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슬링은 숙성 가능성이 어마어마하다. 그런데 최고의 와인이라면 어느 정도까지 숙성시킬 수 있겠는가? 앤 크레비엘 MW가 폰 바서만-요르단 박사와 함께 19세기 초 최고 빈티지 와인을 맛보았다.
유서 깊은 팔츠의 에스테이트 게하이머 랫 닥터 폰 바서만-요르단이 최고의 빈티지 중 하나를 수확하고 있을 당시에 독일은 통일된 나라가 아니었고, 1대 수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태어나지도 않았었다.
이 생산자의 30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지난 8월 26일 일요일 밤 다이데스하임에서 포스터 웅게하우어 포도밭에서 난 이 1811 리슬링을 테이스팅했다.
색상은 호박색이었고, 처음 맡은 향기는 스모크였지만 점차 열리면서 라놀린, 밀랍, 시트러스, 화이트 트러플로 이어졌다. 풍미는 신선하고, 친근하며, 오프 드라이에 놀라울 만큼 아직도 거의 촉촉한 듯한 활기와 흠잡을 데 없는 균형을 갖추고 있었다. 207년이나 되었다는 사실에 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 리슬링이 탄생한 것은 후의 조지 6세가 섭정 왕자로 임명되고, 제인 오스틴의 소설 『센스 앤 센서빌러티』가 처음 출간된 해였다.
이 진귀한 와인은 와이너리 소유주인 야나 시거가 기증한 것으로, 1849년에 요르단이 세 와이너리로 갈라지면서 개인 소장하게 된 다른 희귀 빈티지들과 함께 보관되어 있었다.
게하이머 랫 닥터 폰 바서만-요르단, 라이히스트라트 폰 불, 폰 비닝의 1988, 1979, 1967, 1953, 1925도 1811이 선보이기 전에 테이스팅했다.
다른 역사적 와인들은 모두 한곳에서 났지만 다양한 발달 단계를 보여주고 있는 리슬링 아우슬레제, 베렌아우슬레제, 트로켄베렌아우슬레제이었다. 그 덕분에 비교적 드라이한 1811의 신선함과 깨끗함은 더욱더 놀라웠다.
바서만-요르단의 운영 디렉터 군터 하우크는 루드비히 안드레아스 요르단의 2011 수확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1783년 이래로 올해처럼 훌륭한 와인이 만들어진 적은 없었습니다.” 그가 당시에 한 말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는 개화가 5월에 끝나고 수확량 전체가 9월 8일까지 “완전히 익은”, 유독 이른 빈티지였다.
1811년에 나타나 260일간 밤하늘에서 관측되었던 대혜성 덕분에 이 빈티지와 와인은 각각 코메텐야르강과 코메텐바인 – “혜성 와인” – 이라 불리게 되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자신의 『서동시집West-ostlicher Divan』에서 이 혜성 와인을 언급하여 길이 남겼다. 후에 19세기에 프러시아 수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도 이 빈티지 와인을 특히 좋아했다고 알려졌다.
슬프게도 여러 테이스팅 행사에서 이 와인을 보긴 힘들 것 같다. 하우크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 와인을 테이스팅하는 건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일 겁니다.”
그는 1811 와인이 정기적으로 리코르크 되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산화황이 첨가된 같은 와인 한 병으로부터 증발된 부분을 채워 넣은 것 말고는 다른 첨가가 없다고 했다.
테이스팅에서 두 병이 사용되었으며 마지막 여덟 병은 와이너리에 남아있다.
포르스트 마을의 웅게하우어 포도밭은 1699년에 처음으로 기록되고 1828년에 바이에른 세금 체계에서 최고 구획으로 분류되었으며, 오늘날 그로스 라게로서 훌륭한 드라이 리슬링이 여전히 재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