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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vs 중국, 프랑스 vs 미국. 와인을 둘러싼 관세 힘겨루기

호주 vs 중국, 프랑스 vs 미국. 와인을 둘러싼 관세 힘겨루기

조나리 2021년 4월 12일

와인 애호가들에게 좋은 가격에 좋은 와인을 구하는 것만큼 신나는 일이 또 있을까. 다른 취미가 모두 그렇듯 와인을 즐기는 데는 돈이 들고, 다양한 와인을 접하며 경험의 폭을 늘리는 일에는 그보다 조금(?) 더 큰 돈이 든다. 마음 놓고 와인의 다양성을 즐길 수 없는 상황에는 각자의 빈약한 지갑 사정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 덜 개인적인 문제가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가끔은 국제 관계나 강대국의 정치 상황이 한 나라의 국민이 어떤 나라의 와인을, 어떤 가격에 즐길 수 있는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중국과 호주의 힘겨루기, 그리고 새로 꾸린 미국 행정부가 와인 산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소식이다.

[호주의 유명 와이너리 펜폴즈는 지난 2018년 중국술 바이주를 넣은 주정강화 와인 Lot.518을 출시했다.]

최대 시장 중국에서 밀려나는 호주 와인
중국은 호주 와인 수출 전체의 40%를 차지하는 거대한 시장이었다. ‘그랜지(Grange)’로 잘 알려진 호주의 국보급 와이너리 펜폴즈(Penfolds)는 쉬라즈에 중국술 바이주를 섞은 주정강화 와인 로트518(Lot.518)을 내놓기도 했으니, 호주 와인 생산자들에게 중국 시장이 얼마나 중요한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그런데 최근 중국인들의 호주 와인 사랑, 그리고 중국 시장을 향한 호주 생산자들의 적극적인 구애에 제동이 걸렸다. 지난 3월, 중국 상무부가 앞으로 5년간 호주 와인에 116%에서 218% 사이의 관세를 물리겠다고 발표했기 때문. 바이주 넣은 주정강화 와인까지 출시하며 ‘중국 사랑’을 강조했던 펜폴즈에도 예외는 없었다. 펜폴즈가 속한 트레저리 와인 이스테이트(Treasury Wine Estate) 와인에 대한 관세는 175.6%로 책정되었다.

 

표면적인 이유는 덤핑이었다. 호주가 시장 확보를 위해 비정상적으로 낮은 가격에 와인을 수출했고, 이 때문에 중국 내 와인 산업이 실질적인 타격을 입었다는 것이 중국 측의 주장이다. 그러나 국제 사회의 시각은 조금 다르다. 호주가 화웨이의 5G 네트워크 참여를 금지하고 코로나 바이러스 발원지에 대한 국제 조사를 요구한 데다 미국, 일본, 인도와 함께 안보회의체 ‘쿼드’에 참여하며 중국을 견제하는 상황에 대한 보복이라는 것.

진짜 이유가 무엇이건, 호주 와인에 제재를 가하겠다는 중국의 의지만은 더없이 확고해 보인다. 홍콩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는 지난달 31일 호주 파스페일리 그룹의 와인 8천 640리터와 린즈데일의 레드와인 2천646리터, 도합 1만 천 리터가량의 호주 와인이 중국 선전시에 압류되어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압류 사유는 라벨 불량과 첨가제 과다. 어마어마한 반덤핑 과세에 품질에 대한 문제 제기까지, 호주 와인의 중국 수출은 당분간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호주는 중국의 반덤핑 관세에 대해 WTO에 정식으로 문제 제기를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아시아의 다른 국가와 유럽, 미국 등으로 판로를 넓혀가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호주 정부는 농업 관련 산업의 새로운 시장 개척을 지원하기 위해 7,270만 호주 달러 (약 621억 5천만 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호주 와인 마시기 운동’도 눈길을 끌었다. 19개국 의회 의원 200명으로 이루어진 대중국 의회 간 연합회(IPAC: Inter-Parliamentary Alliance on China)는 양국의 무역 갈등이 심화된 지난해 연말#SolidaritywithAustralia(호주와의 연대) 해시태그를 내세우며 위기에 처한 호주 와인에 힘을 보태자는 목소리를 높였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월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와인에 대한 관세를 추가로 인상했다.]

‘지금이야!’ 미국에 불티나게 팔리는 부르고뉴 그랑 크뤼
‘무역 갈등’이나 ‘관세’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있으니, 바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다. 임기 내내 미국 우선주의와 강력한 보호 무역을 내세우며 중국과 이른바 무역 전쟁을 치르고,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수출 품목 관세를 상향 조정한 그는 백악관을 떠나기 직전에도 대서양 너머로 관세 폭탄을 투척했다. 퇴임을 일주일 남짓 앞둔 1월 12일, 프랑스와 독일에서 수입하는 항공 부품에 15%, 프랑스, 독일, 스페인, 영국의 스틸 와인에 25%의 추가 관세를 적용한 것. 안 그래도 코로나 여파로 어려웠던 유럽 와인 산업에 충격을 안겼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지난 3월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의 통화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오래된 항공기 보조금 문제로 불거졌던 이번 추가 관세 부과를 4개월간 유예하기로 한 것이다. 이에 미국의 와인 무역상과 수집가들은 어느 때보다 공격적으로 부르고뉴와 보르도의 와인을 사들이고 있다. 보르도의 와인 거래 기업 ‘보르도 인덱스’의 투자 책임자 매튜 오코널은 <드링크 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바이어들이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심정으로 보르도와 부르고뉴 와인을 빠르게, 그리고 많이 구매하고 있다고 전했다. 오코널은 관세 유예 소식을 들었을 때 프랑스 와인 수입이 늘어나리라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의 수요가 있을 줄은 몰랐다며 놀라운 심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현재 최고가에 거래되고 있다는 DRC의 그랑 크뤼 ‘라 타쉬’]

이같은 프랑스 와인 광풍으로 몸값이 오른 것은 주로 부르고뉴와 보르도, 두 지역의 탑티어 와인이다. 오코널은 도멘 드 라 로마네-콩티(Domaine de la Romanée-Conti), 도멘 자크-프레데릭 뮈니에(Domaine Jaques-Frédéric Mugnier) 같은 프리미엄 도멘의 그랑 크뤼 와인들이 10% 정도 오른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으며, 차상위급 와인에서는 이런 현상이 거의 관찰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조 바이든 행정부와 EU의 ‘일단 휴전’ 모드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양측의 힘겨루기 양상이 유럽 와인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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