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웠던 여름이 끝나가고 있습니다. 여름이 시작하기 전에는 막연히 두려웠던 더위가 이제는 친한 친구 군대 가듯이 아쉽기만 하네요. 뙤약볕이 쏟아지는 해변에서 맥주도 마셔보지 못했고, 한 여름밤 맥주 축제에서 취하도록 즐기지도 못했는데, 속절없이 여름은 지나가고 있습니다. 게다가 여름에 마셔야 제맛을 느낄 수 있는 맥주들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여름의 끝자락이 아쉽기도 하니 여름 맥주 하나는 되짚어 봐야겠습니다. 세션 IPA에 대해 들어 봤나요? 아니라고요? 그렇다면 세션 비어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군요.
세션 비어는 맥주 스타일은 아닙니다. ‘이지-드링크(easy-drink)’라 할 수 있는 맥주들을 설명하는 형용사적 표현입니다. 테이블에서 취하지 않고 술술 마실 수 있다고 해서 영국에서는 테이블 비어라고도 부릅니다. 세션 비어는 일반적으로 한쪽에 너무 치우치지 않고 균형감을 유지하는 맥주입니다. 알코올 도수가 너무 강하지도 않고, 쓴맛의 강도가 너무 과하지도 않고, 홉과 몰트의 풍미가 너무 강하지도 않습니다.
그렇다 보니 무더운 여름에 청량감을 주는 맥주로 완벽히 어울립니다. 한 잔을 마시고 두 잔을 마셔도, 여러 잔을 마셔도 해를 주지 않습니다. 영국의 비터나 페일 에일, 독일의 쾰쉬나 고제, 벨기에의 위트 비어, 체코의 필스너 등 스타일 규약에 제한을 받지 않고, 많은 전통적인 맥주들이 세션 비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션 비어에서 세션은 한 세션 동안 몇 잔을 마셔도 취하지 않고 편하게 마실 수 있는 맥주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세션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회의, 회기, 시간이라는 뜻인데, 그대로 직역하면 아무래도 그 뜻이 잘 전달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학술대회에서는 몇 개의 발표를 주제별로 묶어 세션 1, 세션 2 이런 식으로 구분하거나 인터넷의 어느 사이트에 접속하여 로그인한 후 로그아웃하거나 그 브라우저를 벗어나기 전까지를 세션이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세션 비어가 맥주 스타일처럼 불리게 된 이유는 이렇습니다. 하나의 설에 불과하니, 그저 재미로만 읽어주세요. 때는 1914년 영국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이 해, 영국은 민간인까지 동원하면서 군사 무기를 만들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었습니다. 영국 정부는 알코올이 업무 효율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했고, 공장 노동자들이 술을 마실 수 있는 시간을 정오부터 오후 2시 40분까지, 다시 저녁 6시 30분부터 10시 30분까지 단 두 차례로 제한했습니다. 이 두 세션에만 음주가 허용되었고, 음주 후 업무에 복귀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공장 노동자들은 다른 술보다 도수가 낮은 맥주를 선호했습니다. 여기서 세션 비어라는 말이 생겼다고 합니다. 즉 세션 비어란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세션’에 너무 취하지 않으면서 많은 양을 마실 수 있는 ‘비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눈치챘나요? 이때의 맥주는 세션 비어이지 세션 IPA는 아닙니다. 세션 IPA라는 말은 비교적 최근의 미국에서 생겨났습니다. 미국은 1970년대부터 소규모 크래프트 양조장을 중심으로 미국 홉을 사용한 영국 맥주 스타일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심적인 스타일이 IPA였습니다. 미국 IPA의 특징은 높은 도수와 쓴맛 그리고 가득한 홉 아로마에 있습니다. 이러한 스타일은 대중의 취향을 강타했습니다. 하지만 IPA는 여러 잔을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술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IPA 타이틀을 유지하면서 취하지 않게 마신다는 개념의 세션 비어를 덧붙여 ‘세션 IPA’가 생겨난 것입니다.
세션 IPA라고 하면 2009년에 처음 생산된 파운더스 브루잉의 ‘All Day IPA’가 생각납니다. 올데이 IPA는 원래 홉이 많이 들어간 페일 에일로 만들어졌습니다. 몇 잔을 마셔도 질리지 않는다고 하여 이름도 ‘인듀어런스 에일(endurance ale)’이었습니다. 올데이 IPA의 특징을 살펴보면, ABV 4.7%에 IBU가 42입니다. 파운더스는 IPA를 유지하면서 너무 취하지도 않고 쓴맛이 적당한 IPA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세션 IPA의 교본처럼 되었습니다. 세션 IPA라는 말은 새로운 맥주 스타일이 아닌 일종의 마케팅 수단이었지만, 파운더스는 이 틈새시장을 노려 성공을 거둔 것입니다.
그런데 세션 IPA는 도대체 페일 에일과 무엇이 다를까요? 알코올 도수도 비슷하고, 쓴맛도 비슷합니다. 주로 아메리칸 홉을 사용하는 것도 비슷합니다. 저는 이 차이가 홉 지향성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IPA의 특징을 높은 도수와 높은 쓴맛이라고 했습니다. 세션 IPA가 애써 IPA의 반대 방향으로 가면서도 IPA의 타이틀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둘 다 홉의 풍미가 높다는 특성 때문입니다. 그에 비해 페일 에일은 홉과 몰트가 균형감 있는 맥주입니다. 세션 IPA는 다소 형용 모순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IPA는 높은 도수와 쓴맛이라면서, 세션 IPA는 도수와 쓴맛이 높지 않다고 하니까요.
앞서 세션 IPA는 하나의 스타일이 아닌 마케팅 수단으로 출발했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BCJP(Beer Judge Certification Program, 맥주 심사관을 인증하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맥주 스타일을 가이드함)에는 이 스타일에 대한 가이드가 없습니다. 대신 조금 더 유연한 WBC(World Beer Cup) 스타일 가이드에는 세션 IPA를 이렇게 가이드하고 있습니다.
‘몰트의 향과 풍미는 중간 이하로 낮고, 홉의 향과 풍미는 중간 이상으로 높다. 홉의 쓴맛은 중간 이상이다. 알코올 도수는 3~4%이고 5%를 넘으면 안 된다.’
한여름 무더위의 기세가 꺾이고 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세요. 그리고 세션 IPA를 찾아보세요. 구스 아일랜드의 덕덕구스나 라구니타스의 데이타임 IPA를 추천합니다. 둘 다 미국의 크래프트 맥주를 대표하는 브루어리로 한국에서도 접근성이 좋습니다. 주변의 마트나 편의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