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동물원을 좋아한다. 동물을 유심히 살펴보면, 사람보다 뛰어난 능력이 감지된다. 그럴 때면 내가 작아지고 반성하게(?) 된다. 다시 바라본다. 그럼 그들의 감정이 읽힌다.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을… 그렇다고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는 아니지만, 마치 나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려고 하는 듯하다. 그들과 나 사이에는 안전을 이유로 높은 막이 가려져 있어서 아쉽지만…
[사진 001] 코펜하겐 동물원 앞
코펜하겐 동물원은 달랐다. 최소한의 제약으로 동물과 눈을 마주칠 수 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성인들도 호기심을 가지고 구경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관람객 속에 잠재된 적극성을 끌어낸다. 코끼리 사육장 앞에는 체중계, 기린 앞에는 키를 재는 기구 등이 있어서 동물의 특징을 몸으로 체득한다. 좋은 기계를 설치하고도 관리가 안 되는 국내 동물원과는 달리, 이곳은 낙후되거나 오작동 되는 기계를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동물을 설명하는 시스템은 아이디어가 빛나서 실제로 어른들의 이용도가 높다. 결정적으로 동물과 관람객 간의 장벽이 낮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쉽게 동물을 만지면서 즐길 수 있는 구조가 이 동물원의 가장 큰 메리트라고 하겠다. 하지만 반대로 동물들의 스트레스가 높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동물원 자체가 인간의 욕구 때문에 만들어진 산물이라서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걸 차치하더라도, 동물의 입장에서 뭐가 옳은지 생각하는 시간도 갖게 됐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관람객들의 관람 태도다. 동물원에서 공지한 사항을 지키는 것은 기본이고, 최소한 동물의 안위를 살피며 그들과 교감을 나누려 한다.
[사진 002] 가까이서 무조건 동물을 만지기보다는 바라보며 그들의 동향을 살핀다.
1851년에 독일 베를린 동물원을 방문하고 깊은 감명을 받았던 덴마크의 조류학자 닐스 크예르뵐링 Niels Kjærbølling의 주도로 1859년에 설립되었다. 덴마크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동물원이다. 유럽 전체에서 가장 오래된 동물원 가운데 한 곳이기도 하다. 전체 면적은 11ha에 이르며 약 240여 종의 동물 3천 5백여 마리가 살고 있다. 이 동물원은 세계에서 호주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멸종위기의 동물인 타즈매니안 데빌 Tasmanian devil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동물원의 한계를 최대한 극복하려는 움직임들이 보인다. 그런데 2014년 2월 7일, 덴마크 코펜하겐 동물원은 생후 18개월 된 기린 ‘마리우스’를 전기총으로 사살했다. 아이를 포함한 관람객들 앞에서 기린 사체를 해부하고 토막 낸 몸뚱이는 사자 먹이로 줬다. 동물원 측은 종 다양성 보호를 위해 근친교배를 막아야 하므로 기린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른 곳으로 보내려 많이 노력했지만 여의치 않아서 말이다. 많은 이들이 기린의 죽음에 분개했다. 그 사건을 계기로 내가 동물원을 좋아하는 기호가 흔들리기 시작한 게 사실이다.
[사진 003] 어린이들이 좋아할 만한 이벤트는 별책부록으로 즐길 수 있는 묘미.
제도적인 불편함과 대중에게 공분을 사게 한 사건들. 이를 차치하고 즐기기로 했다. 동물의 호기심을 최대한 해소하면서 그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는 방향으로 말이다. 가만히 바라보면 그들의 관계와 삶을 읽을 수 있다. 대장부터 내려오는 서열을 가늠할 수 있으며, 썸타는 러브라인도 알아맞힐 수 있다. 또 동물도 동물이지만, 이를 지켜보는 관람객들 보는 재미도 있다. 특히, 천진난만한 어린이들의 반응들. 이미 속세에 찌든 나 같은 어른들에게서는 나오지 않는 리액션들. 바라만 봐도 절로 웃음이 나온다. 코펜하겐 동물원은 시청 앞 광장 등에서 6A번 버스를 15분 정도 타고 Zoologisk Have 정류장에 내리면 된다. 넓은 프레데릭스베르 공원 한쪽에 자리 잡고 있는 동물원이다. 로스킬데브 거리의 남북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지하도로 오가면서 양쪽 동물원을 관람할 수 있다. 입장료는 성인 1인에 170dkk(2016년 기준, 한화 약 30,000원)이다.
[사진 004] 사이좋게 지내고 있는 원숭이들.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동물은 무엇일까. 우리나라 지도가 마치 호랑이와 같다고 해서 호랑이 기운이 담긴 나라로도 부른다. 88 서울 올림픽의 마스코트인 호돌이도 호랑이를 모티브로 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덴마크는 어떤 동물을 귀하게 생각할까. 코펜하겐 동물원에는 특별 전시도 할 정도로 특정 동물의 이미지가 각인되었다. 코끼리. 코끼리는 정숙과 순수함을 상징하며, 덴마크 국가 훈장에도 등장한다. 그뿐만 아니라, 동상 및 도시의 도로 켜켜이 묻힌 맨홀 뚜껑에도 새겨져 있다. 그리고 덴마크의 대표 맥주인 칼스버그에도 코끼리가 숨어 있다.
