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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페인 예찬, 폭염 속 반짝이는 호사(豪奢)

샴페인 예찬, 폭염 속 반짝이는 호사(豪奢)

Monica S Lee 2016년 8월 24일

연일 폭염이다. 폭염이 하늘에서 폭포처럼 쏟아져 내린다. 온몸이 노릇노릇 구워진다. 아니나 다를까. 충남 천안에서는 노오란 병아리가 부화했다는 소식이 뉴스로 전해졌다. 그것도 세 마리가 나란히 알을 깨고 나왔단다. 냉장고 위에 계란 세 개에 갑자기 금이 쩍하고 나가더니, 삐약삐약 병아리가 해맑게 웃으며 기어 나오더라나 뭐라나… 상하(常夏)의 나라 싱가포르에서도 몸 성히 살아남았고, 거적을 둘러쓰고 불한증막 속에 앉아있는 듯한 홍콩 여름에서도 살아남은 생존력을 발휘하던 나다. 그럼에도 잠시 들른 한국의 여름은 가히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 하도 엄청나고 기가 막혀 할 말이 없다고 할까. 일기예보는 이번주를 기점으로 더위가 한풀 꺾일 것이라 하던데 지켜봐야 할 문제이긴 하다. 하지만 문득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모처럼 찾아온 샴페인의 시간이 점점 줄고 있지 않은가. 그래, 여름은 단연 샴페인의 시간이다..

정말로 병아리 3마리가 상온에서 부화했다/사진출처: YTN

정말로 병아리 3마리가 상온에서 부화했다/사진출처: YTN

이처럼 더운 한여름엔, 레드 와인 한 잔이 그토록 부담스럽다. 높은 알코올 도수 때문에 한 잔만 마셔도 금세 얼굴이 달아오르고 주전부리를 페어링 하는 것도 공연하기만 하다. 그래서 여름엔 화이트 와인이, 그중에서도 차갑게 해서 마시면 좋은 스파클링이,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샴페인이 무척 당긴다. 기포가 폭 뽀르륵하고 힘차게 솟아오르는 걸 보기만 해도 마음이 후련하니까. 매앰 매앰하는 매미 소리, 후덥지근한 습한 공기, 구슬지어 흘러내리는 작은 땀방울. 얇은 원피스 한 장 걸쳐 입고, 시원하게 칠링한 샴페인 코르크를 톡 하고 따면. 낮이든, 밤이든… 이런 행복한 휴식이, 황홀한 호사가 따로 없다.

촘촘히 솟아오르는 기포는 마음까지 후련하게 한다. /사진출처:pixels

촘촘히 솟아오르는 기포는 마음까지 후련하게 한다. /사진출처:pixels

이미 익숙한 이야기지만, 샴페인은 스파클링 와인과 동의어가 아니다. 샴페인은 스파클링 와인의 부분집합이다.  오직 프랑스 샹파뉴 지역에서 샴페인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진 스파클링 와인만을 샴페인이라 부른다. 샴페인 지역의 생산자들은 이 ‘샴페인’이란 단어의 저작권을 지키기 위해 오랜 시간 노력을 했고, 이젠 그 어떤 나라, 어떤 지방에서도 샴페인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다. 샴페인은 오직 샹파뉴 지역이 소유한 전통성 짙은 고유명사다.

스파클링 와인의 세계는 넓고도 깊다. 이탈리아의 프로세코, 스페인의 까바, 독일의 젝트, 프랑스 크레망 등. 그러나 이 중 샴페인이 가장 대표적인 스파클링 와인이라 꼽히는 이유는, 물론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샴페인만이 가지고 있는 확연한 고소한 풍미라고 생각한다. 아몬드, 캐슈넛과 같은 고소한 견과류, 더 나아가면 갓 구운듯한 패스트리와 브리오슈 같은 빵, 꺼슬꺼슬하고 바삭하게 구워진 토스트의 풍미, 오래 숙성된 샴페인에서 나는 꿀과 카라멜 향까지.. 이 모든 건 샴페인을 만드는 특유의 전통적인 방식, 즉 죽은 효모를 거르지 않고 발효 후에도 그대로 두어 와인과 일정 시간동안 접촉하게 하는 양조방식에서 생긴 것이다. 스페인의 카바, 프랑스 다른 지방의 크레망 등도 이런 양조방식을 사용하긴 하지만, 효모와 와인을 접촉하는 시간이 샴페인에 비해 통상적으로 현저히 짧아 이러한 풍미가 희미한 편이다.

