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만난 것은 뜨거운 태양과 건조한 대지가 만나 모래 바람을 일으키던 8월의 어느 날이었다. 나는 응고롱고로 국립공원을 나와 만야라 호수가 펼쳐진 음토와음부로 왔다. 스와힐리어로 모기의 강이라 불리는 곳이다. 탄자니아에서 아루샤 다음으로 많은 마사이족이 사는 곳이다. 나는 운이 좋게도 며칠을 마사이족과 함께 보내며 그들 삶 일부분을 경험할 수 있었다.
마 ‘Maa’의 언어를 말하는 자. 바로 마사이 족이다. 동아프리카 케냐와 탄자니아에서 반유목을 하며 사는 부족으로 우리가 가장 많이 들어봤을 법한 아프리카 부족이다. 수 천 년동안 자신의 문화를 잃지 않고 보존해 오고 있는 흔치 않은 부족 중에 하나이다.
탄자니아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 아루샤에서 응고롱고로 분화구로 가는 길에는 우리나라 초가집과 비슷하게 생긴 여러 토담집이 모여 작은 마을 단위를 이루고 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바로 마사이 족이 사는 곳이다. 보통 한 식구가 한 마을 단위라고 보면 된다. 내가 방문했던 곳은 몰레라는 성을 가진 마사이족이 사는 마을이었다. 그곳에는 60이 조금 넘은 마을의 연장자이자 어머니인 시실리아와 그의 첫째아들 카쿠유와 둘째 아들 응두야이가 각각 가정을 이루며 살고 있었다. 카쿠유는 30살이다. 한 명의 아내와 네 명의 자식을 두고 있다. 둘째 아들 응두야이는 26살로 한 명의 아내와 두 명의 자식이 있다.
이곳의 아침은 붉은 태양이 지평선 위로 모습을 드러내면서 시작된다. 밤새 하이에나와 재칼로부터 가축과 마을을 보호한 카쿠유와 응두야이는 소와 함께 우리에서 아침을 맞이한다. 소는 마사이족의 가장 소중한 재산이자 양식공급원이다. 그러므로 소가 머무는 곳은 마을에서 가장 중심부에 있다. 그리고 그 주변을 가시덩굴이 둘러싸 보호하고 있다.
아침이 오면, 두 아들은 소가 어디 아픈 곳은 없는지를 확인한다. 밤새 함께 있었고, 소 옆에서 밤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아침에 일어나 다시 한 번 소의 상태를 확인한다. 그들이 얼마나 소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그러는 사이 그들의 아내와 여자아이들은 소의 젖을 짠다. 젖을 짜는 역할은 여자들의 몫이고 소를 지켜내는 일은 남자들의 몫이다.
마사이족은 남자와 여자의 일이 분명하게 나뉘어 있다. 남자는 집안을 일으키고, 가축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여자는 아이들을 기르고 음식을 하며 가정을 돌보는 역할을 한다. 남자는 여러 명의 아내를 둘 수 있지만, 여자는 한 남자와만 결혼해야 한다. 남자는 아버지가 정한 여자를 첫 번째 아내로 둔다. 여자는 아버지의 말을 거역할 수 없고, 자신의 의견을 낼 수 없다. 두 번째 아내는 남자가 결정하며, 여자의 아버지가 동의하면 결혼은 성사된다. 역시나 여자의 의견이 낄 틈은 없다. 지극히 남성 중심적인 사회이다. 거친 야생으로부터 부족을 지켜내기 위해서 남자는 전사가 되어야 했으며 그런 틈에서 강한 자 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기에 자연적으로 힘이 중심이 되는 사회가 된 것이다.
내가 도착했었을 무렵 몰레 가족들은 막 짜낸 우유로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는 7개의 집 중 카쿠유가 사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은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들어졌다. 나무로 골격을 만든 뒤 마른 소똥을 물에 개어 나무 사이사이를 채워 넣어 동그란 형태로 벽을 쌓은 뒤 그 위를 마른 풀을 엮어 지붕을 얹었다. 집의 형태는 전체적으로 달팽이 모양이었는데, 이는 바깥에서 부는 강한 바람이 내부에 들어오지 못하게끔 하려는 의도였다. 내부는 벽 사이사이로 난 작은 구멍에서 들어오는 몇줄기 햇볕이 전부였다. 집안 가운데에서는 모닥불을 피고 집안을 데워주는 공간이 있었고 주변에 두 개의 문이 없는 작은 방이 있었다. 한 곳은 아내와 카쿠유가 쓰고, 다른 한 곳은 네 명의 아이들이 자는 공간이었다. 집안을 크게 만들지 않는 이유는 지극히 간단했다.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유목민인 마사이 족은 몇 년간 이곳에 살다가 마을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그렇기 때문에 큰 집도 큰 장소도 필요하지 않다.
마사이족은 아침과 저녁 하루의 두번 식사를 한다. 아침에는 우유에 물과 나무의 뿌리를 넣어 끓인 차를 마시고, 저녁에는 소의 피나 고기를 먹는다.
