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야? 뭐하는거야?”
“몰라, 검색해봐?”
3월 19일 토요일, 신도림역 디큐브시티 야외 광장. 쇼핑하러 온 쇼퍼들이 녹색으로 물든 광장을 보곤 눈이 휘둥그레진다. 뭔지 모를 축제의 기운을 받고 블랙홀처럼 광장 안으로 끌려 들어온다. 외국인들도 축제에 동참하는 가운데, 뭔가 특별한 행사가 시간을 태워버리고 있었다.
세인트 패트릭 데이 St. Patrick’s Day. 줄인 말로 패디스 데이 Paddy’ Day라고 부르는 이 축제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 축제의 근간을 알려면, 세인트 패트릭이 뭔지 알아야 한다. 다른 말로 ‘성 패트릭’. 바로 종교적인 냄새가 난다. 이 성인은 아일랜드에 최초로 기독교를 전파했으며, 그가 타계한 3월 17일에 성 패트릭을 기리는 축제를 매년 연다. 4세기 경, 아일랜드에는 원주민인 켈트족이 살았는데, 그들은 자연을 숭배하는 드루이드교 druidism를 신봉했다. 성 패트릭은 로마노 브리티쉬 집안에서 로마계 영국인으로 태어났는데, 켈트족에게 기독교를 전파하길 결심하곤 곧장 아일랜드로 넘어갔다. 단, 강요가 아닌 알기 쉽고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 기독교를 설파하였다. 기독교의 교의인 삼위일체(三位一體; 성부(聖父) · 성자(聖子) · 성령(聖靈))를 토끼풀 shamrock에 비유하며 이야기를 풀 듯 녹여냈다. 아마 엄청난 달변가이자 카운셀러가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무조건 믿어야 천국 갈 수 있다는 전도와는 분명 차별성이 존재했을 것이다. 자연스레 켈트족은 그의 설교에 감동받았으며, 기독교를 천천히 맞이하게 되었다.
녹색 나라를 보았는가. 대한민국은 붉은색이 대표색인 것처럼, 아일랜드는 녹색이 그에 해당한다. 이 녹색의 기원은 위에 언급한 샴록에서 비롯되었다. 당장 A매치 축구경기를 봐도 알 수 있다. 참고로 아일랜드 축구 1부 리그에서 ‘샴록 로버스 FC’는 최강팀이다. 다시 축제 얘기로 돌아오면, 이날 만큼은 아일랜드 전역이 녹색이다. 물론 아일랜드계 이주민이 많은 국가도 동참한다. 원래 이 기념일은 아일랜드의 국경일이었지만, 현재는 범세계적인 축제로 자리매김하였다. 그 이면에는 정부의 마케팅이 빛을 발했다.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르 언덕에 있는 사크레 쾨르 대성당에 초록색 조명이 켜지고, 시카고 강은 초록색으로 물들어 있다. 심지어 이슬람 국가에서도 녹색 바람이 분다. 대한민국이 이 축제에 참여하는 건 그리 어색한 상황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3월 17일에 가까운 토요일을 행사일로 정한다. 물론 정식 기념일 행사는 주아일랜드 대사관의 주최로 17일에 치러진다.
녹색 풍선이 나부낀다. 아이돌 콘서트 현장이 아니다. 오롯이 세인트 패트릭 데이를 위함이다. 목적 지향적으로 참여했건, 지나가다가 얻어걸렸건, 신도림역 디큐브시티 야외 광장은 인산인해다. 평상복을 입고 어색해하는 그룹, 녹색 커스튬이나 장신구를 하나 걸치면서 소심한 소속감을 보이는 그룹, 오늘 행사를 위해 머리부터 발끝 그리고 영혼까지 행사모드로 참여한 그룹. 각자 채도는 다르지만, 축제 속에서는 모두 녹색이다. 1시부터 메인 무대에서 행사가 진행되고, 그 주변 부스에서는 각자의 활동 움직임이 인다. 그런데 왜 이 행사가 외국인 많은 이태원이나 홍대가 아닌 신도림의 한 백화점 광장에서 펼쳐졌을까.
이는 한 대한민국 기업의 관심에서 시작되었다. 1, 2호선 신도림역에서 나오면 디큐브시티라는 백화점이 마천루 마냥 서 있다. 이 백화점의 모기업인 대성산업은 기업의 글로벌 문화 예술 장려의 방안으로 2009년부터 세인트 패트릭 데이 축제를 주관하였다. 한국에서의 아일랜드 문화는 거의 불모지와도 같은데, 이런 행사가 매년 진행되는 건 아일랜드를 사랑하는 필자로서는 고마운 일이다. 불행히도 난 아일랜드에서 세인트 패트릭 데이 행사를 체득한 적이 없다. 그 아쉬움을 매년 이곳에서 해소하는데, 아일랜드 현지의 숨소리를 100% 느낄 순 없지만 최대한 이 안에서 아일랜드를 찾으려 안간힘을 쓴다. 아일랜드에서 함께 생활했던 친구들과는 과거의 추억 앓이 용으로, 이 행사를 전혀 모르는 지인에게는 아일랜드 문화를 눈앞에서 보여주는 계기가 된다. 아일랜드에서 하는 정식 퍼레이드 행진 등은 없지만, 다양한 행사가 시간대별로 촘촘히 기획되어 있다.
원스, 리버 댄스, 케일리 댄스, 아이리시 음악, 기네스 맥주, 게일릭 축구, 피시 앤 칩스. 아일랜드란 나라를 설명하고 자랑하고 싶어도, 말로는 부족할 때가 더러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 이곳에 오면, 어느 정도 입이 덜 피곤하다. 메인 무대에서는 한국인들로 구성된 아일랜드 댄스그룹인 ‘탭풍 Tap Pung’의 전통 춤 공연과 아일랜드 전통음악을 연주하는 ‘지그 앤 릴 Jigs & Reels’, 아메리칸 포크 음악팀인 ‘보스 학원 Boss Hagwon’ 등의 공연이 아일랜드를 대중들에게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밴드 공연이 있었는데, 간 아늠 Gan Ainm이란 혼성 6인조 밴드이다. 송도에서 주로 활동한다는데, 연주 실력도 출중하고 흥도 충만했다. 이후 진행된 Fancy Dress Winners도 흥미진진했다.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샤이가이 Shy Guy 내국인보다는 Outgoing한 외국인 위주의 드레스 코스프레 경연대회였다. 이미 그들은 수상 여부와는 상관없이 본인 보여주기에 여념이 없었다.
5세기경 아일랜드에 복음을 전파한 성 패트릭도 이런 심정이었을 것이다. 어느새 아일랜드 전도사가 되어 열변을 토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비공식 아일랜드 홍보대사가 된 이상 멈출 수가 없었다. 비록 반나절의 행사였지만, 아일랜드를 추억하는 사람과 아일랜드를 알고자 하는 사람 모두에게 값진 시간이었다. 행사의 마무리는 역시 미각. 광장 안쪽에 들어가면 아일랜드 음식을 즐길 수가 있었다. 아이리시 스튜와 으깬 감자에 곁든 소시지는 아일랜드 소개의 마무리를 장식하는 데 충분했다. 행사는 6시에 마무리되지만, 홍을 이어갈 사람들은 이태원 등등에서 밤새 축제가 진행된다. 아이리시 펍에서 녹색빛 맥주도 마셔봐야 진정한 축제 마니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