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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트와 쿠페, 그리고 튤립. 샴페인을 담아내는 아름다운 잔에 대하여

플루트와 쿠페, 그리고 튤립. 샴페인을 담아내는 아름다운 잔에 대하여

노지우 2021년 11월 24일

사진 출처 : wineinternationalassociation.org

길고 가느다란 잔에 담긴 탐스러운 황금빛 기포는 샴페인하면 으레 떠오르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이 가느다란 플루트 잔이 샴페인 글라스의 대명사로 본격적 자리매김한 지는 채 100년이 안 되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샴페인이 탄생한 1600년대 후반부터 지금의 2020년까지는 위의 사진처럼 아주 다양한 모양의 샴페인 잔들이 등장했습니다. 각각의 명확한 장단점을 가지고 있는 잔들은 시대에 따라 그 인기를 달리했죠. 그간 이 아름다운 음료를 담아왔던 잔에 대해서 알아볼까요?

사진 출처 : www.grandcruwinefridges.com.au

[쿠페, Coupe]

쿠페는 아마 역사에서 가장 오랜 기간 샴페인을 담아왔던 잔일 겁니다. 샴페인이 탄생 이후 300년 정도는 쿠페 잔에 담겨서 서빙되어 왔다고 볼 정도로 그 역사가 길죠.

특히 쿠페 잔은 1734년 장 프랑수아 드 트로이(Jean-François de Troy)의 ‘Le Déjeuner d’Huîtres’라는 사냥 후의 굴 축제를 묘사한 그림에서 명확하게 등장합니다.

사진 출처 : wikipedia

요즈음의 쿠페보다는 조금 더 ‘종’에 가까운 모양이지만, 확실히 림이 넓고 퍼져있는 모습의 잔에 샴페인을 따르는 신이 난 사람들을 확인할 수 있죠.

이 쿠페 잔 모양의 유래에 관해서는 이야기가 참 많습니다. 주로 역사 속에 등장했던 유명한 여성들의 젖가슴을 본떠 만든 잔이라는 설이 많은데, 비운의 왕비였던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 루이 15세의 연인이었던 퐁파두르 부인(Madame de Pompadour), 나폴레옹 황제의 두번째 부인인 조세핀 드 보하르네(Josephine de Beauharnais)가 늘 후보에 오르곤 합니다.

사진 출처 : vogue.uk

물론 쿠페는 그들이 등장하는 18세기 말-19세기 훨씬 이전부터 등장했으니, 이 이야기는 그저 많은 이들의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다만 그 모양 덕분에 현대에 이르러서도 종종 그런 심볼로 등장하는데, 2014년에는 모델 케이트 모스(Kate Moss)의 25주년 모델 데뷔를 기념하여 34 Mayfair 레스토랑에서는 그녀의 왼쪽 가슴을 본뜬 쿠페 잔을 만들기도 했죠.

다만 안타깝게도 쿠페의 기능성은 현대에서 크게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과거의 샴페인은 지금보다 훨씬 더 달고 끈적했던 터라 종종 디저트를 담가 먹는 일이 빈번했고, 덕분에 그 넓은 잔 입구가 유용했었죠. 하지만 현대의 샴페인은 훨씬 더 드라이해졌고, 즐기는 법 또한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외려 넓게 개방된 쿠페 잔의 입구가 지나치게 빨리 버블과 향을 날려버리는 역효과를 주게 된 것이죠.

사진 출처 : www.crateandbarrel.com

[플루트, Flute]

오늘날 샴페인을 따라 마시는 가장 대표적인 잔이 되어버린 플루트가 탄생한 것은 1700년대입니다. 다만 본격적으로 그 대표적인 위치를 자리매김한 것은 1950년대라고 보는 의견이 많습니다. 쿠페의 단점을 상당 부분 보완한 플루트가 주목받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잔이 얇고 입구가 좁은 덕에 샴페인의 버블이 쿠페보다 상대적으로 덜 날아갑니다. 이러한 특징은 특히 연회에서 미리 따라두고 서빙하는 데에 큰 이점이 있었기에 더 인기가 있었다고 하네요. 또한 길쭉한 잔 모양 덕분에 정확한 양을 재며 따르기에도, 여러 명이 잔을 높이 들어 축배를 들기에도 적합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늘씬한 모양의 플루트는 샴페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어 대략 50년간 그 인기를 누려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플루트 잔에도 단점이 있죠. 바로 입구를 포함한 잔 전체가 워낙 좁은 탓에 담긴 음료의 향을 살리는 능력은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향은 맛과도 직결되는 부분이기에, 샴페인의 고소한 향과 감칠맛을 느끼지 못한다는 특징은 큰 약점으로 작용합니다.

Lehmann의 Grand Champagne Glass / 사진 출처 : www.lehmann-sa.com

[튤립, Tulip]

튤립 잔은 플루트와 쿠페의 모든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버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몸통은 넓게 벌어져서 샴페인이 공기와 맞닿는 표면적을 넓히고, 따라서 당연히 그 향은 훨씬 더 잘 살아납니다. 대신 입구는 다시 좁아지기 때문에 샴페인의 버블은 빨리 사라지지 않는 특징이 있지요.

실제로도 이러한 튤립 잔의 모양이 개발되는 데에 일조했던 사람들이 여럿 있는데, 필립 자메스 (Philippe Jamesse, Domaine Les Crayère의 헤드 소믈리에)도 그중 한 사람입니다. 2000년대 초, 플루트 잔에 워낙 만족하지 못했던 그는 레만(Lehmann) 유리 회사에 연락해 직접 원하는 모양의 잔을 만들 것을 제안했었죠. 가운데는 더 넓고,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형태로 개발되어 2008년 세상에 소개된 그 잔이 바로 레만의 레만 자메스 콜렉션 중 하나인 그랑 샴페인 글라스입니다.

물론 여전히 일부는 샴페인도 화이트 와인 잔에 따라 마시는 것이 가장 낫다고 할 정도로 의견이 분분합니다. 하지만 으레 그렇듯 와인을 마시는 데에 있어 정답은 없지요. 필자의 경우 위에 잠깐 등장한 레만의 튤립 잔을 가장 잘 쓰고 있긴 합니다만, 장소와 상황에 따라, 그리고 나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잔을 경험해 보며 샴페인이나 스파클링 와인의 묘미를 각각 즐겨보시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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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지우

“사고(buy) 사는(live) 것을 사랑하는 소비인간. 와인 소비의 즐거움에 빠져 버렸지.” / ed@mashij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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