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유럽의 와이너리를 방문해 와인 생산자와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지구 온난화에 대한 걱정을 자주 듣습니다. 강우량이 많지 않은 지역에 비가 오고, 여름에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지거나, 포도 열매를 맺을 준비를 하는 봄과 여름에 온도가 급격히 올라가고 뜨거운 햇빛이 쏟아지는 일이 거의 매해 반복되고 있지요.
이처럼 변화하는 기후로 지역에서 생산 가능한 품종과 스타일, 와인의 지형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전통적으로 와인의 생산국이기보다는 소비국이었던 곳에서 와인의 생산이 가능해졌고, 그 수혜를 입은 대표적인 국가는 영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국이라는 나라는 구세계와 신세계의 와인을 일본을 제외한 그 어떤 곳에서보다 다양하게 만나볼 수 있는 중요한 와인 소비국으로 잘 알려져 있지요. 샴페인의 주요 수입국인 영국이 이미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그중 2021년 기준 72%가 스파클링 와인입니다. 영국은 국내 시장의 입맛과 그 취향에 발맞춰 앞으로 질 좋은 스파클링 와인을 생산할 수 있는 와인 생산지로 성장하였습니다.
<영국의 와인 생산 현황>
오늘날 영국엔 약 400여 개의 와이너리가 있습니다. 주로 남동쪽에 위치한 와인 산지 이외에도 북쪽의 요크셔 지역까지 영국의 방방곡곡에 포도나무가 심어지고, 앞으로의 다양한 와인 생산을 기대하고 있지요. 영국의 와인 생산은 지난 몇 년간 그 속도와 질이 놀랍도록 발전했습니다. 생산량의 2/3 이상을 차지하는 스파클링 외에도 작황이 좋았던 2018년 이후 품질 좋은 레드와 로제 와인, 부르고뉴 스타일의 샤르도네는 물론 내추럴 와인까지 다양한 카테고리의 와인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영국의 와인 지형과 기후>
로마제국 시대부터 와인을 만들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추운 기후로 인해 1951년에서야 최초의 와이너리가 영국에 세워졌으며, 이는 햄프셔(Hampshire)의 햄블던(Hambledon)입니다. 이후 영국에서 비교적 온난한 남부와 웨일즈(Wales) 지역을 중심으로 와이너리가 발전하였고, 오늘날은 북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와이너리가 분포합니다. 비교적 온난한 기후임에도 영국의 많은 강우량과 습도는 와인 생산을 힘들게 하는 장벽입니다.
에식스(Essex), 서식스(Sussex), 켄트(Kent) 지역은 건조하고 따뜻한 지역적인 특징 덕분에 여러 스타일의 와인을 생산하는 지역이 되었습니다. 멕시코 만류 덕분에 온난하고 건조한 해안 부근이 와인을 생산하기에 좋은 지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샴페인에 영향을 받은 스파클링을 많이 생산할 수 있는 이유는 샴페인 지역과 같은 영국의 백악질 토양이며 강수량이 많은 영국의 기후에 적합하기 때문입니다.
<영국 와인의 주요 품종>
비교적 북단에 위치한 산지의 특성과 소비를 하는 사람들의 취향에 맞추어 생산하며, 프랑스나 스페인, 이탈리아와 달리 교배 품종의 사용을 꺼리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에게 낯설게 느껴지는 품종을 찾아보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1. 피노 누아, 샤르도네, 피노 뫼니에 : 샴페인을 사랑하는 영국이자 스파클링을 많이 소비하는 영국은 샴페인 지역에서 영감을 받은 이 세 가지의 포도 품종을 많이 생산합니다.
2. 바쿠스(Bacchus) : 실바너와 리슬링, 뮐러 트루가우의 교배로 만들어진 독일의 화이트 포도품종입니다. 산도는 낮은 편이며, 아로마틱한 특징을 가져 블렌딩하는 와인에 많이 쓰입니다.
3. 오르테가(Ortega) : 복숭아 향이 가득한 아로마를 자랑하며, 스위트 와인에 쓰이는 이 품종은 독일에서 뮐러 트루가우(Muller-Thurgau)와 시게레브(Siegerrebe)라는 두 품종의 교배로 만들어진 화이트 와인 품종입니다. 포도밭에서 빨리 성숙하고 수확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4. 세이발 블랑(Seyval Blanc) : 레이트 하비스트, 아이스바인 스타일의 디저트 와인에 주로 쓰는 미네랄리티가 가득한 프랑스의 하이브리드 품종입니다.
5. 레큰스타이너(Reichensteiner) : 영국에서 다섯 번째로 많이 생산되는 포도 품종입니다. 산도가 높은 독일의 교배를 통해 탄생한 포도로 스파클링의 생산에 쓰입니다.
<수출하기에 아직 어려운 영국 와인의 가격>
수많은 스타일의 다양한 와인이 영국에서 생산됨에도 불구하고 외국에서 영국의 와인을 찾아보기 힘든 가장 큰 이유는 가격입니다. 아직 생산 규모가 크지 않고 땅값과 노동력이 비싸며, 와인을 생산할 수 있는 지역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전통적인 와인 생산국의 와인과 가격적인 면에서 경쟁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저렴하고 편하게 마시는 와인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로제 와인의 가격을 비교해 볼 때 프랑스에서 구입할 수 있는 로제 와인의 가격은 5유로 이하부터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국의 로제 와인은 20유로 이상에 집중되어 있어 이국적인 와인 산지를 시도해보고자 하는 사람들, 혹은 영국인들이 아니라면 가격으로 시도해보기 어렵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국을 여행하거든 까다로운 입맛을 지닌 영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만큼 눈부신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영국 와인을 찾아 시도해보는 것도 큰 기쁨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