각각의 병 속에서 효모와 접촉시킨 후, 사진 속 리들링(riddling)이란 방식으로 천천히 침전물을 모아 살짝 얼린 뒤 뻥 - 하고 효모 결정물을 추출한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각각의 병 속에서 효모와 접촉시킨 후, 사진 속 리들링(riddling)이란 방식으로 천천히 침전물을 모아 살짝 얼린 뒤 뻥 – 하고 효모 결정물을 추출한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물론 전통 방식으로 만들지 않아 고소한 풍미가 없는, 이탈리아의 프로세코와 같은 와인도 물론 충분히 훌륭한 스파클링 와인이다. 사실 요즘 유럽에서는 프로세코 붐이 불고 있다. 유럽에서, 특히 영국에서 식전에 프로세코를 외치면, 당신은 아주 패셔너블하고 그럴듯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을 거다. (반면, 샴페인을 주문하면 ‘아니, 저런 고루한 사람이…’라는 반응을 얻을 수도..) 어쨌든 프로세코는 전통 방식으로 양조하지 않아 효모와 와인의 접촉이 최소화된다. 때문에 효모에서 비롯한 고소한 풍미는 없고, 완전히 신선하고 산뜻한 과실 풍미 위주로 와인이 구성되는데 언제 어디서나 마셔도 부담 없고 맛있는, 꼭 과실쥬스를 마시는 듯한 질감을 느낄 수 있다. 물론 가격도 샴페인과 비교하자면 무척 저렴하다! 그것이 매력이기도 하고. 하지만 어쨌든 난 샴페인 특유의 고소함이 무척 우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 하나다. 항상 쉽고 즐겁고 유쾌하기만 한 친구도 좋지만, 때로는 조금 철학적이고 차분하고 우아하며 예술적인데다가 부가해서 아우라까지 겸비하고 있는 친구와 함께하는 시간 또한 매력적인 법이니까.

여하튼 샴페인에는 고소함에 앞서 더욱 중요한 것이 있는데, 바로 아주 농축된 과실 풍미이다. 잘 익고, 되도록 개성 강한 빈티지에 만들어진 훌륭한 와인일수록 그 고소함이 빛을 발한다. 덜 익은 포도로 만든 맹맹한 와인에 고소함을 더해봤자 돌아오는 건 느끼한 가벼움 뿐일 테니.. 

샴페인은 프랑스의 가장 북쪽의 위치한 와인 생산지. (노란색 지역)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샴페인은 프랑스의 가장 북쪽의 위치한 와인 생산지. (주황색 지역)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프랑스 북부에 위치한 샹파뉴 지역은 기후대가 무척 서늘하고, 낮과 밤의 기온이 변덕스럽기 때문에 빈티지(해, 년도)에 따라 농작 결과물이 아주 다르고 불규칙하다. 그리하여 샴페인 생산자들이 선택한 방식은 이 블랜딩인데, 블랜딩이란 여러 해의 와인을 섞어 샴페인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때문에 와인 생산자들은 아무리 좋은 해의 와인이라도 추후의 블랜딩을 위해 반드시 그 해 와인 생산량의 20%를 남겨둔다.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샴페인들에 적혀있는 NV(Non-Vintage)라는 글자가 바로 그것을 의미하는데, 한 해의 와인으로 만든 것이 아닌 여러 해의 와인을 블랜딩하여 만든 샴페인이라는 뜻이다. 주로 엔트리급의 샴페인이 NV이고, 와인 하우스의 가장 전형적인 스타일을 보여준다. 그러나 샹파뉴 지역에도 정말 훌륭한 년도가 있기 마련이다. 기후가 워낙 좋아 포도들이 아주 잘 익은 해에는 ‘빈티지 샴페인(Vintage)’을 생산하는데, 오직 그 해에 수확된 포도로만 샴페인을 만들어, 와인병에는 NV가 아닌 비로소 그 해의 년도가 표기된다.

