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가 사랑한 와인 마을 3탄의 주인공은 ‘볼게리(Bolgheri)’다. 이탈리아 토스카나주의 서부 해안에 위치한 아주 작은 와인 마을. 만약 현대 이탈리아 와인의 부흥을 이끈 ‘수퍼 투스칸(Super Tuscan)’이 아니었다면 이곳은 사이프러스 길이 예쁜 작은 마을로만 여행자들의 기억에 남게 되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 볼게리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수퍼 투스칸’과, 그 시대를 이끌어간 몇 곳의 와이너리가 함께 연상된다. 우리는 수퍼 투스칸 와인의 서막을 ‘안티노리(Antinori)’ 와이너리부터 풀어가 보기로 했다.
안티노리는 가야와 더불어 이탈리아 와인의 르네상스를 만든 장본인이다. 1, 2차 세계대전과 필록세라의 피해를 입은 이탈리아 와인 산업은 여러 차례 곤두박질을 쳤고, 많은 와인 생산자들은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질보다는 양을 선택했다. 그 와중에 남들과 다른 행보를 가려 했던 와이너리들이 현재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와이너리가 되었다. 안티노리도 그중 하나다.
안티노리 가문의 와인 역사는 무려 13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유서가 깊다. 그러나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은 현 회장인 피에로 안티노리(Piero Antinori)가 활동하면서부터다. 아버지인 니콜로 (Niccolò)는 두 번의 큰 위기를 겪었다. 피렌체를 관통하는 아르노강이 범람하면서 르네상스 시대의 위대한 예술 작품들이 막대한 손상을 입었을 때, 안티노리의 지하 셀러에 잠자던 올드 빈티지 와인들도 타격을 입었다.
불행히도 두 번째 사건에 비하면 홍수 피해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와인을 마신 고객들이 아프기 시작한 것이다. 와인을 병입하기 전, 들어가서는 안 될 화학물질이 들어간 게 화근이었다. 니콜로는 서둘러 와인을 모두 수거하고 고객들을 일일이 찾아가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이미 이미지는 추락한 뒤였다. 그는 책임자를 경질하고 그의 첫째 아들인 피에로를 대표로 앉히면서 와이너리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기로 했다.
피에로의 가장 큰 업적은 토스카나 와인의 품질 향상을 위해 고심했다는 데 있다. 아버지가 등용했던 지아코모 타키스(Giaccomo Tacchis)와 피에로는 결정적으로 프랑스의 위대한 양조가인 에밀 페노(Emlie Peynaud) 교수를 초청해서 자문을 구했다. 그의 조언은 단순했다. 포도밭에서 수확량을 제한하고 키안티 양조에 화이트 품종을 사용하지 않으며, 와인을 청결한 배럴에서 만들 것. 불과 반세기 전의 이탈리아 와인이 얼마나 조악하게 만들어졌었는지, 그리고 와인 양조 과학이 그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일취월장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여기서 새로운 이름이 거론된다. 마리오 인치자 델라 로케타(Mario Incisa della Rocchetta) 후작. 피에몬테 귀족이었던 그는 안티노리 가문과 혼인하면서 사촌지간이 됐다. 프랑스 와인 애호가였던 그는 아내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볼게리의 땅에서 샤토 라피트 로칠드의 카베르네 소비뇽 묘목을 들여와 와인을 만들어 보기로 결심했다. 바로 살아 있는 전설, 테누타 산 구이도(Tenuta San Guido)의 시작이다. 그는 자갈이 가득했던 이 포도밭에 사시카이아(Sassicaia)(이탈리아 방언으로 작은 돌이 많은 곳이라는 뜻)라는 이름을 붙였다. 사시카이아에서 만든 최초의 와인은 상업용이 아닌 가족들이 마실만 한 수준의 와인이었다. 하지만 후에 지아코모 타키스가 컨설팅하면서 극적인 품질 향상을 이루게 된다. 마리오는 1968년 안티노리에게 와인의 유통과 마케팅을 부탁했고, 사시카이아는 1978년 <Decanter>가 주최한 와인 테이스팅에서 내로라하는 보르도 와인들을 꺾으면서 세계 와인 업계의 주목을 받게 된다.
이에 자극을 받은 안티노리는 1970년 그가 소유한 키안티 지역의 우수한 산지오베제 품종으로 ‘빌라 안티노리 티냐넬로 빈야드'(Villa Antinori Tignanello Vineyard)를 출시했다. 당시에는 약간의 화이트 품종을 블랜딩 하였는데, 이듬해 아예 화이트 품종을 배제했다. 또한 온도조절이 가능한 깨끗한 발효통을 사용하고, 새 프렌치 오크에서 숙성을 시킨 티냐넬로 와인을 선보이면서 진정한 수퍼 투스칸의 포문을 활짝 열었다.
