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의 대도시에는 언제나 먹을거리가 즐비하다. 그곳은 내로라하는 다국적 셰프들의 활동무대이기도 하며 미식가들의 성지로써 늘 발 디딜 틈새 없이 붐빈다. 그중에서도 일본은 제과와 제빵분야에서 프랑스와 쌍벽을 이룰 만큼의 기술과 인지도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중 하나이다. 해외의 유명 셰프들이 자신들의 레스토랑이나 베이커리를 세계적으로 알리고 싶을 때 분점을 가장 내고 싶어 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뉴욕에서 필자와 함께 일했었던 한 셰프는 프렌치셰프가 일본의 기술자들과 함께 일본에서 일하면 최고의 맛을 낼 수 있을거라 했던 말이 생각이 난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일본 기술인들의 장인정신, 다채로운 재료, 민감한 트렌드의 반응속도, 소비자들의 미식에 대한 높은 관심도 등이 일본의 디저트 수준을 꾸준히 끌어올리고 있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올 정도가 아닌가 싶다.
한국과 가까운 나라라 그런지 많은 홈 베이커들이 일본에서 직접 베이킹도구나 서적을 사 오고 일본에서 경험한 디저트에 상당히 만족하고 있다. 도대체 뭐가 얼마나 다를까, 나에겐 그곳의 어떤 점이 훌륭하게 다가올까 하는 생각을 하던 찰나 드디어 처음 도쿄행 비행기에 오르고 말았다. 일본의 디저트 성지로 많은 사람이 오사카를 찾기도 하지만 필자는 전 세계 트랜드의 중심, 다양한 문화가 공존해 합리적으로 비교해볼 수 있는 도쿄를 선택하였다. 인구도 대지면적도 서울보다 훨씬 크고 넓어 모든 면에서 숫자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단지 필자가 느끼고 싶었던 것은 디저트를 대하는 분위기, 맛, 표현의 정교함이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일본에 간다고 하니 많은지인이 편의점 디저트에 입을 모아 칭찬을 했다. 편의점 음식이 뛰어나다는 일본, 정말 듣던 바로 많은 종류의 편의점 음식들이 진열대에 질서정연하게 놓여있었다. 이 정도는 편의점에도 있을법하다는 느낌을 주는 롤케이크를 시작으로 생각지도 못했던 수풀레 치즈케이크와 몽블랑 케이크는 필자의 눈을 반짝이게 하였다. 그 외에도 크림퍼프, 캐러멜푸딩, 채소빵 등 가짓수를 한 번에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디저트들이 눈에 들어왔다. 보통 하루의 일정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올 때쯤 호텔 입구 쪽에 있는 편의점에서 먹어보고 싶었던 음식들을 사서 야식으로 벗 삼아 먹어보곤 하였다. 그중에서도 단연 최고를 뽑으라 하면 사르르 녹는 롤케이크를 뽑겠다. 느끼하지 않은 크림과 폭신한 케이크 시트가 과연 편의점 디저트가 맞는가 싶을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겨주었다.
둘째 날에는 도쿄에서도 명품, 패션의 거리인 긴자로 향했다. 바로 앙리 샤르팡티에(Henri Charpentier)라는 곳의 디저트 부티크에 들르기 위해서였다. 복층 구조의 이곳은 1층에 케이크와 구움 과자류들의 단품 메뉴들이 진열되어있었고 고급스러운 인테리어가 인상 깊었던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브런치와 디저트 등을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이 눈앞에 펼쳐진다. 셰프가 직접 플레이팅한 디저트를 맛볼 수 있는 이곳에서 커피와, 시그니처 메뉴인 마들렌, 휘낭시에 그리고 화려한 디저트를 주문해보았다. 향긋한 시럽과 술 등으로 만든 액체에 얇게 부친 크레페를 함께 먹는 수제트 크레페(Suzette Crepe)가 시그니처 메뉴이기는 하나 눈길을 사로잡는 디저트들에 먼저 현혹되어 크레페는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 없었다. 필자가 주문한 과일 디저트와 초콜릿 롤케이크는 기본적인 케이크 시트에 예사롭지 않은 부드러운 크림이 더해져 기본에 충실하지만 강렬한 부드러움을 남겼고 사과를 주제로 그와 어울리는 맛들을 더해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한 플레이티드 디저트는 상큼함을 전해주었다. 명품거리에 위치한 부티크에 명성까지 더해져 디저트의 가격대가 만만치는 않지만 한번쯤은 황홀한 서비스와 분위기, 그리고 쉽게 접할 수 없는 기술의 플레이티드 디저트를 경험해보기에는 개인적으로 아깝지 않은 시간이었다.
2박 3일간의 짧다면 짧은 여정 동안 자유 여행을 하며 도쿄 구석구석의 디저트를 맛본 순간들. 인상 깊었던 점이라면 디저트가게에 차분히 줄을 서서 기다리는 많은 현지인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퇴근길에 들려 디저트를 손에 들고 총총걸음으로 제 갈 길을 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여행하며 본 일본의 디저트는 전통 디저트인 찹쌀떡이나 화과자가게도 물론 존재 하였지만 치즈 타르트, 캐러멜 애플 와플, 크런치 슈, 형형색색의 캐러멜팝콘과 같은 이국적이면서도 현대적인 디저트 가게들을 더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매장은 대부분 아주 협소하였지만 한 두 가지 정도의 메뉴들을 집중적으로 판매하고 거기서 맛의 종류를 늘려 소비자 선택의 폭을 높인 점이 한가지 메뉴를 대하는 그들의 전문성을 더욱 돋보이게 하였다. 우리나라의 동네 베이커리에 해당하는 일반 베이커리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케이크를 보았으나 홀케이크 보다도 조각 케이크가 주류를 이루었고 결코 단순하지 만은 않은 독창적인 장식이 눈에 띄었다.
한국의 디저트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이라면 장식의 독창성, 하나의 메뉴 속에 들어있는 다양한 맛의 조화, 단맛의 균형 등을 꼽을 수 있겠다. 평범한 소비자로서 느끼는 지금 한국의 디저트는 유행의 뜨고 짐이 매우 빠르며 해외의 유명 디저트를 국내에 들여와 반짝 매출을 올리는 곳도 적지 않아 보인다. “나를 위한 작은 사치”라는 말도 디저트를 대하는 소비자들에게 작지만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사치”라는 개념으로 자리 잡아 디저트 문화가 더욱 대중적으로 자리 잡기에는 아직 어려운 감이 없지 않아 보인다. 편의점에서도 누구나 맛있는 디저트를 먹을 수 있고, 추억과 경험에 응당 하는 지불을 기꺼이 할 수 있는 문화가 자리 잡을수 있기를 바란다.
짧지만 달콤했던 일본 도쿄의 디저트 여행. 극히 일부만을 경험했을 뿐인데도 참으로 아름답고도 맛있었던 여행이었다. 이 글을 관심 있게 읽는 독자들 중에 누군가는 한 번쯤 ‘도쿄 바나나’가 아닌 현지의 디저트를 느껴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 그것이 편의점에서 산 것이든, 고급스러운 디저트 부티크에 가서 먹은 것이든 그 무엇하나 당신을 실망하게 하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