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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전과 광장의 도시, 프라하

무즈텍(Mustek) 광장. 고소한 향에 몸이 끌려간다. 우리나라에서 감자전이라 불리는 감자 팬케이크 브람보락(Bramborakd)이 이 나라에서 길거리 음식으로 팔리고 있다. 살펴봤다. 주요 고객들이 누구인지. 인사동 거리에서 파는 꿀타래는 한국인보다는 일본 관광객들에게 더 유명한 주전부리인데, 이 음식은 어떨까. 브람보락을 사는 사람들은 망설임 없이 최소한의 말과 행동으로 의사를 전달하고 주인장은 눈치껏 받아들여 음식을 전달한다. 아하, 로컬 음식이구나. 나중에 알았는데 브람보락은 체코의 가정식 중 하나였다. 감자전처럼 동그랗고 넓게 부쳐서 훈제고기와 각종 채소 등을 넣고 반으로 접어 먹는다. 단순하다. 지역에 따라 우유, 소시지, 마늘 등을 안에 넣기도 하는데, 길거리에서 파는 브람보락은 우리나라의 감자전에 더 가까워 보였다. 체코판 감자전 하나를 베어 물고, 탁 트인 바츨라프 광장 (Vaclav Namest)으로 나가보았다.

바츨라프 광장 노점에서 파는 감자전

바츨라프 광장은 프라하의 신시가지를 대표하는 광장이다. 중세시대 말 곡물 시장이 섰던 곳으로 사방이 탁 트인 광장이라기보다 드넓은 대로에 가깝다. 서울의 광화문 광장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광장 이름은 체코의 최초 왕조인 프르셰미슬 왕가의 왕 바츨라프에서 유래했는데, 바츨라프는 사후에 성인으로 추대받은 체코 기독교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바츨라프 동상이 광장 동남단에 성인 4명의 수호를 받으며 서 있다. 지금은 차도와 인도로 나뉘어 있고, 중앙에 녹지가 조성되어 원래 광장의 모습과 아주 다르다.

 

또 이 광장은 과거 체코인들의 민주화가 이뤄진 곳이자, 공산 독재 체제를 무너뜨린 벨벳 혁명의 현장이기도 하다.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프라하의 봄’ 사건 당시 점령군과 시위대의 격돌로 100여 명이 희생당한 장소가 이곳이다. 아직도 체코인들은 역사의 중요한 기억이 담긴 바츨라프 광장을 사랑한다. 현재 바츨라프 광장과 무즈텍 광장을 잇는 거리는 고급 레스토랑과 호텔, 쇼핑센터가 있는 화려한 번화가로 자리 잡았다.

서울의 광화문 광장이 연상되는 바츨라프 광장

프라하도 광장에서 자라고 성장한 도시다. 광장마다 흘러온 사연도 비슷하지만 다르다. 지금은 그 흔적들로 과거를 추측할 수 있다. 또 다른 광장에 도착했다. 한 청년이 통기타를 들고 노래를 부른다. 이어서 가벼운 운동복 차림의 또 다른 청년이 축구공으로 저글링 묘기를 선보인다. 연이어 붉은색 머리띠를 두른 남성이 앵무새를 메신저로 다양한 소통을 시도한다. 한쪽에서는 중세시대 복장을 한 아저씨들이 마임을 펼치고 있다. 소소한 공연들이 정해진 스케줄에 맞춰 진행 중이다. 구시가지 광장에서는 항상 공연 및 마켓 등이 열려서 온종일 지루할 틈이 없다. 마냥 광장에 털썩 앉아 있어도 시간 낭비하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여행자의 자격이 아니겠는가.

앵무새에게 오더를 보내는 공연자

프라하의 역사가 빚어놓은 건물로 이뤄진 구시가지 광장(Staroměstske naměsti). 11세기에 형성된 이후 오늘날까지 광장으로 쓰이고 있다. 1948년 체코슬로바키아의 민주공화국 몰락 선언, 1968년 프라하의 봄, 1989년 벨벳 혁명이 모두 이곳에서 시작했다. 건물의 정보를 예습했다면,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 건물 등 시대별로 예술 사조의 변천사를 현장 학습할 수 있다. 천문시계를 기점으로 틴 성당, 성 미쿨라셰 성당, 구시청사, 얀 후스(Jan Hus) 동상 등이 한곳에 있다. 광장의 중앙에는 얀 후스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얀 후스는 가톨릭의 부패를 비판하다가 독일의 콘스탄츠에서 화형당한 인물이다. 공연에 눈이 팔리다가 검색하여 알게 된 광장의 역사. 유적지를 일부러 찾아 방문하지는 않더라도, 보이는 유적지가 품고 있는 사연 정도는 알고 보는 건 방문한 도시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닌가 싶다.

구시가지 광장의 한복판에 있는 얀 후스 동상

유럽을 몰랐던 시절, 프라하는 낭만 도시의 대명사였다. 2005년에 방영했던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에서 한 남자는 사라진 첫사랑을 찾으러 프라하에 온다. 운명은 장난처럼 새로운 여성을 그의 앞에 데려온다. 애정의 씨앗은 프라하란 토양에 심어지면서 삼각관계가 시작된다.

프라하에서의 첫날이 이를 증명하는 시간이었다면, 후반부 여행은 프라하의 아픔을 공감하며 새로 알아가는 여행이었다. 체코는 독립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항상 웃는 표정이 예쁜 소녀이지만, 내면에 박힌 상처가 아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 소녀의 웃음에 비애가 보여서 보듬어 주고 싶다. 프라하는 내게 이런 감정을 끌어내고 있는지 모른다.

존 레넌의 벽. 자유를 열망하던 프라하 젊은이들이 적은 낙서들

1499년. 건물 외벽에 박힌 이 숫자는 누가 봐도 설립연도다. 사실 이보다 더 오래되었을 거라고 말하는 이도 있을 정도로 프라하에서 오래된 양조장 중의 한 곳은 우 플레쿠(U Fleku)다. 그 역사만 해도 500년이 넘는다. 우리 조선왕조의 생명력과 비견된다. 비어 홀을 살펴보면, 테이블부터 홀 안쪽의 벽면을 모두 나무가 두르고 있으며, 샹들리에에는 엔틱함이 물들어 있다. 이미 홀 안은 사람으로 가득하다. 유서 깊은 곳인 만큼 관광객의 시야에서 벗어날 수 없는 곳이다. 이 비어홀은 약 1,000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중간에 아코디언을 든 악사가 출현해 음악으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음악과 손님들의 이야기 소리가 섞여 흥이 날 수도 있고 소음으로 들릴 수도 있다. 맥주를 시켜보려 메뉴판을 여는데, 여기 오면 이 맥주를 마셔야 한다는 의미인지, 제일 앞에 도드라진 녀석이 보인다. 이곳에서 생산한 맥주인 플레코브스키 레작(Flekovsky Lezak)이다. 독일의 둥켈과 같은 다크 비어로 스타우트보다 무겁지 않지만, 커피와 초콜릿 풍미가 강하다. 맥주를 마시던 중, 종업원이 작은 잔에 또 다른 술을 마셔보라고 권한다. 이 술은 약초가 들어간 달곰한 리큐르인 베체로브카(Becherrovka)이다. 체코를 대표하는 술로써, 독일의 예거 마이스터(Jagermeister)와 비슷한 맛이라고 보면 된다.

이곳에서 직접 생산한 둥켈 맥주와 베체로브카

테이블마다 손님들로 가득 찬 우 플레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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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호

발로 기억하는 보헤미안, 혀로 즐기는 마포술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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