빈티지 와인이 위대한 것은 바로 과실 농축미에 있다. 기본 뼈대가 튼튼하니 일단 효모 접촉을 오래 해도 와인 농축미가 지지 않고 탄탄히 받쳐주는 것이다. 빈티지 와인을 예찬하자면, 첫째로 바로 그 빈티지만의 개성을 느낄 수 있으며, 둘째로 과실 농축미와 고소한 풍미 사이의 멋진 발란스가 있고, 셋째로 이 훌륭한 뼈대 덕분에 10년, 아니, 20-30년 이상 병 숙성했을 때 훨씬 더 아름다운 샴페인을 마실 수 있다. 좋은 빈티지 샴페인은 20-30년 이상의 숙성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런 숙성 가치는 그 어떤 스파클링 와인도 갖지 못하는, 오직 샴페인만 가질 수 있는 특징이다.

물론, 모든 샴페인에서 내가 말하는 이런 고소한 풍미가 느껴지는 건 아니다. 대부분의 NV 샴페인에서는 고소한 풍미가 강하게 느껴지기보다는 다소 희미한 견과류 정도의 뉘앙스만 느껴지고, 빈티지 와인이라 해도 아직 어린 샴페인에서는 오직 폭발할 듯한 과실 농축미만이 느껴질 수도 있다. 어떤 샴페인 하우스는 일부로 효모 접촉 시간을 짧게 해 신선한 스타일의 샴페인을 만들기도 하고, 어떤 곳에서는 아주 오래 접촉해 고소함을 극대화하기도 하기 때문에 샴페인별 편차가 크기도 하다. 하지만 샴페인이라면 어떤 방식으로든 고소함을 풍긴다는 것은 절대적인 사실이다. 

돔 페리뇽의 2006 빈티지. 이제 막 10년이 되어 어린 탓에, 아직 숙성에서 비롯한 복합적인 매력을 풍기지는 못한다. 그러나 과실농축도는 가히 폭발적이니.. 10년 후, 20년 후가 무척 기대되는 이유다.

돔 페리뇽의 2006 빈티지. 이제 막 10년이 되어 어린 탓에, 아직 숙성에서 비롯한 복합적인 매력을 풍기지는 못한다. 그러나 과실농축도는 가히 폭발적이니.. 10년 후, 20년 후가 무척 기대되는 이유다.

마트나 백화점, 특히 면세점에서는 모에 샹동, 돔 페리뇽, 뵈브 클리코, 크루그, 폴 로저 등 대규모 샴페인 하우스의 와인들을 유난히 쉽게 접할 수 있다. 물론, 좋은 와인들이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대규모 샴페인 하우스가 아닌, 소수의 샴페인을 생산해내는 작은 샴페인 하우스들이 인기이다. 최근엔 엠마누엘 브로쉐(Emmanuel Brochet)란 샴페인 와이너리가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 무척 인기를 끌었는데, 이젠 홍콩에서도 재고를 구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이런 소규모 와이너리들은 대규모 샴페인 하우스에 비하면 생산량이 현격히 작다. 바야흐로 ‘아티자날(artisanal)’한 소규모 와이너리들의 전성시대다. 한국에는 아직 다양한 제품군이 들어와있지는 않은 것 같다. 쉽게 찾아보기도 어렵다. 그러나 정말 좋은 와인 바, 좋은 와인샵이라면 분명 몇 개의 제품군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개인적으로 요즘 푹 빠져있는 샴페인 Jacquinot et Fils 샴페인. 아직 한국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NV 샴페인은 물론이고 빈티지 와인들이 하나같이 상당히 우아하고 개성 있다. 내가 좋아하는 고소한 풍미의 결정체들..

개인적으로 요즘 푹 빠져있는 샴페인 Jacquinot et Fils 샴페인. 아직 한국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NV 샴페인은 물론이고 빈티지 와인들이 하나같이 상당히 우아하고 개성 있다. 내가 좋아하는 고소한 풍미의 결정체들..

