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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과 맥주만큼 다양한 굴의 세계: 굴에도 떼루아가 있다

찬바람과 함께 굴의 계절이 돌아왔다. 통영으로 상징되는 우리의 굴을 먹으면 입안 가득 바다를 닮은 짠 내와 바닷바람 냄새가 퍼진다. 조금은 기름기와 유기물의 달짝지근함이 느껴지는 조개와 비교해서 굴은 바다의 맛 그 자체이다. 씻어서 껍데기를 깐 후 바로 먹는 생 석화는 썰지도, 익히지도 않은 살아있는 동물을 원형 그대로 접할 수 있는 원초적인 음식이다. 상점에 즐비하게 진열된 둥글고 네모반듯한 육고기 토막에서 살아 숨 쉬는 소나 돼지의 허벅지, 늑골, 배 따위를 떠올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입을 앙다문 생 석화는 그 껍데기 사이로 칼을 비집어 넣는 순간부터 살아있는 생명력이 느껴진다. 생명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석화는 끈질기게 그 속살을 허락하지 않는다.

직접 껍데기를 까는 수고로움은 굴 껍데기 속에 담긴 맑고 투명한 체액의 짭짜름하고 시원한 감칠맛으로 보상받는다. 미리 껍데기를 까서 물로 씻어낸 봉지 굴은 그 과정에서 체액을 잃어버린다. 짠맛을 필두로 달콤한 속살의 부드러운 질감, 내장이 지닌 약간의 쓴맛, 은은하게 감도는 새콤한 끝 맛이 뒤따라온다. 때로는 우유처럼 고소하고, 생 버섯 같은 흙내음을 풍기고, 오이 같은 비린내를 가지고 있고, 녹슨 금속이 혀에 닿은 듯한 날카로움을 가지고 있는 굴은 온몸에 그가 살아왔던 바다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래서 굴에도 와인처럼 ‘떼루아’가 있다.

같은 품종의 포도라도 자라는 지역의 기후, 흙의 성질, 와인을 만드는 독특한 지역의 제조법의 차이에 따라 와인의 맛이 달라지는데, 이것을 ‘떼루아’라고 한다. (물론 ‘떼루아’ – 테라 페르마 – 의 ‘테라’는 바다가 아닌 땅을 의미하지만) 굴도 마찬가지로 굴이 자라난 바다의 온도, 염도, 굴이 먹는 플랑크톤과 미생물의 종류, 굴을 키우는 방식에 따라 제각기 다른 맛을 지니게 된다. 재래 방식으로 밀물에 잠겨있는 동안 먹이를 먹고 썰물의 배고픔을 견디어낸 서해의 굴은 깊은 바다에 잠겨 평생 풍족한 먹이를 먹으며 자란 남해의 굴과는 다른 치즈처럼 진하고 풍부한 맛을 가지고 있다. 서해의 굴 양식은 매립으로, 공장의 폐수로, 유조선 사고로 많은 어려움을 겪어왔다. 하지만 서해에서 굴 양식이 어려워지더라도 우리는 서해의 풍경을 즐기며 통영에서 가져온 굴을 구워먹으면 그만이다. 서해의 굴과 남해의 굴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리고 그 생산 방식의 차이가 어떠한 맛의 차이를 가져왔는지 알아볼 사이도 없이 서해의 굴은 점차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굴 생산국이다. 그 생산량의 70%는 남해, 통영과 그 인근에서 생산된다. 겨울철이면 한 봉지 가득한 굴을, 그것도 초장만 내어주면 바로 먹을 수 있게 껍데기까지 제거된 굴을 단돈 몇천 원에 살 수 있다. 온종일 굴껍데기를 까며 겨울을 보내는 통영 사람들의 값싼 노동력과 그 과정에서 잃어버리는 진하고 달콤한 굴의 육즙과 맞바꿔 얻은 저렴한 가격과 편의이다.

