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로상은 한 분야에 인생을 바친 사람 중 동종업계 선후배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분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한 해 동안 바짝 열심히 해서 받는 상이 아니다. 지나온 세월을 온전히 투자하면서, 전문가의 구력이 물씬 풍겨야 한다. 전 세계 도시 후보군 중 공로상을 준다면, 그 상위에 ‘로마’가 포함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로마를 여행할 때 걸음걸이에도 공들인다. 존경의 자세로 임한 여행에서 겸손도 배우고, 성찰도 익혔다. 종교의 전당에서는 평화의 숨을 받아들였다. 숙소에 들어와서도 그 흐름은 이어진다. 잠이 들기 전, 과거로 회귀하는 급행열차에 탑승한다.
무료로 관람하는 실외 박물관. 하늘이 열려 있는 박물관이 로마다. 도로가 동선이 되고, 양쪽에 서 있는 건물과 유적지가 전시물이다. 로마 사람들은 박물관 관람이 일상이라 봐도 무방하다. 집에서 나와 슈퍼마켓으로 가는 길에 콜로세움이 서 있으니. 내성이 생겨서 그렇지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로마를 5일 안에 보고 느낀다는 것 자체가 송구스럽다. 날 선 비판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에너지를 얻어가는 게 도리일 듯싶었다. 웅장하다는 표현은 이미 콜로세움에서 소비해 버렸다. 손에 쥐고 있는 표현 카드가 모자랄 정도다. 10월의 로마는 뜨겁다. 날씨조차 만만치 않게 쨍쨍하다. 햇빛에 반사된 돌 하나에도 연륜이 보이고, 카메라 셔터가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아직도 로마는 유적지 발굴 진행형이다. 고고 사학을 배우는 학생, 교수,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사람들이 붓을 들고 유적지 안을 조심히 어루만지고 있다. 포로 로마노(Foro Romano). 마치 프라 모델 상자를 열어놓은 풍경이었다. 제멋대로 널려 있는 돌들을 곧이 세워서 조립, 완성해야 할 것만 같았다. 사람들의 작업 속도는 한없이 느렸다. 그 속도를 가늠해보니, 늙어서 영면에 들어간 후에도 이루지 못할 과업 같아 보였다. 하지만 조급한 기색은 없다. 늘 해왔던 손놀림으로 각자의 위치에서 열일 중이다. 한 걸음 뒤에서 바라보는 우리에게는 일하는 모습조차 좋은 볼거리다. 폐허의 미학이라고 해야 할까. 로마의 지는 해를 현재 시점에 맞춰 보는 기분이 든다. 사실주의가 흥건하기보다는 이상주의적인 요소가 강한 곳이다. 상상력이 발동하여, 마냥 서서 지체하는 시간이 늘어만 간다. 세계적인 여행지임을 가늠할 수 있는 건 간단하다. 가이드를 선두로 하여 뭉쳐 다니는 패키지 여행객들과 자주 어깨를 부딪친다. 그중 낯익은 동양인의 얼굴도 보였다. 눈이 마주쳤을 때의 반응이나 옷차림만으로 한국인 임을 직감했다. 슬쩍 귀를 열어, 가이드의 해설을 들어본다. 포로 로마노는 고대 로마를 움직이는 시발점이며, 우리나라의 국회와 같은 역할을 담당했다. 황제, 정치인, 지식인 그리고 시민들이 운집한 광장이었다. 약 1000년 동안 로마의 심장 역할을 하다가 4세기 말 서고트 족의 침입으로 파괴되었다. 영원한 군림은 없는 법. 원로원, 로물루스 신전, 2개의 개선문 등 과거의 흔적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크게는 신전, 바실리카, 기념비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티투스 황제 개선문, 막센티우스 바실리카, 베스타 신전, 원로원,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 개선문 등을 볼 수 있다. 