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로컬을 마시다. (1부) 서울 –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 김태경 대표
‘로컬’의 이름을 가슴에 새긴 진짜 ‘지역 맥주’의 등장. 최근 국산 수제 크래프트 비어 시장의 성장세가 눈부시다. 지역과의 협업도 빛을 발한다. ‘서울’과 ‘광화문’, ‘제주’의 이름을 달고 등장한 맥주는 애교다. 대세는 동과 구 단위로 세밀하게 쪼개진 진짜 ‘로컬’에 있다.
사회학자들은 말한다, <글로벌이 정점에 이른 순간에 찾아오는 것은 ‘로컬’의 열풍>이라고. 그런 의미에서 분석하자면, 각 지역의 이름을 제품의 라벨에 새긴 한국 수제 크래프트 비어의 선택은 탁월했다. ‘국산 맥주’를 두고 세간에서 떠들던 맛 없다는 인식이 무색할 만큼.
서울 성수동에 1호 펍을 개점한 수제 크래프트 맥주 기업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는 최근 제1회 알파 브루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거머쥔 소식으로 세상의 이목을 끌었다. 아울러 컴퍼니의 대표 격인 ‘첫사랑’ 맥주가 30만 잔 이상의 판매를 돌파하는 등 상당히 핫한 국내 수제 크래프트 비어 컴퍼니로 자리매김했다. 그런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의 김태경 대표와 함께 성수동 모처에 위치한 수제 맥주 펍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주류세 이슈 및 수제 크래프트 비어의 전망 등 업계의 최전방에 있는 관계자의 생각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다음은 그 일문일답이다.
Q. 수제 크래프트 비어 업계에 어떤 계기로 관심을 두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A. 2010년도에 미국에 MBA 유학 갔을 때 처음 관심을 가졌다. 이후 취미로 마시다가 본격적으로 하게 된 계기는 2014년도에 홈브루잉 써클에 있는 사람들과 같이 이태원에 펍을 낸 것이 계기였다. 2015년도에는 강남에도 맥주 선술집을 하나 냈다. 아쉽게도 잘 안 됐었다.
Q. 2015년 외부유통법 해금 이후, 근래 주류세 역시 해금의 조짐이 보인다.
A. 저도 그 덕에 본격적으로 창업에 뛰어들게 되었다. 그래서 씨서론(cicerone)이라는, 한국 사람 중에는 최초로 비어소믈리에 자격증을 땄다. 맥주회사 컨설팅을 했던 비즈니스 경험도 유용하게 작용한 것 같다.
Q. 주류세 이슈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분명 있을 것 같은데.
A. 우선 분류하자면, 종량세는 생필품에 매기는 법이고 종가세는 사치품에 매기는 세금 계산법이다. 한마디로 아직도 우리 세법상에서는 술이 사치품이다. 이건 못 먹고 못살던 시대의 잔재이다. 심지어 그걸 시도한 일본조차 80년대에 폐지를 했는데, 우리는 그보다 30년 더 늦게 폐지가 되고 있다. 종가세는 원가에 세금을 매기는 것이다. 문제는 그 원가에는 원재료 외에도 인건비, 임대료 감가상각까지 포함된다. 좋은 재료가 다가 아니다. 좋은 장소, 좋은 인력, 좋은 재료, 좋은 기계를 쓰면 쓸수록 세금이 더 비싸진다. 이상하게 혁신을 할 수 없게 만드는 법이다. 그러니 국산 맥주가 이 모양이다.
Q. 그래도 최근 정부의 주류세 부과 방침이 획기적으로 바뀌었다. 이에 관한 국내 수제 크래프트 비어 업계의 입장과 향후 시장 전망에 대한 의견을 들려달라.
A. 변경될 예정인 주류세 방침은 무조건 대환영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만드는 제조가격도 저렴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소비자가가 내려가거나 점주들의 중간이윤도 개선될 것이다. 특히 우리는 이미 최고의 재료를 쓴다. 소비자에게 판매되는 가격이 낮아지면 맥주에 대한 소비자의 접근성도 더욱 넓어지지 않을까?
Q. 현재 시중에서 수제 크래프트 비어는 통상적으로 어떻게 유통되고 있는지,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의 경우에는 어떻게 맥주를 유통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A. 통상적으로 펍인 것 같다. 수제 맥주가 들어가려면 냉장고가 있어야 한다. 냉장고 가격이나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점주들은 투자하기가 쉽지 않다. 신규 점포들은 처음부터 크래프트 맥주를 서너 개 정도 넣을 생각을 하고 만드는 경우가 많지만, 기존 점포들은 어렵다. 고깃집 같은 경우는 주방이나 냉장고에 여유가 있어서 수제 맥주를 뽑는 경우가 많다. 사실 대부분은 호텔 레스토랑, 카페 등에서 그나마 유통이 되는 것 같다.