과거 미국에서도 대부분 굴은 껍데기를 까고 씻은 후 병에 담아 구이나 튀김용으로 판매했다. 그래서 80년대만 해도 워싱턴주에서 굴을 키우던 톰 메드슨 (Tom Madsen)과 같은 사람들은 껍데기를 까지 않은 석화를 가지고 여러 레스토랑을 돌아다니며 레스토랑에서 직접 굴을 까서 손님에게 판매해보라고 제안해야만 했다. 그 말은 들은 요리사는 석화가 보기에는 좋아 보이지만, 굴을 까고, 물에 씻고, 다시 껍데기에 담는 것은 너무 일이 많다며 주저했다고 한다. 톰이 그게 아니라 그냥 굴의 껍데기만 까서 씻지 않고 자기 껍데기와 함께 서빙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자 요리사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제 미국의 수많은 레스토랑에서는 수백가지 떼루아를 지닌 굴이 자신의 껍데기에 담긴 체액과 함께 제공된다.

뉴욕시 챌시마켓 (Chelsea market)에 있는 컬 앤 피스톨 오이스터 바 (Cull & Pistol Oyster bar).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통 굴을 가져와 손님에게 내기 직전에 조심스럽게 까서 주는 굴에 담긴 육수, 그 투명한 바다의 한 조각은 눈에 보이는 굴의 통통한 살 만큼이나 아름답다. 하지만 우리의 겨울은 봉지 굴과 껍데기 절반을 까서 씻어낸 석화로 가득하나 꼭 다문 단단한 굴 껍데기 속의 육즙을 맛보는 경험은 희귀하다. 그리고 우리는 저렴한 가격과 편의의 대가로 무엇을 잃어버리고 있는지에 대해 별다른 단서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해피아워에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 (굴 한 개에 $1)에 여러 가지 종류의 굴을 맛볼 수 있다.

우리가 싸고 편리한 굴만 원한다면 그것이 곧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이다. 물론 양념이나 김치에 버무려 먹을 굴을 일일이 까서 넣을 수는 없다. 모든 굴이 단단한 껍데기에 쌓여 귀하게 다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마치 매일 매일 마시는 테이블 와인과 빈티지마다 가치가 달라지는 고급 와인이 공존하듯이 말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테이블 와인은 넘쳐날지언정 빈티지 와인은 너무나 귀하다. 굴 자체의 풍미를 오롯이 느끼려면 치러야 할 수고가 너무나 크다. 섬진강의 갓굴 (강굴, 혹은 벚굴이라고도 불린다), 겨울이 아닌 여름철에 맞보는 별미인 울진의 바위굴은 산지를 찾아가지 않으면 맛보기 어렵다. 프랑스의 소금, 굴, 와인의 가치는 그저 많은 와인을 먹기 편하게 만드는 데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양한 사람의 기호를 맞출 수 있는 다양함을 지켜나가는 데 있다. 그리고 적당한 노력과 수고로 그것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 있다. 그 많은 우리의 굴은 오직 참굴 한가지뿐이다. 서로 다른 굴의 이름을 알 필요가 없어졌을 때 이름은 사라진다.

한국인의 입맛, 혹은 천편일률의 음식 취향이 무너지고 있다. 커피믹스는 하나하나 정성껏 볶은 원두로 내리는 싱글 오리진과 블랜딩 커피에, 단 한 가지 맥주만을 파는 호프집은 음식만큼이나 긴 메뉴를 자랑하는 수십 가지 맥주를 파는 탭 룸으로, 주정과 과일주스의 혼합물이었던 식초는 누룩과 과일로 빚는 천연 발효 식초로. 속성발효의 거친 맛을 감미료로 감추던 막걸리는 숙성된 향기가 느껴지는 막걸리로 분화해간다. 여전히 값싸게 잠을 깨고, 친구와 부담 없이 한잔하고, 많은 양의 김치를 담기 위한 저렴한 상품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만큼이나 과정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오묘한 맛의 차이를 느끼고 또 그것에서 즐거움을 얻는 사람을 위한 상품도 필요하다. 우리의 먹거리는 너무나 극단적으로 한쪽으로 치우쳐있었고, 그것을 ‘한국인의 입맛’이라는 허상으로 포장해 왔다.

