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살이(living)’가 수년 째 계속되다 보니, 처음 중국에 왔을 때를 회상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리고 처음 거주를 시작했을 때를 회상할 적마다 곧잘 “그때는 이랬는데, 지금은 매우 살만해졌다”고 비교하며 제법 현지인처럼 적응해 낸 자신을 위로할 때가 많다. 처음 혼자 집 계약을 하고 살았던 작은 오피스텔부터 지금 살고 있는 방 한 개짜리 아파트 구석구석을 직접 인테리어하고 입주하기까지, 돌이켜보면 쉬웠던 시간은 한순간도 없었던 것만 같다. 하지만 이제야말로 제법 현지인처럼 돈을 벌고, 쓰고, 저축도 할 수 있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는 점에서 자신을 대견하게 여길 때가 있다.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할 적에도 해보지 못한 저축을 베이징에서 하고 있으니, 그럴 법도 하지 않은가.
더욱이 올해로 자취 경력 4년 차로 접어들면서 ‘집 밥의 명수’로 거듭나고 있다는 점도 흡족할 만한 점이다. 내가 먹을 밥을 내 손으로 지어 먹을 수 있게 됐다는 건, 인간이 두 발로 설 수 있는 시기에 도래했다는 일종의 신호와 같은 것이니까 말이다.
◇ 베이징의 농협과 같은 존재, ‘베이징농럔푸우종신(北京农联服务中心)’
필자가 집에서 밥을 직접 지어 먹게 된 것은 지난해 9월 무렵 베이징의 세 번째 집으로 이사하면서부터다. 지난 2014년, 베이징에 처음 도착했을 적에는 호텔식 레지던트에서 거주했었고, 두 번째로 살았던 집은 레지던스식 오피스텔이었다. 두 곳 모두 부동산 계약과 동시에 월세에 포함된 형태의 청소 이모님이 계셨고, 아침에는 조식 서비스가 제공됐던 곳이라는 점에서 매우 편리했다. 하지만 한 달 월세만 무려 200만 원에 달했고, 무엇보다 내 집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마음속 깊은 불편함을 가지고 지내야 했다.
그러던 중, 야윈춘(亚运村)으로 불리는 올림픽 공원 근처의 저렴한 아파트로 이사한 것이 내가 시작한 ‘집 밥’의 계기다. 깔끔한 화이트 톤의 주방과 이사 기념으로 구매한 식기류 탓에 비록 어설플지언정 내 손으로 직접 요리해 먹고 싶은 충동이 필자를 매주 주말 아침이면 인근 마트로 이끌었다.
실제로 필자의 현재 거주지 인근에는 크고 작은 마트들이 밀집해 있다. 과거 한인들이 주로 거주했던 곳으로 유명한 ‘야윈춘’에는 마치 한국의 세련된 대형 마트를 연상케 하는 최신식 마트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세련된 외관만큼 고가로 판매되는 마트의 채소와 식자재 탓에 필자가 주로 찾는 시장은 현지인들이 자주 이용하는 ‘베이징농럔푸우종신(北京农联服务中心)’이다.
이곳은 한국의 농협과 같은 기능을 하는 곳이다. 주로 베이징에 인접한 허베이 지역의 농민들이 재배한 채소와 과일 등이 이곳에서 직거래 된다. 물론, 베이징농럔푸우종신에 대한 운영 자본의 상당수가 6억 명에 달하는 중국 농민들의 푼돈을 모아 설립됐기에 이 같은 중간 소매업자를 배제한 직거래 장터의 운영이 가능했다.
오전 7시면 어김없이 문을 여는 이곳에는 매일 아침 지난 밤 허베이 지역 일대에서 공수된 싱싱한 채소가 한 트럭씩 실려 들어온다. 그걸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일부 식재료는 이곳의 종업원들이 다듬어 판매한다. 물론 다듬어 판매되는 채소들은 다듬기 전보다 조금 더 비싸게 포장된다. 그렇기에 다듬어지지 않은 채소를 구입해 생활비를 줄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실제로 이곳에서 장을 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직거래 되는 저렴한 식재료를 사기 위해 매일 아침 버스를 타고 먼 곳에서 오가는 일도 잦다.
보통 이곳에서 판매되는 파는 한 단에 200원, 마늘은 한 묶음에 300원, 달달한 맛이 일품인 귤은 600g에 500원 남짓에 판매된다.