Q. 최근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홈 브루어리 기기를 출시했다. 이러한 발상이 수제 크래프트 비어 시장에서도 향후 먹힐 만한 요소라고 보는지?
A. 사람들의 관심 부분에서는 도움은 될지 몰라도 솔직히 기업 홍보로는 영향이 미미하다. 아직도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복잡하거나 메뉴가 많으면 알아서 달라고 하시지만 이런저런 말이 많다. 그런 분들도 이제는 점점 다양성에 노출되는 인생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커피도 처음엔 설탕 커피, 프리마 커피가 다였는데 지금은 아메리카노, 캐러멜 마키아토 등 다들 여러 가지로 나름의 커스터마이징을 한다. 이것이 다 교육의 효과가 아닐까? 바리스타 교육, 소믈리에 교육 등 여러 가지가 많이 생기면서 사람들의 입맛이 점점 고급화되고 자신의 취향에 대해 디테일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주는 것 같다.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되는 것! 시작은 90년대에 와인, 커피. 2000년대에는 조금 더 다양한 음식들이었고 이제 술까지 왔다. 점점 더 전통주, 맥주 등의 차례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Q. 향후 수제 크래프트 비어 시장의 전망은 어떻게 될지, 전통주와 비교해서 이야기한다면?
A. 전통주와 맥주는 시장이 다르다고 본다. 곁들어 먹는 음식이나 이런 것도 다르다. 하지만 시장은 같이 커 갈 것으로 본다. 사실 수제 맥주 시장이 아직 그렇게 크지는 않다. 그래도 최근 일본 맥주 불매운동으로 인해 조금 혜택을 받고 있지 않을까 싶다. 일본 맥주가 빠지면서 국산 맥주를 받는 매장들이 늘었기 때문.
Q. 진짜 ‘국산 맥주’라면 그 원료까지도 국내산을 써야 한다는 농어촌계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다. 로컬 맥주의 붐 앞에서, 국산 맥아가 힘을 못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A. 어떻게 보면 의도가 있어서 하시는 말씀 같다. 그렇지만 이 말을 하려면 우선 맥주용 보리를 국내에 심어서 어느 정도 생산량이 안정적으로 나오게 만든 후에 왜 안 쓰냐고 물어야 한다. 일단 사업하는 사람들은 가격과 생산성이 제일 중요하다. 자선사업을 하는 것도 아닌데, 더 비싸고 비효율적인 것을 국산이라는 이유만으로 쓰라고 하면 사실 할 말이 없다.
Q.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놀랐다. 맥주 원재료의 완벽한 국산화가 그만큼 요원한 일인지?
A. 솔직히 국산 재료로 대량생산을 하기 어렵다. 맥주를 만드는 맥아는 품종이 정해져 있다. 평균적으로 두줄보리를 보통 쓴다. 한국에서 생산되는 것은 보통 여섯 줄 보리다. 생산에 쓸 수는 있지만, 효율이 어마어마하게 떨어진다. 사람이 먹는 포도와 와인을 담그는 포도의 품종이 다르듯, 맥주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홉, 보리, 효모로 이루어지는 삼중주가 맥주의 맛을 결정한다. 이 효모조차도 100% 수입에 의존하는 현실. 저희도 지금 모회사와 함께 국산 효모 개발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데, 이것도 최소 3년이 걸린다. R&D의 영역인 셈이다. 아직은 좀 더 일선 농업계의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Q. 흡사 아직은 수제 맥주의 진정한 ‘붐’이 오지 않았다는 말로도 들린다.
A. 수제 맥주가 종량세로 활성화되는 부분도 원재료는 일부일 뿐이다. 인력, 장비, 임대료 여러 가지를 같이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소비자들의 수준은 앞으로도 점점 높아질 것이다. 가령 네 캔 만원이라는 프랜차이즈 편의점 맥주 시세 역시 이러한 소비자들의 수준을 무시하는, 시장경제에 반하는 행동이다. 가격선을 정해놓고 여기 가격을 다 맞추려는 의도 자체가 퀄리티 프리미엄과 브랜드 프리미엄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니까.
Q. 대체 수입 맥주는 어떻게 네 캔 만원에 팔고도 이윤이 남는 것인지 궁금하다.
A. 수입 맥주는 평균적으로 네 캔 만원보다 원가가 싸다. 심지어 그리스 맥주, 리투아니아 맥주, 터키 맥주 등 전 세계 어느 시장을 가도 찾을 수 없는 수입 맥주를 우리나라에서는 마실 수 있다. 세금 제도 때문이다. 낮게 신고하여 싸게 팔고 본국으로 환송하면 돈을 버는, 그런 기회를 우리 정부가 외국 맥주회사에는 다 열어주었다. 덕분에 편의점 맥주 매대는 전 세계 맥주 각축장이다. 심지어는 마트에서 독일에서 팔지 않는 독일 맥주를 판매하는 형편. 반면에 국산 수제 맥주는 원가가 훨씬 비싸다. 사실 가격이 다 달라야 정상 아닐까?
Q. 창업 선배로서, 맥주 관련 분야 창업을 희망하는 도전자들에게 조언해준다면?
A. 저는 기본적으로는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맥주에 대해 공부를 많이 했고, 사업적으로도 역시 공부를 많이 했었다. 자격증도 따고 펍을 운영하는 등의 경험을 많이 쌓기도 했다. 일단 창업하기 전에 공부를 좀 많이 해야 한다고 본다. 기존의 생맥주와는 시장도 자재도 많이 다르다. 맥주의 사입, 보관, 서빙, 코드 페어링이라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없이는 똑똑한 소비자들에게 쉽게 무시당할 수 있음으로 주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