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4월이면 잊지 않고 회자되는 그가 있다. ‘장궈룽(張國榮, 故 장국영)’ 생전 그는 이미 전 세계적인 배우였지만, 사후의 그 역시 중국에서는 최고의 배우로 극찬을 받고 있다. 그가 세상을 뜬지 올해로 13주기를 앞두고, 그가 하직한 4월의 한 때 그의 대표적 작품 ‘패왕별희(Farewell My Concubine, 1993)’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영화 속 ‘도즈’이자, 패왕을 사랑한 ‘우희’로 분했던 그를 떠올리면 알알이 붉게 빛났던 ‘탕후루’가 찬란했던 그의 삶과 오버랩 되며 떠오른다.
중국의 대표적 겨울 간식인 탕후루는 10여 년 전 필자가 베이징에 첫발을 내디뎠을 그때, 매끈한 설탕 광택으로 ‘어서 날 먹어보라’는 싫지 않은 유혹을 건넨 기억이 있다.
지금도 거리 곳곳에서 쉽게 눈에 띄는 탕후루는 10위안(약 1천 800원) 남짓의 간식에 불과하지만, 겉면을 감싼 설탕의 달콤함과 붉고 탐스러운 이미지와 달리 씹을수록 쌉쌀한 뒷맛의 탕후루는 화려한 경극 ‘패왕별희’ 속에서 아스라이 스러져간 도즈와 라이즈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고된 연습을 피해 도망쳤던 도즈와 라이즈는 우연히 마주친 경극 속 배우를 보며 “저 사람은 얼마나 맞았던 걸까”라며 눈물을 흘린다. 극단으로 돌아온 그들은 각기 다른 삶을 선택하게 되는데, 극단을 떠났을 때 맛보았던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입 안을 가득 채우는 탕후루의 달콤함과 자신의 남은 생애를 맞바꾸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라이즈는 어두운 시대에 자신을 섞지 못한 채, 스스로의 생을 마감한다.
혼란의 시대에서 만큼은 탕후루의 달콤함을 변명으로 처절할 수밖에 없었던 생의 줄을 놓는 것이 오히려 더 인간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은 라이즈였던 것이다.
그러나 영화 속 도즈로 분했던 장궈룽은 그보다 긴 생을 이어가는 방식으로 어둠의 시대 속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그리고 걸작 속에서만큼은 탕후루의 달콤함 뒤에 숨기를 거부했던 그와 그리고 그의 대표작 패왕별희가 막을 내린 지 23년이 흐른 지금, 현실 속에 실재하지 않는 그를 망각할 만큼, 작품 속의 그는 탕후루의 붉은 빛과 함께 우리 곁에 영원히 살아있다.
영화 속에서 만큼은 “사람의 운명은 정해져 있고, 그 운명을 거부하지 않겠다”던 그가 여전히 살아있을 것 같은 영화 속 1930년대의 베이징을 추억할 ‘그 곳’을 찾았다.
베이징 천안문광장 남쪽에 조성된 ‘치엔먼따지에(前门大街)’는 명나라 시대 처음 구획된 베이징 일대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상업 거리다. 명나라 때 처음 조성됐으나, 청나라 시기에 더 큰 주목을 받으며 성장한 이곳은 지난 2000년대 후반 대대적인 현대화 시설 도입 공사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하지만, 당시 정부는 건물 내부 시설의 현대화에 초점을 두고 건물 외벽의 형태는 수백 년 전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도록 하면서, 거리 곳곳에 명 청 시대의 고즈넉한 향취를 느낄 수 있도록 배려했다.
또, 거리마다 수백 년 동안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오래된 상점들이 즐비하다는 점도 이곳이 명물 거리로 꼽히는 이유 중 하나다. 일반적으로 100년 이상 한 곳에서 대대로 가업을 잇는 상점들을 가리켜 ‘라오즈하오(老字号)’라 칭하는데, 이 같은 라오즈하오들을 이 거리에서만큼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전문대가의 중앙 양쪽에는 후통(胡同)이라 불리는 작은 골목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거리를 걷는 도중 무심히 고개를 돌리면 비좁은 골목 수십여 곳이 미로를 잇듯 빼곡히 들어서 있다. 어느 골목을 선택해 들어가도 결국 한 골목으로 다 통하는 오래된 ‘후통(胡同)’이지만, 이곳이 바로 치엔먼따지에의 진짜 주인이다.
이름도 유명한 ‘따스란 거리(大栅栏)’로, ‘한 번도 안 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와본 이는 없다’는 바로 그 거리다.
무려 500여 년 전 명나라 시기에 조성된 중심 거리로, 거리 중앙에는 오래전 실크 제조로 유명세를 얻었던 실크 전문 매장들이 수백 년이 흐른 지금에도 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채 운영 중이다. 이들 매장은 대부분 400여 년 전 처음 문을 연 그 자리에서 그대로 대를 이어 장사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작게는 1평 남짓한 상점부터, 크게는 1~3층 건물을 개조한 형태의 현대식 상점까지 긴 행렬을 잇듯 빼곡히 들어선 상점들 상당수는 명·청대 시대에 형성됐다. 때문에 이 거리에서만큼은 ‘100년의 역사를 가진 상점 정도는 명함도 내밀어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있다고 한다.
그만큼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곳에 대한 상점 주인들은 당찬 모습이 감명 깊다.
이 거리가 최근 들어와 더 큰 유명세를 얻게 된 계기는 중국 각 지역에서 생산되는 전통 차(茶) 수백여 가지가 판매되는 명물 차(茶) 거리로 꼽히면서부터다.
중국에서 차는 선택 사항이 아닌 중국인이 생활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생필품으로 여겨지는데, 전국 각지에서 생산되는 명품 차 잎들이 ‘따스란차관(大栅栏茶馆)’, ‘장이위엔(张一元)’ 등 수백 년 전부터 차를 전문으로 판매해온 상점들을 통해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관광객들에게 팔려나간다.
필자는 이들 중 ‘장이위엔’이라는 찻집에 들어섰다. 다른 차 전문점과 달리 호객하는 이가 없다는 점에서 왠지 더 관심이 가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오래 여행을 지속하다 보면, 몇 가기 자의적인 기준이 생기는데, ‘특별히 친절하지 않은 밥집의 밥이 유난히 맛있고, 호객하지 않는 상점 제품의 수준이 남달리 좋다는 것’이 경험으로 터득한 필자의 주관이기 때문이다.
상점으로 들어서니, 몸의 피로를 한 번에 녹이는 은은한 화차(花茶)의 향이 스며든다. 지난 1800년대 후반 처음 문을 열었다고 알려진 이곳은 2층에서는 전통찻집을 운영하며 지나는 이들에게 우려낸 차를 선사하고, 1층에서는 말려낸 찻잎을 원하는 기호에 맞게 혼합해 판매하고 있었다.
찻잎은 광둥성(广東省), 광시성(广西省) 등 중국 남부 지역에서 생산된 것들이 상당했다. 이들 중 일부를 선별해 150g, 360위안(약 6만 5천원)에 차 한 박스를 담아 가게를 나섰다.
은은한 차 향기 덕분에 노곤했던 몸의 피로가 씻은 듯 사라진 것이 느껴졌다. 한 손에 묵직하게 느껴지는 차 한 박스의 무게만큼이나 구매해온 차를 조금씩 우려 마실 생각을 하니, 한 동안은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따스란 거리를 나섰다.
가끔 장소 자체가 명물인 거리가 있다. 중국 베이징에서만큼은 분명, 따스란 거리가 그러한 존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