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이어 올해도 서부 그리스 와인을 탐험하는 세 번의 세미나가 진행된다. 서부 그리스의 레드 와인을 다뤘던 첫 번째 세미나에 이어 오늘 6일, 화이트 와인을 완벽하게 파헤치는 시간이었다. 토착 품종으로 섬세하고 상쾌한 스타일의 화이트 와인을 생산하는 서부 그리스는 현재 그리스에서 가장 유망하고 흥미로운 지역이다.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위치한 아하이아(Achaia)와 일리아(Ilia). 위대한 미케네 문명의 발원지인 이곳의 와인 역사는 하나의 지역 또는 국가를 넘어 와인 자체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신비로운 신화뿐 아니라 수많은 고고학적 증거가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로디티스(Roditis), 마브로다프네(Mavrodaphni), 시데리티스(Sideritis) 등 토착 품종은 수천 년을 이어오며 이곳의 기후와 토양에서 최상의 모습으로 가꿔졌다. 그리고 이제 세상에 그 놀라운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다.
완벽한 지중해성 기후를 가진 아하이아와 일리아는 바다에 인접한 곳에서 해발 1000m의 산악 지대에 이르기까지, 몇 킬로미터 내에 극적으로 다양한 풍경과 기후에 포도밭이 자리잡고 있다.
펠로폰네소스의 북서쪽에 위치한 아하이아는 세개의 높은 산의 언덕에 있어, 높은 고도의 영향으로 여름의 열기를 상당 부분 피하고, 산맥이 남쪽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을 막아주는 장벽 역할을 한다. 특히, 그리스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를 통틀어 가장 고도가 높은 포도 재배 지역이 바로 아하이아,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애기알리아(Aigialia)의 언덕에 있다.
아하이아의 바로 남쪽에 위치한 일리아는 이오니아 해(Ionian Sea)의 영향을 받아 습도가 높고 여름에도 비가 많이 내려, 캐노피 관리가 중요하다. 아하이아에 비해 대체로 낮은 지역에 포도밭이 구성되어 있다.
아하이아에는 PGI 아하이아(Achaia)와 PGI 슬로프스 오브 애기알리아(Slopes of Aigialia), 2개의 PGI가 있고, 일리아 역시 PGI 일리아(Ilia)와 PGI 레트리노이(Letrini), 2개의 PGI가 있다.
일리아에는 PDO가 없으며, 아하이아에는 PDO 파트라(Patra), PDO 머스캇 오브 파트라(Muscat of Patra), PDO 머스캇 오브 리오 파트라(Muscat of Rio Patra), PDO 마브로다프네 오브 파트라(Mavrodaphni of Patra), 4개의 PDO가 존재한다.
아하이아와 일리아의 화이트 와인을 생산하는 주요 품종으로 로디티스(Roditis), 머스캣(Muscat), 시데리티스(Sideritis), 말라구시아(Malagousia) 등이 있다.
분홍색 껍질을 가진 로디티스는 그리스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Top 2 품종 중 하나이다. 높은 클론 다양성으로 다채로운 스타일의 와인이 생산되는데, 특히 로디티스 알레푸(Roditis Alepou) 클론은 고지대의 애기알리아 언덕에서 최고 품질의 와인으로 만들어진다.
시데리티스 역시 분홍빛의 단단한 껍질을 가진 아하이아의 토착 품종으로, PGI 아하이아(Achaia)와 PGI 슬로프스 오브 애기알리아(Slopes of Aigialia)에서 아주 소량 재배된다. 중간 정도의 과일 향과 미디엄 바디, 섬세한 아로마와 균형 잡힌 산도의 화이트 와인으로 생산되고, 연한 붉은 색에 신선하고 섬세한 자몽 향을 보이는 우아한 로제 와인 생산에도 사용된다.
서부 그리스에서 태어난 말라구시아는 꽃과 허브, 머스캣 풍미를 가진 아로마틱 품종으로, 고도와 숙성도에 따라 다양한 표현력을 보인다. PGI 아하이아(Achaia)와 PGI 슬로프스 오브 애기알리아(Slopes of Aigialia)의 산악 지역에서 생산한 와인은 신선하고 상쾌한 산도와 허브향과 민트 향이 더 돋보인다.
그리스의 주요 품종 중 하나인 아시르티코(Assyrtiko)는 이곳에서 더 과실 풍미가 좋고 미네랄리티함이 두드러진 스타일로 완성된다. 아로마가 매우 강렬하지는 않으나 입안에서의 질감이 좋고, 특히 숙성되면서 페트롤과 같은 미네랄과 견과류의 복합성을 드러낸다.
세미나의 마지막, 화룡점정의 시음 시간이 이어졌다. 10종 모두 오크 숙성하지 않은 드라이 화이트 스타일이지만, 껍질 침용 방식을 사용하거나 리(lees) 컨택, 내추럴 방식으로 양조하는 등 떼루아는 물론 양조 방법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만날 수 있었다. 토착 품종 외에도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 샤르도네(Chardonnay), 리슬링(Riesling) 등 국제 품종으로 생산한 와인도 준비되었다.
10종의 시음 와인은 대체로 좋은 산도와 밸런스를 가졌기에 어떤 음식과 매칭해도 좋은 페어링을 보여주는데, 특히 한식과의 매칭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가볍게 즐기기 좋은 와인은 문어숙회 및 회무침과 같은 해산물과 잘 어울리고, 껍질 침용한 풍미 강한 와인은 찜닭이나 한국식 중식과 좋은 매칭을 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이제 어느덧 마지막 세미나만을 남겨두고 있다. 오는 6월 3일, 아하이아 지역의 PDO 와인을 중점적으로 살펴보며 화려하게 마무리 짓고자 한다. 세미나 신청이 다음 주에 시작되니, 잊지 말고 꼭 신청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