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너리’라는 단어에 어떤 그림을 연상하시나요? 새파란 하늘, 드넓게 펼쳐진 초록 밭에 주렁주렁 열려 있는 싱그러운 포도들이 떠오르지 않나요? 오늘은 그 그림을 잠시 접어두셔야겠습니다. 일반적인 와이너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와이너리들을 소개해드릴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와이너리의 정의는 보시는 것처럼 간단합니다. ‘와인이 만들어지는 곳’. 그러나 와인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꽤 많은 단계가 필요하죠. 알맞은 기후와 토양에서 자라는 포도나무가 있어야 하고, 와인을 따서 착즙하고 양조할 통과 공간이 필요합니다. 더불어 병입 후에 숙성이 필요한 와인이라면 와인병을 일정한 온도에 두고 보관할 장소도 필요하죠.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대부분 같은 장소, 혹은 가까운 장소에서 진행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아래의 와이너리들은 이 과정 중 일부를 생각지도 못했던 공간에서 진행합니다.
바닷속 와이너리, Edivo Navis underwater winery
크로아티아의 Edivo 와이너리는 위의 사진과 같이 심해에서 와인을 숙성시키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2011년, 무언가 독특하게 와인을 양조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시작했던 방법이었다고 합니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2013년 말과 2014년 초에 걸쳐 암포라에 담긴 와인을 바다 밑에서 숙성시키는 데 성공했죠. 사실 단순히 ‘성공했다’라는 말로 축약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노력의 과정이 담겼을 겁니다. 바닷속의 압력을 견디면서도 병에 와인이 들어가지 않도록 밀봉하는 방법도 찾아야 했을 것이고, 어떠한 컨디션에서 얼마만큼의 기간을 거쳐야 가장 최상의 와인이 나오는지를 찾아내기 위해서 다양한 시행착오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결국 그들이 찾아낸 방법은 와인병을 작은 암포라에 넣어 한 층 더 안전하게 만든 다음 바다에서 숙성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석 달 동안은 땅 위에서 숙성을 거치고, 그다음 바닷속에서 2년의 숙성 기간을 거치면 완성되는 이 와인은 Navis Mysterium(바다의 미스터리)이라는 이름을 달고 다시 태어납니다.
이 Navis Mysterium은 심해에 가라앉은 배 안에서 조류나 여타 충격으로부터 안전하게 숙성되는 과정을 거치는데요, 기본적으로 서늘한 바닷물의 온도 덕분에 와인을 보관하기에 완벽하다는 것이 Edivo 와이너리의 설명입니다. 전통적인 숙성 방법은 아닐지라도, 역사에서 처음으로 심해에 와인을 숙성시키는 와이너리라는 독특함으로 부장한 Edivo 와이너리. 크로아티아를 방문하게 되면 스쿠버 다이빙 신청을 통해서 심해 와이너리 구경도 가능하다고 하니 관심 있는 독자 여러분께 추천해 드립니다.
물 위의 포도밭, Siam Winery
와인을 만들기 위해선 가장 핵심 재료, 포도가 매우 중요합니다. 포도나무가 자라나는 토양과 기후에 따라서 포도의 맛은 천차만별로 달라지기에 기본적인 기후 조건이 완벽한 포도밭이 필요하죠. 비옥한 토양과 온화한 기후. 우리가 으레 생각할 수 있는 이런 조건이 아닌 곳에서 자라나는 태국의 포도밭이 있습니다. 바로 수도인 방콕의 남서부에 위치한 Samut Sakhon이라는 지역입니다.
사진에서 특이한 점을 찾으셨나요? 배에서 노를 저으며 포도밭을 가로지르는 사람과, 반짝이는 물이 돋보이는 포도밭, 떠 있는 포도밭입니다. 물론 대체 어떻게 밭이 물 위에 떠 있는가에 의문이 들어 꼼꼼히 따져보면, 떠 있다기보다는 포도나무가 심어진 땅 사이를 파서 관개 운하를 만들어 둔 촉촉한 땅이라는 말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배를 타고 다니며 포도를 수확하는 모습은 와인에 관심이 많은 전 세계의 사람들을 매료시키기 충분한 모습이죠. 물론 비가 많이 오는 태국의 특성상 우기가 지나면 포도나무를 지탱하고 있는 흙이 무너져 보강 공사도 필수적이라고 합니다.
이 포도밭의 소유주인 Siam 와이너리는 태국의 유명한 와인 생산자 중 하나로 태국인의 입맛에 맞춘 와인을 생각하는 현대적인 와이너리 중 하나입니다. 실제로 떠다니는 포도밭에서 재배한 포도로 만든 와인인 SPY 라는 태국 와인은 달콤하고 톡 쏘는 맛이 매력적이라고 하니, 태국에 가신다면 꼭 한 번 시도해보시면 좋겠습니다.
낙타와 포도밭의 관계, Val d’Argan낙타와 포도밭은 연관 지어 생각하기 어려운 조합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모로코에서는 낙타를 이용해 포도밭을 경작하는 와이너리가 있습니다.
모로코 최초의 유기농 와이너리인 Val’d Argan은 프랑스인 Charles Melia가 운영하는 와이너리입니다. 청소년기를 모로코의 카사블랑카에서 보냈던 그는, 19살에 법학 공부를 위해서 프랑스로 돌아가기는 했지만, 그곳의 경직된 일 문화에서 벗어나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와이너리를 만드는 것이었다고 하는데요. 아르헨티나와 뉴질랜드 등 다양한 곳을 방문해서 와이너리를 만들만한 곳을 점검했지만, 결국 모로코에서 답을 찾게 되었다고 합니다.
골리앗이라는 이름의 낙타는 포도밭을 쟁기질할 때 그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물론 트랙터를 사용할 수도 있고, 프랑스처럼 말을 이용해서 쟁기질하는 방법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단봉낙타가 모로코의 기후에서 더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데다가, 유기농법의 측면에서도 더 적합하다는 판단에 낙타를 사용했다는군요.
이 건조한 모로코의 흙을 기반으로 가지는 와이너리에서 주력으로 재배하는 품종은 그르나슈 블랑과 비오니에, 뮈스까 등이 있습니다. 낙타가 건강하게 갈아준 땅에서 자란 포도의 와인이 어떨지 참 궁금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그렇듯 정답은 없습니다. 와인도 마찬가지로 각자가 처한 환경과, 다름을 추구하고자는 의지, 그리고 좀 더 나아지기 위한 아이디어 덕분에 이렇게 일반적이지 않은 와이너리도 만들어지는 것이겠지요. 와인을 사랑하는 마시자 매거진 독자 여러분들에게 이 특이한 와이너리들이 즐겁고 신선한 아이디어를 던져 주었길 바라며, 오늘도 Sant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