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루 제퍼드가 고급 와인의 가격 책정 정책을 8,900만 파운드를 받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한 폴 포그바의 사례에 비교하며 고급 와인을 향한 야망을 왜 접었는지 설명한다.
지난해 언젠가 나는 와인과 나의 관계에서 무언가가 달라졌음을 깨달았다. 나는 더는 최고를 원치 않게 되었다.
미친 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세계 정상에 있는 와인을 맛보고, 즐기고, 소유하고 싶어 하지 않는단 말인가? 지금부터 그 이유를 설명하고자 한다.
물론 ‘구매 능력’이라는 개념은 상대적이다. 그건 누구라도 알 것이다. 개인의 상황에 따라 다르고, 특정한 와인의 가격이 구매 가능한가 아닌가는 경제적인 소비의 주체(한 개인 혹은 한 가구)로서 그 사람의 재산과 상관 관계가 있다. 언론인으로서 투명성을 지키겠다는 목적에 따라 나는 2011년부터 내가 운영하는 웹사이트에서 연간 소득을 공개하고 있다. 따라서 당신도 원한다면 거기에 나온 수치를 근거로 나의 이 글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처음으로 ‘베스트’, 그러니까 최고 와인을 산 것은 1983년, 당시 피숑-라랑드 1982 한 상자를 병당 9파운드에 구입했다. 물가 상승률을 고려했을 때 2016년으로 따져 환산하면 대략 28.71파운드에 해당한다. 정말 훌륭한 와인이었고, 그 정도 가격으로는 그것을 마시는 데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 한 마디로 더없는 행복이었다.
2000년대 초 이래로 고급 와인 가격 변동 현황
그 이후에도 ‘베스트’ 와인을 종종 구입했는데 가격은 꾸준히 올라갔다. 피숑-바롱 1990은 병당 30파운드 (물가 상승률 고려하면 60파운드), 소제의 바타르-몽트라셰 1995는 69.50파운드 (117파운드), 샤토 마고 1996은 97파운드 (164파운드), 라 플뢰르 페트뤼스 1998은 45.62파운드 (72.54파운드), 린쉬-바주 2000은 40.15파운드(61.03파운드)였다.
이 와인들의 최근 빈티지 병당 가격은 린쉬-바주 2015의 경우 100파운드부터 샤토 마고 2015는 400파운드까지 매우 다양하다. 그리고 소제 바타르의 어린 빈티지 와인은 최소 200파운드 정도 할 것이다. 따라서 ‘베스트’ 와인의 가격은 물가 상승률보다 훨씬 앞서서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한편 물가상승률을 고려할 때 나의 현재 소득은 가장 높은 금액을 벌어들였던 2000년과 2008년에 비교할 때 27퍼센트나 줄어들었고, 이 소득으로 현재 네 명의 가족을 먹여 살리고 있다. 이런 상황을 언급하는 건 ‘베스트’ 와인을 구입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쉽게 없어질 수 있는지 지적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위에서 이야기한 와인 대부분을 되판 이유이기도 했다. 이런 와인은 이제 우리가 구입하기에 너무 값비싸고, 마시기에는 너무 귀하게 되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아닌가?
‘최고의 와인을 진정으로 구입 가능하다고 느끼려면 영국에서 상위 소득 3퍼센트 안에 들어야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연 소득 6만 파운드 정도면 영국 노동 인구 중에서 상위 7퍼센트에 드는 수준이니(공개할 수 있는 가장 최근 소득인 2013-2014년 수치다) 나는 이미 대부분의 우리 국민보다 더 많은 돈을 벌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 볼 때는 아주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부양해야 할 자녀들을 둔 사람이 진정으로 ‘베스트’ 와인을 ‘구입할 수 있으려면’ 영국의 상위 소득층 3퍼센트 안에는 들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혼자서든 배우자와 함께든 세전 연간 91,300파운드 이상을 벌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상위 1퍼센트(연간 159,000파운드 이상)라면 – 이 사람들이 영국 전체의 부 중 21퍼센트를 소유하고 있다 – 영국 전역의 최고급 와인 중 상당 부분을 소유하고 있을 것이다.
특정한 상품이 그 지위가 높고, 찾는 사람이 많으며, 공급량이 제한되어 있다면, 그것 중에서도 ‘베스트’ 제품은 희소성만으로도 언제나 그 상품군의 다른 고품질 제품보다 훨씬 더 비싼 것이 당연하다.
축구선수 폴 포그바(올해 8월 9일 8,900만 파운드의 기록적인 이적료를 받고 유벤투스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옮겨온 선수다)는 백만 달러를 받는 선수보다 89배 더 잘하지도 않고, 무상으로 임대된 선수보다 무한히 잘하지도 않는다. 그는 그저 계산할 수 없는 작은 수들의 합만큼 남들보다 잘하는 것이고, 이런 높은 보수를 정당화시킬 수 있는 것은 맨유의 경영진들이 그런 작은 차이를 가진 다른 선수를 찾아내기가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다. 와인도 다를 바가 없다. 최고급 와인은 – 가성비 기준이든 객관적인 품질의 차이든 – 반드시 가격이 높아야 할 필요가 있다. ‘베스트’ 와인을 고르는 데 있어 ‘구입 능력’을 고려해야 한다면(영국 인구의 97퍼센트가 그래야 하듯) 그냥 포기하는 것이 낫다.
