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정 강화(포티파이드, Fortified) 와인의 계절이 돌아왔다. 와인잔을 타고 내리는 농밀함, 묵직하게 입안을 가득 채우는 만족감, 그리고 천천히 온도를 올리며 마실수록 새로운 풍미들이 복합적으로 펼쳐지는 주정 강화 와인의 매력을 그냥 지나치기 힘든 계절, 겨울이 반갑다.
높은 알코올 함량을 지닌 주정 강화 와인은 대항해시대, 오랜 항해를 훌륭하게 견딜 수 있었기에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고, 주정 강화 와인 특유의 강렬함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다. 주정 강화 와인은 발효 중, 또는 발효가 끝난 후에 주정(酒精, 에탄올)을 첨가하여 알코올 함량을 높임으로써, 와인을 안정화시키고 오랫동안 보관이 가능할 수 있었다. 특히, 발효 중에 주정을 강화할 경우, 이스트가 당분을 모두 먹어 치우는 것을 막아 와인에 잔당을 남겨 단맛을 만든다.
이번 픽커스 테이블에는 주정 강화 와인의 대표주자 6종이 준비되어, 주정 강화 와인의 매력에 푹 빠진 패널들을 맞이했다.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포함한 2번의 평가를 거쳐, 서로 다른 스타일의 주정 강화 와인을 샅샅이 파헤치는 시간이었다. 이날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와인은 ‘그라함, 10년 토니 포트(Graham’s Aged 10 Years Tawny Port) NV’로,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주정 강화 와인인 포트였다. 이번에 소개하는 6종의 주정 강화 와인과 함께, 온몸을 따뜻하게 채워주는 강렬함에 취해보자!
1. 포트(PORT)
포트는 가장 널리 알려진 주정 강화 와인으로, 포르투갈 도우로 지역의 특산 와인이다. 도우로 지역에서 와인이 생산된 것은 약 2,000년 전부터지만, 포트라는 이름으로 와인이 처음 생산된 것은 17세기 중반 이후다. 당시 영국이 프랑스와의 분쟁으로 보르도를 비롯한 모든 프랑스 지역의 와인 수입을 중단하면서 포르투갈로 눈을 돌리게 된다. 이때, 장거리 여행으로 와인이 변질되지 않도록 브랜디를 첨가하여 알코올을 강화한 것이 오늘날 포트의 원조다. 1756년, 세계 최초로 포트 포도원에 법적으로 원산지 지명 표기 제한이 가해졌고, 이로 인해 포트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DOP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포트 포도원의 등급 분류는 보르도의 1855 등급 분류보다 약 100년 먼저 이루어졌다. 레드 포트의 대다수는 다양한 품종의 복합적인 블렌드이며, 검은 과일과 꽃 아로마를 지니며 껍질이 두껍고 타닌이 많은 경향의 품종들이다.
추천 와인: 그라함, 10년 토니 포트(Graham’s Aged 10 Years Tawny Port) NV
생산 지역. 포르투갈 > 도우로 / 품종. 토우리가 나시오날, 틴타 로리즈, 토우리가 프랑카, 틴타 바로카, 틴토 아마렐라 / 수입처. 까브드뱅
[공필경 / 이야기꽃 필 무렵] 블랙베리, 건포도, 베리 잼의 맛이 강하게 퍼지고 메이플 시럽의 풍미도 느껴져요. 한 모금 넘기면 견과류와 달큰한 한약재의 뉘앙스가 은은하게 느껴져서 진득한 단맛을 잘 커버해주는 듯해요. 친구들과의 하우스 파티에서 한바탕 신나게 놀고 난 후, 도란도란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마시고 싶어요. ‘아, 다음 모금에서는 어떤 맛이 날까?’라는 궁금증을 파헤치며 마시는 게 재미있어요.
