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도를 한참 웃도는 더운 여름날 짙은 퍼플 컬러의 풀바디 레드 와인을 마시기에는 부담스럽기 짝이 없다. 열대야에 시달려 피곤하고 머리가 띵한 요즘 농익은 레드와인 보다는 상쾌한 무언가를 더 갈구할 수 밖에 없다. 와인 입맛도 날씨에 따라 굉장히 좌우되는데, 한여름의 8월에는 차갑게 마실 수 있는 화이트나 스파클링 와인에 유난히 손이 더 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레드 와인을 유난히 좋아하는 필자의 타협안은 바로 로제 와인이다. 여자에 발그스레한 볼을 나타내는 블러쉬(Blush) 와인 혹은 핑크 와인이라고 불리는 로제 와인은 여성들에게 유난히 인기가 높다. 그 중에서도 색상, 향기, 베어링 그 어느 하나 놓치지 않는 론(Rhone) 지방의 로제 와인, 타벨 와인을 소개하려고 한다.
타벨 지역은 론 강의 우안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중해성 기후를 띄고 있으며 낮은 강수량, 연간 평균 2700시간의 높은 일조량, 겨울의 한랭건조한 강한 북서풍인 미스트랄(Mistral)이 부는 특징을 갖고 있다.
타벨리스(Tavellis)라고 불리던 타벨 지역에서의 와인 생산은 약 기원전 5세기로 거슬로 올라간다. 그리스인들이 처음 심기 시작해서 좋은 위치를 기반 삼아 로마인들이 재배지를 확장했다. 13세기에 처음으로 문헌에 타벨(Tavel)이라는 이름이 등장하였으며 교황청이 아비뇽으로 이전하자 아비뇽 근처에 위치한 타벨 지역의 와인은 교황의 사랑을 받기 시작한다. 14세기 말 교황청이 다시 로마로 옮긴 후, 타벨와인은 이탈리아에 수출되기 시작한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1902년 타벨 와인 생산자 들은 조합(Union)을 만들어 그들만의 특별한 로제와인을 알리기 시작한다. 조합의 노력으로 1937년 Tavel AOC(Appellation d’Origine Contrôlée)*를 인정받기에 이른다.
토양으로 구분하면, 타벨 지역은 크게 4개 지역으로 나뉜다. 론 강에서 비롯한 충적토 지역은 리락(Lirac)과 타벨(Tavel)의 언덕 지역에 걸쳐 있으며 고대 충적토가 쌓여 형성되었다. 모래 지역은 타벨과 로크모르(Roquemaure) 지역에 걸쳐 위치하고 있으며 나머지 지역은 점토 같은 이회토질(Marly)의 석회 토양과 자갈, 암석과 같은 결정질(crystalline)과 쇄설성(clastic) 석회토양으로 구분된다. 이러한 다양한 토양의 구성이 다양한 포도 품종 구성을 설명해줄 수 있을 것 같다.
타벨 지역의 포도 재배 면적은 902 헥타르, 2013년 기준 총 생산량은 33,731 헥토 리터(hl)에 이른다. 수출은 약 24% 정도 밖에 되지 않아 내수 소비율이 높은 편이다.
로제 와인이 레드와 화이트 와인을 섞어서 만들지는 않을까 생각하시는 독자분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사실 프랑스에서 생산되는 스틸 로제 와인의 경우 하루 혹은 이틀의 짧은 저온 침용을 주로하여 로제 와인을 생산한다. 이와 반대로 레드 와인은 며칠 혹은 몇 주의 침용 기간을 거쳐 좋은 타닌을 추출하는데 주력한다. 조금 쉽게 예를 들면, 깊은 숙성을 필요로 하는 김장 김치를 레드 와인에, 만들고 나서 빨리 먹을 겉절이 김치를 로제 와인에 비교하면 어떨까 생각한다. 이외에도 레드 품종으로 화이트 와인처럼 만드는 뱅 그리(Vin Gris) 방식, 레드 와인의 부산물로 만드는 새녜(Saignee) 방식 등이 로제 와인을 만드는 주된 방식이다.
타벨 지역은 레드와 화이트 와인 재배에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로제 와인만을 생산해내는 특이한 지역이다. 더위에 강해 뜨거운 남프랑스에서 가장 사랑받는 그르나슈(Grenache) 품종을 주로 사용하고, 생소(Cinsault), 부르불렁(Bourboulenc), 클래레뜨(Clairette), 무르베드르(Mourvèdre), 픽풀(Picpoul), 시라(Syrah)를 블렌딩한다. 그리고 종종 10% 미만의 낮은 비율로 카리냥(Carignan), 칼리토르 누와(Calitor Noir)를 블렌딩 하기도 한다. 이 중 칼리토르 품종은 전 세계에서 타벨 지역에서만 생산되는 토착 품종이다. 타벨 와인은 블렌딩을 중요시여겨 한 품종이 전체 포도밭의 60%를 초과하여 생산될 수 없다.
로제 와인은 어떤 음식과도 무난한 궁합을 보이지만 타벨 와인의 풍부한 체리, 산딸기 아로마는 해산물, 닭고기, 치즈와 잘 어울린다. 론 지역의 주요 생산자인 엠샤푸티에(M. Chapoutier), 이기갈(E. Guigal)의 타벨 와인을 우리나라의 마트나 와인 아울렛 등에서 2~3만원대에 저렴하게 구입이 가능하다.
로제 와인 중에서도 석류처럼 유난히 붉은 빛이 도는, 루비같이 반짝반짝 빛나는, 레드 와인의 캐릭터를 고스란히 담아내는, 론 지역의 로제 와인인 타벨(Tavel AOC)이야 말로 한여름 밤의 친구가 되어 준다. 쉽게 마실 수 있지만 마냥 가볍지 만도 않다. 향이 풍부하지만 과하지도 않다. 어느 음식과도 잘 어울리는, 그 모습은 마치 마음이 잘 맞는 친구가 내 말을 경청해주는 느낌과도 같다. 오늘 같이 더운 여름, 타벨 한 잔은 어떠한가?
* AOC(Appellation d’Origine Contrôlée) : ‘원산지 통제 명칭’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프랑스 정부가 와인생산지를 규정하고, 와인양조 기준(알코올 함량, 포도품종, 재배방법)을 관리하기 위해 만든 명칭 (백산출판사 와인&커피 용어해설)
내용 및 그림 출처 : https://www.rhone-wines.com/en/appellation/tav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