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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퍼드와 함께 하는 월요일 : 라니냐 현상과 그레인지(Grange)

제퍼드와 함께 하는 월요일 : 라니냐 현상과 그레인지(Grange)

Decanter Column 2015년 11월 9일

피터 가고는 펜폴즈의 최고 와인메이커다. 와인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꿈꿀 법한 직업이지만 그만큼 악몽 같은 힘든 순간들도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디캔터의 앤드루 제퍼드가 네 가지 그레인지 빈티지와 다른 펜폴즈 와인 몇 가지를 맛보고 점수를 매겨 보았다.

사진 / 매길 에스테이트 셀러 개방 행사에서 펜폴즈 최고 와인메이커 피터 가고(왼쪽)와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주지사 제이 웨더릴(오른쪽). 사진 제공 / 펜폴즈(Penfolds)

사진 / 매길 에스테이트 셀러 개방 행사에서 펜폴즈 최고 와인메이커 피터 가고(왼쪽)와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주지사 제이 웨더릴(오른쪽). 사진 제공 / 펜폴즈(Penfolds)

그는 펜폴즈의 2015년산 와인을 상하이에서 공식적으로 선보이기에 앞서 지난 9월 런던을 돌아다니며 와인을 자랑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겠다.

가고는 영국 뉴캐슬어폰타인에서 태어나 6세에 가족과 함께 오스트레일리아로 이민했고, 교사로서 수학과 화학을 가르치다가 와인메이커가 되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당시 그는 시뷰Seaview 스파클링 와인을 담당하고 있었다(아마 대단히 신나는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당시의 그는 지적이고, 유머러스하고, 늘 싱글싱글 웃으며, 놀라울 만큼 자기 생각을 명확히 표현하는 훌륭한 대화 상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거기에 천부적인 와인 만드는 재능까지 더해져 그는 과거 맥스 슈버트가 맡았던 직책을 매우 놀라운 속도로 넘겨받았다.
제정신으로는 소화하기 힘든 출장 일정과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업적인 어려움(“하루에 전투 한 번씩”이라고 예전에 털어놓은 적도 있다)으로 인해 유머감각 같은 건 진작 사라졌어야 옳다. 와인메이커에게 필수적인 정직성과 영업 및 마케팅 활동에 필요한 낙천주의를 결합하려면 제아무리 현명한 사람이라도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게다가 와인계의 콧대 높은 언론인들을 상대하려면 어지간한 말솜씨로는 어림도 없다.

그런데도 그는 9월, 나의 어려운 질문에 세심한 답변을 제시하고, 2011년산 그레인지가 지금까지 생산된 그레인지 중 최고의 빈티지가 될 수도 없고 당연히 아니라고 솔직히 인정함으로써 많은 이들의 비난을 받으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실제로 웨스트오스트레일리아 퍼스의 그랑 크뤼 와인숍 매니저 빈스 살피에트로는 지난달 2011년산 그레인지 두 병을 셀러 바닥에 쏟아버리는 모습을 촬영하여 지면 광고를 내기도 했다. 그는 “2011년산 그레인지는 매우 평범한 와인인데도 가격을 조정하지 않았다. … 내가 느끼기에 펜폴즈는 우리를 놀리고 있다.” (아마 이 광고로 그는 2012년에 엄청난 매출을 올렸을 것이다.)

그레인지가 전형적인 보르도 와인의 굴레에 묶여 있는 건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터무니없는 일은 아니다. 이 와인은 오래전부터 호주만의 보르도 그랑 크뤼 역할을 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라피트나 라투르처럼 빈티지에 충실한 것도 그레인지 와인이 갖춰야 할 조건의 일부다. 물론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에서 생산되는 레드와인이라면 지역 간 자유롭게 블렌딩할 수 있으므로 보르도처럼 매해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상황에 어떻게든 최선의 와인을 생산하려 아등바등하는 대신 다른 방법들도 많았다. 그런데도 이 회사는 아직 단 한 해도 빈티지 와인 생산을 빼먹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2011년은 이 회사의 날개를 꺾고 말았다. 기억나는가? 호주는 역사상 최악의 라니냐 현상(적도 부근 동부 태평양에서 해면의 수온이 비정상적으로 낮아지는 현상. 엘니뇨 현상과 반대로 반엘니뇨라고도 함-옮긴이)으로 인해 국토 전반에 걸쳐 역사적인 강우량과 함께 서늘한 여름을 보냈고, 호주 노인들이 기억하기에도 가장 심한 홍수를 겪었다. 덕분에 와인 생산에 필요한 포도는 잘 익지 않아 고생을 했다.

