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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 아버지를 둔 이탈리아 태생의 와인, 마르살라(Marsala)

영국인 아버지를 둔 이탈리아 태생의 와인, 마르살라(Marsala)

노지우 2021년 10월 26일

영국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는데, 알고 보니 내가 이탈리아 태생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떨 것 같으신가요? 어리둥절할 테지만 와인의 세계에서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로 명성을 떨쳤던 영국, 아니 대영 제국은 예로부터 전통의 무역 강국이었습니다. 세계를 누비다가 낯설지만 매력적인 것들을 발견하면 영국으로 수입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죠.

와인도 여기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1400년대에는 포르투갈에서 생산한 와인으로 포트 와인을 탄생시켜 영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기도 했었죠. 그리고 약 300여 년이 지난 1700년대, 영국인들은 이탈리아의 와인을 통해 또 다른 와인을 탄생시키는데요. 바로 오늘의 주인공, 마르살라(Marsala)입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John Woodhouse, Woodhouse의 마르살라 레이블, Florio의 마르살라 레이블]

마르살라의 역사
마르살라는 리버풀 출신 무역상이었던 존 우드하우스(John Woodhouse)에 의해서 처음 탄생했습니다. 1773년 아몬드, 꿀, 살라미 등을 수입하고자 시칠리아에 방문했던 그는 중간에 폭풍을 만나 마르살라 항구에 급하게 정박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르살라의 로컬 농부들이 만들던 와인을 맛보게 되는데, 여기서 포트 와인과 마데이라와 매우 비슷한 특징을 잡아내게 되죠. 그 길로 우드하우스는 수입 품목을 이 와인으로 바꾸기로 합니다. 다만 영국까지 배송기간 동안 상할 것을 걱정하여 약간의 브랜디를 첨가했고, 이는 리버풀에서 이미 스페인과 포르투갈산 주정 강화 와인에 빠져있던 영국인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로부터 20여 년 후인 1796년, 존 우드하우스는 마르살라에 와이너리를 세웁니다. 유달리 마르살라를 좋아했던 넬슨 제독의 휘하에 영국 해군에 마르살라를 공급할 정도로 공신력 있는 와이너리로 인정을 받았죠. 실제로 1800년 넬슨 제독은 우드하우스 와이너리와 500 파이프 가량의 와인, 약 21만 리터 가량의 마르살라 계약을 맺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높아져 가는 마르살라의 인기에 경쟁 와이너리들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1812년 영국의 벤자민 잉햄(benjamin Inham)이 우드하우스 와이너리 주변에 문을 열어 호주 등 먼 국가까지 수출하기 시작했고, 그 뒤를 이어 1832년 빈센조 플로리오(Vincenzo Florio)라는 시칠리아인이 이탈리아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마르살라 와이너리를 세웠습니다. Florio의 지하 저장고는 살아있는 양조학 고고학 박물관으로 불릴 정도로 유명한데, 이에 힘입어 빈센조는 이탈리아 와인 역사에서 마르살라를 생산해 효과적으로 마케팅하는데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Florio의 지하 저장고]

그러나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늘어나는 마르살라의 인기에 발맞춰 느슨해진 DOC 규정에 따라 품질 저하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지요. 생산자들은 늘어나는 수요를 맞추기 위해 더 낮은 품질의 포도 품종으로 마르살라를 생산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떨어진 단맛을 올리고자 사탕수수나 초콜릿 등을 첨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1900년대 1, 2차 세계 대전까지 겪으며 마르살라의 위상은 땅으로 곤두박질쳤죠. 넬슨 제독이 아끼던 와인에서, 부엌에서 요리에 쓰이는 요리주로 기억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에 결국 이탈리아에서는 1984년 마르살라 DOC를 재정비합니다. 수확량을 확 줄이고, 첨가제와의 혼합을 금지하는 조항과 더불어 깐깐한 조건들을 추가했죠. 덕분에 2021년의 마르살라는 1900년대 중반 대비 그 자리를 많이 회복했지만, 아직도 포트나 셰리를 따라잡기에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해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Mosto Cotto 만드는 과정]

