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팻 매스니가 주는 내 영혼의 ‘양파 수프’

팻 매스니가 주는 내 영혼의 ‘양파 수프’

양수연 2019년 1월 22일

“제대로된 프렌치 양파 수프와 차원이 다른 음악”

깊은 겨울 밤, 사나운 눈보라가 오두막 주위에 휘몰아치고 모든 것을 뒤덮을 때야말로 철학을 할 시간이다.

                                                                                                                                    – 마르틴 하이데거 –

사유해야 한다. 밤새 한가득 눈이 내렸고, 하이데거의 말처럼 철학하기 좋은 시간이다.

니체는 말한다. 사유란 삶을 긍정하고 위계를 높여가는, 고귀한 삶을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삶을 긍정하는 능력으로서의 사유. 이를 함께 할 위대한 항해자들을 찾아낼 필요가 있다. 나에게는 니체, 라캉, 들뢰즈, 스피노자, 칸트가 있고 위대한 음악가들이 있다. 이들은 나의 사유의 영토에서 고통을 직시하고 삶을 긍정하게 한다. 울퉁불퉁하지만 매끄러운 눈길처럼 음악은 고통을 라미네이팅한다. 고통은 코팅되었지만 투명하여 속은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고통을 직시하면서 한없이 미끄러진다.

눈길을 뚫고 집에 왔고, 허한 속을 달래기 위해 치즈의 풍미가 가득한 프렌치 양파 수프를 끓였다. 그리고 팻 매스니라는 내 영토의 항해자를 모셨다.

새로운 차원의 매스니, The Way Up

팻 매스니 그룹의 <The Way Up>을 선택한 것은 14년 전 이맘때인 2005년 1월 25일에 발표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유로 나가고 싶은 1월의 방랑자에게 팻 매스니는 이 앨범으로 이렇게 제시하는 것만 같다.  “새로운 차원으로 나가라.”

기존의 팻 매스니 팬들도 당혹할 수 있을 만큼 이 앨범은 특별하다. 스토브탑에서 익어가는 양파처럼 깊고 진하다. 매운 향을 풍기지만, 맛은 달다.

<The Way Up>은 68분짜리 한 곡으로 만들었지만 Opening, Part One, Part Two, Part Three로 편의상 트랙을 나누었다. 이런 식의 ‘이름 없는’ 이름의 타이틀은 어떤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고 있음을 암시하며 청각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 앨범은 한 번에 흡수할 수 없다. 여러 번 청취하여 복잡하고 정교한 구성과 짧은 문구들을 채집해야 한다. 자세히 들으면 테마와 즉흥연주가 세세하고 짜임새 있게 디자인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바쁠 것이 없는 요리.

양파를 충분히 오래 볶아야 한다. 양파의 캐러멜 여부가 프렌치 양파 수프의 질과 맛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진한 갈색이 되도록 40~50여 분을 약한 불에서 인내를 가지고 볶아야 한다. 음악을 감상하며 만들기에 한없이 좋은 요리 아이템이다. 그저 들으면서 볶으면 된다. 처음에 오일을 두르고 볶다가 조금씩 오일과 수분을 더해 볶는다. 찌는 것이 아니다. 볶아야 한다. 타지 않아야 하므로 스토브탑에서 떨어져선 안 된다. 나무 주걱으로 저어주면서 자리를 지켜야 한다. 인내심이 필요할 뿐 바쁘지 않다. 다만, 귀와 뇌를 부지런히 움직이자. 사유하자. 매스니의 “새로운 차원”을 즐기자. 정교한 음의 조각들을 한껏 받아들이자.

현대 음악가 스티브 라이히의 음악을 좋아한다면 이 앨범에서 강한 친밀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팻은 작곡기법과 구성, 아이디어를 스티브 라이히에게서 얻었다고 말했으니까.

매스니 그룹 <The Way Up>, 2005 / Nonesuch

본 영상은 2005년 서울 라이브로 공식 DVD로 제작되었다.

프렌치 양파 수프의 역사는 고대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난한 자들이 쉽게 구할 수 있었던 것이 양파(어니언)였다. 볶은 양파를 고깃국물을 넣어 끓여 먹었고 지금처럼 빵을 넣고 치즈를 덮은 현대적인 모습의 프렌치 양파 수프는 18세기 프랑스에서 유행했다.

