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독자 여러분의 와인 생활은 안녕하신가요? 외식이 쉽지 않아진 시기이기에 아끼던 식당도 와인바도 마음 놓고 방문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쉽지만 집에서라도 좋아하는 와인들을 구비해두고 즐기는 분들도 있겠지요. 이때 제일 고민 되는 것은 바로 와인과 함께 곁들여야 할 음식일 겁니다. 보통은 레스토랑의 쉐프들이 멋들어지게 내어주는 음식들과 함께 즐겼겠지만, 이때만큼은 오롯이 내가 나를 대접해야 하는 쉐프가 되어야 하니까요.
그래서 오늘은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거나, 혹은 우리의 식탁에 종종 어렵지 않게 등장하는 음식들과 와인의 이색 페어링을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와인 애호가들의 입을 통해 검증되었거나 필자가 직접 경험해본 다양한 음식과 와인의 마리아주를 만나보고, 오늘 저녁 마트에 들러보는 것은 어떨까요? [ 쑥떡 ]쑥의 향이 다소 옅은 떡이라면 꿀을 살짝 찍어 바른 후, 달콤한 리슬링을 고르죠. 은은한 쑥 냄새와 리슬링의 미네랄, 살구 향이 콧속에서 부드럽게 섞이고, 꿀의 녹진한 질감과 리슬링의 옅은 단맛이 만나 달콤함을 증폭시킵니다. 반면 쑥의 줄기가 숭덩숭덩 보일 정도로 진한 쑥떡 혹은 쑥개떡이라면 주저 없이 그날은 레드 와인을 마셔야 하는 날입니다. 민트향이 살짝 묻어나는 메를로라면 더더욱이 좋을 것 같습니다. 쑥의 거친 질감이 매끄러운 메를로를 만나 균형을 이루고, 짙은 자두 냄새와 민트 냄새가 쑥과 함께 섞여 굉장히 풍부한 향을 만들어 내는 경험을 만들어 주거든요. 맑고 옅은 피노 누아와 쑥도 꽤 잘 어울렸지만, 조금 주의하세요. 맑고 여린 피노 누아의 경우는 쑥의 향과 텁텁한 질감이 와인을 덮어 버리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 짜파구리 ]이런 특징을 지닌 품종과 짜파구리와의 페어링을 떠올리는 이유는 서로의 맛을 완벽하게 상쇄시키는 데다가, 무게감까지 비슷한 짝이기 때문입니다. 녹진녹진하고 매콤한 조미료 자극을 무게감이 살짝 느껴지는 진판델의 붉은 단맛으로 감싸주어 서로의 튀는 맛들을 진정시켜내는데요. 여기에 채끝살까지 추가되어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겁니다. 후추 향과 함께 어우러지는 고기의 감칠맛까지 더해질 테니까요.
[ 떡볶이 ]
국민 간식 떡볶이와 와인의 조합은 요즈음 우리나라 일부 와인바에서도 종종 보실 수 있을 정도로 나름 이름난 조합입니다. 선명한 고추장의 맛에 풍미가 좋은 와인은, 다소 어색해 보이는 조합일 수 있지만 그 중독성이 무척 강한 편이죠. 다만 이 경우, 필자는 떡볶이의 스타일에 따라서 어떤 와인을 고를까 고심을 많이 합니다.
상당히 매운맛을 내는 떡볶이의 경우, 너무 드라이한 와인과 페어링 한다면 혀에 느껴지는 촉감과 통증이 배가 되어 아무런 맛도 즐기지 못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매운 자극을 중화시켜줄 수 있는 화이트 진판델을 추천합니다. 진판델 품종으로 로제 와인을 양조하던 중 효모 부족으로 발효가 중간에 멈춰버렸지만, 그 맛이 기대 이상이라 판매되기 시작한 화이트 진판델. 특유의 부드럽고 힘 있는 질감을 유지하는 동시에 새콤한 향과 달달한 맛으로 매운맛에 놀란 혀를 진정시키기에는 제격이기 때문입니다.
매운맛보다 달달한 맛이 조금 더 튀는 쌀 떡볶이에는 레드를 고릅니다. 이때는 어느 정도의 탄닌이 있되 탄산감이 있는 레드로 추천을 받는 편이랍니다. 탄산 덕분에 자칫 텁텁할 수 있는 고추장 베이스 양념의 맛을 깔끔하게 씻어 넘길 수 있고, 또 적당한 탄닌이 그 떡볶이 특유의 묵직함과 잘 어울릴뿐더러 쫀득쫀득한 쌀 떡볶이를 씹는 긴 시간 동안 입에 여운을 남겨주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외에도 떡볶이가 고추장 대신 고춧가루로 맛을 내어 덜 텁텁하다거나, 양배추가 들어가서 조금 더 달달하다거나 등의 특징이 있다면 그 특유의 맛을 살리기 위한 여러 페어링을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더불어 필자는 떡볶이의 뾰족한 맛을 중화시키기 위한 와인의 맛을 찾는 편이지만, 매운맛과 탄닌의 조합으로 혀에 남는 강렬한 조합도 종종 볼 수 있으니 독자 여러분들의 기호를 찾아보셨으면 좋겠습니다.
[ 바닐라 아이스크림 ]필자는 개인적으로 가르나차로 만든 로제를 특히 좋아합니다. 당도가 높고 껍질이 얇은 편이라 로제와인으로 양조해도 풀바디의 로제가 되는 데다, 숙성될수록 가죽 냄새와 캐러멜 냄새가 진득하게 튀어 오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오크 터치가 들어가면 특유의 매캐한 냄새가 배가 되는데, 얼핏 위스키 향을 떠올리게 하는 이 향과 부드러운 바닐라 아이스크림은 입안에서 부드럽게 섞여서 만족스러운 풍미를 남깁니다. 흡연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시가를 한껏 피우며 입 안 가득 머금었을 때의 만족감이 이런 느낌일까? 하는 경험을 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마트나 편의점에 가면 쉽게 집어들 수 있는 재료들로 페어링해볼 수 있는 조합을 소개해보았습니다. 물론 페어링에는 개개인의 입맛의 선호도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독자 여러분들이 이미 경험해보셨던 것과는 상당히 다른 조합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연히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내 앞에 있는 식재료들의 어떤 맛 하나하나 집중해보세요. 그리고 그것을 극대화할 수 있는 맛의 와인을 고를 것인지, 혹은 서로의 균형을 잘 잡아서 밸런스 좋은 맛을 낼 수 있는 와인을 고를 것인지 결정하시면 코로나로 인해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긴긴밤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우리의 맛있고 행복한 방구석 페어링을 위하여, Sant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