그나마 쓸 수 있는 포도는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의 따뜻한 지방에서 난 것뿐이었다. 대부분이 바로사 북부에서 생산된 것들이었고, 매클라렌 베일 것 약간, 애들레이드 매길 에스테이트의 것은 딱 한 숟가락 정도 들어갔다. 모두 쉬라즈뿐이었다(이것은 카베르네보다 먼저 익는다). “탈락, 탈락, 탈락.” 이것이 가고가 기억하는 포도 선택 과정이었다. 덕분에 그해 그레인지의 생산량은 평소 양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아마도 그것이 수많은 찬사를 받은 2010년산과 같은 가격을 매겼던 이유가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빈스 살피에트로의 공격(“아주 평범한 와인”)은 정확했는가? 난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다만 피터 가고가 비범한 1971년산과 매우 세련된 1991년산을 2011년 것과 함께 영국 시장에 선보인 것이 문제라면 문제일까. 그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와 함께 사우스래넉셔에서 1986년산을 맛본 적이 있다. 이 네 가지 그레인지에 관한 평점은 모두 아래에 나와 있고 그 외에 다른 최근 빈티지 제품 역시 몇 가지 적어 보았다.

제품을 처음 공개하는 자리로 상하이를 선택했다는 것은(영화배우 러셀 크로가 내레이션을 맡은 특별 영화도 상영하고, 역시 특별히 제작한 음악을 오케스트라가 공연하고, 피아니스트 리취안의 솔로 공연에, 박물관 투어, 아리따운 웨이트리스, 참치 뱃살, 캐비어 등등이 동원되었다) 펜폴즈의 모회사 트레저리가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보이며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레드와인에 집중하고, 와인에 명확한 서열을 두고, 브랜딩에 숫자를 주로 이용하고, 중국에서 잘 통하는 별명을 마련하고(‘벤푸: 부富로 가는 여정’), 일관적이고 믿을 만한 감각적 특징을 갖춘 복합적인 와인을 제공하는 것은 오늘날 빠르게 학습해나가고 있는 열정적인 중국의 와인 애호가들에게 완벽한 전략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쩌면 앞으로는 가고의 고향 영국에서 그를 보게 될 일이 별로 없을지도 모르겠다.

펜폴즈 그레인지 4총사 그레인지는 아주 화려한 와인이다. 그레인지를 마실 때면 시끌벅적한 축제나 장터가 떠오른다.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무언가 많은 일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색도 알록달록하고, 온통 시끄럽다. 와인 속 어디를 들여다보아도 무언가 범상치 않은 것이 당신을 맞는다. 그런데 최근 피터 가고는 여기에 복합성과 탁월한 기교도 추가했다.

펜폴즈 그레인지 2011 원래 이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2011년산도 그다지 실망스럽지 않을 것이다. 그레인지라는 이름이 가져다주는 가벼운 흥분감을 그대로 갖추고 있고, 강렬하면서도 농축된 풍미를 자랑한다. 하지만 최근의 다른 빈티지에 비해 과일 풍미가 조금 빈약하고, 맛은 조금 날카로우며 빈틈이 있다. 프룬과 커피 향을 가볍게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매우 농축적이고, 매력적이며, (빈스를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평범하지 않은 와인이다. (91점)

