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와인과 각종 주류, 관련 기사를 검색하세요.

이·팔 전쟁 공포, 농장 일꾼들이 사라졌다

이·팔 전쟁 공포, 농장 일꾼들이 사라졌다

임지연 2023년 12월 7일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를 실질적으로 지배 중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습격을 받은 이스라엘은 하루아침에 생과 사를 넘나드는 공포에 휩싸였다. 사실상의 전쟁과 같은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인데, 현지 매체와 외신에 따르면 다수의 이스라엘 젊은 청년들은 군대에 징집 소집을 받았거나 스스로 입대를 지원한 상태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경계로 형성돼 있었던 포도 농장과 와이너리의 상황이 매우 암울하다는 목소리가 전해졌다.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이었던 1~2개월 전까지도 이스라엘에서는 네게브 사막 와이너리들을 중심으로 세계 최초의 DNA 연구를 통한 고대 포도 품종 복원 사업이 한창일 정도로 와인 산업이 빠른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던 것과 크게 달라진 분위기다. 실제로 얼마 전 이스라엘 유물청 연구원들과 아브닷 고고학 발굴단, 텔아비브 대학 메리브 메이리 박사팀 등은 공동으로 고대 포도 씨앗을 복원, 이 씨앗에서 자라난 포도 덩굴은 지난 9월 13일 약 1500년 전 이 품종들이 자랐던 네게브 사막 아브닷 국립공원 와이너리에 뿌리를 내렸다는 소식을 전한 바 있다. 씨앗이 뿌려진 아브닷 국립공원은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된 ‘나바테아인들의 향로(Nabataean Incense Route)’로 더 유명한 지역이다. 과거 비잔틴 제국 전역에 최고급 와인을 공급하는 등 고대 시대 와인 생산과 수출의 중심지로 이름을 알렸던 네게브 와인 루트의 주요처다.

출처: 픽사베이

하지만 예기치 못한 전쟁으로 인해 이 일대 포도 농장과 와이너리의 상황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에 처해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와이너리 중 한 곳으로 알려진 ‘바르칸’의 수석 와인 메이커 이도 르위손은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포도 수확은 겨우 마무리됐지만 그동안 농장에서 일했던 대부분의 직원들이 군 징집 소식으로 일터를 떠났다”면서 “그나마 농장에 남아 있는 직원들도 언제 이곳을 떠나야 할지 상황이 매우 불안정해, 현재로는 농장에서 일할 수 있는 일꾼은 사실상 나 자신뿐”이라고 현지의 어려운 상황을 토로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이스라엘 국경선을 경계로 한 일대에는 무수한 와이너리와 포도 농장이 그동안 활발하게 운영돼 왔는데, 가자지구와 단 25마일 떨어진 지역에서 와이너리를 운영해 오고 있는 에란 픽 역시 자신이 와이너리가 마주한 어려운 상황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어 매우 암울하다는 의견이다.

그는 “최근 어디에서인지 모르게 수시로 날아오는 미사일의 공포가 대단하다”면서 “포도 농장 인근으로 날아드는 미사일로 인해 공포스러운 폭발음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인근 주민들 모두 공포에 떨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부지불식 날아든 미사일이 와이너리에 보관돼 있었던 와인병들을 파괴했고, 그렇게 파괴된 와인병 파편이 주변에 가득하다. 공포스러운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출처: 픽사베이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곳은 이 곳 뿐만이 아니다.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레바논과 국경을 인접한 ‘레카나티’ 와이너리에는 이-팔 전쟁 발생 이전까지 5~6명의 생산직 직원들이 근무 중이었지만, 이 직원들 전원 모두 군 복무를 위해 징집돼 현재는 사실상 와이너리가 텅 비어 있는 상태다. 와이너리 운영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탓에 언제 끝날지 모를 전쟁 종식만을 기다리며 운영은 무기한 중단된 상태다.

