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어디를 가도 점심과 저녁을 먹기 전인 한 시간 어쩌면 더 길게 식전주와 간단한 음식을 즐기는 무리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사실 서울 시내 도로변에 테이블을 내놓고 무엇을 즐기기에는 여러 어려움이 있고 또 우리들의 문화도 아니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사방이 막힌 실내보다 밖이 안전해지면서 슬슬 여유 공간이 있는 곳은 밖에서 간단하게 음식을 즐기는 상황이 늘어났다. 새롭게 시작되는 여행, 어디든 도착한다면, 본격적인 식사 전 짭짤하거나 고소한 여러 음식과 다양한 식전주로 느긋하게 여행의 맛을 즐겨보자.
식전주의 유래
식전주는 아페리티프, 아페리티보, 해피 아워, 프레 디너 등등으로 불리지만 의미는 같다. 우리의 문화로는 이해할 수 없는 식전주와 핑거푸드 형식의 음식을 즐기는 이 시간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이 매력적인 식전주의 유래는 그리스의 의학자 히포크라테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5세기 히포크라테스는 식욕을 상실한 환자에게 화이트 와인과 디저트 와인에 쑥, 운향과 등의 허브를 넣은 것을 약으로 처방했고, 쓴맛과 허브의 향은 식욕을 불러일으키는 데 좋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 이후 고대 로마 시대에는 식전주(아페리티프)는 와인과 꿀로 만든 물섬(mulsum) 이라는 술이 활발하게 소비되기도 했다. 아페리티프(aperitif), 아페리티보(aperitivo)는 라틴어의 ‘apre’ 즉 ‘열다’에서 유래된 말이다. 즉 식사 전에 술이나 음료로 식욕을 열어 놓는다는 의미다.
문헌의 정보에 의하면 식전주 즉 아페리티프를 만들어 판매한 사람은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작은 상점을 운영하던 안토니오 베네데또 카르파노(Antonio Benedetto Carpano)이다. 그는 1786년 화이트 와인에 30가지가 넘는 허브와 향신료를 우려내서 베르무트(Vermut)라는 와인 베이스의 특별한 음료를 만들었고, 이는 유럽 전역에서 사랑받기 시작했다. 이것을 시작으로 친짜노와 마티니&로씨(Cinzano e Martini&Rossi)가 생겨나고 이탈리아 전역,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식전주에는 무엇이 있을까?
와인을 베이스로 한 베르무트를 시작으로 식전주는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다. 셰리, 포트 와인, 바롤로에 키나라는 허브를 넣은 바롤로 키나토, 그리고 이와 같은 강한 알코올과 허브에서 주는 향기가 거슬리는 사람들은 그냥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이나 스파클링 와인, 맥주를 식전주로 마셨다. 현재는 이 중 스파클링 와인이 식전주의 자리를 독차지하고 있다.
또는 알코올이 강한 리큐어나 증류주에 탄산소다, 오렌지 주스 등을 섞어 만든 식전주도 인기다. 특히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캄파리(Campari)에 탄산 소다나 얼음을 넣어 마시거나 아페롤(Aperol)에 오렌지 주스를 섞거나 이탈리아 스파클링 와인 프로세코(Prosecco)를 섞은 스프리츠(Spritz)는 거의 식전주를 대변하는 문화가 되고 있다.
식전주는 무엇과 먹을까?
식전주를 마시면서 감자 칩이나 그린 올리브를 곁들이는 것은 유럽에서 흔히 보는 풍경이다. 짭짤한 감자 칩과 고소한 올리브는 식전주와 매칭이 잘 되어 식욕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상업적으로 식전주가 처음 시작된 이탈리아에서는 식전주와 곁들이는 음식들이 지역마다 차고 넘친다. 가끔 와인 바나 카페에 식전주를 마시러 들어가면, 거기서 내놓는 식전 음식에 흥분하여 배를 너무 채운 적도 많다.
타파스가 유명한 스페인도 그렇다. 맥주나 화이트 와인, 세리로 식전주를 마시며 곁들이는 타파스는 카페나 와인바의 주인 스타일에 따라 양이 천차만별이라 적잖이 당황한 기억이 있다. 하지만 식전주와 함께 나란히 줄 서 있는 식전 음식(이것도 아페리티프 또는 아페리티보라고 한다)을 보면, 식전주가 한두 잔 늘어도 손이 안 갈 수는 없다.
식전주와 곁들이는 음식으로는 감자 칩이나 체리뇰라 올리브, 엔초비를 얹은 카나페, 토마토 브루스케타 등이 가장 흔하다. 좀 더 요리에 가까운 것들도 있다. 작은 접시에 담았지만 메인 요리의 가니시 같은 야채 절임이나 볶음, 치즈, 살루미 등과 함께 먹는 그리시니까지 갖추어 준다면, 식전주를 마시며 한 끼를 채우는 일은 쉽게 도를 넘어 본격적인 식사를 잊게 만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