2. 모스카텔 드 세투발(MOSCATEL DE SETUBAL)
포르투갈의 숨겨진 보석, 모스카텔 드 세투발은 포르투갈 남부의 세투발 반도에서 생산하는 주정 강화 디저트 와인으로, 와인 스타일 이름이자 ‘머스캣 오브 알렉산드리아(Muscat of Alexandria)’로 알려진 품종의 이름이다. 이 와인은 1834년에 설립한 포르투갈의 가장 오래된 와이너리 중 하나인 ‘호세 마리아 다 폰세카(José Maria da Fonseca)’에 의해 탄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브랜디를 첨가하여 발효를 중지시키고, 병입 전 오크 숙성을 거친다. 만다린 오렌지, 말린 살구, 아카시아 등의 달콤하고 프루티한 스타일에서 숙성 기간이 길어질수록 건포도, 캐러멜, 견과류 등의 복합적인 풍미들이 추가된다. 감미로운 매력으로 와인만 오롯이 즐겨도 좋지만, 캐러멜이 들어간 달콤한 디저트 또는 크리미한 질감과 복합적인 풍미를 더 해줄 치즈와 좋은 페어링을 보여준다.
추천 와인: 알램브리, 모스카텔 드 세투발(Alambre, Moscatel de Setubal) 2012
생산 지역. 포르투갈 > 페닌슐라 드 세투발 > 세투발 / 품종. 모스카텔 드 세투발 / 수입처. 올빈와인
[최관웅 / 독특한 향이 매력적] 과실향, 꽃향기와 함께 나무와 송진 냄새가 느껴지는, 독특한 향이 매력적인 와인입니다. 입안에서는 상쾌한 민트 향이 도드라지고, 달콤하면서도 청량한 느낌이에요. 초여름, 친구나 연인과 함께 나들이를 떠나 이 와인을 마신다면, 잠시 더위를 잊고 청량감에 빠져 즐거운 오후를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아요. 기존의 주정 강화 와인과는 다른 매력의 독특한 스타일을 경험해보고 싶다면, 이 와인을 Pick!
3. 셰리(SHERRY)
셰리는 헤레즈 지역 재배량의 95%를 차지하는 팔로미노 품종을 주로 사용하며, 생산방식의 차이에 따라 크게 피노(Fino)와 올로로소(Oloroso) 스타일로 나뉜다. 그리고 이 두 스타일의 복합적인 형태가 아몬티야도(Amontillado)다. 완전 발효하여 매우 드라이한 와인에 주정을 첨가하여 알코올 농도를 15% 정도로 올려준 후 오크통에 옮기는데, 통의 5/6 정도만 채워주면 와인의 표면에 효모막 ‘플로르(Flor)’가 생긴다. 보호막 역할을 하는 플로르로 인해 와인의 산화가 극도로 억제되어, 피노의 미묘한 색과 맛이 유지된다. 아몬티야도는 숙성 중인 피노에 다시 주정을 첨가하여 알코올 농도를 16~17%로 높인다. 높은 알코올 농도에 플로르 효모가 죽게 되면서, 와인에 산화가 일어나 올로로소와 같은 짙은 호박색과 견과류, 빵 등의 다양한 풍미를 갖게 된다. 또한, 셰리는 오크통을 3~14단 높이로 피라미드처럼 쌓아 올린 ‘솔레라(Solera)’라는 독특한 숙성 방식을 사용한다. 가장 어린 셰리를 가장 윗단에 넣고, 마지막 단의 통에서 와인을 뽑아 병입하여 생긴 공간에는 윗단의 여러 통에서 조금씩 뽑아낸 와인을 옮겨 채운다. 이처럼 오랜 시간에 걸쳐 차례로 상단에서 하단으로 옮겨진 와인은 여러 통으로 나뉘어 섞이면서, 매년 일정한 품질과 맛의 와인을 유지할 수 있다.
