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홀리데이!” 대신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전에는 기독교 아닌 다른 종교인들을 포용한다는 의미로 중립적인 ‘해피 홀리데이’ 인사가 많았는데 말이다. 아무렴 어떤가. 12월 25일 크리스마스는 예수 탄신일이라는 사실, 그리고 누구나 노래하는 크리스마스 캐롤에는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가사가 달려있다는 것도 사실인걸.
우리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교회에 갈 수도 있고 안 갈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크리스마스 시즌만큼은 종교를 떠나 풍요로운 식탁과 아름답고 행복한 하루를 그려본다. 그 중심에는 근사한 음식과 음악이 있다.
크리스마스에 뭘 먹을까 고민하는 것은 쓸데없는 걱정이다. 푸짐하고 정을 나누는 식탁을 마련하는 것은 주머니 사정, 시간 사정에 따라 여건에 맞게 정성껏 마련하면 된다. 전통적인 서양식 크리스마스 식탁은 큼지막한 고기를 구워 먹고 맛깔스러운 크리스마스 케이크로 장식하는 것이지만, 꼭 그걸 따라 할 필요는 없다.
크리스마스에 뭘 먹을까 고민하는 것이 쓸데없는 것처럼 무슨 음악을 들을까 고민하는 것도 쓸데없다. 잡히는 대로 듣자! 우리 귀에 닳고 닳은 머라이어 케리나 왬(Wham)이면 어떤가.
그러나 재즈를 비평하는 사람으로서 재즈 앨범을 추천한다면 대표적인 크리스마스 앨범을 소개할 수 있다. 이를테면, 엘라 핏제럴드가 1960년에 발표한 <Ella Wishes You a Swinging Christmas> 앨범과 “찰리 브라운” 사운드트랙에서 발췌한 크리스마스 송들을 모은 피아니스트 빈스 과랄디의 <Vince Guaraldi: ‘A Charlie Brown Christmas’ (1965)앨범 등. 그야말로 ‘필청’ 크리스마스 재즈 앨범이다. 엘라 핏제럴드는 언제 어디서 들어도 좋지만, 크리스마스 시즌엔 더욱 빛을 발한다. 유쾌하고 감미롭고 사랑스러운 엘라, 60년이 된 크리스마스 앨범이지만 훌륭한 리마스터링 기술 덕분에 지금도 옆에서 연주하는 듯 살아 숨 쉬는 그녀를 느낄 수 있다.
엘라 핏제럴드 Ella Wishes You a Swinging Christmas 풀 앨범
재즈 오너먼트, 재즈 크리스마스
나는 크리스마스 트리에 좋아하는 재즈 앨범 사진을 담은 오너먼트를 매단다. 마일스 데이비스나 존 콜트레인, 에릭 돌피 등 스타일리시한 모던 재즈 시대의 아트웍을 재미 들였다. 그리고 진저 브래드맨 쿠키를 만들어 트리에 곁들여 단다. 그리고 허브와 맛있는 스터핑을 가득 채운 오리 굽는 냄새가 진동할 때, 몇 장의 재즈 앨범을 만지작거린다.
올해는 B.B 킹의 크리스마스 앨범을 꺼내 들었다. B.B 킹의 블루지한 A Christmas Celebration of Hope (2001년) 앨범은 심금을 울린다. Merry Christmas Baby, Lonesome Christmas 같은 곡은 크리스마스가 외로운 사람들에게 특별히 추천한다.
B.B King, Merry Christmas Baby
B.B King, Lonesome Christmas
피아니스트 데이브 브루벡이 1996년에 발표한 ‘크리스마스’ 앨범도 압권이다. 누군가 나만을 위해 거실에서 나즈막이 캐롤을 연주해주는 것 같은 아름다운 솔로 피아노 앨범이다.
Dave Brubeck, Christmas
드라마틱한 콘서트 분위기를 느끼려면 빅밴드 크리스마스 앨범이 어울릴 것이다. 윈튼 마샬리스의 링컨 센터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크리스마스 캐롤 앨범은 진정 클라식이다. 어래인징도 훌륭하다. 떠들썩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윈튼 마샬리스는 여러 장의 크리스마스 캐럴 앨범을 냈다. 뉴올리언즈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Crescent City Christmas Card(1989년), Christmas Jazz Jam (2009년), 그리고 링컨 센터 재즈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라이브 앨범 Big Band Holidays (2015년) 등의 정규 앨범과 Winter Wonderland (2018년), Jingle Bells (2017년) 등의 싱글이 나와 있다.
Big Band Holidays (윈튼 마샬리스 링컨 센터 재즈 오케스트라 라이브)
재즈 오너먼트가 크리스마스 앨범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닌 것처럼 크리스마스 앨범은 아니지만 신나는 분위기를 돋우는 멋진 재즈 앨범들을 가까이하는 것도 좋겠다. 이를테면, 트럼페터 리 모건의 The Sidewinder (1963년) 같은.
Lee Morgan, Sidewinder
널리 알려진 존 콜트레인과 자니 허트만의 1963년 듀엣 앨범도 로맨틱한 크리스마스 밤 분위기를 연출할 것이다. They Say It’s Wonderful 같은 곡을 이들로부터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아름답고 정교한 두 사람의 하모니는 크리스마스에 더욱 빛나는 것 같다.
They Say It’s Wonderful / John Coltrane & Johnny Hartman
풍성한 크리스마스 식탁. 성탄절 케이크
살집 있는 큼지막한 오리를 골라 소금, 후추, 올리브 오일로 마사지한 뒤 타임, 로즈메리 등의 허브를 속을 채운다. 화씨 400도 오븐에서 20분 정도 굽다가 온도를 350도로 낮춘 후 속까지 잘 익도록 1시간 정도 더 익힌다. 껍질이 크리스피해지고 갈색으로 익는 것이 보인다면 잘 구워진 것이다. 온도계로 확인하려면 화씨 175도에 이르렀는지 보면 된다. 바삭한 오리 껍질은 오리 구이를 먹는 즐거움이다.
크리스마스에 케이크가 빠진다면 허무할 것이다. 매해 크리스마스에 나는 Yule Log Cake을 만든다. 나무통 모양의 롤케이크다. 19세기에 처음 유럽에서 등장한 케이크인데 벨기에, 프랑스, 영국, 스위스 등에서 인기를 얻었다.
부드러운 스펀지 케이크를 만들어 속에 초콜릿을 채워놓고 돌돌 만 뒤에 다시 초콜렛 버터크림으로 가나슈한 맛있고 멋진 케이크다. 케이크 만드는 기본적인 방법들은 이후 칼럼에서 찬찬히 소개할 예정이다.
전통과 의미를 담은 식탁, 입에서 녹는 맛있는 케이크와 아름다운 재즈 음악. 크리스마스가 지나가고 일 년을 마무리하면서 왠지 쓸쓸한 기분이 들 때 그날의 크리스마스 식탁을 떠올리면 미소지어진다. 후회가 사라지고 왠지 한해를 잘 마무리했다는 안도감. 크리스마스 식탁으로 원 없이 마음껏, 나를 위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