더욱이 마트 한쪽에는 직접 쪄내는 각종 만두와 중국식 빈대떡이 1개당 180원에 팔려나간다. 또 그 옆으로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쪄낸 두부 한 모를 600원에 팔고 있으니, 어찌 이곳을 천국이라고 부르지 않을 수 있을까.
필자의 장보기는 매주 한두 차례씩 반복되는데, 퇴근 후 돌아오는 늦은 밤에는 ‘떨이’ 제품을 한 봉지씩 모아 판매하는 할인행사도 진행된다.
이때는 노랗고 커다란 바나나가 한 묶음에 600원, 먹기 좋게 잘라 플라스틱 통에 담아 파는 파인애플 한 상자는 1천 원이다. 그렇기에 퇴근길 이곳에서 할인 제품을 구매해 돌아가는 길이 ‘두 손은 무겁게, 마음은 가볍게’가 가능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필자가 평소 좋아하는 선배는 필자로부터 이곳을 소개받고, “어떻게 이렇게 팔고도 남을 수가 있느냐”면서 자신이 거주하는 근처 마트에서 판매하는 제품의 4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저렴한 가격에 놀란 적이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베이징의 물가가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으나, 베이징 역시 중국은 중국이다”며 “아직 먹고 사는 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중국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비록 집값의 무게가 만만치 않은 것은 ‘서울살이(seoul living)’나, ‘베이징 살이(Beijing living)’나 마찬가지이지만 농민과 직거래할 수 있는 직판장을 통해 저렴한 식자재를 살 수 있다는 점은 필자에게 베이징을 떠날 수 없게 하는 한 가지 이유다.
주소: 白庙路甲2号 附近
찾아가는 방법: 베이징 지하철 15호선 베이샤탄역 B번 출구에서 올림픽 공원 방향으로 도보 7분.
◇ ‘깻잎’이 그리울 땐, 평가시장(平價市場)
아무리 싸고 좋은 물건을 판매하는 로컬 시장이 지척에 있다고 해도, 아주 가끔은 고향 음식이 먹고 싶은 것이 한국인으로 태어난 필자의 ‘숙명’이다. 더욱이 중국 로컬 시장에서는 깻잎과 같은 한국 식자재를 판매하는 곳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클 때가 있다.
실제로 향이 강한 향신료를 특히 애용하는 중국인들이 유독 향긋한 깻잎의 향에는 코를 막고 인상을 찌푸리기 일쑤다. 필자의 중국인 지인 중 일부는 김밥 속 재료로 넣은 깻잎을 보곤 손사래를 치고, 심지어 입에 넣은 김밥을 억지로 뱉어내는 경우도 수차례 경험했다.
이 같은 이유 탓에 중국에서 깻잎을 판매하는 로컬 시장은 거의 없다. 없다는 표현이 더 적당할 정도로, 한국인들 사이에서 깻잎은 중국에서 구하기 매우 어렵고 귀한 식재료로 꼽힌다.
그런데, 한인 타운 왕징(望京)에서만큼은 깻잎은 물론, 한국에서 공수된 각종 우리식 식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로컬 시장으로 ‘평가시장(平價市場)’이 꼽힌다. 깨끗한 식재료에 대한 세심한 안목으로 소문난 한인들이 주로 애용하는 시장인 만큼, 이곳에서 판매되는 대부분의 채소, 고기, 공산품 등은 모두 한국에서 공수되거나, 믿을 수 있는 곳에서 재배된 상품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다른 지역에 소재한 로컬 시장의 것과 비교해 가격 면에서 조금 비싼 것이 흠이지만, 판매하고 있는 상품의 질에서만큼은 으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더욱이 처음 베이징에 거주하기 시작한 초보 해외 거주자들에게는 서툴지만, 한국어를 사용해 주문을 받아주는 이곳 시장의 인심이 더욱 감사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또, 오전에 주문한 상품은 그날 오후가 되기 이전에 배달을 완료해준다. 물론, 가격 면에서 현지 로컬 시장만큼 저렴한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편리함을 취하고 저렴한 혜택을 내주는 거래처럼 여겨지는 곳이다.
하지만, 필자와 같이 한국 음식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치는 이들과 초보 베이징런(北京人)들에게는 고마운 존재임에 틀림이 없다.
주소: 朝阳区望京西园415号
찾아가는 방법: 베이징 지하철 15호선 왕징역(望京) C번 출구 하차 후 정면 신호등을 건너면 도보 2분 거리에 큰 간판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