마르살라의 맛과 향
마르살라를 만드는 대표적인 청포도로는 그릴로(Grillo), 인졸리아(Inzolia), 카타라토(Catarratto) 등의 품종이 있습니다. 이 중에서도 그릴로와 인졸리아는 조금 더 생산량이 적고 품질이 좋은 마르살라를 만드는 데에 쓰이고, 카타라토는 그보다 낮은 품질로 여겨집니다. 실제로 한창 마르살라의 위상이 떨어졌던 1900년대에는 이 카타라토로 만든 마르살라가 크게 늘어났습니다.

청포도로 화이트 와인 베이스를 만드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마르살라 양조는 여기에 포도액을 졸여 만든 달달한 모스토 코토(Mosto Cotto)나, 그릴로 포도로 만든 가당 강화 와인인 미스텔라(Mistella)를 섞어 만듭니다. Mosto Cotto는 호박색(amber) 마르살라의 색을 더 깊게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하죠.

[마르살라에서 느껴지는 풍미]

마르살라에서 발견되는 맛과 향들은 다양합니다. 옅은 살구부터 바닐라, 견과류, 감초, 담뱃잎 등 그 범위도 넓죠. 이러한 풍미는 마르살라의 색에 따라서도 다르게 나타나는데요, 짙은 호박색의 마르살라는 청포도 고유의 향과 견과류의 향을 냅니다. 어떻게 양조하느냐에 따라서 당도도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앰버를 숙성시켜서는 최고 등급의 마르살라를 만들지는 못합니다.

[마르살라 등급과 종류 / 참고. Ambra, Abmer 호박색 / Oro 황금색 / Anno, Anni 숙성 연수 / Secco=dry, Semi Secco = semi dry, Dolce = Sweet]

가장 높은 등급의 마르살라를 만들 수 있는 색은 황금색(Oro) 마르살라인데요. 이를 5년 이상 숙성시키면 Vergine 이라는 등급의 마르살라로 인정을 받습니다. 이 등급의 마르살라는 종종 셰리에 쓰이는 솔레라와 유사한 시스템을 이용해서 양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러 개의 오크통에 각자 숙성 연수가 다른 술을 넣고 양조를 하는 이 시스템은 시칠리아에서는 페르페투움(Perpetuum)이라고 부르죠. 이러한 황금색의 마르살라는 설탕을 첨가하지 않고 10년 이상 숙성시키면 Stravecchio 또는 Vergine Reserva라고 하는 최고 등급을 받게 됩니다.

[(좌) 셰리 솔레라 시스템, (우) 마르살라 페르페투움 시스템]

이렇게 다양한 등급의 마르살라가 있지만, 그간 이들은 요리용으로 우리에게 더 친숙한 술이었습니다. 보통 마르살라 특유의 견과류, 캐러멜 등의 풍미를 추가하기 위해서 메인 육류 요리에 많이 이용되어왔죠. 이때에는 보통 세미(Semi) 또는 드라이한 마르살라를 이용했습니다. 당도가 높은 마르살라는 보통 그 점성과 단맛을 이용해서 티라미수 같은 디저트에도 이용된다고 합니다.

사실 마르살라는 많은 종류가 국내에 유통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요리용으로 Fine(제일 낮은) 등급의 마르살라들이 드물게 발견될 뿐이지요. 하지만 그 역사와 풍미는 셰리나 포트만큼이나 매력적인 것은 분명합니다. 모두에게 여행의 자유가 다시금 주어지는 그 날, 시칠리아에서 제대로 된 마르살라를 보며 항구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다시 오기를 바랍니다! Santé!

노지우

“사고(buy) 사는(live) 것을 사랑하는 소비인간. 와인 소비의 즐거움에 빠져 버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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