펜폴즈 그레인지 1991 1991년산은 진화의 평화로운 단계로 접어든 것 같은 느낌으로, 세련되면서도 가볍다. 미각으로 보자면 순수하고, 균형이 잡혀 있고, 한결 같으며, 우아하고, 강한 건포도 향이 느껴지는 동시에, 질감은 가늘고 부드러운 갈기를 쓰다듬는 느낌이다. 마고와 비슷한 느낌의 그레인지다. 카베르네는 5퍼센트에 불과하지만 그것보다 더 들어가 있다고 느끼기 쉽다. (95점)

펜폴즈 그레인지 1986 1986년산은 시간이 더 흘렀음에도 확실히 더 세다. 송진, 민트, 유칼립투스 향이 달콤한 과일과 따뜻한 곡물 향 위로 흐르는 호주 특유의 강한 아로마를 느낄 수 있다. 풍부하고 진하지만 그렇다고 타닌이 특별히 더 강하지도 않다. 마실 때는 달콤한 느낌이 다른 풍미를 모두 압도하는 듯하다. (93점)

펜폴즈 그레인지 1971 마지막으로 1971년산은 모든 면에서 대단히 훌륭하다. 색이 아주 깊고, 힘센 아로마가 마치 군대처럼 잔 밖으로 행진하여 솟구쳐 나온다. 로즈마리, 으깬 솔잎, 민트, 캐러멜, 각종 향료 에센스의 맹렬한 공격이 이어진다. 미각적으로는 놀랍게도 농축되어 있고 잘 익었으며, 억제할 수 없는 힘과 공격이 느껴지고, 짭짤한 듯하면서도 달콤한 과일이 뜨거운 여름 숲과 허브 약재라는 같은 레파토리의 옷을 입었다. (98점)

이렇게도 진한 계절의 향과 성숙된 풍미를 풍기는 와인이 겨우 알코올 도수 12.3%에 불과하다는 것은 우리가 사는 이 지구가 지난 반세기 동안 얼마나 크게 변화했는지 보여주는 감각적인 증거라고 생각한다. (지지자들이 뭐라고 주장을 하든, 현재 기후에서는 바이오다이나믹 와인으로 절대 이런 맛을 복제해낼 수 없다고 본다.)

펜폴즈 화이트 와인

나는 야타나의 팬이지만 개인적으로는 2013년 야타나보다 더 약해지지 않았으면 한다. 2013년산 야타나는 신중하고 미스터리한 코르통-샤를마뉴 스타일의 아로마를 풍기다가 혀끝에서 녹색 과일 풍미를 남긴다. (92점) 태즈메이니아산 이 샤도네(10퍼센트 애들레이드 힐 블렌딩)는 분명 조금 더 숙성시킬 필요가 있다.
훨씬 더 저렴한 가격에 똑같이 훌륭한 와인이 바로 2014년산 빈 311 툼바룸바Tumbarumba 샤도네였다. 양털 같은 향과 함께 혀끝에서는 발랄하고 포도향이 나며 함축적이었다. 자그마하면서도 성숙하고, 조금 더 마시고 싶은 이 와인은 괜찮은 화이트 버건디 블라인드 테이스팅에 몰래 끼워 넣어도 전혀 손색이 없다. (91점)
2014년 리저브 빈 A(애들레이드 힐)는 조금 더 대담한 샤도네 스타일이다. 밝고, 자연적 향취가 많으며, 약간 톡 쏜다. (88점) 반면 빈 51 이든 밸리 리슬링은 꽃이 만발하면서도 수정처럼 맑은 느낌을 내는 동시에 혀끝에서는 상쾌하고 경쾌하다. (90점)

