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부르고뉴 화이트 와인이라면 어느 지역이 제일 먼저 떠오르나요? 뫼르소(Meursault)나 샤샤뉴 몽라셰(Chassagne-Montrachet)? 아무래도 유명하고 훌륭한 품질의 샤르도네 산지이니 들어봤을 법하다. 아니면 꼬뜨 샬로네즈(Côte Chalonnaise)의 륄리(Rully)?
부르고뉴 화이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꼬뜨 드 본(Côte de Beaune). 이곳은 전 세계 와인 애호가들이 주목하고 열광하는 뫼르소, 샤샤뉴 몽라셰, 퓔리니 몽라셰(Puligny Montrachet) 등이 위치한 곳이기도 하고 꼬뜨 드 뉘의 피노 누아와 닮은 듯 다른 볼네이(Volnay), 뽀마르(Pommard), 뻬르낭-베르즐레스(Pernand-Vergelesses) 등이 나오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도 꽤 많으며 잘만 고르면 지갑 출혈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으니, 지금부터 주목!
상트네(Santenay)
상트네는 1937년 AOC 등급을 받은 후 꾸준히 성장을 거듭해 온 지역인데 레드 와인을 주로 생산한다. 지도상에서는 꼬뜨 드 본 최남단에서 찾을 수 있으며 다양한 토양으로 이루어져 저마다 다른 특색을 지닌 와인이 탄생한다.
그런데 나는 레드가 아니라 화이트의 매력에 푹 빠지고 말았다. 10% 조금 넘게 생산되는 상트네 화이트는 뭐가 다른 것일까?
상트네가 사람들 입에 오르락내리락하기 시작한 것은 도멘 드 라 로마네 꽁띠(Domaine de la Romanee-Conti: DRC) 수장인 오베르 드 빌렌(Aubert de Villaine)이 상트네의 프리미에 크뤼 밭을 매입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영향력 있는 와인 메이커가 이 지역에 주목한다는 것은 남다른 의미가 있었을 것이고 실제로 화이트 와인의 숙성 잠재력에 초점을 두었다고 한다.
그랑 크뤼는 없지만 아주 훌륭한 프리미에 크뤼가 꽤 있으며 힘이 있으면서도 경쾌함을 잃지 않는 면이나 여운에서 느껴지는 미네랄리티 등 내가 생각하는 맛있는 화이트 와인의 많은 특징을 갖추고 있다. 그러면서도 (몇몇 생산자를 제외하고는)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지도 않으니 마셔보지 않을 수 없지.
사비니 레 본(Savigny-les-Beaune)
이번에는 꼬뜨 드 본 북쪽으로 가보자. 사비니 레 본은 샤르도네와 피노 누아를 생산하는 곳으로 아직은(?) 가격이 괜찮은데 그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과거에 생산자들이 와인을 직접 양조하기보다는 네고시앙에게 팔아 그들이 블렌딩을 해 저렴하게 팔았던 적이 있기도 하고, 샤르도네와 피노 누아를 각각 단일 품종으로 만들기보다는 피노 누아에 샤르도네나 피노 블랑을 섞어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으면서도 가벼운 느낌의 레드를 만들었던 적도 있기 때문이다.
이유가 뭐가 됐든 간에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음에도 저평가된 면이 있다. 사비니 레 본 와인을 어떤 와인이라고 딱 특정하기엔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최근에는 좀 더 무겁고 풍성한 아로마를 지닌 와인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이유는 꽤 접근성이 좋아 최근 빈티지여도 나름 만족할 수 있다는 점! (단, 프리에르 로크(Prieure-Roch), 르로아(Leroy)나 엠마뉴엘 후제(Emmanuel Rouget)는 접근성이 좋을 리 없다.)
이들이 덜 유명할 수는 있지만 또 다른 맛과 경험을 선사해 줄 것이며 이게 와인의 진정한 묘미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