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한창이다. 이 계절만 되면 인기의 제철을 맞는 과일이 있다. 바로 딸기다.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는 물론이고, 작은 개인 매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새빨간 딸기 포스터가 내 눈에 들어온다. 문득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든다. “딸기의 제철이 정말 겨울 맞아?“
[딸기는 어쩌다 겨울이 제철이 되었나?]
수요와 공급이 증가하는 시점을 제철이라 한다면, 딸기의 제철은 겨울이 분명 맞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과일이 한겨울에 열매를 맺는 제철일 수 있을까? 사실 딸기의 자연 순리적 제철은 봄과 여름 사이인 5월쯤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먹고 있는 딸기는 어쩌다 제철이 겨울이 되었을까? 원인은 기술의 발전이다. 온도 조절에 용이한 하우스재배를 통해 겨울에도 딸기를 재배할 수 있게 됐다. 또, 겨울을 비롯한 사계절 내내 생산할 수 있는 딸기품종을 개발하면서 딸기는 겨울에도 먹을 수 있는 과일이 되었다. 특히 국내에서 개발한 ‘설향’ 덕에 겨울딸기는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겨울딸기가 제철이 된 결정적 이유는 사실 ‘맛’이다. 앞서 말한 자연 순리의 제철인 4~6월에 재배되는 딸기를 우리는 ‘노지딸기’라 한다. ‘노지’는 하우스와 같은 시설 없이 논과 밭에서 재배한 작물을 말한다. 즉 땅에 심어 키워낸 딸기다. 안타깝게도 ‘노지딸기’는 맛이 없다. 아니 정확하게는 대부분의 소비자가 원하는 딸기가 아니다. 원인은 당도다. 일반적으로 초여름에 수확하는 노지딸기의 경우 꽃이 피고 수확까지 30~45일이 걸린다. 반면 겨울은 60~70일 정도다. 기간은 과실의 성숙에 기여하게 된다. 그리고 낮은 온도에서 천천히 숙성한 딸기는 그렇지 않은 딸기에 비해 축적하는 양분이 많아진다. 또 치밀하고 단단한 조직을 형성하고, 당 함량도 더 많아진다. 결국 하우스 재배한 겨울딸기는 단맛이 특별히 도드라지는 과일이 된다. 높은 온도에서 자라, 숙성기간이 짧은 노지딸기의 경우 당도에 있어 겨울딸기에 당할 수 없게 된다.
[과일도 상품, 선택은 결국 소비자의 몫]
딸기가 겨울에 제철이 된 이유는 기술의 발전에만 있지 않다. 결국 그 이전에 소비자들의 선호가 있다. 계절상 겨울은 상대적으로 소비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과일의 가짓수가 다른 계절에 비하면 적다. 겨울에도 딸기를 먹고 싶은 소비자들의 선택에 결국 겨울딸기는 다른 과일에 비해 더 높은 가치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기업들의 마케팅도 겨울딸기의 수요를 올리는 데 크게 한몫한다. 조금은 재밌는 관점인데, 겨울에 해당하는 연말과 연초에는 여러 행사, 기념일들이 많아 케이크의 수요가 급증하는 시기다. 크리스마스 케이크라고 하면 이해가 쉽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케이크는 새하얀 생크림 위에 새빨간 딸기가 토핑으로 올라가는 생크림 딸기 케이크이다. 새하얀 생크림과 딸기의 색이 강렬하고 또, 맛도 좋아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소비되는 디저트의 형태가 된 것이다. 혹자들은 이러한 배색이 크리스마스 산타의 이미지를 연상케 하는 효과가 있다고도 한다. 이처럼 겨울딸기 수요가 증가한 만큼 공급이 많아지게 되고, 또 식품업계, 외식업계에서는 이에 맞춰 딸기를 활용한 메뉴개발과 마케팅을 공격적으로 진행하게 된다. 대표적으로는 대형 호텔들의 딸기 뷔페, 카페들의 딸기를 활용한 시즌 마케팅이다.
겨울철만 되면 시작하는 F&B 업계의 딸기 전쟁의 원인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렇다면 ‘겨울딸기’와 관련해 우리가 생각해 볼 만한 지점은 무엇일까? 먼저 제철에 대한 생각이다. 사계절 내내 생산할 수 있는 시설과 품종의 개발로 자칫 생각해 보면 소비자들에게 이로운 방향이지만 조금 더 입체적으로 생각해 보면 겨울딸기의 가치상승으로 노지딸기의 가치는 점점 매력을 잃고 경쟁력을 잃고 있다. 제철은 단순히 수요와 공급으로만 맞춰지는 기계적인 의미만은 아니다. 각 계절에 먹어야 가장 맛있는 식재료의 역할과 맛의 의미도 제철이다. 딸기 맛의 본질은 결국 당도일까? 이는 단순히 겨울딸기만의 문제는 아니다. 시설재배로 키워낸 딸기는 숙성기간이 길어 당도가 높고 산미가 적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딸기에는 적당한 산미가 있어야 한다. 특히 좋은 땅에서 자란 딸기의 경우 딸기 본연의 향을 내뿜으며, 적당한 산미까지 있다. 당도는 물론이다. 겨울딸기가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의 초점은 다양성이다. 당도만 강조되는 겨울딸기가 제철을 바꾸면서 여름이 제철인 노지딸기의 경쟁력이 줄어드는 것이 문제다. 경쟁력이 줄어들면 결국 투자를 하는 사람이 없어진다. 그렇게 결국 노지딸기는 역사로만 남을지도 모른다.
과일이 점점 달아진다. 정확히는 달아지기만 한다. 과일은 달아야 하는 식재료일까? 산미와 향은 과일의 매력이다. 단맛만 과일의 매력이 아니다. 제철이 바뀐 딸기를 보면서 내가 아쉬운 것은 결국 맛있는 딸기의 기준이 변하는 것이다. 겨울철만 되면 빨갛게 물드는 딸기 마케팅이 조금은 씁쓸하게 보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