안티노리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1975년 티냐넬로 옆 밭의 카베르네 소비뇽(소량의 카베르네 프랑 블렌딩)으로 양조한 솔라이아(Solaia)를 소개하면서 연이은 성공을 일궈낸다. 한편 피에로의 동생인 로도비코 또한 이모부와 형에게 자극을 받아 1985년 오르넬라이아(Ornellaia)와 1987년 마세토(Masseto)라는 걸출한 와인을 탄생시키면서 세계에 안티노리 가문의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시기는 약간 늦지만 1990년에는 안티노리가 볼게리로 진출해 구아도 알 타소(Guado al Tasso)를 선보였다.
결과적으로 전 세계 와인 애호가들의 워너비라 할 수 있는 사시카이야, 티냐넬로, 솔라이아, 오르넬라이아, 마세토, 구아도 알 타소의 탄생에는 모두 직간접적으로 안티노리 가문의 영향이 미쳤던 셈이다.
지금의 안티노리 와이너리는 1억 3천만 달러가 넘는 금액이 투자된 엄청난 시설을 자랑한다. 보는 이를 압도하는 규모와 예술적 건축미는 누구라도 감탄을 내지를 수밖에 없다. 또한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시음실과 와인 샵에서는 안티노리에서 생산하는 수퍼 투스칸 및 다채로운 와인을 글라스로 테이스팅 할 수 있다. 거기에 다양한 투어 프로그램과 방문객을 위한 레스토랑, 와인바가 더해져 와인 여행자들의 모든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명소가 되었다.
다시 볼게리 마을로 돌아와 이 지역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면, 본래 ‘Bolgheri’라는 이름은 ‘Bulgari’(Bulgarians)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한때 이탈리아반도를 장악했던 랑고바르드족의 동맹이었던 불가리아인의 군영이 이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특이할 만한 스토리가 없을 만큼 평범했던 이곳은 와인의 성공과 더불어 활력을 찾게 된다. 본래 볼게리 최초의 수퍼 투스칸들은 이탈리아 와인 법령에 어긋나는 품종과 블렌딩 때문에(Vino da Tavola) 혹은 IGT 등급의 와인으로 판매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꾸준히 뛰어난 품질을 생산하는 이곳 와인의 가치를 깨달은 정부는, 1994년 비로소 볼게리와 그 세부 지역인 볼게리 사시카이아를 DOC로 승격시키게 된다.
우리 부부는 볼게리를 두 번 방문했다. 볼게리 성으로 둘러싸인 이 중세 마을은 오히려 작아서 더 매력적으로 보였다. 이 작은 마을은 그 명성만큼 마을을 찾는 여행객들로 북적이며 활기가 가득했다. 볼게리 성문으로 들어서면 골목 골목 아기자기한 레스토랑과 에노테카가 즐비하다.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는 마을을 거닐며 사진을 남기는 것에 만족했지만, 두 번째 방문에서는 시간을 들여 지역의 몇몇 와이너리를 방문하고 마을 안의 레스토랑에서 지역 음식과 와인을 즐기며 마을의 매력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볼게리 마을은 걸어서 30분이면 모든 곳을 샅샅이 둘러볼 수 있는 규모다. 하지만 와인 애호가라면 한 걸음, 한 걸음을 섣불리 떼기가 어려울 정도로 온 마을이 와인 향기로 가득 차 있다. 에노테카에서는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 최고급 볼게리 와인들을 빈티지 별로 찾아볼 수 있다. 레스토랑에서는 그날그날에 따라 바뀌는 올드 빈티지 볼게리 와인과 음식의 마리아쥬도 즐길 수 있다. 우리 부부는 줄리아 거리(via giulia) 3번지에 위치한 <Enoteca di Centro Di Innocenti Michele>에서 지인들과 점심을 함께 했다. 그때 마셨던 레 마키올레의 팔레오(Paleo) 1993 빈티지와 트러플 파스타의 아름다운 마리아주가 잊히지 않는다.
우리가 볼게리 근방에서 방문한 와이너리들은 오르넬라이아, 레 마키올레, 투아 리타(Tua Rita)다. 엄격히 얘기해서 볼게리 DOC와 관련이 없는 와이너리도 있지만,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 일명 ‘이탈리아 메를로 삼대장’이라 불리는 오르넬라이아의 마세토, 레 마키올레의 메소리오(Messorio), 투아 리타의 레디가피(Redigafi)를 현지에서 꼭 마셔보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기에 이 세 곳의 와이너리를 방문했다. 실제로 방문했을 당시 위의 와인들을 시음을 하느냐는 나중의 문제가 되었다. 그만큼 와이너리에서 만들어내는 모든 와인들은 하나같이 훌륭했다. 또한 포도밭의 관리부터 양조시설에 이르기까지 완벽의 완벽을 더한 곳들이었다. 세 곳의 와이너리 모두 와인 여행자들이 기회가 된다면 꼭 방문해보기를 추천한다.