샴페인 하우스 모에 샹동 앞 돔 페리뇽 수도승의 동상.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샴페인 하우스 모에 샹동 앞 돔 페리뇽 수도승의 동상.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대규모 샴페인 하우스의 와인을 즐기고 싶다면 그 브랜드 뒤에 숨겨진 역사를 한번 훑어보는 것도 재미있다. 예컨대, 모에 샹동의 프리미엄 라인인 돔 페리뇽은 ‘샴페인의 창시자’인 돔 페리뇽 수도자에게서 이름을 따왔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사실 돔 페리뇽 수도자는 샴페인의 창시자가 아니다. 돔 페리뇽은 오히려 샹파뉴 지역의 기후환경 때문에 자연적으로 생기는 이 탄산을 어떻게든 없애보려고 열심히 양조 기술을 발전시킨 인물이다. 물론 덕분에 혁신적인 양조와 농사기법을 발명하긴 했지만, 사실 스파클링 와인으로서의 샴페인을 창시하거나 발전시킨 인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뒤늦게 유진 메르시에란 인물과 모에 샹동이 마케팅을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내용이다.

 윈스턴 처칠은 “우리가 싸워야할 것은 프랑스가 아닌 샴페인”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사진출처: https://blog.majestic.co.uk/

윈스턴 처칠은 “우리가 싸워야할 것은 프랑스가 아닌 샴페인”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사진출처: https://blog.majestic.co.uk/

윈스턴 처칠은 역사상 독보적인 샴페인 애호가였다. 하루 2잔 이상의 샴페인을 항상 마셨다고 하는데, 특히 그는 오직 폴 로저(Pol Roger) 샴페인을 편애했다.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자신의 경주마의 이름을 폴 로저라고 지었을 정도다. 이에 폴 로저는 이에 1984년 윈스턴 처칠을 위한 프리스티지 뀌베를 만들었고, 여전히 좋은 빈티지 해마다 윈스턴 처칠 프리스티지 뀌베를 선보이며 그를 기리고 있다. 또한 뵈브 클리코에서 뵈브(Veuve)란 프랑스어로 미망인이란 뜻이다. 전통 있는 샴페인 하우스에 퐁사르댕(Ponsardin)이란 여인이 샴페인 하우스 상속자 클리코(Clicquot)와 결혼했는데, 그녀 나이 27세에 남편이 죽고, 그녀가 혼자서 이 샴페인 하우스를 운영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놀랍도록 현명하고 지혜로웠던 이 여인은 이 샴페인 하우스 이름을  ‘뵈브 클리코 퐁사르댕’이라 바꾸고, 이 브랜드를 세계적인 샴페인 하우스 반열에 올려놓았다는 이야기. 결국 번역하자면 ‘클리코(상속자)의 미망인 퐁사르댕(본인)’이란 뜻의 이름이다.

정말이지 무더운 여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열대야에 잠 못 이루는 누군가에게는 송구스러운 말이지만, 난 이 여름이 아쉽기도 하다. 샴페인의 진가를 비로소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은 결국 여름이기 때문에. 돌이켜보면 그토록 지긋지긋하던 일들도, 막상 지나고 나면 그립고 아름다워 보이는게 만물의 이치 아니던가.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네이버 과학에 따르면…) 인간은 과거의 기억부터 차례차례 지워나가기 때문에, 과거의 힘들었던 기억은 사라지고 오직 현재만이 남아, 언제나 현재가 가장 힘들다고 고되다고 느낀다고 하더라. 그래, 폭염이든 뭐든 결국은 슬며시 물러날 것이다. 이토록 열정적이던 여름이 언제 그랬냐는 듯 갑자기 얼굴을 바꾸고 등을 보이고 쌀쌀한 바람을 불러올 거다. 그럼, 그리워질지 모른다.. 분명, 이 여름 무엇인가가 참 그리워질지 모를 일이다.

그러니 마지막 여름, 마냥 더위에 지나가길 소원하며 늘어져있을 시간은 없다. 우아한 샴페인 한 잔을 음미하며, 지금 이 순간의 낭만을, 행복을, 열정을, 조금은 더 깊이 만끽해보는 것은 어떨지.. 마시자 독자들에게 강력히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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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ica S Lee

WSET Diploma candidate, 香港거주. 바다와 와인을 사랑하는 프리랜서 기고가. La 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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