양파를 캐러멜화 했으면, 고깃국물을 넣을 차례이다. 시중에 판매하는 비프 스톡(Beef Stock)을 사용하면 좋지만, 고기를 고아 끓인 국물이면 무방하다. 명심할 것은 프렌치 양파 수프에서 천 번을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는 것은 딥(deep), 딥, 딥! 이다. 아주 진하고 흑갈색의 수프여야 한다. 캐러멀라이즈된 양파와 어두운 고깃국물. 나는 수프의 끝장이 프렌치 양파 수프라고 생각한다. 크림이 들어가는 흔한 수프가 아니다. 제대로 된 최상의 프렌치 양파 수프를 맛보면 땅의 재료 자체에서 나오는 그 딥한 물질성에 반한다. 그리고 그뤼에르 치즈를 덮는다. 아…이 뜨거운 수프 한 그릇을 위해 나의 저녁을 충분히 바칠 가치가 있다. 팻 매스니가  <The Way Up>을 통해 예술에 대한 헌신을 보여 주었듯, 나는 이 딥한 수프의 끝장을 위해 이 저녁을 기꺼이 헌신할 것이다.

규모와 야망, 실험적인 면에서 최상인, 팻 매스니의 대작 <The Way Up>을 들으며 수프를 음미하고 사유한다. 그래서 ‘새로운 차원’의 팻 매스니가 나왔던 1월은 그 음악만큼 딥해진다. 이 프렌치 양파 수프만큼 딥하고 또 딥해진다. 내 영혼도 딥해진다.

<프렌치 양파 수프 만드는 >

<재료>

양파 6개, 버터 2큰술, 드라이 쉐리(dry sherry) 1/4, 비프 스톡 8컵(쇠고기 육수), 드라이 타임 잎 1큰술, 월계수 잎 1장

바게트 (수프 1개당 1~2 조각 필요), 그뤼에르 치즈(Gruyère cheese), 사과 식초(Apple cider vinegar) 2큰술, 소금, 후추 적당량

<만들기>

프렌치 양파 수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양파를 캐러멜라이징(양파의 캐러멜화)하는 것이다.

50분 이상 단맛이 충분히 우러나면서 진한 갈색이 되도록 달달 볶아야 하는 것이 핵심.

1) 달군 큰 냄비에 버터와 오일을 넣고 채를 썬 양파를 넣는다. 처음엔 센 불에서 양파가 묽어지면 약한 불로 50분에서 1시간 정도 달달 볶는다. 타지 않게 볶아야 하므로 중간에 오일을 더 붓거나 물을 아주 ‘조금씩’ 부어가면서 볶는다.

2) 양파를 캐러멜화 했으면 드라이 쉐리를 붓고 자작하게 살짝 볶아준 뒤 바로 비프 스톡(고깃국물)과 타임, 월계수 잎을 넣는다.

4) 다 끓으면 소금 1큰술 정도와 후추로 간을 하고 맛이 서로 잘 들도록 20여 분 그냥 둔다.

소금은 처음부터 많이 넣지 않아야 한다. 치즈가 들어가므로 짠맛을 고려해야 한다.

5) 마지막으로 사과 식초로 마무리 한다.

6) 오븐용 수프 그릇에 바게트를 깔고 얇게 썰거나 다진 그뤼에르 치즈로 덮은 뒤에 국물을 붓는다.

7) 180도(화씨 350도) 예열된 오븐에 수프를 넣는다.

오븐 안에서 수프가 끓어 넘칠 수도 있으니 베이킹 트레이 위에 올려놓는다.

8) 약 10분 정도 치즈가 녹을 정도로만 익히고 서브한다.

매스니 그룹 <The Way Up>, 2005 / Nonesuch

연주자

Pat Metheny – acoustic guitars, electric guitars, guitar synthesizer, slide guitar, toy guitar, producer

Lyle Mays – piano, keyboards, toy xylophone, producer

Steve Rodby – acoustic bass, electric bass, cello, violin, producer

Cuong Vu – trumpet, voice, toy whistle

Grégoire Maret – harmonica

Antonio Sánchez – drums, toy xylophone

Additional musicians:

Richard Bona – percussion, voice, toy guitar

Dave Samuels – percussion

Tags:
양수연

Jazz critic, Jazz storyteller, Culinary artist. (재즈 비평가, 재즈 스토리텔러, 컬리너리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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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1. FRANKLIN Y. LEE 2019년 1월 23일

    글도 사진도 참 좋으네요. The Way Up 콘서트 본지가 벌써 14년이 지났다니… 그사이 펫은 얼마나 나이가 더 들었을까~ 가 아니라 이젠 제 나이도 그만큼 더 들었다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솔직히 어느 순간부터 메스니의 최근 음악/앨범들과 멀어진 감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덕분에 좀 찾아 들어봐줘야겠어요. 위 레시피를 보고 따라하는 것보다는 수연씨가 만들어주는 것을 먹어보고 싶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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