오르넬라이아는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피에로 안티노리의 동생인 로도비코에 의해 설립되었다. 미국의 전설적인 와인메이커인 앙드레 첼리스체프(Andre Tchelistcheff)와 세계적인 명성의 미셸 롤랑(Michel Rolland)의 연이은 컨설팅, 토마스 뒤루(Thomas Duroux)(현 샤토 팔메 와인메이커), 악셀 하인츠(Axel Heinz)(현 오르넬라이아 와인메이커 겸 디렉터)의 노력에 힘 입어 단숨에 최고의 와이너리 대열에 합류했다. 2001년 <Wine Spectator>에서 1998 빈티지의 오르넬라이아가 <Wine of the Year>에 꼽히기도 했고, 2001년 마세토가 WS 만점을 받은 바 있다. 로도비코는 자금 사정이 악화되면서 1999년 와이너리를 매각했는데, 미국의 몬다비가 잠시 소유했다가 최종적으로 프레스코발디(Frescobaldi)에서 오르넬라이아의 지분을 매입하면서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오르넬라이아는 와인의 퀄리티를 떠나서 방문객들을 진심으로 대하는 곳이다. 와이너리에서 준비한 차를 타고 포도밭을 일일이 돌아다니면서 설명을 듣는 한편, 컨템포레리 아티스트들과 협업한 아티스트 레이블과 작품을 와이너리 곳곳에서 감상할 수 있다. 대미를 장식한 와인 시음도 여타 보르도의 그랑 크뤼 샤토에서 받은 감동과 비슷했다. 온전히 시음에 집중할 수 있는 독립되고 조용한 환경에서 시음한 그들의 와인은 어느 하나 감동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레 마키올레는 볼게리 토박이였던 캄폴미(Campolmi) 가문이 1975년 설립한 와이너리다. 특히 에우제니오 캄폴미(Eugenio Campolmi)는 1991년 유명 와인메이커인 루카 다토마(Luca d’Attoma)와 협업하면서 기념비적인 와인들인 메소리오(메를로 100%), 스크리오(까베르네 프랑 100%)를 탄생시켰다. 물론 와이너리의 대표작인 팔레오도 여전히 볼게리를 대표하는 와인 중 하나다. 메를로 와인의 명성이 가장 높은 것은 자명한 사실이지만, 개인적으로 까베르네 프랑 100%로 만든 와인 역시 정점의 서 있는 것처럼 훌륭하기 때문에 꼭 한 번 경험해 보기를 추천한다.
투아 리타는 동명의 리타 투아 여사가 일궈낸 와이너리이다. 그녀는 이탈리아 와인 업계의 우먼파워로 대변되는 핵심적인 여성이다. 참고로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는 이곳의 레디가피 1999년 빈티지에 100점 만점을 주면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As close to perfection as a wine can get.”(와인이 다다를 수 있는 완벽함에 근접한) 더 자세히 그는 “꿈을 현실로 만든 와인이다. (중략) 와인 생산자인 스테파노 키오치올리와 소유주 투아 리타, 그리고 비르질리오 비스타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극찬했다.
1984년 리타 투아와 그녀의 남편 비르질리오 비스티(Virgilio Bisti)가 불과 2ha의 포도밭을 샀을 때 그들은 이런 미래를 상상할 수 있었을까? 심지어 이들은 포도밭을 가꾸기 전, 볼게리 남쪽의 해안 마을인 피옴비노(Piombino)에서 비디오 게임과 쥬크 박스를 유통하는 일을 해왔다. 투아 리타 와이너리의 변화는 1992년 루카 다토마의 컨설팅을 받으면서 시작됐고, 1998년 스테파노 키오치올리(Stefano Chicciolo)를 영입 하면서 더욱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2000년 레디가피가 로버트 파커 100점이라는 경이로운 업적을 세우게 된다. 이미 그 전에 1997년 빈티지 레디가피가 제임스 서클링 100점을 획득한 바 있으니 레디가피를 향한 와인 평론가들의 애정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현재까지도 리타 여사는 와이너리에 지내며 투아 리타의 아름다운 행보를 이어나가고 있다.
지금까지 소개한 와이너리들 이외에도 훌륭한 볼게리 와인을 양조하는 와이너리들이 다수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와인들은 수퍼 투스칸 와인의 미래를 환하게 밝혀나가고 있다. 물론 수퍼 투스칸 와인은 그 명성만큼 높은 가격의 장벽을 가지고 있음은 사실이다. 그런데도 와인 애호가들은 여전히 수퍼 투스칸 와인에 열광한다. 그 이유는 도전과 혁신의 물결을 일으킨 이 지역의 선구자들이 여전히 최고의 와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볼게리는 수퍼 투스칸이란 명성으로 와인 여행자의 마음을 언제나 설레게 하는 마을이다.
본문에 오류가 있어 댓글 남깁니다. 레 마키올레의 스크리오는 쉬라 100%이고 팔레오쪽이 카베르네 프랑 100%입니다. (물론 잘 아시겠지만 팔레오도 2001년부터 100%…)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