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가 불러온 장기간의 ‘셧다운’ 부작용으로 미국 와인 산업에서 기이한 현상이 발생해 이목이 집중됐다. 코로나19 공포가 전 세계 각국의 문을 닫게 한 직후 전체 와인 시장의 판매량은 급증한 반면 일부 소형 와이너리의 이익은 감소하는 기현상이 목격된 것.
최근 온라인으로 진행된 ‘와인산업금융심포지엄’(The Wine Industry Financial Symposium) 조사에 따르면, 올 초부터 계속된 코로나19 악영향으로 미국 총 50개 주 내의 와이너리 가운데 약 57%에서 판매량 감소 현상을 마주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같은 기간 미국 와인 시장의 전체 판매량이 꾸준한 상승세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와인을 직접 생산, 완제품을 공급하는 와이너리의 이익 감소 현상은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 현지 언론의 반응이었다. 특히 이 같은 기현상이 목격된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는 점에서 많은 이들의 관심이 몰린 상황이다.
이번 현상의 가장 큰 이유에 대해 이 분야 전문가들은 ‘예견할 수 없었던 코로나19 사태 앞에서 소규모 와이너리들은 적절한 대처를 준비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반면 대규모 자본을 단기간에 동원할 수 있는 비교적 큰 규모의 중대형 와이너리들은 안정적인 자금 동원과 이를 통한 새로운 판로 개척 등이 가능했던 탓에 셧다운 정책 이후에도 적절한 대처를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매년 이 시기 미국 내 와인 생산량 가운데 약 65% 이상이 오프라인 레스토랑과 바(bar) 등 상점을 통해 소비됐었다는 점에서 대도시를 중심으로 한 전면적인 ‘셧다운’ 정책은 소규모 와이너리에게 사실상의 사망신고를 한 것과 같다는 분석이다.
특히 미국 내 오프라인 와인 판매 채널의 경우, 소수의 중대형 와이너리 측이 술집과 레스토랑 등을 독점 계약하는 형식을 유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문제는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일부 전문가들에 의해 ‘대규모 자본 동원이 가능한 중대형 와이너리들이 소형 와이너리와의 상생에 눈을 감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졌던 바 있다.
중대형 와이너리들이 독점 공급할 수밖에 없는 이 같은 미국 와인 시장의 공급 채널의 일원화 문제는 결국 ‘코로나19’라는 예기치 못한 문제에 직면하면서 소형 와이너리 경영 악화의 주요 원인이 됐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된 셈이다.
특히 지난 3월 20일 캘리포니아, 일리노이, 뉴욕 등 상당수 도시에서 제1차 셧다운 명령이 내려졌다. 해당 도시에 소재한 바와 레스토랑, 와인 전문점 등 생활 필수 사업 영역에 포함되지 않은 사업체들 역시 모두 문을 닫게 된 상황에서 소규모 와이너리의 경영 악화는 악화 일로를 걸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코로나19 영향으로 미국 내 1만 5,770개의 레스토랑이 완전한 폐업 수순을 밟은 것으로 확인됐다.
비즈니스인사이더가 집계한 보고서에 따르면, 올 중순 기준 미국의 리뷰 전문 업체 ‘옐프’(Yelp)에 등록됐던 약 2만 6,000곳의 레스토랑 가운데 1만 5,770곳이 ‘영구 휴업’을 선언한 상태다. 문을 닫고 휴업을 선언한 레스토랑과 술집 등이 가장 많았던 지역으로는 캘리포니아 일대로 확인됐다. 이어 텍사스와 뉴욕 등의 도시가 그 뒤를 이었다.
이 문제에 대해 루스 콜롬보(Russ Colombo) 수석 부사장은 “워싱턴주 일대의 소형 와이너리들은 최근 들어 와이너리의 갑작스러운 파산을 막기 위한 자금 조달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진단하며, “소형 와이너리의 경우 당면한 자금 조달 문제 해결에 난항을 보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하고, 문제의 가장 큰 이유에 대해 ‘운’이라는 예측할 수 없는 부분이 사업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산업이 바로 와인 분야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와인을 직접 제조해 다양한 경로를 통해 판매처를 개척해야 하는 와이너리의 경우, 기존의 대규모 와이너리와의 경쟁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서 “여기에 더해 와이너리가 가진 와인 제조 기술과 재능, 그리고 무엇보다 ‘운’이라고 불리는 미래를 볼 줄 아는 폭넓은 사업적 마인드가 요구되는 탓에 소규모 와이너리의 경영은 생각만큼 쉬운 것이 아닐 것”이라고 했다.
더욱이 와인의 주요 원료가 되는 포도의 수확부터 와인 제조, 그리고 숙성의 단계를 거쳐 소비자에게 판매되기까지 최소 2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예기치 못한 코로나19 사태는 소규모 와이너리에 피하기 어려운 경영난을 불러올 수밖에 없는 산업 구조였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 시기, 소비자들의 와인에 대한 소비를 주저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롭 맥밀런 실리콘밸리은행 사업부 총괄 부사장은 “코로나19 악영향으로 미국인들이 와인을 아예 끊은 것은 아니었다”면서 “오히려 식당과 술집이 모두 문을 닫은 상황에서 미국인들은 코로나19 사태의 악화와 전에 없던 바이러스의 출몰이라는 두려움을 잊기 위해 많은 양의 와인을 구매하고 마시는 모습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캘리포니아주에 소재한 고급 리조트인 포스트 랜치인의 게리 오블리바시온 총지배인은 “미국인들은 코로나19 사태로 거의 공황 상태에 빠져 있는 듯 보인다”면서 “현 상황에서 마주한 두려움을 가장 효과적으로 잊고, 또 다스릴 수 있게 하는 와인이라는 맛 좋고 합법적인 상품에 미국인들의 소비가 쏠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와 함께, 코로나19 사태 이후 생겨난 또 다른 현상으로 온라인 상점을 통한 구매량이 급증했다는 점이다. 특히 이 시기 온라인 와인 시장 규모가 가장 활발하게 진행됐던 지역으로 메릴랜드, 매사추세츠, 펜실베니아 등 동부 3개 지역이 꼽혔다.
이 같은 연구 결과에 따라, 미국 와인 시장은 향후 온라인 유통 채널의 긍정적인 확대가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모였다. 같은 시기 미국인들은 코로나19의 감염에 대한 두려움 탓에 기존에 즐겼던 장거리 여행 또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는 스포츠 경기 등 일반적인 취미 생활을 할 수 없는 고통을 와인 소비라는 새로운 취미로 위로를 받고 있다는 것.
특히 장기간의 가족 여행과 친구, 이웃들과 주말이면 한두 차례 즐겼던 오프라인 모임과 스포츠 경기에 대한 참여가 어려운 현 상황에서 미국 각 가정의 가처분 소득이 증가했는데, 소비할 곳을 찾지 못한 가처분 소득 상당수를 와인 구매에 기꺼이 소비하려는 이들이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향후 이 같은 소비자들의 성향은 한동안 온라인 소비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꾸준하게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편,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이었던 지난해 같은 시기 미국인들은 와인 1병당 평균 11.28달러(약 1만 3천 원) 수준을 지불할 용의가 있었던 반면,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는 평균 10.68달러(약 1만 2천 원) 대의 비교적 저렴한 대중적인 와인을 구매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병당 150달러(약 17만 원) 이상의 고급 와인에 대한 구매량은 급감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