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멀트먼 교수가 새로 출간한 책 『포도밭, 암석, 그리고 토양(Vineyards, Rocks, & Soils)』을 살펴보았다.
세간에는 평범한 와인 책도 있고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들도 있다. 전자의 책들은 내 책상 오른편 책장에 꽂혀있고 후자의 책들은 왼편으로 손 뻗으면 닿는 두 개의 작은 선반을 채우고 있다.
필독서라고 해서 반드시 글이 훌륭한 것도 아니고, 보기 좋은 사진이나 그림이 가득한 것도 아니다. 테이스팅 노트라고는 단 하나도 실려 있지 않은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그런 책들은 하도 들춰봐서 군데군데 낡고, 흠집이 나고, 메모가 달려 있다. 이 책들은 와인의 복합성을 탐색하고 이해하는 데 사용할 핵심 참고서가 된다.
그런데 바로 얼마 전에 왼쪽 선반에 새 책을 추가했다. 알렉스 몰트먼 교수가 쓴 『포도밭, 암석, 그리고 토양: 와인 애호가를 위한 지질학 가이드』다. 내가 짤막하게 서문을 쓰기도 했지만(무보수였다) 그것이 이 책들의 신전에 속할 수 있었던 건 몰트먼의 명쾌하고, 빽빽하고, 심오한 정보의 글 덕분이다.
와인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봐야 한다. 와인 작가와 소믈리에도 한 번이 아니라 서너 번 이상 읽어봐야 한다. 우리 모두 그렇게 한다면 와인과 관련한 언어와 담화가 한층 발전할 것은 물론, 포도나무가 토양 및 암석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에 관한 상식적인 이해가 일종의 민간 설화에서 지속 가능한 과학적 수준으로 발전할 것이다. 이 책은 아직은 존재하지 않는 ‘테루아 연구’의 학문적 규율에 필수적인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와인 관련 책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제임스 윌슨의 책 『테루아(Terroir)』(프랑스 포도밭 지역들을 지질학적으로 설명한 책)와 자크 파네의 『위대한 와인 테루아(Great Wine Terroirs)』(전 세계 와인 생산지 지질학을 알아본 책), 로버트 E. 화이트의 『포도밭 토양 이해(Understanding Vineyard Soils)』(포도 재배자를 위한 기술적인 책)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몰트먼의 책은 이 책들보다 범위가 넓고 와인 애호가들을 위해서도 더욱 실용적이다. 윌슨과 파네의 책은 몰트먼의 책을 세심히 읽지 않고 접근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다.
몰트먼의 목표는 와인을 즐기는 사람들이 포도 생산 지역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암석의 유형을 이해하고 그 암석 위의 토양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배우도록 돕는 것이다. 그는 암석이 습곡이 되고, 이동하고, 단층을 형성하는 것뿐 아니라 지질학적 수준의 이동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또한 날씨, 지형학, 지형 형성 등에 대해서도 간략히 이야기한다. 대부분의 지질학자는 글을 쓸 때 곳곳에 전문용어와 기술적 용어를 늘어놓아 일반인들이 거의 이해할 수 없게 만들곤 한다. 그러나 대학생을 가르치는 데 평생을 바친 몰트먼은 명확하고 명쾌한 글을 쓴다. 그의 폭넓은 교양은 문학적 인용과 어원학을 향한 관심에서도 뚜렷이 드러난다. 이 책에서 불분명한 곳은 단 하나도 없고 상당 부분이 재미있다.
중간에는 암석의 세 종류(화성암, 변성암, 퇴적암)에 대해 꼭 필요한 장들이 자리하고 있는데 와인 생산지 중 어디에서 그런 암석을 발견할 수 있는지 주석도 곳곳에 달려 있다. 이것은 전문 용어를 정확하게 사용하여 응회암과 석회화를 헷갈리지 않게 도와주고, 점판암과 편암의 차이에 대해서도 조금 마음 편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해준다. 암석의 물리적 특성과 화학적 혹은 무기 성분 사이의 중요한 차이점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점판암, 편암, 석회암에도 무궁무진하게 많은 종류가 있어 이런 용어만으로는 설명이 적절한 경우가 매우 적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에 이 책에서 가장 유용한 장은 처음과 끝이다. 두 부분을 따로 알아보겠다.
포도나무 뿌리는 땅이 석회암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편암으로 되어 있는지 알아보지 못한다. 이건 그저 우리가 편의상 분류해놓은 것뿐이다. 포도나무 뿌리가 상호작용하는 것은 토양 속에 유기 물질과 함께 결합되어 있는 미네랄이라는 여러 가지 화학 성분이다.