펜폴즈 레드 와인

일반적으로 꽤 훌륭한 펜폴즈 와인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웠던 와인은 이상할 정도로 달콤하고, 특이하고, 신선하면서도 산도가 조금 불쾌하게 느껴졌던 2013년산 매길 에스테이트 쉬라즈(84점)와 강한 석류향에다가 마지막에는 블랙베리 풍미를 남기는 애들레이드 힐스 피노로 만든 화려한 2014년 셀러 리저브 피노 누아였다. (86점) 반면 2013년 빈 138 바로사 밸리 쉬라즈 그르나슈 마타로는 가격 대비 품질이 매우 훌륭했다. 가벼운 그레이비, 흙, 무화과 향과 입을 가득 채우는 친근하고 푸근한 풍미가 좋았다. (89점)
그 중에서도 나는 칼림나Kalimna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이것은 포도원 이름이 아니라 브랜드명이다. 이 와인에는 랭혼 크리크, 패서웨이, 매클라렌 베일뿐 아니라 바로사 밸리에서 수확한 포도가 섞여 있음을 명심하자.) 이 2013년 빈 28 쉬라즈는 입맛을 자극하는 짭짤한 향과 함께 기름진 흙냄새가 풍기면서도 풍미는 세련되고, 차분하고, 흠잡을 데 없이 정돈되어 있으며, 부드러우면서도 풍성하게 마무리된다. (93점)
반면 2013년 빈 128 쿠나와라Coonawarra 쉬라즈는 순수한 과일 향이 강하고, 매끄러우면서, 세련되고, 격조 높다. (89점)

다른 고급 와인은 어떤가?

2012년 세인트 헨리(St Henri)의 복합적인 2차 아로마(허브, 식물즙, 불붙이지 않은 담뱃잎)는 마음에 들었으나 풍미는 좀 딱딱했다. 산도가 높고, 타닌은 매우 적었으며, 숙성시키지 않은 상태에서도 순하게 느껴졌다. (89점) 2013년 빈 407 카베르네 소비뇽은 위풍당당하고, 화려하며, 달콤한 반면 (88점) 2013년 빈 707 카베르네 소비뇽에서 느껴지는 달콤한 미각은 조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분명 와인 자체는 훌륭했으나 새 아메리칸 오크통 향이 지나치게 강했다. (피터 가고의 테이스팅 노트 역시 마멀레이드, 시트러스, 햇볕에 말린 토마토, 아이리쉬 과일 케이크라고 적혀 있다.) (90점)
카베르네와 쉬라즈를 섞고, 새 오크 향을 대부분 빼버리면 내게는 훨씬 더 흥미로운 와인이 탄생한다. 2013년 빈 389 카베르네 쉬라즈가 그랬다. 무한히 섬세한 아로마와 복합성, 그리고 깊은 호주만의 풍미가 진정으로 심오하게 느껴진다. 숲 가장자리에 버려진 나뭇잎 찌꺼기, 짭짤한 붉은 과일, 식물 수액의 밀도, 진한 타닌이 특징이다. (94점)
마지막으로 순수한 바로사 밸리 와인 세 개를 소개한다. 2013년 셀러 리저브 산지오베제 (기쁘게도 이제 전 세계를 누비는 소매업자들을 통해 세계 곳곳에서 구입할 수 있다)는 피터 가고의 말을 빌리면 “거르지도, 무언가를 조절하거나 수정하지도, 새 오크를 쓰지도 않고 그저 이산화탄소를 조금 넣었을 뿐”이다. 그리고 껍질을 그대로 둔 채 5주간 숙성시켰다. 이런 측면에서 타닌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 매우 놀랍지만 과일향은 고유의 복합성을 보여주고, 투스카니에서 재배되는 산지오베제 특유의 금욕적인 분위기가 덜 느껴진다. (91점) 2013년 빈 50 마라낭가Marananga 쉬라즈는 전체 제품군 중에서 가장 관능적이고 매력적이지만 동시에 과일의 순도도 높다. 하지만 이러한 매력이 전부다. 구조가 약하고 산도가 높다. (90점)
2013년 RWT에서는 질감의 복합성과 깊이를 더 명백하게 느낄 수 있고, 이 와인의 과일향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간결함과 톡 쏘는 기교가 담겨 있다. (2013년 빈 28 칼림나가 더 기름지고 짭짤하며 고기 맛을 풍긴다.) RWT는 또한 2013년 쉬라즈 와인 중 아로마 측면에서 가장 복합적이다. (92점)

CREDIT

  • 작성자

    Andrew Jefford

  • 번역자

    Sehee Koo

  • 작성일자

    2016.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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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Decanter의 저작물로 Decanter Magazine에 저작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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