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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속에 담긴 인터스텔라(Interstellar)

맥주 속에 담긴 인터스텔라(Interstellar)

송나현 2016년 3월 31일

영화를 자주 보는 편이 아니나, 놀란 감독은 좋아한다.

전공자는 아니지만, 천문학을 좋아한다.

이 두 가지 명제로 도출할 수 있는 내 인생 영화는 인터스텔라다.

인터스텔라를 처음 봤을 때 감동은 아직까지 선명하다. 그날 난 친구들과 지방에 있는 우리 집으로 여행을 떠났다. 먹고, 마시고 놀다가 영화광인 일행의 의견을 따라 새벽 세시에 극장 문을 열었다. 혼자 아껴보려던 인터스텔라. 하지만 딱히 볼 만한 영화가 없어, 우리는 인터스텔라 표를 끊었다. 극장 안에는 우리 팀 포함 3팀이 앉았다. 우리는 영화관을 전세 낸 것 마냥 서로 따로 떨어져서 영화 관람을 시작했다. 약간 지루한 감이 있는 도입부를 지나, 자칭 천문학 덕후인 내가 좋아하는 천문 물리학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늦은 시간인지라 주위 친구들은 모두 잠에 깊이 취해있었다. 원래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면 무언 가를 먹는 걸 싫어한다. 주위 사람들이 팝콘을 먹는 소리가 신경 쓰이기도 하고, 먹는 데 집중하다 보면 영화에 몰입도가 끊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위에 아무도 없던 그 새벽 영화관에서 난 캔 맥주를 꺼내 인터스텔라와 함께 즐겼다.

<사진 : hamilton’s interstellar 공식 홈페이지>

일반 상대성 이론을 설명하는 앤 헤서웨이의 얼굴에 토스(toss)를 하고, 매튜 맥커너히가 물로 뒤덮인 행성에서 고군분투하는  장면을 볼 때는 맥주를 잠시 팔걸이에 내려놓고 빠져들었다.
인터스텔라의 엔딩 크레딧이 오르고 난 후에도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하는 나를 친구들은 졸린 눈을 비비며 재촉했고, 난 영화와 함께 마시는 맥주의 참맛을 깨달았다.

영화에 맥주

<사진 : pixabay>

일부 영화관에서는 매점에서 맥주 세트를 판매하고 있다.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편한 옷차림에 캔 맥주를 곁들여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는 장면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왜 영화에는 맥주가 어울리는 걸까? 소주나 와인 같은 다른 종류의 술이 아닌 왜 맥주인 걸까? 이유는 쉽게 찾을 수 있다. 다른 술에 비해 냄새가 그리 고약하지도 않고 (막걸리, 소주, 양주 등) 캔에 들어 있어 병이 깨질 위험이 없다. (와인병이 영화관 안에서 깨진다고 생각해 보라) 또한 그 특유의 쌉싸름함과 터져 나오는 탄산은 영화관의 오랜 친구 팝콘과 잘 어울린다. 고소하지만 느끼하고, 계속 먹다 보면 목 막히게 하는 그 팝콘. 그 순간 맥주를 한 모금 곁들이면 다시 영화에 집중할 수 있다.

<사진 : photopin>

맥주 한 캔이 만들어지는 역사

최초의 맥주는 벼와 보리 등의 곡식이 물에 불어 자연발효가 일어나 생긴 걸쭉한 강장제 음료로서, ‘액체 빵’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기원전 6000년경 수메르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이때의 맥주는 우유에 보릿가루를 넣어 끓인 보리죽이라고 할 수 있다. 헤로도토스의 주장에 의하면, 이집트인에게 문명을 가져다준 오리시스 신이 파라오의 아들들에게 맥주를 선물했다는 것이다.

<사진 : photopin>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문헌 중 하나인 함무라비 법전에는 맥주 제조법까지 나와 있다. 그럴듯한 맥주 양조장을 둔 고대 문명 발상지와는 달리 게르만 인들은 집에서 맥주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모든 작업은 여성의 것이었다.
중세에 들어서는 수도원에서 맥주를 만들기 시작했다. 홉이 들어간 것은 이때부터이다. (호머 심슨의 배를 만드는 주범이다)

바야흐로 과학의 시대가 펼쳐진 르네상스. 이 시기부터는 발효를 인공적으로 조작하기 시작했고, 와인보다 값이 싸고 곡류 소비량당 칼로리양이 제일 높은 맥주를 생산했다. 이 시대, 모든 사람들은 맥주를 즐겼고 초상화에는 배에 살이 붙은 사람들이 그득하다. (예로 맥주 예찬론자였던 마틴 루터를 보면 알 수 있다. 그의 아내 카테리나 폰 보라는 수도원에서 양성된 양조업자였다!)

<사진 : pixabay>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혁명을 거치며 자본주의가 도래하였고, 우리가 알고 있는 한층 발달한 맥주가 탄생했다.
그러나 세계대전이 발발하며 악마의 음료라 불리는 커피가 식탁을 점유했다. 큰 타격을 입은 맥주는 발전을 꾀했다. 냉장 기술, 병 포장 기술이 발달했고, 캔 맥주가 나타났다. 캔의 등장은 맥주 시장에 혁명을 몰고 왔다. 우리가 편의점에서 몇천 원을 주며 쉽게 사는 캔 맥주에는 이렇게 기나긴 역사가 숨어있다.

맥주는 집약 노동을 필요로 하는 와인과 달리 간단한 공정을 거친다. 서민들이 집에서 만들기 쉽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보너스로 맥주를 줬다고 하며, 중세시대 때는 가난한 서민들의 식사였다. 현재도 마찬가지다. 술을 잘 모르는 사람이나 잘 못 하는 사람도 한 잔 정도는 쉽게 넘길 수 있는 술이다. 이 글을 보고 난 후에 집 앞 마트에서 맥주 한 캔을 사와 좋아하는 영화와 함께 즐기자. 평소에 그냥 지나쳤던 숨겨진 의미도 미약한 술기운에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진 : foodiesfeed>

포도주는 신의 선물, 맥주는 인간의 전통…

마지막 날이 오면,

술을 빚어온 자들은 세상에서 사는 동안 어떤 술을 빚었느냐에 따라서 분류될 것이다.

-마르틴 루터-

 


[참고 문헌] 장 루이 스파르몽, 장 클로드 콜랭, 크리스티앙 드글라 (2000). 김주경.「맥주」. 창해.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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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현

마시고 먹는 것에 인생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대학생. 이 세상에 많은 술을 한번씩 다 먹어보기 전까지는 인생을 마감할 수 없다는 취지로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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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1. curtis 2018년 9월 18일

    인터스텔라에 맥주가 나온다는건 옥의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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