발굴은 진행형이라 과거의 영광은 미래가 다가올수록 더 드러날 것이다. 로마는 주연급 유적지가 많아서 조연들은 간과되는 경우가 잦다. 한 도시에 유명한 광장은 거의 하나뿐인데, 로마에는 여러 개가 있다. 나보나 광장(Piazza Navona)은 사면이 건물로 둘러싸여 있어서 하늘이 뚫은 아지트 같았다. 그 건물은 도미티아누스 원형경기장이 없어진 이후 교황의 가족이 살았던 궁전과 성당으로 지어졌다. 성당 앞에는 큰 오벨리스크가 서 있고, 베르니니가 조각한 네 강의 분수(Fontana dei Quattro fiumi)가 역동적인 조각품들을 쓸어내리고 있다. 당시 각 대륙에서 가장 긴 강을 표현한 분수다. 아메리카 대륙의 라플라타 강, 유럽 대륙의 다뉴브 강, 아시아 대륙의 갠지스 강, 아프리카의 나일 강이 네 강의 분수에서 묘사한 강이다. 각자의 강을 상징하는 오브제가 있는데, 라플라타 강은 기이한 동물과 선인장, 다뉴브 강은 말, 갠지스 강은 뱀, 나일 강은 사자와 야자수가 그것이다. 분수 뒤로 이곳의 또 다른 매력이 보인다. 예술인들의 점거(?)다. 자판을 깔고 앉은 상인, 캔버스를 걸고 누군가를 그려주는 화가, 이미 완성한 작품들을 진열하며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는 예술인. 특별히 준비된 벤치는 없지만, 분수 주위의 턱에 요령껏 앉아서 광장의 여백을 채우는 관광객들. 주인공은 아니더라도 로마의 신스틸러 정도는 가능한 광장이다. 토르 디 노나 강변로(Lungotevere Tor di Nona)에 다가가니 산탄젤로 성(천사의 성) (Castel Sant’ Angelo)을 안게 된다. 산탄젤로 다리를 건넌다. 산탄젤로 다리의 원래 이름은 ‘아엘리우스 다리(Pons Aelius)’다. 아엘리우스 다리가 무너지고 난 뒤 산탄젤로가 현재까지 군림하고 있다. 다리를 버티는 아치가 단단해 보인다. 다리를 재탄생시킨 주인공은 나보나 광장의 ’네 강의 분수‘를 제작한 바로크 거장 베르니니다. 베르니니의 전유물로 로마의 여행 감을 이어간다. 산탄젤로 성은 원래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영묘였다. 로마제국의 역대 황제의 뼈도 묻혀 있는 곳이다. 청동 천사상이 저 끝 첨탑 위에 서 있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의 환영을 재현한 거란다. 그 환영은 즉, 590년 한 천사가 그 앞에서 나타나 전염병의 종식을 알리며 피 묻은 검을 칼집에 꽂았다고 한다. 실제로 산탄젤로 성은 한때 악명 높은 감옥이었다. 테르미니 역으로 가는 길이다. 피렌체로 가기 전에 마지막 볼거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유산으로 점철된 공화국 광장이 나타난다. 희한한 비주얼의 건물이 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목욕탕(Baths of Diocletian)의 흔적이다. 웅장한 규모가 인상적인 산타마리아 델리 안젤리 성당(Santa Maria degli Angeli)의 파사드는 입구부터 중앙 홀까지 찬란했던 고대 로마 석공예 기술의 한 획을 보여준다. 공화국 광장에는 우아한 조각품과 그 주변을 도는 자동차의 소음으로 섞여 있다. 19세기 말부터 공화국 광장은 새 모습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호수와 강, 바다, 지하수 요정들의 나체 조각상이 세워진 나이아디 분수(Fontana delle Naiadi)는 큰 논란의 중심이었다. 분수 중앙에서 물의 신 글라우쿠스(Glaucus)가 물고기와 씨름하는 동안 이 여인네들은 그저 즐거운 물놀이에 정신이 없다. 팜므파탈의 요염함이 진하게 그려졌다. 이 분수 주위로 자동차가 돌면 사고를 면할 수 있다는 미신이 있어서 그런지 유난히 차가 많다. 분수의 스토리텔링만 들어도 그 카리스마는 영원할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