[사진 005] 코펜하겐 동물원 한 켠에 코끼리 전시관이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필스너 맥주인 칼스버그 Carlsberg. 이 맥주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제조한다. 동물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칼스버그 브루어리 Carlsberg Besogscenter. 여기서는 칼스버그와 또 다른 대표 맥주인 투보그 Tuborg도 생산한다. 넓은 부지 안에 Visit Center가 있어서 월요일을 제외한 날 언제나 와서 투어가 가능하다. 관람은 오전 10시부터 시작하며, 요일에 따라 다르다. 박물관에는 맥주의 역사에 관한 패널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그 당시 사용했던 기구와 기계들을 천천히 둘러볼 수 있다. 아주 오래전의 맥주 제조 과정을 실물 크기의 규모로 전시되어 있다. 큰 맥주회사답다. 이곳을 잘 모르고 들어온 사람들에게는 좀 낯설 수도 있는 모습, 바로 마구간과 마주한다. 마구간에는 덴마크산 말들이 있는데, 예전에는 맥주 운반용 짐차를 끌며 시내까지 맥주를 날랐다고 한다. 지금은 전시용이자, 실제로 마차를 끌고 관람객들을 실어나른다. 동물원처럼 관람객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다.
[사진 006] 칼스버그 브루어리 투어 입구 건물.
[사진 007] 브루어리 안에는 말들이 있다. 북적이는 곳 중에 하나다.
칼스버그 Carlsberg는 덴마크 왕실 역사와 인연이 깊다. 1840년 덴마크 왕 프레드릭 7세는 양조가 들을 불러 덴마크를 대표하는 맥주를 만들라고 지시한다. 이에 왕실 양조장의 아들이었던 제이콥 크리스찬 야곱센은 1847년 다섯 살 난 아들 칼 야곱센의 ‘칼 Carl’과 양조장이 있던 ‘언덕(덴마크어로 Berg)’에서 이름을 딴 칼스버그 Carlsberg 맥주를 만들어 왕실에 헌정한다. 덴마크 왕실은 1904년 칼스버그를 덴마크 왕실의 공식 맥주로 선정한다. 1867년 칼스버그 양조장에 큰불이 났고, 제이콥은 화재를 계기로 양조장 현대화에 나섰다. 그 무렵 아들인 칼은 외국에서 양조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 자신만의 맥주인 ‘뉴(new) 칼스버그’를 만들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에일과 라거 맥주를 함께 생산하고자 했지만, 아들은 필즈너 맥주만을 고집했다. 결국, 이들은 법적 싸움까지 번졌지만, 6년 이후 화해를 하고, 1906년 칼스버그와 뉴 칼스버그는 칼스버그 양조장으로 합병했다. 칼은 예술에 조예가 깊어 여러 골동품을 수집했는데, 현재 칼스버그 박물관이 그것이다. 덴마크의 상징인 인어공주 동상도 1913년 칼이 기증한 것이다. 1964년 어느 날 밤 인어상의 머리가 잘려나간 사건이 있었지만, 지금은 복원돼 관광객을 맞고 있다.
[사진 008] 칼스버스 창업주인 Jacob Christian Jacobsen의 이념이 담긴 문구.
168년의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칼스버그는 특별히 엄선된 보리로 만들어진 100% 프리미엄 몰트맥주이다. 국내에는 2009년 론칭했으며, 현재 약 150개국에서 판매되고 있다. 칼스버그만의 맛을 결정짓는 4가지 요소는 바로 고품질 보리 100%, 칼스버그만의 아로마틱 홉, 청정한 물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바탕으로 완성된 신선하고 깨끗한 맛이다. 100년이 넘는 오랜 세월을 전해 온 칼스버그만의 맛은 입안에 들어오면서부터 느껴지는 진한 보리와 홉 향으로 혀를 지나 목을 넘어가면서까지 쌉쌀함을 전달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톡 쏘고 쌉쌀함에 많은 소비자층이 선호하고 있다.
[사진 009] 시음을 담당하는 직원들.
칼스버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초록색 캔에 새겨진 칼스버그 로고다. 로고 상단에 그려진 왕관에는 영광스러운 의미가 담겨 있다. 바로 칼스버그가 덴마크 황실에 맥주를 공급한 첫 번째 양조장이라는 사실이다. 또한, 칼스버그 로고에 숨어 있는 이미지는 ‘코끼리’다. ‘Carlsberg’의 이니셜 ‘C’는 코끼리 상아를 형상화했고, 두 번째 ‘r’ 아랫부분은 코끼리의 발을, 마지막 ‘r’의 윗부분은 위를 향하고 있는 코끼리 코를 닮았다. 길게 휘갈긴 ‘g’의 아랫부분은 코끼리의 코를 표현했다. 전통문화 연구가는 칼스버그 로고에서 5가지 코끼리 표시를 찾아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칼스버그의 몇몇 직원은 많게는 19가지의 코끼리 표시를 찾아낼 수 있다고 한다. 칼 야곱슨이 칼스버그의 상징으로 코끼리를 선택한 것은 이 동물이 힘과 충성, 부지런함을 상징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는 칼스버그의 사유지에도 코끼리 타워를 세웠는데 이 벽에는 ‘Laboremus pro Patria’(나라를 위해 일하게 하소서)라는 그의 좌우명이 새겨져 있다.
[사진 010] 칼스버그 브루어리를 둘러부면 코끼리들이 숨어있다.
투어가 시작하면 박물관 구경과 동시에 작은 바에서 칼스버그 맥주를 시음할 수 있다. 나는 국내에서 아직 맛을 못 본 Carlsberg Dark Lager를 한잔 마셨다. 그리고 야외에는 따로 테라스와 바가 준비되어 있어서 맥주와 간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사진 011] 야외에 마련되어 있는 탭비어존. 웃는 얼굴로 맞이하는 직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