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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진 역경을 이겨낸 도시 – 에스토니아 탈린 1편

모진 역경을 이겨낸 도시 – 에스토니아 탈린 1편

신동호 2016년 8월 8일

에스토니아. 나라 이름만 들으면, 어디에 붙어 있을까조차 가늠하기 어렵다. 심지어 아프리카 대륙이라 ‘구라’를 쳐도 믿는 이가 존재할 정도다. 또 유럽에 있는 다른 유학생에게 물어도 그 나라의 존재감은 바닥 수준. 에스토니아는 발트 3국 중에 하나다. 핀란드와 에스토니아 사이에는 발트 해가 깔려있다. 북유럽 국가 중의 하나이지만, 러시아, 동유럽 등이 인접해 있어서, 온전한(?) 북유럽 국가라기보다는 여러 문화가 혼재된 북유럽 국가라는 인상을 받았다. 아무튼, 최소한의 정보만을 가지고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에 도착했다.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약 3시간 정도의 비행시간. 시차는 한국과는 7시간, 아일랜드와는 2시간 차이다. 에스토니아 탈린 공항은 작지만 잘 꾸며졌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에스토니아를 비롯한 발트 3국이 유럽에서 IT 강국이라 들었다. 그래서 공짜 WIFI가 되는 유럽공항에서 몇 안 되는 FREE WIFI 공항이다.

[사진 001] 에스토니아 탈린 공항.

[사진 001] 에스토니아 탈린 공항.

에스토니아의 수도인 ‘탈린’은 북유럽의 작지만 아름다운 도시다. 1710년 러시아 황제, 표트르 1세 때부터 구소련의 지배를 받았던 탈린은 1991년에 소련에서 독립한 뒤 발트 해의 보석으로 거듭나고 있는 항구도시다. 자갈길과 중세의 가옥으로 가득 차있는 탈린의 구시가지는 14~15세기 중세시대의 고색창연한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그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붉은 지붕과 뾰족한 첨탑, 길드 하우스, 아름다운 성벽, 그리고 은빛으로 물든 발트 해에 둘러싸여 있는 탈린 시내를 걷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동화 속의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다. 탈린은 눈으로 보는 풍경 외에도 알 수 없는 묘한 매력을 갖추고 있는 도시로, 수백 년의 역사가 곳곳에 녹아 있는 도시를 걷다 보면 마치 중세로의 시간 여행을 떠나온 착각에 빠지게 되는 곳이다.

[사진 002] 탈린 시내 전경.

[사진 002] 탈린 시내 전경.

공항에서 탈린 시내로 가려면 시내버스 2번을 이용하면 된다. 보다시피, 종점까지의 정류장이 많지 않다. (물론, 버스를 타보니 중간에 생략된 정류장이 더러 존재.) 알고 보니, 공항에서 시내 중심가까지 2.5k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단다. 솔직히 마음만 먹으면 도보로도 가능한 거리. 런던 스탠스태드 공항에서 런던 시내로 가는 거리를 생각하면, 정말 편한 도시가 아닐 수 없다. 북유럽의 한 국가라고 했지만,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첫인상은 내가 생각했던 북유럽과는 달랐다. 오히려 러시아와 동유럽 향취가 전해졌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을씨년스런 분위기를 선호해서인지 잔잔한 긴장감이 모여왔다.

[사진 003] 공항에서 시내까지 실어다 줄 버스.

[사진 003] 공항에서 시내까지 실어다 줄 버스.

탈린의 구시가지는 도보로 하루 반나절 정도면 여행할 수 있다. 구시가지 외의 곳을 이용하려면 트램을 이용하면 된다. 트램을 타면 우리나라 버스 돈 내고 타는 것처럼 운전사와 승객 사이가 트여있지 않다. 운전자 좌석 근처 오픈된 공간에 돈을 넣으면 운전사가 잔돈이랑 표를 같이 돌려준다. 구시가지 여행은 자유롭게 돌아다녀도 그리 어려운 코스가 아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무료투어를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탈린의 구시가지를 찾으려면, 쌍둥이 고깔모자를 쓴 건축물이 비루문 Viru을 찾아야 한다. 구시가지로 들어가는 6개의 문 중 하나였던 쌍둥이 탑을 통과하면, 15∼17세기의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펼쳐진다.
고딕 양식의 시청사와 시청광장이 나오는데, 노천카페에서 휴식을 취하며 중세의 정취를 천천히 느끼려는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다.