우리는 모닥불 주변에 둘러앉아 끓인 짜이를 마셨다. 맛을 내기 위해 나무껍질을 갈아 만든 향신료를 넣었는데 그 맛이 인도의 차이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음식에 맛을 내기 위해서 마사이 족은 300개가 넘는 향신료를 사용한다. 이 모든 향신료는 자연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로 나뭇잎, 껍질, 줄기, 뿌리 등으로 구성된다. 소금이나 설탕 등 조미료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너무도 마사이스러웠다. 이들은 소금이 음식에 맛을 낸다고 생각하고, 소금을 먹으면 자신의 피에 맛이 깃든다고 믿었다. 피가 맛있어지면 자연스럽게 사자나 다른 위협적인 야생동물이 자신을 먹이로 보고 위협할 수 있으므로 이들은 소금이나 설탕을 먹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카쿠유의 큰아들은 책가방을 메고 근처에 있는 학교로 갔다. 누구나 다 학교에 다니진 않는다. 남자들만 그중에서도 아버지가 선택한 똑똑한 아들만 학교에 갈 수 있다. 교육시스템은 초등학교 7년 중, 고등학교 4년으로 총 11년 과정이다. 초등학교는 일 년 학비가 약 3만 원이고, 고등교육은 일 년에 33만 원 정도 된다. 한달 수입이 10만 원도 되지 않는 이들에게는 교육비는 큰 부분을 차지한다. 학교에서는 영어, 스와힐리 등 언어교육을 중심적으로 받고 이외에 수학, 과학 등 기초과목도 공부한다.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은 소를 몰러 나간다. 마사이족의 상징인 긴 막대기를 들고 말이다. 만야라호수 근처에서 자란 풀은 짠 기가 돌아 소가 좋아하지 않아 호수의 반대편으로 간다고 했다. 소를 모는 건 아이들의 몫이고 소에게 물을 찾아 먹이는 건 남자의 역할이었다.
그동안 여자들은 집안에서 소똥을 개어 집안을 보수하거나, 땔감을 찾거나 액세서리를 만든다. 가끔 이웃을 방문해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여자아이들은 집에 남아 엄마를 돕는다.
해가 뉘엿뉘엿 지평선에 가까워지면, 남자와 아이들은 소를 몰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집에서는 저녁을 준비한다. 내가 방문했을 때 이들은 소 피와 고기를 먹었다. 소 피를 얻기 위해서, 소를 죽일 줄 알았는데 그들은 적당한 양만을 취했다.
작은 소는 피를 뽑지 않고, 100킬로 정도의 소에서는 1리터를 200킬로가 넘는 소에서는 약 5리터의 피를 뽑았다. 활을 쏴 뾰족한 화살촉으로 소의 목 부분을 살짝 뚫으면 그 작은 구멍으로 피가 흘러나온다. 이 피를 소시지 나무 열매 통에 담은 뒤에 응고되지 않게 화살촉으로 피를 저어준다. 그리고 신선한 피를 가족이 함께 나눈다. 소 피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마신다. 신선하게 그냥 마시기도 하고, 우유를 넣고 끓여 마시기도 한다. 우기에는 좀 더 자주 마시고, 건기에는 조금 덜 마신다고 했다.
고기를 먹기도 하는데, 내가 간 날은 양을 잡았다. 고기는 모닥불 옆에서 통째로 굽고, 심장이나 허파 등의 내장은 물에 넣고 향신료와 함께 끓여 익힌다. 어느 정도 익으면 꺼내어 칼로 잘라 먹는다.
고기를 먹고 난 뒤에는 소화를 돕기 위해서 나무 뿌리를 끓인 국을 마신다. 마사이는 채소나 과일을 먹지 않는다. 건기에 우유나 소 피가 부족해지면, 시장에서 옥수수 가루를 사다가 떡과 같은 폴렌타를 만들어 먹기도 하지만, 그게 전부이다. 소 피나 고기를 먹을때는 남녀가 함께 먹지 않는다.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먹는 게 이들의 전통이다. 이들은 아주 적은 양을 꼭 필요한 만큼만 먹는다. 그래서 지방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한 근육질 몸을 가지고 있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어느덧 해가 수평선에 가까워 지면, 이웃 주민들이 마을을 찾아 온다. 이들은 함께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 긴 막대기를 들고 하늘에 닿을 듯 말듯한 춤을 춘다. 더 높이 오르는 자가 춤의 경쟁에서 승리한다. 여자들은 어깨를 앞 뒤로 흔들고, 무릎을 접었다 펴며 목에 걸린 둥그런 쟁반 같은 악세사리로 소리를 내며 노래한다.
춤과 노래는 해가 지고 달이 뜰 때까지 계속된다. 반짝이는 남쪽 동네 별들이 이들을 비추어 주면 어느덧 마사이족의 하루가 저물어 간다. 수 천년 동안 같은 모습으로 같은 문화를 가지고 살아온 마사이족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오늘과 많이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