신선한 굴의 풍미를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겨울의 끝자락을 알리는 방풍나물을 갈아 달콤한 와인비니거, 신선한 레몬즙과 함께 굴에 곁들여본다. 달지 않은 스파클링 와인이나 자연 발효 사과 식초, 석류를 굴에 뿌려 함께 먹어도 좋다. 레몬즙을 몇 방울 뿌려 먹거나, 유자 후추와 함께 먹어도 좋다. 화이트와인 비니거, 샬롯에 고수와 같은 허브를 다져 넣어 재워 둔 미뇨네트 소스와 초고추장 사이에는 우리의 재료를 사용하면서도 굴의 풍미를 더해주는 무수한 방법이 있을 것이다. 와인, 맥주, 그리고 우리 술까지. 신선한 굴 망태기 하나로도 우리의 겨울은 풍성하다.


다양한 품종의 식용 굴
태평양 굴 (Pacific oysters, 학명: Crassostrea gigas)
한국의 참굴을 포함한 태평양 지역에서 자라는 굴이다. 살이 많고 단맛이 있으며 오이와 같은 향이 난다.

대서양 굴 (Atlantic oysters, 학명: Crassostrea virginica)
작고 살이 단단하며 짭짤한 바다향이 강하게 느껴진다.

구마모토 (Kumamoto oysters, 학명: Crassostrea sikamea)
따뜻한 일본의 나가사키 지역에서 유래된 이 굴은 크기가 작고 살집은 단단하지만 부드럽고 섬세한 맛을 가지고 있다. 금속, 해조류, 갯벌 냄새와 같이 취향에 따라 거슬릴 수 있는 맛과 향이 거의 없어 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맛보기 좋은 품종이다.

유럽 굴 (European flat oysters 혹은 Belon, 학명: Ostrea edulis)
비린 맛과 금속 맛이 강하지만 한번 맛 들이면 빠져나오기 힘든 중독성이 있는 품종이다. 로마 시대부터 먹어 온 오랜 역사를 지닌 종으로, 당시에는 생선 내장으로 만든 액젓을 뿌려 먹었다고 한다.

올림피아 (Olympia oysters, 학명: Ostrea conchaphila)
유럽 굴과 비슷하지만 좀 더 순한 맛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양식이 어려워 많이 보급되지 않았다.

한국의 굴 품종
바위굴 (Crassostrea nippona)
다른 굴과 달리 봄, 여름이 제철인 굴이다. 최근 양식에 성공했지만 대부분은 채취한다. 남해와 동해 일부에서 나며, 경북 울진에서 맛볼 수 있다고 한다.

갓굴 (강굴, 벚굴, Crassostrea ariakensis)
민물과 바닷물이 교차하는 강 하류에서 자라는 굴이다. 제철은 봄으로, 바다 굴 보다 짠맛과 비린 맛이 덜하며 부드럽다고 한다. 섬진강과 경남 가화강이 자생지이다.

와인과 굴

화이트와인과 굴은 천상의 조합인 것 같지만 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굴이 가진 강한 짠맛과 비린 맛은 와인의 맛과 향을 죽이기도 하고, 굴의 감칠맛은 와인을 만나 비린내나 금속 맛을 강화하기도 한다. 따라서 굴과 함께 상승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적절한 품종과 맛의 와인을 골라야 한다. 기본적으로 오크에서 숙성한 모든 와인은 피하는 것이 좋으며, 산미가 강하고 맛과 향이 단순할수록 굴과 잘 어울린다. 하지만 맛이 부드럽고 비린 맛이 약한 굴의 경우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 (Chauvignon blanc), 프랑스의 샤블리 (Chablis), 뮈스카데 (Muscadet)와 같은 드라이 하면서 적당한 풍미를 가진 화이트 와인과도 잘 어울린다. 초장과 함께 굴을 먹을 때는 어느 와인도 어울리지 않는다. 신선한 생굴을 그대로 먹거나 약간의 레몬즙을 짜서 곁들이도록 한다. 봄나물을 이용한 소스나 석류, 고수와 같은 다양한 채소와 과일을 곁들여도 좋다.

