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에서 양조 된 와인을 시음해보는 행사가 열렸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백화점과 대형마트에 빼곡히 진열된 전 세계 와인은 물론, 대부분의 편의점에도 와인 진열대가 자리 잡고 있고 동네마다 특색 있는 와인샵이 있는 한국은 이제 그 와인을 만들고 소비하는 지점에 왔다고 생각하니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상대적으로 음식과 주류 관련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프랑스, 와인의 주 생산국이자 소비국으로 유명한 이곳에서 프랑스인들은 어떻게 와인을 사고 마실까요? 한국은 스파클링 와인의 소비가 점점 늘어나는 반면 레드 와인의 소비율이 매년 소폭 감소하고 있지만, 여전히 밸류 면에선 70% 정도로 압도적인 레드 와인 선호도를 가지고 있다는데, 한국인처럼 프랑스인 역시 화이트 와인보다 레드 와인을 더 즐길까요? 오늘은 프랑스의 슈퍼마켓, 와인샵과 프랑스 와인 소비 통계를 살펴보며 이들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보려 합니다.
점점 줄어드는 프랑스인의 와인 소비량
국제와인사무국 OIV(L’Organisation International du Vin)의 조사에 따르면 2016년에 프랑스인 성인 한 사람당 일 년 와인 소비량은 51.2리터로 약 68병의 와인에 해당합니다. 여전히 많은 소비량처럼 보이지만 IWSR 등 여러 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프랑스인의 인당 와인 소비량이 약 20% 가량 감소했다고 합니다.
1950년대 학교 카페테리아에서는 어린이들의 식사에 와인, 맥주, 사과주 등을 같이 내기도 했고, 1981년에 이르러서야 아이들이 주류를 마시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이 만들어진 사실을 아시는지요? 식사 때마다 와인을 한 잔씩 곁들이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 믿고 매일 와인을 마시는 프랑스인들은 여전히 많습니다. 하지만 와인 외 다른 주류를 더 선호하는 20~30대가 많아지고, 일반 와인 소비자들은 예전보다 좀 더 질이 좋은 와인을 더 적게 소비하려는 트렌드가 보입니다.
프랑스인은 어떤 지역의 와인을 많이 마실까요?
와인 산지가 아닌 파리와 북부를 제외한 프랑스 전역에서 프랑스인들은 자신들이 사는 지역의 와인을 마시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지역에 대한 자부심에 지역 와인의 다양한 가짓수, 상대적으로 와인 산지를 방문하기 쉬운 지리적 이점이 자신이 사는 지역의 와인 소비를 자연스레 돕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슈퍼마켓에서 선반을 차지하고 있는 레드 와인과 화이트와인의 비율은 4:1 정도로, 지역에 있어선 레드 와인의 경우 보르도-부르고뉴-론이 압도적이며 화이트 와인은 알자스-루아르-부르고뉴가, 로제 와인은 프로방스와 루아르 지역의 와인이 진열됩니다.
매 끼니 와인을 좀 더 저렴하게 즐기려는 소비자는 바틀 뿐 아니라 큐비(Cubi)라 불리며 원하는 양의 와인을 따라 마실 수 있는 3리터, 혹은 5리터 와인 팩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참고로 프랑스에서 가장 많은 와인을 소비하는 곳은 루아르 지역입니다. 전체 인구의 약 44%가 매주 와인을 마신다고 하며, 두 번째는 푸아그라와 오리요리가 유명한 남서쪽의 툴루즈 지역이 뒤따릅니다.
프랑스인, 어디서 와인을 구입할까?
프랑스 전역에 걸쳐 유명한 와인 산지가 있는 프랑스인들이 와인을 구입하는 경로는 매우 다양합니다. 사람들은 산지에 직접 방문해 와인을 시음해보고 중간마진 없이 구입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 믿지만, 통계에 따르면 약 61%의 와인 구입은 크고 작은 동네의 수퍼마켓에서 이루어집니다.
물론 동네마다 체인 혹은 단독의 와인샵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매년 소비되는 16~18%의 와인이 체인 혹은 독립적인 와인샵에서 판매되는데, 대표적인 예로 니콜라(Nicolas)라는 와인샵은 2018년 기준 498개의 매장이 프랑스에서 운영되고 있고, 르페르 드 바쿠스(Repaire de Bacchus)라는 와인 전문샵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외, 약 10%의 와인이 온라인 샵에서 구매되는데, 사람들은 더 많은 와인을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구입량도 늘어나지만, 그 수요에 비해 아직은 주문 후 도착 시간을 확실히 알 수 없는 프랑스의 불편한 배송시스템이 더 큰 성장을 가로막는 이유로 보입니다.
놀랍게도 와인의 품종이나 스타일 그리고 세부 지역의 이름을 기억하는 프랑스인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슈퍼마켓에서는 한 번 쯤 들어봤을 만한 지역의 이름이 붙은 보르도와 부르고뉴의 와인이 가장 많이 팔리고, 와인을 판매하는 여러 창구가 있음에도 와인의 선택을 도와주는 판매원이 있는 전문 와인샵이 여전히 건재한 이유는 예상외로 프랑스 사람들도 와인에 대한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떤 가격대의 와인이 인기 있나요?
파리에서 판매되는 와인의 평균 가격은 1리터당 5.07유로라고 하니, 750ml병당 3.8유로의 와인이 주로 판매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와인 당 평균 가격은 파리 외 지역으로 갈 수록 낮아지는 경향을 보이며, 프랑스 중부에서는 1 리터당 3.6 유로로 와인 구매 금액이 가장 낮습니다.
슈퍼마켓의 와인 코너는 상당수 10유로 아래의 와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모노프리(Monoprix)와 같은 상대적으로 프리미엄 이미지를 가져가려 노력하는 곳에서는 진열하는 샴페인의 가짓수를 늘리고, 10유로에서 15유로대의 와인 선택권을 늘리는 추세입니다.
어떤 스타일의 와인, 어떤 지역의 와인을 많이 마실까?
프랑스인이 소비하는 10병의 와인 중 9병은 프랑스 와인입니다. 프랑스산 와인의 가짓수가 많고 그 양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다양한 신/구세계의 와인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닌데다 다양한 취향을 가진 소비자가 적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은 프랑스 와인만을 소비하며, 이탈리아나 스페인의 와인을 손에 꼽을만큼 마셔본 프랑스인이 참 많습니다.
이런 현상은 노년층으로 갈수록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슈퍼마켓의 와인 코너를 보면 규모가 꽤 큰 와인 코너에 비해, 외국 와인은 이탈리아-스페인-칠레-포르투갈 한두 종의 와인이 하나의 선반에 올려져 있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프랑스인들이 외국 와인을 마셔볼 기회는 꽤 제한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소비되는 와인의 색상은 레드 와인이 53%, 로제 와인이 30% 그리고 화이트 와인은 17%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샴페인과 크레망 등의 스파클링 와인은 전체 와인의 1/10 정도라고 합니다.
와인 코너에서 보이는 새로운 트렌드
요즘 주목할만한 프랑스 와인 코너의 특징은 유기농 와인, 비오다이나미 방식으로 만든 와인들이 상시 진열되며 일반 슈퍼마켓과 와인샵, 백화점에서의 그 진열 공간을 늘려간다는 점입니다. 비건과 베지터리언 인구가 늘어나고, 되도록 유기농 식재료를 선택해 건강에 신경을 쓰는 사람들, 와인에 들어가는 첨가물을 꼼꼼히 확인하고자 하는 소비자의 니즈를 반영하는 변화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