추천 와인: 발데스피노 미디엄 드라이 쉐리 “콘트라반디스타”(Valdespino Medium Dry Sherry “Contrabandista”) NV
생산 지역. 스페인 > 헤레즈-헤레스-셰리 / 품종. 팔로미노 피노, 페드로 히메네즈 / 수입처. 케이엔제이와인앤스피리츠
[이명하 / 음식과 함께하면 더 맛있는 포티파이드 와인] 토피와 캐러멜라이즈드 호두 향이 은은하게 나고, 무엇보다도 쨍하게 뚫고 나오는 산도가 인상적입니다. 보통 주정 강화 와인이라 하면, 식사의 마무리 와인 또는 밤에 혼자 홀짝이는 와인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짱짱한 산도와 독특한 풍미를 가진 이 와인은 달달한 소스의 갈비와 페어링하면 잘 어울리지 않을까 싶어요. 상대적으로 부담 없는 가격으로 음식과 함께하면 더 맛있는 와인입니다.
4. 마르살라(MARSALA)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생산되는 마르살라는 1773년 영국인 상인 존 우드하우스(John Woodhouse)에 의해 처음 세상에 알려졌으며, 이후 정치·군사적으로 중요한 요지였던 마르살라 지역은 세계 대전이 발발하던 격변의 시기에도 굳건히 생존하며 번영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1960년대에 들어오면서 불확실한 품종과 미성숙한 포도의 무분별한 사용, 와인에 색과 당도를 첨가하기 위해 익히고 캐러멜화된 포도즙 첨가 등 통제되지 못한 상업화의 문제들로 인해 마르살라의 명성이 흔들리게 되었다. 대부분의 마르살라가 요리용 와인으로 전락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전통을 고수하며 최고의 와인을 만들기 위해 역사를 이어가는 와이너리들이 많다. 마르살라는 시칠리아 토착 품종을 사용하며, 프리미엄 마르살라에 사용되는 특별한 숙성 방식인 솔레라(Solera) 시스템으로 독특한 매력을 보여준다.
추천 와인: 마르코 데 바르톨리, 마르살라 수페리오레 오로 리제르바 비냐 라 미끼아(Marco de Bartoli, Marsala Superiore Oro Riserva 5 Anni Vigna La Miccia) 500mL NV
생산 지역. 이탈리아 > 시칠리아 / 품종. 그릴로 / 수입처. 비노비노
[최보윤 / 마르살라의 재발견] 앰버 컬러에 잔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가 예뻐요. 브랜디스러운 고급스러운 향이 두드러지고, 마무리는 바닐라빈을 긁어 넣은 듯한 진하고 자연스러운 바닐라 향에 숨을 멈추게 됩니다. 산도와 바디감 모두 강렬한 풍미와 조화롭게 어우러져요. 늦은 오후 노을을 바라보며, 크리미한 밀크 초콜릿과 캐러멜, 피칸을 듬뿍 올린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이 와인을 홀짝이면 평화롭고 운치 있을 것 같아요.
5. 뱅 두 나뛰렐(VIN DOUX NATUREL)
프랑스를 대표하는 주정 강화 와인, 뱅 두 나뛰렐은 이름 그대로 자연적으로 얻은 달콤한 맛의 와인이다. 뱅 두 나뛰렐의 대표 생산 지역 중 하나인 남부 론의 ‘봄 드 브니즈(Beaume de Venise)’에서는 뮈스카(Muscat) 품종을 사용한다. 전 세계에서 주정 강화 와인 생산에 널리 사용되는 뮈스카는 산도가 낮거나 중간 정도이며 오렌지꽃, 장미, 포도의 향기로운 아로마를 발현한다. 잘 익은 건강한 포도를 수확하여 으깬 후, 포도즙을 껍질과 분리할 수도 있지만 껍질과 약간 접촉시키면 더욱 풍부한 아로마를 얻을 수 있다. 서늘한 상태에서 발효하며, 96% abv의 포도 증류주로 주정 강화하여 발효를 중단시킨다. 병입 전 와인을 비활성 용기에 저장하고 산소와의 접촉으로부터 보호함으로써, 1차 과일 아로마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한다.
