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선입견도 없었다. 내가 아는 노르웨이 맥주가 전무했다. 아일랜드는 기네스 Guinness, 벨기에는 호가든 Hoegaarden, 체코는 필스너 우르켈 Pilsner urquell. 북유럽 국가 중에는 덴마크 하면 떠오르는 맥주가 칼스버그 Carlsberg다. 우리나라에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노르웨이의 대표 맥주는 바로 ‘뇌그네 외 Nøgne Ø’다.
[사진 001] 뇌그네 외 브루어리 외부
뇌그네 외 브루어리는 시티센터에 있는 도심형 브루어리가 아니다. 오슬로에서 버스로 약 3시간 30분 정도 떨어진 그림스타드 Grimstad 지역에 있다. 난 이 브루어리를 방문하기 위해 노르웨이로 가기 1달 전부터 메일로 방문 의사를 밝혔다. 개인이 방문하는 것이기에, 미리미리 준비해서 허락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일단 대중교통으로 여행을 다니던 중이라, 브루어리 허락을 받은 이후에도 대중교통 운행 여부를 알아야 한다. 그런데 브루어리는 그림스타드 지역의 시티센터가 아닌 외곽지역에 있다는 메일을 받았다. 다시 말해서 대중교통만으로는 방문이 어렵다는 말이다. 그런데 브루어리 측에서 픽업을 나와준다는 메일 내용을 읽었을 때, 난 쾌재를 불렀다. 맥주에 관심 있는 한 동양인에게 이런 은혜를 베풀어주다니…
[사진 002] 오슬로 버스터미널에서 그림스타드 행 버스를 타고 내렸다.
그 날따라 비가 내렸다. 양조장 측에서는 그림스타드 정류장에서 전화를 걸면 픽업을 나와주겠다고 했다. 전화를 건 지 20분 후 정도가 되었을까, 뇌그네 외 로고가 붙어 있는 회사차량 한 대가 나타났다. 그 날 우산도 가지고 오지 않고 비를 맞은 터라 어찌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브루어리는 생각보다 정류장에서 먼 곳에 있었다. 자가용으로 대략 15분 정도 더 들어가서야 도착했다. 운전하던 직원분은 어떻게 여기까지 왔냐고 되물었다. 그것도 유럽의 시골까지 말이다. 검색의 발품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방문객을 대하는 자세만큼은 일류 브루어리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진 003] 뇌그네 외 브루어리 내부 모습
뇌그네 외 Nøgne Ø 브루어리는 군나르 위그 Gunnar Wiig 와 켸틸 지키운 Kjetil Jikiun에 의해 2002년에 설립되었다. 뇌그네 외 Nøgne Ø는 고대 덴마크어로 ‘벌거벗은 섬’이란 뜻이다. 이 이름은 그림스타드 Grimstad 지역에서 도제 약사로 일하고 있는 헨리 입센 Henrik Ibsen이 쓴 시(Poem)에서 따왔는데, 이 시는 19세기에 유명한 ‘Terje Vigen’이다. 여기서 생산된 맥주의 50% 정도는 해외로 수출되는데, 주변국인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를 비롯하여, 벨기에, 네덜란드, 이탈리아, 스페인, 미국, 캐나다, 호주, 일본으로 나간다. 한국에도 얼마 전부터 수입되고 있다. 뇌그네 외 브루어리에서는 현재 31종(상시맥주 17종, 시즈널 맥주 7종, 스페셜 맥주 4종, 콜라보 제품 3종)의 맥주를 생산하고 있다. 이 브루어리가 주목을 끄는 건, 맥주 뿐 만 아니라 유럽에서는 최초로 일본의 사케를 생산한다는 점이다. 현재 3종(JUNMAI, JUNMAI GINJO, YAMAHAI MOTOSHIBORI)을 양조하고 있다.
[사진 004] 사무실 한 켠에 진열되어 있는 생산 주류.
