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을 테마로 한 수많은 영화 중에서 오랜 시간이 지나도 이 장면 한 컷 만큼은 꼭 기억하고 싶다고 여겨지는 소중한 영화 한 편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 맛있는 음식과 와인 한 잔을 두고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식탁 앞에 마주 앉는 장면만큼 낭만적이고 로맨틱한 한 컷도 없을 것 같다.
이번에는 와인과 음식으로 따뜻한 서사의 한 컷을 선사하는 정겨운 영화 TOP 8을 선정해 소개한다. 비록 영화 한 편이 환상적인 와인 한 모금의 맛을 대체할 수는 없겠지만, 완벽한 와인 페어링과 함께 푸짐하게 차려낸 한 끼 식사와 같은 영화를 통해 충만한 시각의 만족을 느껴보자.
1. 셰프(Chef, 2014)
영화 제작에 참여한 한국계 미국인 주방장 로이 최가 영화 공동제작과 자문을 담당했고, 실감 나는 장면 촬영을 위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요리를 직접 만들어 촬영했다는 점, 그리고 먹음직스러운 한국식 퓨전 음식과 여기에 곁들이는 다양한 와인이 등장했다는 점은 와인 애호가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또, 스칼렛 요한슨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더시틴 호프만 등 할리우드 톱스타가 대거 출연해 영화를 즐기는 재미를 배가시켰다. 주방장 로이 최는 로스앤젤레스에서 푸드트럭 ‘고기’(KOGI)를 운영하며 얻은 노하우를 미국의 유명 배우이자 감독인 존 패브로와 함께 이 작품에 고스란히 녹여냈다.
특히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한국 요리에 대한 언급과 레스토랑 주방에서 고추장을 추가한 각종 퓨전 한국 요리에 “오! 고추장”라는 한국어 대사가 등장한다는 점도 흥미롭다. 영화 전반에 주꾸미 볶음 등 한국 요리가 살짝살짝 등장하고 거기에 더해 고급스러운 미국 레스토랑에서 절찬리에 판매 중인 각종 와인과 집에서 쉽게 즐길 수 있는 모히토 등이 눈길을 끌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현재 아마존 프라임(Amazon Prime)에서 시청할 수 있다.
2. 와인을 딸 시간(Uncorked, 2020)
와인을 주제로 한 영화 중 강력하게 추천할 만한 영화로 꼽히는 작품이다. 레트로한 감성이 가득 담긴 ‘Uncorked(2020)’는 한국에서는 ‘와인을 딸 시간’이라는 제목으로 넷플릭스에 개봉한 오리지널 영화다. 백인계 상류층이 주로 즐기는 와인 문화를 흑인 배우들이 출연해 풀어간 작품으로 주인공 엘라이자를 분한 배우 마무두 아티(Mamoudou Athie)가 열연을 통해 아버지가 운영했던 바비큐 식당을 물려받는 대신 와인 소믈리에가 될 뜻을 표명하는데, 이 과정에서 그는 코트 오브 마스터 소믈리에(the court of master sommeliers)에 도전하는 모습이 영화 속 전반에 걸쳐 상세하게 그려진다.
상류층 문화로 자리 잡은 미국의 와인 문화에 도전하는 흑인 주인공의 와인 세계와 현지에 여전한 클래식한 와인 문화의 편견과 고정관념 등이 어렵지 않고 친근하게 그려졌다는 점에서 와인 애호가는 물론이고 와인을 이제 막 시작한 ‘와린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넷플릭스(Netflix)에서 관람할 수 있다.
3. 줄리 앤 줄리아(Julie & Julia, 2009)
지금으로부터 무려 13년 전에 개봉한 ‘줄리 앤 줄리아’는 긴 시간 동안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 전설의 명불허전 영화로 입소문을 이어오고 있는 작품이다.
영화 속 두 명의 주인공 줄리와 줄리아는 모두 음식을 만들며 행복을 공유하는 인물이다. 다만 두 사람이 사는 시공간은 서로 다르다. 줄리아 차일드(메릴 스트립 분)는 1950년대 출판된 ‘프랑스 요리를 마스터하는 법’이라는 책의 저자로, 냉동식품이 일반적이었던 시절에 쉽게 요리하고 행복하게 먹는 것의 기쁨을 전하는 인물로 유명세를 얻은 역할을 담당한 반면 줄리 파웰(에이미 아담스 분)은 2000년대를 살아가는 공무원이다.