추천 와인: 폴 자불레 애네, 뮈스까 봄 드 브니즈 ‘르 샹 데 그리올'(Paul Jaboulet Aine, Muscat Beaume de Venise ‘Le Chant des Griolles’) 375ml 2018
생산 지역. 프랑스 > 남부 론 > 봄 드 브니즈 / 품종. 뮈스카 / 수입처. 나라셀라
[어수진 / 화사한 봄날의 피크닉을 위해 아껴둬요!] 굉장히 쨍한 산도가 신선한 과일 향과 잘 어우러져요. 시간이 지날수록 꽃 향기가 점점 더 풍부하게 표현되는, 가격 대비 훌륭한 와인! 날씨 좋은 봄날, 여자 친구들과의 공원 피크닉에 이 와인을 챙겨간다면, 와인을 잘 모르는 친구도 분명 좋아할 거예요. 달콤하고 상큼한 와인으로 피크닉 분위기도 업! 기분도 업! 뮈스카 봄 드 브니즈의 매력을 아주 잘 표현한 와인이에요.
6. 마데이라(MADEIRA)
마데이라는 북대서양 한가운데에 위치한 바위투성이의 작은 화산섬, 포르투갈의 마데이라 섬에서 생산하는 주정 강화 와인이다. 마데이라는 그 어떤 와인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생산 방식을 사용하는데, 와인의 발효 과정 중 96% abv의 높은 주정을 첨가하여 발효를 멈춘 뒤 일정기간 ‘열을 가하는 것’이다. 대항해 시대, 바다 항로를 통해 미국과 인도로 여행하던 선원들에게 마데이라 섬은 중간 쉼터이자 와인을 공급받는 중요한 지리적 거점 지대였다. 더운 적도를 지나 열대 지역을 통과하는 긴 항해 기간, 선체에 보관되었던 와인은 높고 낮은 기온의 변화를 겪으며 숙성이 가속화되었고 와인의 당분이 캐러멜화되었다. 높은 산도와 스모키하면서 달콤하고 너티한 아로마를 보여주는 마데이라에 특히 영국인들이 열광했고, 당시 마데이라를 금과 동일시할 정도였다. 이러한 독특한 생산 방식 덕분에 마데이라는 가장 오랜 시간 보관이 가능한 와인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추천 와인: 주스티노스 마데이라, 리저브 파인 미디움 드라이 5년(Justino’s Madeira, Reserve Fine Medium Dry 5 Years Old) NV
생산 지역. 포르투갈 > 마데이라 / 품종. 틴타 네그라 / 수입처. WS통상
[한재현 / 속 깊은 대화를 이끌어내는 강력한 무기] 주정 강화 와인은 와인과 브랜디의 매력을 동시에 갖춘 듯해요. 이 와인에서도 브랜디에서 맡음 직한 아몬드, 토피, 견과류 풍미와 함께, 짭조름한 바다의 맛이 느껴지는데요. 특히 톡 쏘는 산도가 가장 인상적이에요. 오랜 인연의 친구와 추억을 나누며 속 깊은 대화를 할 때 함께 마시고 싶습니다. 높은 알코올 도수가 분위기를 훈훈하게 만들고, 와인의 산뜻한 마무리로 또 하나의 좋은 추억을 남길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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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kers’ table이란?] 픽커스 테이블은 소비자가 현재 가장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정보를 반영한 주제를 선정하여 격주로 진행되는 시음회이다. 각 주제에 맞춰 선정된 와인을 시음한 패널들의 리뷰는 Wine Pick 기사 컨텐츠와 마시자Go 앱에서 확인할 수 있다.
[Wine Pick이란?] 와인 픽은 픽커스 테이블에서 소개된 와인을 하나씩 추천하는 서비스로, 마시자Go를 통해 와인 정보와 소비자의 시음평을 확인하고 예약 서비스를 통해 와인을 구매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