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인생 15년만에 처음으로 DRC를 만났다. 매일 쇼케이스에서만 구경하던 바로 그 와인 말이다. 굳이 제목을 친견기라고 쓴 이유는 이 와인을 언제 다시 만나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물론 DRC에서 낮은 급이라고는 하지만, 일설에 의하면 생산량이 많아서일 뿐 테루아는 로마네 콩티보다 더 좋다는 이야기도 회자된다. 그래서 이 와인을 추정하여 로마네 콩티를 예측한다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할 수 있다. 누구나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하고 비싼 포도원이기에, 지금은 가격이 너무나 올라버려서 더 이상 범인들은 접근하기 어려운 와인을 만날 수 있다는 것에 시음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지인에게 이 글을 빌어 감사의 뜻을 전한다.
글을 쓰는 입장에서 이 와인에 대한 느낌을 글로 써서 낼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했다.
자칫 자랑하는 것이 될 수도 있고, 와인의 이름을 먼저 본 상태에서 선입관을 가지고 썼기 때문에, 한 쪽으로 치우친, 와인에 대한 일반적인 찬사가 될 것 같아 조심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느낌은 글로나마 공유할 때 가치를 더 발휘한다 생각하여 글을 쓰게 되었으나, 이 글에서는 와인을 마시고 난 뒤의 느낌을 쓰는 데에 집중하겠다. 전체적으로 이 와인은 복합적이며, 상당한 숙성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테루아를 직접 가본 것은 아니지만, 포도의 복합미라는 것이 어떤 캐릭터를 띠게 되는 것인지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를 할 수 있다. 복잡다단할 것 같으면서 난해하냐면 그런 것이 아니고, 상당히 단순하다. 복잡한데 단순하다니 이 무슨 설명일까? 일반적으로 기자들이 기사를 쓸 때 독자의 지식수준을 중학생 2학년으로 맞추고 쓴다고 한다. 중학교 2학년생이 읽어서 이해가 되지 않으면 기사로서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그보다 눈높이를 좀 더 낮추게 된다면 초등학생이 읽어서도 쉽게 이해가 되는 수준으로 볼 수 있다.
이 와인의 경우 중학교 2학년생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라 볼 수 있다. 지금까지 느낌으로 내추럴 와인이 박사급 실력을 요구하거나 오타쿠 수준의 지식을 필요로 하는 소수의 와인이라고 한다면, 이 와인은 중학교 2학년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자신을 친절하게 설명한다. 그러나 잘 생각 해 보면, 진정한 고수는 어려운 것을 쉽게 설명한다. 유명한 과학 다큐멘터리의 칼 세이건(Carl Seagan)이나 닐 타이슨(Neil Grasse Tyson) 교수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단어로 과학의 어려운 지식들을 풀어낸다. 그렇다고 그들의 지식이 부족하냐면 절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난해함을 쉬운 용어로 설명한다. DRC의 와인은 이런 쉬운 단어로 와인을 설명한다. 그렇다면 이해하기 쉬운 와인이란 어떤 와인일까?
우선 아로마가 정확하다.
특정한 과실의 아로마가 섞여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뇌에 명징하게 박히도록 친절하게 설명된다. 그리고 그 것이 과하게 다른 요소를 침범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며 전달된다. 다음으로는 시음자의 전주기를 친절하게 안내한다. 마치 편안한 호텔에 와서 가이드를 해주는 사람이 단계적으로 내 시중을 들어주는 것처럼, 입 안에서도 혀 구석구석 친절한 설명을 해준다. 이 바디감은 적절하고 과하지 않으며, 필요한 부분을 적당히 지압하듯이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피니시다. 와인에 빠져들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들과의 대화를 방해하지 않는다. 피니시는 과하지 않으면서도 여리지만 길고 길게 전달된다. 마치 호텔의 기분 좋은 매트리스 위 포근한 이불 덮고 먼 바다를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에 들게 만들어준다.
그렇다면 이 와인이 그렇게 비싼 가격을 주고도 탐닉할 가치가 있냐는 논점으로 접근하게 된다. 가격이 과하게 비싼 것은 사실이다. 마음으로는 가격이 내렸으면 하는 느낌이 대부분 와인 애호가들에게 있겠지만, 이 평안함에 한 번 길들여진 부호들이라면 이 와인을 쉽게 놓을 리 만무하다. 자신들의 가치로 남겨두기 위해 더 속박할 것임에 틀림없다. 마치 매드맥스 영화의 악당 임모탄(Immortan Joe)이 자신들의 천사들을 가두어두고 독점화 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다만 가격을 떠나서 이 와인을 마셔볼 가치는 있을까? 내 판단으로는 두말할 나위 없이 “있다.” 이 와인의 가치는 오랜 숙성이라는 것을 떠나서 와인이라는 것이 어떤 철학과 가치를 기저에 깔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평안함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 변화무쌍함을 느끼게 되면 와인이 아닌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느낌을 가지게 만든다.
무엇보다도 마시는 이를 편안하게 해주는, 마시는 이를 고민하지 않게 하고 배려하는 느낌은 이제껏 그 어떤 와인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세련미와 자연스러움의 극치라 하겠다. 마시는 내내 혼자 이 와인을 시음한다는 것에 죄의식도 있었지만, 이 소중한 와인을 마심으로서 이 와인의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생각하고, 와인이 지향해야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되어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모쪼록 이 글로나마 DRC라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와인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를 하는데 약간이나마 도움이 되었기를 기대하며, 시음노트로 이 글을 마무리 한다.
색상은 짙지만 반대쪽에서 비치는 투명한 느낌을 고스란히 전달하여 받을 수 있다. 이 와인은 다면체의 다이아몬드와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다면체의 다이아몬드는 몇 알이 같이 조화를 이루어 훌륭한 티파니 반지를 구성하고 있다. 잘 만든 와인의 특징은 친절하다는 것이다. 복합미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친절하며 명징하게 설명한다. 이 부분은 체리와 라스베리, 잘 익은 크랜베리 계열의 아로마를 잘 표현하고 있다면 한 쪽은 보디감을 담당하여 구조감을 나타내고 있다. 마지막은 피니시인데, 와인을 마신 뒤의 느낌까지 지배를 하므로 피니시의 지속 시간을 떠나서 정신을 지배하는 와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복합적인 아로마가 많이 전달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많이 어리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화력에 있어서 다른 와인을 압도한다. 안정적이면 아로마가 통상 일관된 캐릭터로 등장해야 하지만, 이 와인은 한 모금이 변화하고 입 안에서 다시 다면체의 빛이 투과하듯 여러 각도로 변모한다. 친절하지만,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어서 다이아몬드 반지의 다이아몬드가 매번 빛의 변화에 따라 찬란하게 변화하듯 이 와인은 매번 한 모금 한 모금마다 다양하게 변화한다. 안정적이면서도 끊임없이 변화하기에 잠시도 이 와인에서 코와 입을 뗄 수 없다. 이 위대한 와인은 아마도 시간을 가면 갈수록 더욱 더 많은 변화의 시간을 거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더욱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 때의 또 다른 변화를 느끼기 위한 마음의 준비는 당연히 필요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