평소 직장 상사에게 시달리며 지루한 일상을 보냈던 줄리는 어릴 적 꿈꿨던 작가에 대한 꿈을 잃고 그저 지루한 일상의 반복을 받아들인 채 시간을 보낸다. 그러던 중 줄리아의 레시피로 만든 음식을 통해 시공간을 초월해 행복을 공유하는데, 급기야 줄리는 ‘줄리 앤 줄리아: 365일, 524개 레시피, 작은 아파트의 주방’이라는 제목의 블로그를 운영하기 시작한다. 줄리의 블로그에 등장하는 시공간을 초월한 70년 전 줄리아가 만든 다양한 요리 레시피와 긴 세월 동안 수많은 와인 애호가들에게 사랑받아온 클래식한 와인이 다수 등장해 음악에 문외한인 관람객들의 지친 마음을 치유해준다는 호평이 이어진 작품이다.
평소 음식과 와인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한 이들에게도 음악이 주는 치유와 회복의 힘을 전달하는 영화임이 틀림없다. 훌라(Hulu), 스타즈(Starz), 아마존 프라임(Amazon Prime)에서 관람할 수 있다.
4. 패스트 푸드 네이션(Fast Food Nation, 2006)
먹거리 문화를 다룬 대표적인 영화 중 하나인 패스트 푸드 네이션은 2006년 개봉돼 햄버거 패티 속에 ‘소똥’이 발견되며 시작된 이슈에 집중한 영화다. 수백만 명의 소비자들이 매일 드라이브 스루와 배달 전용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해 음식을 주문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음식과 관련된 영화 중 단연 빼놓지 말고 관람해야 할 작품 중 하나로 꼽히는 수작이다.
에릭 쉬로저(Eric Schlosser)의 패스트 푸드의 제국(Fast Food Nation)을 원작으로 한 코미디 영화로 매년 큰 폭의 성장세를 기록했던 패스트 푸드 체인의 인기 메뉴인 빅원(Big One)을 생산한 육류 가공 업체의 내부 사정과 이 분야 근로자들의 충격적인 노동 환경, 생산 프로세스가 가진 문제점 등을 폭로한 작품이다. 아마존 프라임에서 관람할 수 있다.
5. 소울 푸드(Soul Food, 1997)
무려 1997년에 개봉한 소울 푸드는 전형적인 할리우드식 감동을 선사하는 대표적인 코미디 영화다. 바네사 윌리엄스와 비비카 A, 폭스, 니아 롱 등이 출연해 40년 동안 단 한 번도 어김없이 열린 매주 일요일 저녁 함께 모여 식사해야 하는 한 가족의 오랜 전통과 그 속에서 빚어지는 가족 사이의 감출 수 없는 사소한 심리적 갈등을 그렸다.
특히 11세 주인공 아마드의 시각에서 작품 전반이 흘러간다는 점에서 영화 속 시카고에 거주하는 평범한 흑인 가족이 정성껏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장면들을 통해 관객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미국 속 평범한 가정 문화와 미국식 가정식, 대중들이 주로 선호하는 와인들의 등장을 흥미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에이치비오 맥스(HBO Max), 아마존 프라임과 훌라에서 관람할 수 있다.
6. 담뽀뽀(タンポポ, Tampopo, 1985)
국내에는 다소 생소한 작품이지만, 음식을 소재로 한 영화 중 단연 ‘원조’로 꼽히는, 무려 1985년작 ‘담뽀뽀’(원제:タンポポ)도 빼놓을 수 없는 수작이다. 라면을 소재로 기승전결 매끄럽게 전개되는 일본 영화로 영화 초반에 극장으로 들어서는 남자가 마치 관객들과 눈을 맞추며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한 채 독백하는 장면이 인상적인데, 이후 영화의 진짜 주인공인 라면 가게 사장이자 라면 요리사인 중년 여성 담뽀뽀(미야모토 노부코 분)와 그녀를 돕는 트럭 운전사 고로(야마자키 츠토무 분)의 모습이 이어진다.
