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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대륙 아프리카에 핀 붉은 와인 꽃

검은 대륙 아프리카에 핀 붉은 와인 꽃

임지연 2022년 12월 13일

아프리카에서 와인이 제조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16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프랑스 출신의 백인 농장주 위그노가 설립한 와이너리를 시작으로 다수의 백인 이민자들이 검은 대륙 아프리카 곳곳에 정착해 유럽식 와이너리를 시작하게 된 것이 아프리카 와인 산업의 시초가 됐다는 게 정설이다. 그 후로 수백 년이 흐르는 세월 동안 아프리카의 대형 와이너리와 포도 농장주는 그야말로 백인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며 흑인들의 진출은 거의 전무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던 것이 최근 들어와 조금씩 변화 양상을 보이는 분위기다. 아프리카 대륙 전문 매체인 아프리카뉴스 닷컴은 지난해 12월 기준, 아프리카를 기반으로 운영 중인 와이너리 중 흑인이 소유한 와이너리의 수가 약 80여 곳에 달한다고 집계했다. 흑인들이 소유한 와이너리의 상당수가 이 대륙에 가해졌던 흑인에 대한 무자비한 인종 차별에 저항했던 아픈 역사와 그 괘를 같이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라는 분석이다.

홀 시구카 씨는 웨스턴 케이프 지구의 프란슈후크에서 대규모로 포도 농장을 운영하는 농장주다. 그가 소유한 농장은 무려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진 곳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도 손에 꼽히는 대형 포도 농장으로 알려져 있다.

올해 41세인 그는 지금으로부터 약 3년 전 클라인 괴더러스트에서 중대형 농장 매입에 성공했는데, 그가 이 농장을 소유하기까지 적지 않은 세월이 있었던 것은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다. 그가 무려 15년이라는 긴 농장 생활과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열악했던 근로 환경을 견딘 끝에 이 농장의 어엿한 소유주 됐던 것. 농장을 매입한 후에도 그는 약 1년 동안 개보수 작업을 했고, 그 후 이전과 크게 달라진 분위기의 농장을 일반에 공개했다.

그는 자신이 소유한 포도 농장에서 수확할 수 있는 싱싱하고 질 좋은 포도를 활용해 아프리카 대륙을 대표하는 와인 상품을 개발, 전 세계인들에게 검은 대륙의 와인 맛을 선물하고 싶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그의 이 같은 희망은 그의 모친이 무려 37년에 걸쳐 케이프타운 와인 랜드에 소재한 와이너리에서 온갖 멸시를 당하며 일해야 했던 슬픈 기억을 극복하기 위한 목적에서 시작됐다. 그의 포도 농장 매입에 대한 열망과 와인 상품 개발에 대한 끝없는 시도가 곧 그가 가진 트라우마를 스스로 치유하고 극복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실제로 그의 모친은 오랜 시간 동안 백인 소유의 농장과 와이너리 등에서 노동자로 일했는데, 오직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온갖 멸시를 당하고도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던 인종차별에 대한 불평등 시정 정책이 없는 당시 현실에서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저항을 하지 못했던 것이 그의 마음을 끝내 병들게 했기 때문이다.

그는 최근 자신에게 집중된 아프리카의 대표적인 흑인 농장주라는 관심에 대해 과거 자신과 가족들에게 가해졌던 인종 차별의 역사를 돌이켜봤다.

그는 “모친이 일했던 포도 농장의 백인 농장주는 곧잘 우리 가족들을 가리켜 흑인 노예의 자녀도 흑인 노예다”라면서 “농장에서 노예처럼 일한 모친의 아들이었던 나 역시 그들 눈에는 다음 세대에 백인들의 손발로 일할 노예에 불과해 보였을 던 것”이라고 아픈 역사를 공개했다. 그는 이어 “그들은 아프리카 흑인 노동자와 그 노동자의 자녀들을 마치 저 땅 위에 자라는 농작물처럼 대를 이어 노예에서 또다시 다음 세대 노예로 자라는 작물로만 바라봤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를 포함한 흑인 농장주의 잇따른 등장은 백인들의 전유물이자 백인의 역사로만 인식됐던 포도 농장과 와이너리 산업이 아프리카의 진짜 주인인 흑인들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증명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또 다른 대형 와이너리를 소유한 흑인 사업가 카르멘 스티븐슨 역시 이 분야를 대표하는 유명 인사다. 올해 51세 여성 와인 전문 제조업자이자 와이너리 소유자로 아프리카 흑인들이 가진 와인 산업에 대한 뛰어넘기 힘든 장벽을 허문 장본인으로 평가받는다.

가난과 갱단으로 얼룩진 케이프 플랫지구에서 출생한 그는 공장 노동자였던 가난한 그녀의 모친이 손에 쥐여 준 ‘밀스앤분’(Mills & Boon)의 소설 한 편이 그의 삶을 바꾸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91년 스티븐슨이 와인 제조를 본격적으로 연구해야 한다고 결심했을 무렵,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여전히 인종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 체제 하에 있었다. 이 때문에 그녀가 대학 입학을 노렸던 당시 잇따라 대학 측으로부터 불합리한 이유에 근거한 불합격 통보를 받아야 했고, 3년째인 1993년이 되어서야 그는 간신히 원하는 대학에 합격해 와인 제조업에 대한 전반적인 교육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후 2011년 당시 그녀는 일명 ‘카르멘 스티븐슨 와인스’로 불리는 와이너리를 설립, 일반에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다. 당시로는 획기적인 남아프리카 공화국 최초의 흑인 소유 와이너리 설립이었기에 대중들과 현지 매체들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했다.

그녀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또 다른 흑인들을 위한 보조금과 인턴십을 위한 지원 단체인 ‘SA Wine Industry Transformation Unit’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아프리카 와인 산업 전반에 대한 흑인들의 비중을 키워나가기 위한 각종 행사를 직접 진두지휘 했다.

그 결과는 그야말로 대성공이었다. 그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와인 생산 거점이라고 평가받는 스텔렌보쉬의 새로운 와이너리들과 포도 농장주들의 화합을 추구하는 등 내부적인 문제를 우선해야하는 데 집중했다.

지난했던 검은 대륙 아프리카에 붉은 와인 산업을 일으킨 행보를 돌아보며 그는 “백인들이 주도했던 와인 산업에 적은 돈과 짧은 역사를 가진 흑인들이 진출하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었다”면서 “특히 재정적인 측면에서 흑인 사업자들 사이의 이해관계가 서로 엉키고 뒤섞이는 등 갈등이 생겨날 경우 이 부분을 해결하는 것 역시 쉽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새 시대를 이끌어가고 있는 젊은 흑인 청년 와이너리 창업가들에 대한 희망에 집중하며 “다음 세대 흑인 와이너리 창업주들은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있다”면서 “하지만 여전히 흑인 농장주보다 백인 농장주의 경작지 규모가 훨씬 크고 포도 생산량도 많은 탓에 부족량을 백인들의 농장으로부터 공급받는 형편”이라고 덧붙였다.

스티븐슨은 올해 자신의 어머니 이름을 딴 ‘줄리’라는 명칭의 새 와인 상품을 출시해 시장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등 여전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임지연

평범함 속의 특별함을 찾는 인생 여행자 / logan@winevisio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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