처음 세 장은 이 미네랄에 대해 다루는데, 몰트먼은 포도나무나 다른 식물이 미네랄 영양 성분에 접근하는 과정, 즉 토양 입자와 뿌리 사이의 이온 교환 과정에 특히 주목한다. 미네랄 조성(예를 들어 모래, 점토 등)의 기능적 차이는 이 점에서 어마어마하다. “미네랄리티”라는 용어를 쓰는 사람이라면 양이온 교환 능력이라는 개념을 익혀두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이론적인 지식이다. 9장으로 가면 몰트먼이 또 다른 중요한 차이점을 설명한다. 지질학적 미네랄(암석과 토양에 분석적으로 존재)과 영양학적 미네랄(포도나무나 다른 식물에 실제로 생물학적으로 이용 가능한 것)의 차이다. 포도나무가 흡수하는 생물학적으로 이용 가능한 미네랄은 토양의 유기 물질(부엽토)이나 거름에서 주로 나온다. 암반이나 토양에서 생물학적으로 이용 가능한 지질학적 미네랄의 비중은 적거나 아주 적다. 즉, 와인 관련 서적에서 그토록 상세하게 다루는 부분도 사실은 일화적인 이야깃거리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토양 pH는 영양분 흡수율에 극적인 영향을 미치고, 포도나무는 그 자체로 영양분 흡수율을 조절할 수 있는 선택적인 도구들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발효는 포도즙의 영양분 함량을 바꾸어 놓는데, 그 정도가 “완성된 와인의 미네랄 영양분의 비중은 포도밭의 지질학적 미네랄과 비교했을 때 아주 복합적이고, 간접적이고, 멀기만 한 수준”(p.176)이다. 그가 지적하기로 대부분의 미네랄은 그 어떤 관능적 특징도 갖지 않는다. “미네랄리티”가 뭐든지 간에 “포도밭 미네랄의 맛은 아니다.”(p.177)
완성된 와인의 아로마 및 풍미와 지질학적 미네랄 사이에 거리를 두긴 하지만 그는 토양의 역할을 과소평가(특히 토양이 포도나무에 물을 전달하는 방식, 10장 참조)하지도, 테루아라는 개념을 반박하지도 않는다. 상세한 기후적 요소들은 이 책에서 다루지 않지만 191-195쪽에서 몰트먼은 지형과 중기후의 아주 작은 부분이 포도나무에 얼마나 큰 차이점을 만들어내는지 설명한다.
그는 에필로그에서 다시 이 주제로 돌아가 포도밭 지질학의 접근하기 쉬운 단순성을 풍미의 수수께끼에 대한 답으로 이용하는 것과 “바람 속도, UV 강도, 스펙트럼 파장, 박테리아군 같은 무형적인 기술적 내용의 끈질긴 데이터 수집과 분석”을 대조해 설명했다. (p.213) 그는 이것이야말로 와인의 아로마와 풍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테루아 요인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대부분의 와인 서적에서 뿌리줄기에 대한 논의가 부재한 점(따지고 보면 뿌리줄기는 포도나무에서 실제로 토양과 기반암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는 부위다)을 지적하고 일반적으로 양이온 교환과 영양분 흡수가 거의 항상 기반암이 아니라 토양에서 일어난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시 말해 테루아 분석에서는 토양학의 중요성이 지질학의 중요성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이다. 배수 시설이 전체적으로 인공 설계되어 있다는 점에서 포도밭의 “부자연함”은 몰트먼이 지적한 또 다른 중요한 요소다.
여러 가지 면에서 이 책은 철두철미하고, 끈질기고, 신중한 인습 타파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포도밭 지질학이라든가 소위 “포퓰리즘 와인 책”에서 와인의 관능적 특징과 직접적, 인과적 관계가 있다고 보는 근거 없는 주장, 혼란스러운 주장, 시시한 이야기, 어리석은 믿음, 일반화를 꿰뚫어버리는 사례를 곳곳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달이 호수에 미치는 중력의 영향이라든가 하는 다른 비과학적인 풍선들도 스쳐 지나가는 즉시 바로 터뜨린다.
그렇다고 해서 지질학, 토양, 와인의 특징 사이에 관계가 전혀 없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과학이 약간의 연관성을 보이기 시작한다”라는 제목이 붙은 섹션이 겨우 3쪽에 불과하긴 하지만) 그러나 그는 글을 쓰는 데 있어 비유의 중요성을 잘 이해하고, 와인을 설명하는 데 있어 지질학이나 토양학 용어의 비유적 사용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런 용어가 비유적으로 사용된다는 사실이 이해되는 한도 내에서 말이다. 그는 또한 암석이나 토양에서 정말로 냄새가 날 때 그것은 보통 표면을 덮은 유기 물질(박테리아, 해초, 곰팡이 등)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결론은, 지질학적 용어를 정확하고 신중하게 사용하기 위해, 그리고 접목한 포도나무(뿌리줄기와 어린 가지)를 기반암 위 표토에 심고 그 자리에서 60, 70년씩 자랄 때 어떤 일이 가능하고 어떤 일이 불가능한지 이해하기 위해 이 책을 읽으라는 것이다. 아, 이 책을 읽어야 할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여러분이나 나나 와인들 사이에 중요한 차이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우리는 그것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알고 싶어 한다. 와인 생산자들은 지난 반세기 동안 재배와 양조 기법 면에서 상당한 기술적 발전을 이룩했다. 그럼에도 일종의 ‘위대한 품질적 통일’ 같은 걸 이뤄내기는커녕 약간의 땅의 차이가 결합되면 품질의 차이를 만들어내고, 대부분을 그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단순한 사실을 더욱 상기시켜줄 뿐이다.
이 난문제의 가장 손쉬운 해답은 토양 매개체와 기반암을 내려다보는 것이다. 거기에는 물리적 존재감이 있다. 그것의 차이는 측정할 수 있고 이름 붙일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토양에서 오는 자양물”이라는 마음 푸근해지는 내러티브를 사랑한다. 그것이 포유동물로서 우리의 정체성이나 영양분 섭취 방식과 어울리기 때문일 수도 있다. (식물은 포유동물과 너무나도 다르고 양분의 대부분을 태양광과 공기로부터 얻는데도 말이다)
그 결과 지질학은 마치 뻐꾸기처럼 테루아에 대한 우리의 아주 기본적인 둥지로부터 다른 새끼들을 밀쳐 떨어뜨려 버렸다. 와인을 사랑하는(와인을 만들기도 하고) 지구 과학자로서 몰트먼은 이러한 현상이 어떤 피해를 가져왔는지 잘 알아볼 수 있는 유일무이한 자격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책은 균형을 다시 잡고, 지질학적 영향에 한계를 가하고, 테루아의 이해를 향한 우리의 긴 여정을 다시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드는 다른 가능성들을 구해낸, 읽기 쉬운 책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