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세 번째 와인바 Talk, 와인의 매너
필자는 와인바 토크를 통해서 ‘와인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라고 여러 차례 이야기해왔다. 이런저런 격식을 따져가며 불편하고 어렵게 와인을 생각하기보단 편안하게 자신만의 스타일로 와인을 즐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와인에도 기본적으로 알아야 하는 매너(manner) 혹은 에티켓(etiquette)이 있다.
와인은 다른 문화권의 주류이기 때문에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식 술자리 예절’과는 다른 면이 꽤 있다. 와인에 한국의 소주 문화를 접목해 와인잔 돌리기를 한다든가 와인으로 러브샷을 하는 장면을 상상해보면 그것만큼 이상한 모습도 없을 것이다. 특히 와인을 곁들인 비즈니스 식사 자리의 경우, 와인 매너의 기본적인 내용조차 모르고 임한다면 당황스러운 일을 겪게 될 수도 있다. 와인은 와인에 어울리는 술자리 예절이 있다. 몇 가지 기본적인 와인 매너를 익히면 자연스럽게 상대와 대화를 나누고 편안하게 와인을 즐길 수 있다.
와인을 마실 때 격식을 차리며 마셔야 하는 자리가 있다. 프랑스식 코스 요리를 즐기는 고급 레스토랑에서나 일과 관련된 중요한 비즈니스 식사 자리 등은 격식 있는 와인 매너가 요구된다. 이런 자리에서 와인 테이스팅은 대부분 호스트(host)가 맡는다. 여기서 와인 테이스팅이란 새 와인을 오픈하고 맛을 보며 그 와인의 상태를 확인하는 과정을 말한다. 와인이 변질했거나 다른 이상이 있는지 상태를 먼저 확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자리의 주최자인 호스트가 한다.
테이스팅을 마치고 와인에 이상이 없는 것이 확인되면 식사 자리를 함께하는 다른 손님에게 와인이 서비스된다. 호스트가 다른 사람에게 테이스팅을 권유하지 않는 이상 호스트가 하는 것이 원칙이다. 보통 여성에게는 테이스팅을 잘 권하지는 않는데, 혹시 와인이 상했을 경우 여성이 맛보게 된다면 큰 실례라고 생각하는 여성을 배려하는 서양 문화권의 매너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위와 같은 맥락으로 음식과 와인이 서비스되는 순서는 여성과 연장자가 먼저이다. 여성 중의 연장자가 가장 먼저 음식이나 와인을 서비스받게 되고 그다음 연장자의 여성, 여성이 없다면 연장자의 남성, 그다음 연장자의 남성 그리고 마지막으로 호스트의 순으로 서비스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남성, 여성에 상관없이 가장 연장자가 먼저 서비스받는 것이 예의라 생각하다 보니 때에 따라서는 와인도 한국식으로 서비스된다.
우리가 서양의 술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가장 어려워하는 것 중의 하나가 술을 주고받는 예절에 관한 것이다. 와인 서비스를 하다 보면 많은 손님이 와인잔을 들고 와인을 따라주길 기다린다. 누군가가 술을 따라 줄 때면 잔을 들어 받는 것이 몸에 배 자동으로 잔을 들어 올린다. 하지만 와인은 잔을 들지 않는다. 와인잔은 길이가 길기 때문에 와인잔을 들어서 받게 되면 그보다 높이 무거운 와인병을 들어 올려 와인을 따라야 하므로 따르기 쉽지 않다. 또한 잔을 비스듬히 들고 있으면 와인을 얼마나 따랐는지 가늠하기 어려워 정량보다 와인을 덜 따르거나 너무 많이 따르게 될 수 있다. 와인은 와인잔의 가장 넓고 볼록한 부분까지 따르는 것이 좋기에 잔을 들지 않고 테이블 위에 올려둔 채로 받는다.
와인잔은 내가 사용하는 것 이외에 다른 사람의 것을 돌려 마시지 않는다. 잔을 돌려 마시는 문화는 와인에는 없다. 또한 와인은 소주 맥주처럼 잔을 비울 때마다 건배하지는 않는다. 잔을 비워가며 마시는 술이 아니라 천천히 음미하면서 마시기 때문에 계속되는 건배는 와인을 즐기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 건배해야 한다면 처음 와인을 받고 한두 번 정도가 적당하며 잔의 가장 볼록한 부분을 살짝 부딪치고 입술이 닿는 부분이 부딪히는 것을 피한다.
와인을 서비스하는 사람은 손님의 잔이 비도록 놔두면 안 되고 와인이 남아있는 잔에 계속해서 첨잔(添盞)을 해줘야 한다. 와인은 첨잔을 함으로써 잔에 있는 와인의 맛이나 온도를 조절하여 더 좋은 상태로 마실 수 있다. 소주나 맥주의 문화는 첨잔하지 않지만 와인은 그게 매너이다. 한국에서는 술을 더 마시지 않겠다는 의미로 빈 잔을 뒤집어 놓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와인은 절대 잔을 뒤집어 놔서는 안 된다. 와인을 더 마시고 싶지 않으면 소믈리에 또는 서버가 와인을 따라주려 할 때 손으로 와인잔 위를 살짝 덮어 의사를 표현하거나 와인잔에 있는 와인을 모두 마셔 비우면 된다.
와인을 처음 접하는 손님이 와인바를 방문했을 때는 와인병을 오픈하는 것부터 와인잔을 사용하고 마시는 방법까지 자세히 설명해준다. 이것이 와인을 마시기 위해 배워야 할 아주 기본적인 매너라고 생각한다. 와인은 다른 사람한테 서비스를 받기도 하지만 내가 호스트(host)가 되어 와인을 서비스하게 될 경우도 있다. 그렇기에 양쪽의 와인 매너 모두를 알고 있어야 한다.
실제로 와인을 몇 번 마셔봐서 마시는 방법은 대충 알고 있는데 와인을 오픈하는 것을 전혀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꽤 많다. 와인바 손님 중에 와인을 직접 오픈하다 코르크가 부러지거나 아예 오픈하는 방법을 몰라서 당황했었다는 일화를 들려주는 경우가 있었다. 손님을 초대해놓고 와인병을 제대로 오픈하지 못해 벌어지는 헤프닝은 생각만 해도 참담하다. 소주나 맥주처럼 돌리거나 꺾어서 뚜껑을 따는 술이 아니기 때문에 와인의 코르크 마개를 빼내는 것은 몇 번의 연습이 필요하다. 전동으로 코르크를 빼내는 기계도 있고 마개를 돌려서 오픈하는 와인도 있지만 언제 어디서든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와인을 즐길 수 있도록 기본적인 오픈 방법은 꼭 숙지해야 한다. 이전에 와인바 토크 글에서 다루었던 ‘와인 리스트’와 ‘와인을 마시는 방법’의 글을 더 참고한다면 와인을 고르고 서비스받고 마시고 즐기는 것까지 어려움 없이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