이 브루어리의 Staff들은 주인의식이 강하다. 각자의 업무 파트가 있지만, 맥주의 맛을 결정하거나 큰 사안이 있을 때는 서로 협력하며 업무지원을 한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국적도 다양하다. Sweden, Malaysia, Burma, the US and Canada… 내가 이 브루어리에 도착했을 때, 저기 보이는 ‘Cathie Jikiun’가 나의 투어 가이드였다. 말레이시아인으로서, 그녀는 수출과 운영관리 파트를 맡고 있었다. 아시아인이라서 그런지 좀 더 친근하게 날 인도했다.
[사진 005] 브루어리 직원들.
[사진 006] 차량 픽업부터 투어를 진행한 말레이시아인 Cathie Jikiun(여성).
이 분은 사케 양조전문가 ‘Brock Bennet’씨이다. 이 브루어리는 맥주뿐만 아니라 사케를 양조하는 곳인데, 일본인이 아닌 캐나다인이 중책을 맡고 있다. 사케 고유의 맛과 향에 매료되어 사케 연구에 매진하시게 됐다고 하는데..
그의 좌우명은
“When you want something,
all the universe conspires in helping you to achieve it.”
아마도 노르웨이에서 사케를 연구할 수 있었던 모토가 아니었나 싶다.
[사진 007] 사케전문가 Brock Bennet.
이제 시음의 시간.
내가 선택한 맥주는 3종류.
BLONDE 11°P 17 IBU 4.5% alc/vol
블론드 에일맥주이며, 뜨거운 여름 날 땀흘리고 마시면 상쾌해지는 맥주이다. seafood나 가벼운 식사할 때 마시면 좋고, 6도 정도의 온도에서 마시는 게 좋다.
Ingredients: Malted barley, malted wheat, Northern Brewer, Cascade, East Kent Goldings and Saaz hops, Belgian ale yeast and our local Grimstad water.
PORTER 17° P 30 IBU 7% alc/vol
약간 다크한 에일맥주이며, 커피향과 드라이한 과일향을 내는 다크한 몰트를 사용했다. 함께 하면 좋은 음식으로는 다크 초콜릿, 치즈, 소고기 류. 10도 정도의 온도에서 마시는 걸 권장한다.
Ingredients: Maris Otter, Munich, caramel, black malt, and chocolate malt, Centennial and Northern Brewer hops, English ale yeast, and our local Grimstad water.
SUNTURNBREW 26ºP, 50 IBU, 11% ALC/VOL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맥주 종류인 ‘발리 와인 American Barley Wine’이다. 그런데 이 맥주는 특이하게 훈연 몰트를 사용해서 과일향과 함께 스모키향이 난다. 독일의 밤베르크 훈연맥주가 떠오르기도 한다. 버번에서 숙성한 고유의 향과 바닐라향도 느낄 수 있다.
Ingredients: Grimstad water, malted barley, malted rye, malted wheat, hops, yeast.
[사진 008] 뇌그네 외에서 생산하는 맥주 시음
각각의 맥주에 사용하는 몰트를 담는 자루들. 뇌그네 외 Nøgne Ø의 뜻은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Naked Island’이다. 그 의미를 일본어로 번역하면, ‘hadaka jima’이다. 이 브루어리에서 생산하는 모든 사케는 홋카이도 긴푸 Ginpu 지방의 쌀로 만들어진다.
Yamahai Muroka Junmai Ginjo/ JUNMAI GINJO
밀도가 낮고 과일향이 은은하게 풍기는 사케다. 따뜻해지거나 선선한 날씨에 잘 어울리는 사케.
Rice: 100% Ginpu, Seimaibuai 55% / 45% Moto technique
Yamahai Yeast.
Alc/vol: 16% Filtering(no Pasteurized)
[사진 009] Yamahai Muroka Junmai Ginjo 사케와 긴푸 지방의 도정된 쌀
2시간 동안의 여정이었다. 마지막에 시음한 잔을 선물로 주는 캐시의 마음에 감동까지 얹어갔다. 따로 투어 비용을 내려고 물어본 내게, 그녀는 괜찮다는 리액션으로 응답했다.
비가 내리는 날, 오슬로로 돌아가는 버스 정류장까지 직접 태워줬다. 영원히 잊지 못할 브루어리다.
[사진 10 ~11] 다소 파격적인 뇌그네 외 맥주 지면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