 풀리아를 대표하는 치즈는 버팔로 모차렐라와 비슷한 모양과 질감을 가진 암소로 만든 부라타(Burrata)이다. 우리나라에는 미국에서 만든 부라타가 거의 대부분인데 풀리아의 안드리아(Andria)라는 지역에서 만든 부라타를 맛보면 그 진한 맛에 반한다. 모차렐라보다 쫀득하고 고소하다. 풀리아 올리브 오일에 오레가노 허브를 뿌린 부라타는 다이어트를 멀리 달아나게 만드는 주범이 된다.
Sardegna 사르데냐
프랑스의 코르시카와 스페인을 마주하고 있는 사르데냐는 이탈리아라는 국가에 속해 있다는 생각을 잊을 정도로 색다르다. 뇨키와 비슷한 모양을 가진 뇨케티 사르디(Gnocchetti Sardi)는 밀가루로 반죽하고 모양은 뇨키처럼 만들어 미트소스와 곁들여진다. 사르데냐의 식당에 가면 어김없이 주는 빵이 있다. 인도의 난과 생김새가 비슷하지만, 굉장히 얇다. 바삭하게 부서지는 소리 때문에 이곳에서는 ‘악보 용지(Carta da Musica)’라고도 부르는 파네 카라사우(Pane Carasau)이다. 또한 좁쌀 모양의 파스타인 프레골라(Fregola)도 있다. 통통거리는 질감이 삶아 놓은 보리쌀과 비슷하다. 프레골라에 해산물을 섞어 만든 요리는 담백하고 신선하다. 한 가지 더, 붉은 참치의 내장과 알을 말려서 만든 보타르가(Bottarga)를 잊지 말자. 다른 지역보다 품질이 우수해 비싼 값에 팔린다. 주로 파스타의 양념으로 쓰이고 얇게 썰어 전채요리에도 사용된다.
Sicilia 시칠리아
시칠리아는 마르살라로 유명한 트라파니(Trapani)부터 그리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아그리젠토(Agrigento), 에트나 활화산을 품고 있는 카타니아(Catania)까지 이해가 곤란할 정도로 다르고 특이하다. 공통된 것이 있다면 에스프레소 커피를 주문하면 그 작은 에스프레소 잔의 1/3만 채우고 물 한 잔을 같이 준다는 것, 그리고 어느 바(Bar)에서나 파는 다양한 맛의 그라니타(Granita: 슬러시와 비슷, 브리오슈와 같이 먹는다), 아랍 문화의 흔적인 쿠스쿠스는 벼, 보리, 밀의 가루를 반죽하여 모양을 만들고 이것을 떡을 찌듯 쪄서 익혀준 뒤 말리면 좁쌀 모양이 된다. 여러 가지 해산물과 같이 익혀서 올리브 오일, 버터로 양념한다. 시칠리아의 대표 디저트는 바로 카놀로(Cannolo)이다. 밀가루 반죽을 얇게 밀어준 뒤 틀에 끼어 튀겨주고, 양젖으로 만든 리코타(Ricotta)치즈와 과일 말린 것, 피스타치오를 섞어 만든 반죽을 넣어서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