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도 이 일대 와이너리는 인종과 국적, 종교를 넘어 모든 직원이 함께 일하는 평화로운 일터였다. 이 일대 와이너리의 경우 대부분이 아랍 국가 출신의 직원과 이슬람교도, 정통파 유대교인,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주민, 우크라이나인 등 다양한 지역과 종교를 가진 근로자들이 함께 근무하는 형태였다고 현지 매체는 전했다. 하지만 이-팔 전쟁이 발발하면서 일순간 전쟁의 고통과 악몽이 와이너리를 장악했고, 그동안 와이너리에 장기간 근무했던 직원들 역시 모두 강제로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이 때문에 외신들은 그간 꾸려왔던 국가와 민족, 종교를 넘어선 공동체 의식이 향후 언제쯤 다시 회복이 가능할지 여부가 불투명하며, 이러한 슬픔과 두려움이 가득 찬 분위기가 이 일대 주민들이 가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고조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런 전쟁 속에도 일각에서는 작은 희망의 불씨를 키우려는 긍정적인 움직임이 시작됐다. ‘Agricultural Solidarity’라고 알려진 시민 단체와 자원봉사자들이 전쟁의 위험을 무릅쓰고 이 일대 와이너리의 파괴된 곳곳을 재건, 집과 가족을 잃고 떠돌고 있는 전쟁 난민들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기 때문이다. 특히 자원봉사자로 나선 이들의 대부분은 자신들 역시 이번 전쟁으로 가족과 지인 등 소중한 이들을 잃은 피해자들이라는 점이 주민들에게 용기와 힘을 주는 큰 계기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출처: 픽사베이

실제로 최근 이스라엘과 가자지구 국경선에서 난민들을 위해 자원봉사에 나선 샤이 웬카트는 전쟁이 시작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이스라엘의 유명한 와인 수출입 사업자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전쟁으로 인해 하마스 무장 단체에 자신의 아들이 납치, 실종되면서 그 일을 계기로 전쟁으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는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돕기로 결심했다. 어려운 상황에서 오히려 다른 이들을 돕고자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인물은 그 뿐만이 아니다. 골란 고원에 있는 미카 와이너리의 소유주이자 와인 메이커인 미카 란 만델 역시 하마스의 공격으로 남동생을 잃는 고통을 겪고 있지만, 그 역시 전쟁고아와 난민들을 돕는 자원봉사자로 나서 이 일대의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돕는 데 힘을 모으고 있다.

이들은 “전쟁으로 인해 국경선 근처의 정착촌은 대부분이 파괴됐고, 이 일대에는 일손이 필요한 다수의 농장과 와이너리가 있다”면서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원래 살고 있던 집에서 겨우 탈출해 목숨은 구했지만 여전히 살 곳이 마땅치 않다. 하지만 여러 곳에서 자원봉사를 하겠다면서 지원하는 등 도움을 주는 이들의 목소리에서 잠시나마 안도감을 느끼고 있다”고 한목소리로 희망의 작은 불씨를 살려야 한다는데 입을 모았다.

물론 전쟁이 촉발된 직후 이스라엘에서의 와인 소비량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위축된 상황이다. 대부분의 와인 전문점과 레스토랑이 무기한 영업 정지 위기에 처했으니 사실상 와인 판매량은 지난해 동기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이스라엘 와인 생산자 협회(IWPA)에 따르면 전쟁 직후 이스라엘 내에서의 와인 매출은 60% 이상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레스토랑과 고급 와인 전문점이 밀집해 있는 이스라엘의 대표 도시 텔아비브에서의 와인 판매량이 가장 크게 떨어졌다. 다만 유럽과 미국 등 해외에서의 이스라엘산 와인 주문량은 전쟁 이전보다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 유의미하다고 IWPA는 분석했다.

최근 IWPA는 해외 여러 국가로부터의 적절한 지원 촉구와 기금 모금을 위해 ‘Sip in Solidarity’라고 불리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 캠페인은 전쟁 이후 선적된 모든 와인 판매 수익금 중 10%를 이스라엘 전쟁 구호 활동을 위한 자금으로 기부하는 것을 골자로 했는데, 협회 부회장인 조슈아 그린스타인은 “현재 상황에서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이스라엘의 와이너리를 지원하고 가능한 한 이스라엘산 제품을 구매해주는 것”이라고 캠페인의 취지를 설명했다.

Tags:
임지연

평범함 속의 특별함을 찾는 인생 여행자

  • 1

You Might also Like

Leave a Comment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