1. 그뤼너 벨트리너 (Grüner Veltliner), 스파클링 와인
오스트리아의 포도 품종인 그뤼너 벨트리너는 그 맛이 단순하며 차갑게 마시기 때문에 강한 굴 맛을 산뜻하게 마무리해준다. 샴페인이나 까바 등 탄산을 가진 스파클링 와인의 상쾌함도 굴과 잘 어울린다. 단, 단맛이 적으면 적을수록 좋으니 드라이한 스파클링 와인을 고른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알코올 도수가 높을수록 (12도 이상) 드라이할 가능성이 높다.

2.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 프랑스  와인
뉴질랜드의 소비뇽 블랑은 강한 햇빛을 받으며 자라 당도가 높지만 기후가 서늘해 풍부한 과일 향을 지녔으면서도 산뜻한 신맛을 가지고 있다. 산미가 강하면서도 향이 풍부하기 때문에 구마모토와 같이 부드럽고 섬세한 맛을 지닌 굴과 잘 어울린다. 부르고뉴 와인인 샤블리는 샤도네이 품종으로 만들지만 대부분 오크통에서 숙성하지 않아 일반적인 샤도네이 화이트 와인과는 달리 가벼운 맛을 가지고 있다. 프랑스 루아르강 하류에서 생산되는 뮈스카데 (이탈리아의 무스카토 다스티와는 다르다) 와인도 샤블리와 비슷한 맛과 향을 가지고 있으나 가격이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다.

맥주와 굴

맥주와 굴하면 기네스 스타우트와 아일랜드 굴의 조합이 떠오르지만 실제로 스타우트와 생굴을 함께 먹으면 굴의 비린 맛이 매우 강화되는 효과를 느낄 수 있다. 스타우트와 같이 구수한 맛이 나는 맥주는 구운 굴이나 굴 튀김과 함께 마실 것을 추천한다. 산미가 강하고 드라이한 괴즈, 세종, 베를리너 바이세와 같은 맥주, 혹은 벨지안 윗 비어같이 부드럽고 섬세한 맥주와 함께 굴을 즐겨보자. 맛과 향이 약하고 깔끔한 아메리칸 라거도 좋은 조합이며, 다양한 크래프트 브루어리의 개성넘치는 라거라면 보다 재미있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1. 벚꽃 라거 (바네하임 브루어리 | 한국)
한국 수제 맥주 협회장인 윤한샘 씨에 따르면 오래 숙성된 바네하임 브루어리의 벚꽃 라거는 맑고 투명한 색상과 맛이 마치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과 흡사하다고 한다. 풍성한 향과 탄산을 지닌 바네하임의 라거와 함께 생굴을 먹어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 같다. 매년 봄에 출시되며, 시간과 함께 숙성되어 변화하는 맛과 향을 느끼며 마셔보자.

2. 헤이제우스 (Heyzeus | Melvin brewing | 5.2 도 | 미국)
부드러운 거품과 청포도와 같은 과일 향이 매우 인상적인 맥주이다. 부드럽고 신선한 굴과 함께 마시면 감칠맛이 강해지면서 탄산과 과일 향이 산뜻하게 마무리해주어 ‘이런 라거도 있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3. 본 괴즈 (Boon Geuze | Brouwerij Boon | 6도 | 벨기에)
샴페인과 같이 과일 향이 풍부하면서도 드라이한 본 괴즈는 약간의 산미도 가지고 있어 굴과 함께 마시기에 제격인 맥주이다. 지난번에 소개한 듀퐁 브루어리의 세종 듀퐁 또한 굴과 잘 어울리는 맥주이다.

참고문헌

  • HS Yoon et al., 2008, Suminoe oyster (Crassostrea ariakensis) culture in Korea. 2008. J. of Shellfish Res.
  • 김성윤, 2008, 여름에 먹는 굴? 꿀처럼 달콤한 바위굴! 조선일보
  • Rowan Jacobsen, 2010, A geography of oysters: The connoisseur’s guide to oyster eating in north america. Bloomsbury Publis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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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미하다

술에 대해 비슷한 추억을 가진 생물학자와 일러스트 작가가 만나 맥주에 대한 다양한 지식과 삶의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는 글과 그림으로 풀어가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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