[사진 004] 쌍둥이 고깔모자로 보이는 비루문

[사진 004] 쌍둥이 고깔모자로 보이는 비루문

시청광장 남쪽에 고딕양식으로 건축한 한 교회가 눈에 띈다. 니굴리스테 교회 Niguliste Kirik. 이 교회는 중세시대에 헌금을 모아 건립되었는데, 중간에 러시아가 폭격해서 지금의 이 교회는 재건축한 상태다. 다행히 폭격 이전에 교회 안에 있는 유물들은 다른 곳에 있는 상태여서, 재건축한 이후 옮겨 놓은 중세시대의 유물들을 볼 수 있다. 특히, ‘죽음의 춤’이라는 작품은 이 교회의 보물이라 할 수 있다. 처음에는 이 교회를 지나쳤다가 다음 날 다시 바라봤다. 너 참 겉보기에는 멀쩡한 것 같았는데, 상처가 많았구나. 위로해줬다.

[사진 005] 니굴리스테 교회 Niguliste Kirik.

[사진 005] 니굴리스테 교회 Niguliste Kirik.

간단하게 탈린의 역사를 읊어보자. 12세기에 독일 기사단이 제3차 십자군 전쟁을 계기로 한자(Hansa)상인과 함께 들어오게 되는데, 한자동맹은 독일 상인들을 중심으로 가입하게 되었고, 이곳은 무역도시로 성장하게 된다. 주요 도시가 되면서, 주변국의 시기가 증폭되어 간섭이 계속된다. 13세기에는 덴마크 발데마르 2세가 이 지역을 선점하였으며, 14세기까지 발트 해 연안의 도시 중에 가장 번성하게 된다. 15세기에 접어들면서, 한자동맹이 쇠퇴하지만, 입지의 중요성은 여전하여 주변국들은 탈린을 지배하려고 했다. 16세기 중반에는 스웨덴이 이 지역을 지배했으며, 1710년에는 서유럽을 동경하던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가 그 비슷한 제국을 완성하기 위해 탈린을 비롯한 페테르부르크, 헬싱키를 러시아에 병합시켰다. 1918년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 이후 에스토니아는 독립하였으며, 탈린이 수도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1940년, 독일 나치 정권이 점령하였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연합군과 소련의 집중 공격으로 구시가지의 건물들이 파괴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이 지역은 소련에 예속되었다가 구소련이 붕괴한 이후 1991년 독립하였다.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에 둘러싸인 에스토니아는 약 800여 년의 역사에서 30여 년 만이 독립국이었던 셈이며, 탈린은 1997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북동유럽의 중세 무역도시 유산이 되었다. 엄청난 상처를 극복한 재활도시인 셈이다.
[사진 006] 구시가지 곳곳에 주변국의 국기가 걸려 있다.

[사진 006] 구시가지 곳곳에 주변국의 국기가 걸려 있다.

톰페아 성 Toompea loss은 1229년에 덴마크인들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성의 주요 건물은 18세기에 바로크양식으로 지어졌다. 현재 톰페아 성은 에스토니아 국회 Riigikogu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성의 한복판에는 탈린의 역사를 알 수 있는 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으며, 연인과 함께 거닐 수 있는 좋은 조건의 길도 나 있다.

[사진 007] 톰페아 성의 위상.

[사진 007] 톰페아 성의 위상.

탈린의 저지대는 길드 건물과 상인의 주거지역이라면, 고지대는 에스토니아를 지배했던 권력층이 있던 곳이다. 건물의 화려함을 보면 대략 짐작이 가능하다. 톰페아 언덕을 올라와서 조금만 두리번거리다 보면, 이렇게 탁 트인 전망대와 마주하게 된다. 가을에 오면, 여백을 채운 낙엽이 꽤 운치 있게 널려있다. 가운데 두 분의 아저씨가 있는데, 그중 왼쪽에 있는 분이 관광객을 상대로 호객행위를 하고 있다. 품목은 다름 아닌 음반 CD. 탈린의 전경을 바라보며 한숨을 돌리려 할 때, 어디선가 그가 나타나더니 친근하게 말을 걸어온다. 국적과 취향을 물어보며 관광객의 행색을 가볍게 스캔한 후, 그는 상대에게 어울리는 음반을 추천한다. 장르와 분위기 등등을 고려한 음반이 줄줄이 나온다. 일단 나도 호기심에 좋아하는 장르를 말하니, 대답이 나오기 무섭게 그에 해당하는 에스토니아 뮤지션의 음반을 꺼낸다. 사실 살 생각은 없었으나, 그의 장사 노하우가 궁금해서 관심 있는 척을 하던 중. 좀 더 적극적으로 내게 접근해오는 감이 들어서 다른 여행객이 오는 틈을 이용해 몸을 피했다. 저기 오른편에 있는 분이 나 대신 설교(?)를 듣고 있는 분이다. 뭐 나름 혼자 하는 여행인지라, 잠깐이지만 대화 상대가 나타나 반가웠다.

[사진 008] 호객행위하는 상인과 관광객

[사진 008] 호객행위하는 상인과 관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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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호

발로 기억하는 보헤미안, 혀로 즐기는 마포술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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