사실 이제 막 라면 장사를 시작한 담뽀뽀 보다 라면에 대해서라면 일가견이 있는 트럭 운전사 고로는 우연한 계기로 가까워지게 되고, 이때부터 고로는 트럭 운전일보다 담뽀뽀의 라면 맛에 더 집중하며 그를 일류 라면 요리사로 만들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 기울인다. 이 과정에서 고로는 라면 국물에 진수라는 한 노숙인을 찾아가 국물을 연구하기도 하는데 초반 10분만 집중해서 보다 보면 어느새 영화 결말에 이르게 될 정도로 집중도 높은 에피소드가 연달아 이어지는 요란스럽지 않은 코미디 영화다. 영화를 보다 보면 시원한 국물이 간절한 이 작품은 에이치비오 맥스(HBO Max), 아마존 프라임과 훌라에서 관람할 수 있다.
7. 가까스로 크리스마스(Almost Christmas, 2016)
가장 현실적인 미국 중산층 가정의 이야기를 다룬 훈훈한 분위기의 코미디 영화다. 아내와 사별한 뒤 아내가 없는 첫 번째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된 월터(대니 글로버 분)는 죽은 아내의 여동생인 처제(모니크 분)와 엄마를 잃은 첫 번째 크리스마스 저녁 식탁 앞에 마주 앉은 네 명의 자녀들과 사소한 말다툼을 벌이지만, 결국엔 집안이 아무리 어수선해도 크리스마스는 역시 가족과 함께 마주 앉아 조촐하지만 그 나름의 전통이 있는 저녁 식탁이 있어야 ‘제맛’이라는 교훈을 주는 훈훈한 작품이다.
작가 겸 배우인 데이비드 E. 탈버트와 제작자 윌 패커가 힘을 모아 공동 제작한 작품인 만큼 한 지붕 아래 아내와 엄마를 잃은 한 가족이 겪는 심리적 불안과 공동체적 의식을 통해 위안을 얻는 가족들의 심리적 구성을 잘 그려냈다는 평가다. 거기에 더해 생전 아내가 매년 가족들을 위해 만들었던 크리스마스 기념 고구마 파이 맛을 그대로 구현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주인공 월터의 모습은 가상하기 그지없다. 아마존 프라임과 케이블 TV채널 FX Network에서 관람할 수 있다.
8. 어나더 라운드(Another Round, 2020)
올해 초 한국에서 개봉됐을 당시 ‘혈중알코올농도 0.05%, 약간만 취하면 인생은 축제다’라는 문구로 알코올 애호가들의 마음을 ‘심쿵’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 영화다. 매즈 미켈슨이 주인공으로 출연해 지난해에는 오스카 국제 장편 영화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작품 면에서도 인정받은 영화다.
다소 지루할 것처럼 보이는 이 영화의 배경은 덴마크의 평범한 한 고등학교 교사로 있는 마르틴(매즈 미켈슨 분)과 니콜라이(마그누스 밀랑 분), 톰뮈(토마스 보 라센 분), 페테르(라스 란데 분) 등 4명의 삶에 어떠한 의욕도 없어 보이는 중년 남성들이 니콜라이의 40번째 생일날 술 한 잔을 기울이던 중 한 가지 실험에 동참해보기로 의기투합하는 흥미로운 내용을 담아냈다.
이들은 노르웨이 학자 핀 스콜데루드가 주장하는 ‘혈중알코올농도를 0.05%로 유지하면 평소보다 더 활발해지고 창의적인 인물로 변한다’는 가설에 심취해, 이를 직접 실험해보기로 한 것. 이 이론은 매일 소량 섭취하는 알코올이 인간의 뇌에 창의성과 깊은 휴식, 그리고 궁극적으로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것을 시사했기 때문에 지루한 일상을 견뎌야 했던 4명의 남성에게 그 어떤 것보다 절실한 실험이었던 것이다.
다만 네 사람은 24시간 언제나 최소 0.05%의 혈중알코올농도를 유지하되 저녁 8시 이후에는 입에 술을 대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직접 실험에 돌입한다. 영화가 기승전결로 이어지는 동안 다양한 알코올 제품들이 등장하고, 술에 취한 척 연기하는 동안 배경이 되는 매력적으로 깔리는 OST가 더해져 영화를 관람하는 동안 내내 기분 좋은 술을 한 잔 기울이는 듯 묘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삶에 의욕을 잃고 지루한 일상을 보내던 네 명의 남성을 춤추게 하는 것은 과연 혈중알코올농도 0.05%였는지 아니면 삶에 대한 공통의 고민을 공유하는 힐링의 시간이었는지는 작품을 통해 직접 확인하길 강력하게 추천한다. 이 작품은 훌루와 아마존 프라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