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살 때 뭘 보고 사야 해요? 저는 라벨 보고 예쁘면 그냥 사는데…”
“그랑 크뤼 쌩 떼밀리옹 (Grand Cru Saint-Emilion) 인데… 라벨이 좀 아쉽네요… 좀 고급스럽게 만들지. 이 라벨보고 선뜻 사고 싶겠어요?”
첫번째는 가끔 와인을 마시는 지인, 두번째는 와인지식이 상당한 업계 종사자가 한 말이다.
필자는 와인에 대해 사전에 꼼꼼히 알아보거나, 직접 시음 후 마음에 들어야, 이 두 가지 기준으로 와인을 구매한다. 생각 많은 구매자 축에 속하는지라, 주변 사람들의 와인에 대한 지식 수준에 상관 없이 “라벨 보고 와인 구매하기”는 조금 의외였다.
하지만, 이런 구매의사 결정은 꽤나 일반화된 패턴이기도 하고, 최근 수치로 확인한 소비자 조사 결과에도 드러난다. “와인 구매자 3분의 2, 라벨 디자인이 구매의사 결정의 첫번째 기준이다!”
생각해 보니 그러하다. 와인 라벨은 와인의 얼굴이고, 그 수많은 와인병 중, 눈에 띄는 것에 손이 가기 마련.
아마도 이러한 구매 영향력은 구세계 와인보다 신세계 와인에 더 맞는 이야기 일수 있다. 눈에 띄는 디자인, 화려한 라벨은 신세계 와인에서 보다 많이 찾아볼 수 있으니.
최근 발견한 흥미있는 와인, 아니 그 와인을 표현하는 라벨이 있었다. 라벨을 만지작 거리며 마신 와인들… 필자의 글에 데려와 본다.
재미있는 캐릭터 라벨이 눈에 띈다.
처음엔 와인의 특성을 고려해 캐릭터를 만들었나 했는데, 알고보니 와이너리 오너 가족 개개인의 일러스트! 같은 와인도 매년 다른 디자인을 사용하니, 빈티지 별로 비교해 가며 라벨 보는 재미도 있다. (캐릭터 옆 붉은 선 안 CHAPTRE 숫자가 빈티지를 뜻한다.)
가족 구성원을 공식적으로 내세웠다는 건 그 정도로 와인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이 있다는 뜻이 아닐까? 와이너리 오너 겸 와인 메이커인 Charles Perez의 자녀, 심지어 애완동물도 라벨화 하였다고 하니, 그 아이디어가 참 기발하다.
Charles Perez 본인 캐릭터는 Classique 와인 (사진 우측)에 사용한다 하는데, 안타깝게도 국내 수입되지 않는 와인이다. 필자는 다음 프랑스 방문 시,꼭 접하고 싶은 와인으로 Mas Becha Classique 와인을 생각 하고 있다. 본인 캐릭터를 라벨에 사용했으니, 얼마나 애착을 가지고 양조를 하였을까?
재미있는 라벨이지만 호불호도 엇갈린다. 필자의 지인에게 저녁과 곁들여 먹을 와인으로 이 와인과 다른 프랑스 와인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보여 주었을 때, 마스베차 와인은 라벨은 귀여운데 고급스럽지는 않다며, 전통적 디자인의 프랑스 와인을 택하더라는 것. 필자의 개인적 선호도는 마스베차 였으나 게스트의 의견에 따를 수 밖에. 어디에나 전통과 진보의 공존, 개개인의 선택권이 있으니 말이다.
처음 이 와인을 접했을 땐, 라벨에 사용된 청년–중년–노년 모델의 이미지가 삼대째 이어온 와이너리의 오랜 전통을 뜻하는가 했는데, 아니다. 양조한 포도나무 수령에 따라 라벨을 달리한 것. 인물사진은 스페인의 유명 사진작가인 벨라 아들레와 프레네다가 이 와이너리에서 일하는 농부들을 모델로 촬영했다고 한다.
스페인 빈테 (Vintae) 사에서 기획한 와인 시리즈로 Matsu는 일본어로 “기다림”이라는 뜻. 청년, 중년, 장년, 노년 4종이 있으나, 필자는 가장 상위 라인인 Matsu 와인은 아직 접하지 못했다.
Matsu 와인은 바이오 다이나믹 방식 재배, 한정수량 생산, 필터링과 정제도 하지 않은 가장 순수한 스타일의 와인, 그야말로 “기다림”의 미학을 표현하는 와인인 듯 하다.
이 독특한 라벨은 각 포도나무의 특성, 포도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땀, 그 결과물인 와인의 캐릭터를 표현하고자 한 게 아닐까?
아이러니 하게도, 이 두 와인 모두 프랑스, 스페인 구세계 와인이나, 공통점은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와인 메이킹을 시도하고 있는 와이너리라는 점. 최근 주목받고 있는 유기농 방식, 화학물질의 사용을 배제한 자연주의 와인 임은 물론이다. 한 가지 숨은 진실을 공유하자면 – 마스베차 와인 병의 검정색 동그란 스티커를 떼어보면, 프랑스 유기농 마크가 숨어있다. (Agriculture Biologique/Vin Bio) 아직 유기농 식품 기준이 전 세계적으로 통일되어 있지 않기 때문인데, 와인을 접할 기회가 있다면 꼭 확인해 보길 바란다.
와인의 특성을 라벨에 글로 써서 표현하기는 힘들다. 구세계 와인들은 특정 용어가 많은 걸 내포하고 있어, 몇가지 용어로 와인을 표현할 수는 있지만, (그래서 초보자를 위한 와인강좌의 첫 주제가 “와인 라벨 읽기” 이기도 하겠지만.) 와인을 독특한 디자인과 패키징으로 소비자에게 어필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쉽지만, 참 어려운 얘기이다
필자도 레이블, 팩키징의 중요성을 인지하여, 최근 사전 지식이나 시음 없이 “레이블만 보고 와인 사기”를 해 보았다. 그냥 감성대로 구매할 수 있는 즐거웠던 쇼핑!
하나는 마트에서, 또 하나는 단골 와인샵에서 구매한 와인이다.
남아공의 Pinotage는 농축되고 부드러운 코코아 커피 같은 질감.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카페 모카에 크랜베리 쥬스를 살짝 섞어 마시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이 와인의 가성비에 매료되어, 편안한 자리나 데일리 와인으로도 주변에 추천하고 싶을 정도이다. 함께 마신 지인은 라벨의 커피 그라인더 그림으로 인해 커피맛을 느끼게 만드는 플라시보 효과 일 수 있다라는 의견이었지만, 검색해본 전문가 테이스팅 노트도 역시 일치한다.
까민스 델 프리오랏 (Camins del Priorat), 고은 핑크 빛깔 꽃 보고 집어든 봄맞이 와인이다!
섬세한 꽃그림이 눈에 띄어 포도품종 확인도 하지 않고 선뜻 사게 되었다. 아직 테이스팅 전이지만, 어떤 향과 맛이 봉인되어 있을지, 봄꽃처럼 화사하고 우아한 풍미일지, 기대된다. 기대하는 그런 느낌일까? 그렇다면 그 부케향을 못 잊어 다시 찾게 될테고, 그렇지 않다면 2014년 빈티지 탓하며 피어 오르기 전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Looks matter, but taste seals the deal! 역시 겉모습 보다는 속이 예뻐야 하는 법. 여튼, 라벨 하나 만으로 무궁무진한 상상을 할 수 있는 행복한 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