하지만 이것은 확실히 짚고 넘어가고 싶다. 훌륭한 와인이 어마어마한 마시는 즐거움을 제공할 수 없다는 말이 아니다. 당연히 그럴 수 있고, 혹시 소득 상위 1퍼센트 안에 드는 친구 한 명이 내게 슈발 블랑이나 뮈지니 한 잔을 건넨다면 나는 스스로를 행운아라 여기고 고맙게 받아 그 경험을 제대로 만끽할 것이다. 나 역시 집에서 이런 와인들을 일 년에 몇 번 정도 자유롭게 즐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대체로 이런 와인들은 거의 경건한 태도로 맛보는 경우가 많다. 그걸 가진 사람이 아끼고 아끼다가 과도하게 숙성시키는 경우가 종종 있고, 많은 이들이 아무런 생각도, 창의력도, 테이스팅 능력도 없이 그것들만 골라 찬양하고 높은 점수를 후하게 내리기도 한다. 그런 와인들은 또한 높은 지위와 이름값 때문에 잘 보관해 두었다가 대규모로 치러지는 호화로운 행사나 과시를 위한 현란한 수직 및 수평 테이스팅 등에서 대량으로 선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행사에서는 와인의 품질을 여유롭게 즐기며 온전히 감상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훌륭한 와인을 맛보는 것은 미리 준비한, 의식화된 경험인 경우가 많다. 이건 정교할지는 몰라도 흥미로운 경험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반대로 그리스 이라클리온의 한 레스토랑에서 오랜 친구와 마주 앉았는데 그가 이아니스 에코노무의 2006 리아티코를 마셔보라며 한 병 내놓았다고 치자. 그걸 한 모금 맛본 당신은 그것의 겉모습과 맛이 어딘가 특이하고 산도가 낮은 바롤로의 사촌쯤 된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고, 달콤한 향기(그것도 레스토랑에서 태우는 세이지와 구운 문어 냄새 사이로)를 느낀 다음에는 왠지 모를 이유로 터키의 이스탄불을 떠올리게 될 것이며, 그 짭짤한 맛과 풍부한 타닌은 이집트와 필리핀 혈통이 섞인 듯한 웨이트리스가 방금 가져온 구운 염소 고기와 쌉쌀한 녹색잎 채소 샐러드와 완벽히 어울린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글쎄, 이런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흥미로운 경험이 아닐까. 앞으로 20년 후면 난 죽고 없을 것이다. 난 죽기 전에 최대한 많은 흥미로운 테이스팅을 해보고 싶다.
때로 나는 내 앞에 놓인 ‘베스트’ 와인이 아주 마음에 든다. 또 어떤 때는 그 강도가 너무 노골적이고 세다고 느끼기도 하고, 드물지만 완전히 속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건, 그것이 늘 다른 사람이 정해 놓은 ‘베스트’ 와인이라는 점이다. 한 마디로 몇 세기, 혹은 단 몇십 년의 전통이랍시고 세계의 상위 1퍼센트 사람들이 입을 모아 내려놓은 판결이라는 말이다.
와인을 마시는 행위에 대해 40년에 걸쳐 많은 생각을 하고 많은 질문을 던진 끝에, 직업적으로 감상하고 싶은 다양한 와인 말고도 내가 마시기 위해 사고 싶은 와인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게 되었다. 레드 와인이라면 나는 타닌이 뚜렷이 느껴지고(물론 오크나 파우더 때문이 아니라 포도 껍질과 줄기에서 자연스레 우러나온) 질감이 풍부한 것이 좋다. 나는 덜 익은 듯한, 산도가 과도하게 높은 와인은 즐기지 않는다. 또한 아로마와 풍미에 있어 일종의 진지함과 도전, 미묘한 뉘앙스 같은 것을 좋아한다. 때로는 강하게 본능적으로 와 닿는 딱 맞는 느낌 (예를 들자면 포므롤의 메를로나 나파의 카베르네 소비뇽처럼) 같은 것들도 있다. 화이트의 경우라면 신중하고, 미묘하며, 섬세하게 나를 유혹하는 아로마의 매력 같은 것을 좋아한다. ‘광물성’이라 부르는 과일이 아닌 풍미는 보통 다 좋아하는 편이다.
순수성과 투명성은 레드든 화이트든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블로그를 통해 더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풍미의 독창성은 따분하고 평범한 것보다는 낫지만 그 자체만으로 반드시 더 가치가 높다고 볼 수 없다. 그리고 레드든 화이트든 과일 풍미가 지나치게 많은 것은 원치 않는다. 오크 풍미가 과한 것 또한 싫다. 풍미가 과도한 것, 균형이 깨진 것, 마시기 힘든 것 또한 멀리한다. 그리고 사과주나 맥주 같은 냄새가 나는 와인 또한 좋아하지 않는다.
이것은 나의 입맛이다. 당신의 입맛은 크게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의 기호가 어떻든 자신의 기호를 차근차근 이해하고, 기호에 맞는 와인을 여러 방면으로 찾아본다면, 여러 부문에서 ‘베스트’라고 널리 꼽히는 와인들 중 4분의 3은 너끈히 배제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나의 기호를 고려할 때 알자스, 보르도, 프랑스 남서부, 루시용, 론 남부,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독일에서 병당 25유로 이하로 세계의 ‘베스트’ 와인 상당수보다 더 대단한 만족감을 가져다주는 와인을 찾아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당신 자신이 정한 ‘베스트’야말로 진정한 베스트가 아닐까.
작성자
Andrew Jefford
번역자
Sehee Koo
작성일자
2016.08.29
원문기사
*
이 기사는 Decanter의 저작물로 Decanter Magazine에 저작권이 있습니다.